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770
2부 12화
“신께서 주신 힘입니까?”
교황은 케일을 휘감은 적금빛을 보며 입을 열었다.
-그건 아니지!
지금껏 가만히 있던 짠돌이가 갑자기 냅다 말했다. 케일은 파괴하는 불 주인인 짠돌이가 신이 되었나 짐작은 했지만.
‘일단 이 힘은 신에게 받은 것은 아니지.’
그렇기에 케일은 망설임 없이 솔직하게 답했다.
“아뇨. 신에게 받은 힘이 아닙니다.”
돈 뿌려서 얻은 힘이죠.
뒷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교황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신께 받은 힘이 아닌데, 어찌하여 이리도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단 말인가!’
순수하면서도 파괴적인.
동시에 세상의 어떠한 어둠조차 두려워하지 않을 것 같은 매서운 적금빛.
문득 교황은 신께서 자신과 같이 대하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설마-’
교황은 세상의 비밀 중 한 가지를 알고 있었다.
‘신은 원래 다른 생명체로서 살아가다가 죽은 후 시련을 거쳐 신이 된다.’
지금은 중년이 된 그녀가 아주 어릴 적, 전대 교황인 노인에게 들은 세계의 비밀이었다.
‘설마 이분도……?’
교황은 한 가지 가정이 가슴속에 치밀어올랐으나, 이내 그 마음을 가라앉혔다.
‘속단해선 안 된다.’
무엇이든 어림짐작으로 생각하고 넘겨짚어선 안 되었다.
정화의 불. 이 교단과 세상을 구해야 한다는 사명을 지닌 교황으로서는.
그렇기에 그녀는 냉정해지려 노력하며 입을 열었다.
“정화자시여, 그 힘으로 바로 정화의 벽을 보수할 수 있는 것입니까?”
당장 중요한 것은 정화의 벽을 보수하는 일이었다.
다른 곳도 아닌 이 대신전을 두고 도망치는 것은 교단에게 있어 상당히 힘든 일이었으니까.
케일은 그녀의 물음에 망설임 없이 입을 열었다.
“바로 보수할 수 있습니다만. 굳이 지금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군요.”
바로 보수할 수 있지만 하지 않겠다고?
지금 이 상황에?
교황은 순간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반박의 말을 바로 꺼내지 않았다. 신께서 보낸 정화자이니, 뜻이 있을 터.
때문에 그 뜻을 묻고자 입을 열었다.
“정화자시여, 검은 안개가 들어오면 교단 안의 사람들이 위험해집니다.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하시니, 그 연유를 물어도-”
사락.
그 순간 교황은 자신을 지나쳐 가는 검은 로브를 볼 수 있었다.
곧이어 케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동료가 먼저 할 일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때 신전 안에 묘족 두 명과 함께 있던 작은 검은 용이 꽤 큰 주머니를 소환했다.
“메리야, 여깄다!”
평범해 보이는 주머니는 검은 로브를 입은 여인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팔을 들어 올려 그 주머니를 받아 들었다. 교황은 그제야 그녀의 손을 보았고, 눈을 크게 떴다.
사락.
평범한 갈색 주머니 입구를 묶고 있던 끈이 풀렸다.
메리의 손길은 아주 빠르지는 않았지만, 망설임이 없었고 제법 신속했다.
주머니를 뒤집었다.
투둑. 투둑.
평범해 보이지만, 상당한 성능을 지닌 아공간 주머니에서 무언가 떨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작은 주머니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무언가들.
쿵! 쿵!
거대한 뼈가 바닥에 떨어졌다.
“설마-!”
갑옷을 입은 신관 중 한 명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현재 샤올렌에서 가장 고귀한 능력이라고 평가받는 힘. 그 힘을 신관은 이스카 제국에서 딱 한 번 본적이 있었다.
그 경이로운 힘.
죽어버린 검은 땅조차 지배해버리는 그 힘.
