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767
2부 9화
자정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늦은 밤.
낮보다 더 환한 빛을 뿜어내는 곳이 있었다. 그곳은 바로 죽음의 신 신전.
“이렇게 빨리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주교는 차분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의 내면은 설렘과 기대감, 긴장 등 여러 감정으로 휘몰아치고 있었다.
케일은 그에게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적당한 사람이야.’
왕세자 알베르가 건넨 정보를 바탕으로 파악한 눈앞의 주교는 케일이 보기에 적당한 사람이었다.
‘권력도 추구하고, 명예도 탐하지만. 그럼에도 신관으로서의 기본과 해야 할 일은 지키는 자.’
주교에 대한 평은 전형적이었다.
한 나라 교단을 총괄하는 자리에 오르면 없던 권력욕과 명예욕이 생기기도 하는 법이었다.
눈앞의 주교에게는 적당한 신앙심과 적당한 권력욕과 적당한 선함과 적당한 욕망이 공존했다.
“주교님.”
“네, 사령관님.”
주교는 늦은 밤 은밀히 찾아온 케일을 보며 심장이 뛰었다.
‘보나 마나 뻔하다.’
주교는 왕가, 아니, 케일과 왕세자의 입장을 어느 정도 예측했다.
그는 오늘 파악한 정보로 자신의 생각보다 왕궁과 공작가의 피해가 상당함을 깨달았다. 이 소식은 아무리 쉬쉬해도 왕국 전역으로, 나아가 동서대륙으로 알려질 것이다.
차기 강국으로 손꼽히는 왕국에 닥친 불행이니까.
‘그러니 분명 신물을 이용하여 지금 일어난 상황에 대한 불안감을 억누르고 시선을 돌리려고 하겠지.’
그렇기에 이전에는 반응이 그저 그랬던 왕세자가 이리도 쉽게 사령관을 신전으로 보냈을 터.
‘아니면 이 똑똑한 사령관이 분위기 전환을 위해 직접 나선 것일 수도.’
신전과 왕가. 케일과 주교.
두 곳의 이해관계가 어느 정도 일치한다는 것을. 주교는 내심 깨달았다.
때문에 그는 케일이 꺼낼 말을 기대했다.
거래니까.
거래의 우위를 점하고 싶으니까.
“주교님, 툭 까놓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주교는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가뿐히 제어했다.
툭 까놓고 말한다고 한다.
그게 무엇이겠나.
거래로 가는 지름길을 뜻하는 것 아니겠는가.
주교는 케일의 이어질 말을 기다렸고, 케일은 그 기대에 응하듯 바로 말을 꺼냈다.
툭. 품에서 꺼내는 검은 책을 탁자 위에 올려두며.
“신의 말씀을 이미 듣고 있었습니다.”
“…네?”
주교는 순간 당황했다.
“신께서 대화를 청하셔서 대화를 나눈 적도 있습니다.”
“…….”
주교는 놀랐지만, 다시 한번 되묻는 행동을 또 반복하지 않았다. 수십 년간 쌓은 연륜으로 표정 관리부터 들어갔다.
하지만 이미 그의 얼빠진 모습을 케일은 보았다.
사락.
케일은 손을 뻗어 검은 책의 페이지를 천천히 넘겼다.
“제가 어떻게 이렇게 빨리 퍼슬시에서 수도로 왔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렇게 안 좋은 몸으로요.”
사락. 사락.
페이지가 넘어갔다.
주교의 시선이 검은 책으로 향했다.
“…어?”
그의 입에서 다시 한번 얼빠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것은-”
그가 말을 잇지 못했다.
저 검은 책. 제대로 살펴보지 않아도, 무언가 느껴졌다.
주교라는 자리는 단순히 정치력으로 올라올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그런 자들도 있었으나, 그는 적어도 이 물건을 알아챌 눈은 있었다.
사락. 사락.
케일은 이곳에 오기 전 라온에게 이 책을 보여주었다.
‘보여?’
‘응! 인간아, 나도 이 글자는 보인다!’
책장을 넘기던 손가락이 멈췄다.
주교의 눈동자가 한 페이지에 새겨진 글자에서 멈췄다.
“신께서 로운 왕국 수도 휘스시를 말씀하셨고, 저는 휘스시에 왔습니다.”
케일이 휘스시에 왔고, 그다음에 죽음의 신이 휘스시를 검은 책에 적어두었다. 저 글자는 이수혁, 수이 칸의 위치를 나타내는 것뿐이니까.
물론 케일은 선후 관계만 바꿔서 말했다.
“자, 가까이서 보십시오.”
케일이 검은 책을 주교 앞으로 들이밀었다.
주교는 차마 탁자 위로 손도 올리지 못한 채, 검은 책을 내려다보았다.
작은 치유력을 이어받은 한 신관은 주교가 되었고, 그 치유력은 여전했다.
‘이건, 신의 힘이 맞다.’
검은 책에서 풍겨져 오는 기운은 신의 기운이 맞았다. 감히 쉬이 만지지도 못할 만큼, 죽음의 기운이 풍겨 나왔다.
주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미-’
이미 사령관은 신과 닿아있었다.
“신물이 내려온 것은 주교님을 만나기 전에 알았고, 그 물건이 무엇인지, 사용법이 무엇인지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케일은 주교를 만나기 직전에 이수혁에게 물건의 정체를 들었고, 사용법도 여기 오기 조금 전에 왕궁에서 그를 통해 들었다.
어쨌든 케일은 사실을 말하기는 말했다.
‘…신께서 알려주신 건가.’
주교는 케일이 신과 대화를 나눴다는 말을 떠올리며 침을 삼켰다. 하지만 이미 입안은 바짝 말라 있었다.
‘이건-’
권력을, 정치를 떠난 진짜다.
‘그래,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이었어.’
자그마치 신이 한 사람을 가리키며 신물과 신탁을 내렸다.
“주교님.”
온화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교는 책에서 시선을 떼어 케일을 바라봤다.
마치 죽음처럼, 목소리는 온화했으나 그 눈빛은 냉정했다.
신과 닿은 자는 온기 하나 없는 눈동자로 주교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용하지 마십시오.”
순간 주교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는 ‘신물’이 자신 소관의 신전에 나타난 순간부터 이용하려고 했던 모든 것들을 떠올렸다.
지금 신과 닿은 자가 네 속내를 안다고, 그러지 말라고 한다.
그때, 이어진 말에 주교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지 않아도 자연히 다 될 겁니다.”
암갈색 눈동자에 주교의 얼굴이 비쳤다.
문득 주교는 사령관의 온화한 목소리와 달리 냉정한 눈빛이 마음에 걸렸다.
“주교님, 죽음이 화려하든, 신성하든, 비참하든. 결국 죽음은 다가오는 것이며 늘 우리 곁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주교는 저를 올곧이 응시하는 케일의 눈빛을 왠지 피할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굳이 알리지 않아도 두려워하는 것이지요.”
으음.
주교는 침음을 삼켰다.
알리지 않아도 두려워한다.
그 말이 유독 크게 들려왔다.
“신전에서는 성대한 신물 수여식을 열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주교는 케일의 말에 얼른 입을 열었다. 왠지 모르게 그건 오해라고 말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는 케일이 점점 커져 보였고, 그에게서 말 그대로 위대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건-”
“나쁘지 않죠. 그런 행사도.”
주교는 케일의 이어진 말에 안도했다. 케일은 지배하는 아우라를 펼친 채 말을 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시기가 아닌 것 같습니다. 교황청에만 조용히 알리세요. 그러면 알아서 다 알려질 겁니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지금 왕국 상황이 말이 아니니.”
“그렇죠. 대신.”
케일 입가의 온화한 미소가 사라졌다.
주교는 케일에게서 더 큰 압박감을 느꼈다. 이건, 교황에게서도 느끼지 못한 것이었다.
교황을 보며 ‘나도 저 자리를 가질 수 있을 텐데.’라는 가늠을 했다면, 눈앞의 존재는 가늠을 할 수도, 해서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교는 차가운 목소리를 들었다.
“대신, 교황청에 전해주십시오. 신물로 쓸데없는 절차 밟지 말라고.”
주교는 눈을 질끈 감았다.
쓸데없는 절차 밟지 말라고 말한다고 해서 밟지 않을 교황청이 아니었다.
분명 주교가 아무것도 안 하려고 할수록, 이 신물과 케일로 무엇이든 하려고 할 터.
그때, 평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 신물은 제 것 아닙니까?”
신전의 것이라고 말하기에는, 이번 신물은 오로지 케일 헤니투스에게만 내려진 것이었다.
그의 것이 맞았다.
신전의 이득을 떠나, 신의 뜻을 그대로 따르자면.
‘교황은 그렇게 안 볼 것 같은데.’
주교의 눈동자에 고심이 서린 그 찰나.
“주교님.”
케일이 그를 불렀다.
“저는 오로지 주교님을 통해서만 일을 하고 싶군요.”
“아.”
주교가 탄성을 흘린 순간, 케일은 웃으며 말했다.
“이만하면 이용하지 않아도, 얻을 것은 다 얻으시겠죠?”
주교는 그 순간 케일을 보며 마음이 걸렸던 이유를 깨달았다.
온화한 목소리에 냉정한 눈빛.
사령관은 자신과 비슷하구나.
그리고 내 속내를 다 알고 있구나.
‘나보다 한 수 위다.’
주교는 깨닫는 순간, 그 얼굴이 편안해졌다.
“사령관님을 이용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부드러운 음성이 주교의 입에서 흘러나왔고, 케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주교 같은 사람에게는, 단 한 가지만 보여주면 된다.
‘너와 같지만, 너보다는 한 수 위다.’
주교는 자신의 속내를 모두 파악하는 케일을 보며 솔직하게 말했다.
“하지만 상황은 이용하겠습니다.”
케일은 다시 온화한 음성으로 말했다.
“신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주교는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교황 앞에서도 이렇게 자세를 바로 한 적이 없다.
하지만 잃어버린 신물일지도 모를, 또 다른 신물을 들고 와서 신과 대화한 자가 하는 말이다.
아무리 자신이 권력에 빠졌다고 해도, 근본은 신관이다.
죽음의 신 교단을 드높이고 싶은 것도, 신앙심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주교는 케일의 말을 기다렸다.
신의 말씀이 주교의 귓가에 닿았다.
“네가 가는 길이 길이다.”
물론 죽음의 신은 케일에게 그런 소리 한 적 없다.
“그러니 그 길을 망설임 없이 걸어라.”
이 소리도 한 적 없다.
하지만 케일은 그 부분에 대해서 걱정하지 않았다.
‘어차피 내 마음대로 하라고, 신물 내려준 거 아니야?’
그리고 죽음의 신 잘못이 아닌 건 알지만, 그의 바람과 비슷하게 케일이 일을 해나가는 것 같아 될 수 있으면 아주 착실하게 죽음의 신을 이용해먹고 싶었다.
‘이런다고 지가 어쩔 거야?’
어느새 ‘지’로 명칭이 변경된 죽음의 신이었다.
그리고 주교는 케일이 전한 신의 말씀에서 한 가지를 깨달았다.
‘앞으로 또 뭔가가 일어나는구나.’
그리고 이 사령관의 이름이 더 드높아지겠구나.
주교는 기대감이 일었다.
하나는 케일의 이름이 드높아질수록 자신의 권력도 더 커질 것이라는 기대감.
나머지 하나는.
‘궁금하구나.’
주교이기 전에, 죽음의 신을 따르는 신관으로서, 신과 닿은 자가 펼칠 미래가 얼마나 찬란할지 알고 싶고 기대되었다.
어쩌면 자신은 교단의 역사에 기록될 자와 함께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사령관님의 걸음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도 없을 겁니다.”
주교는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그 외의 교단 내 어떠한 존재도 그를 방해하지 않게 만들겠다고 말했다.
“좋습니다.”
케일의 입가에 편안한 미소가 걸렸다. 주교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사령관님.”
“네.”
“혹시 성-”
“아닙니다.”
케일은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 성자가 아닙니다. 치유력도 없고, 성력도 없습니다. 그저 신의 목소리를 가끔 들을 뿐.”
…그게 성자 아닌가요?
그냥 성자보다 더 대단한 성자 같습니다만. 선지자 아닙니까?
주교는 할 말이 많았지만, 케일이 워낙 단호한 태도를 보여 속으로 할 말을 삼켰다.
‘두고 보면 알겠지.’
물론 그의 마음속에서는 어느 정도 기정사실화되었다.
“그럼 신물을 보러 가도 되겠습니까?”
“네, 물론이지요. 손을 댈 수가 없어, 신단 위에 그대로 보관해두었습니다.”
주교는 곧바로 케일을 신물을 보관한 장소로 안내했다.
그 길에는 사람 한 명 없었다. 주교가 모두 미리 비워둔 덕이었다.
-인간아, 곳곳에 사람들이 있다!
물론 숨어서 경비를 서는 자들은 있었다.
‘일을 잘해.’
케일은 은밀한 일 처리에 탁월한 주교를 잘 써먹어야겠다 다짐하며 신전 중심으로 향했다.
탁 트인 하얀 공간.
왠지 모르게 성스럽거나 서늘하기보다는 따뜻한 느낌을 주는 공간의 중심에는 신단이 놓여 있었다.
“여기 있습니다.”
주교는 신단 위를 가리켰다.
“신물과 신탁이 담긴 양피지입니다.”
두 장의 양피지 중 한글로 적힌 양피지의 첫 문장이 케일의 눈에 들어왔다.
어휴.
케일은 한숨을 삼키며 양피지를 무시했다.
대신에 신물로 시선을 돌렸다.
“혹시 위험하지는 않을까 싶어, 용도도 알아볼 겸 살펴볼까 했지만. 애초에 만질 수가 없어서…….”
주교는 말끝을 흐렸다.
신물을 만지려고 하면 강한 죽음의 기운이 일어나 잘못하다간 죽을 수 있겠다 싶어 쉬이 손을 뻗을 수도 없었다.
“…사령관님!”
주교가 놀라서 그를 불렀고, 케일은 이미 신물을 움켜쥐었다.
-인간아, 이 거울 뭔가? 좀… 심하게 화려하게 생겼다.
투명화한 라온의 목소리를 흘려들으며 케일은 속으로 생각했다.
‘참, 웃긴 신이야.’
케일이 손을 움직였다. 신물을 쥐자마자 사용법을 알았다.
파앗.
“세상에, 신물에서 빛이!”
주교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채, 케일을 신비로운 존재를 바라보듯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어떻게 쓰는지 아시는군요.”
알다마다.
“…원래부터 알고 있던 기분이군요.”
“역시.”
케일은 손 위에 올려진 신물을 바라봤다.
‘거울이네.’
금으로 치장된 아주 화려한 손잡이가 달린 거울.
‘일부러 이딴 외양의 것을 줬군.’
이 신 놈.
점점 신에 대한 마음이 거칠어지는 케일이었다.
“오오, 뭔가 뜹니다! 알 수가 없는 언어인데-”
거울은 케일의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무엇도 비추지 않았기에 그 신비로움에 주교는 신물임을 대번에 알았다.
그리고 그 신물은 케일의 손이 닿자마자 빛을 뿜어내며 거울 위로 무언가를 나타냈다.
케일은 그 형태와 유사한 물건을 알고 있었다.
‘노트북이나 태블릿 같네.’
그것들과 유사한 화면이 나타났다.
배경 화면은 웬 황량한 검은 땅이었다. 붉은 용암이 흐르는.
케일은 그 화면에 뜬 유일한 알람을 하나 보았다.
“저는 읽히는군요.”
알 수 없는 언어는 한글이다.
“세상에.”
주교가 아주 작게 중얼거렸지만, 그 안에 담긴 케일을 향한 경탄을 감추지 못했다.
케일은 알람을 읽었다.
편지 봉투 모양의 아이콘과 함께 그 아래에 뜬 글자들.
밑에 추신이 한 줄 덧붙여져 있었다.
…좀 말이 통하는 세계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