메리는 필요한 만큼 물건을 꺼낸 주머니 입구를 손으로 여미며 다른 한 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리고 나직이 읊조렸다.
“일어나라.”
검은 실선이 그녀의 손가락 끝을 타고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땅에 떨어져 있던 뼈들이 하나둘 움직이며 서로 뭉쳐 들었다.
“…네크로맨서가 맞군.”
갑옷을 입고 있던 노신관. 주교는 감탄과 탄식을 섞어 중얼거렸다. 그 옆에 있던 신관이 놀라서 내뱉었다.
“시, 심지어 검은 뼈!”
3m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형체를 이룬 해골은 그 뼈가 검었다.
교황은 검은 로브의 여인을 보며 입안을 잘근 깨물었다.
‘검은 뼈를 만들 정도의 네크로맨서라니!’
최상급 실력을 지닌 네크로맨서. 그 정도는 되어야 죽은 마나를 가득 머금은 검은 뼈를 만들 수 있다고 교황은 알고 있었다.
‘아니면 하늘이 감탄할 정도의 재능을 타고나면 능력을 얻자마자 가능하다고 듣긴 했지만.’
샤올렌에서는 네크로맨서가 되는 비법이 오직 이스카 황가에서만 대대로 내려져 오며, 그 비법을 통해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자가 고귀한 피를 지녀야 한다는 소리가 있었다.
교황은 이를 믿지 않았지만.
‘정화자와 함께하는 네크로맨서라.’
놀랍다.
이는 교황뿐만 아니라 이 광경을 지켜보는 모든 신전 관계자들의 마음과 같았다.
“세상에-”
탄성을 내뱉던 신관은 톡톡 어깨를 두드리는 손길에 고개를 슬쩍 돌렸다가 헛숨을 들이켰다.
“드, 드래곤이시여.”
“그래. 나 용이다!”
작은 검은 용이 눈을 반짝이며 입꼬리를 씰룩였다. 그러고는 은근슬쩍, 하지만 근처의 모두에게 다 들릴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 세상에서도 우리 메리랑 우리 인간이랑 아주 대단한 거냐?”
“네?”
“대단하냐?”
“그, 그렇습니다!”
“히히. 나도 대단하다!”
검은 용이 귀엽게 웃었으나, 신관은 마주 웃을 수 없었다.
쿵. 쿵.
거대한 덩치를 지닌 검은 해골이 움직였다. 몬스터 혹은 곰과 같은 형상을 한 그것은 정화의 벽을 부식시키며 솟구쳐 오르는 죽은 마나수로 돌진했다.
“흐음. 나도 가서 도와줄까나.”
그때, 신전 안에 있던 이들은 다크엘프 숀이 느긋하게 메리에게로 향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어이, 거기 뱀파이어. 당신은 안 갈 겁니까?”
“갑니다.”
뱀파이어가 그 뒤를 따랐다.
신전 사람들은 정화자 케일 주위로 모여든 네크로맨서, 다크엘프, 뱀파이어를 묘한 눈동자로 바라보았다.
‘흐음.’
에르하벤이 이를 지켜보다가 슬쩍 시선을 돌렸다.
“내가 대충 들어서 말이야. 이수혁이랬나?”
“지금은 수이 칸이지.”
“검은 매 일족인가?”
붉은 눈동자가 에르하벤에게로 향했다.
최한이 그 둘을 지켜보고 있었다.
수이 칸은 나른한 미소를 입가에 걸었다.
“무엇이 궁금하지?”
“케일 그 녀석도 아나?”
“무엇을?”
“새들의 기사에 대해서 말이야.”
“글쎄.”
수이 칸은 최한에게 한번 시선을 맞추고는 정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검은 지하수를 사정없이 빨아들이는 검은 뼈 해골과 어둠 속성 종족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지하수가 조금 사그라들자, 그곳으로 다가가는 케일이 보였다.
수이 칸은 나직이 읊조렸다.
“내 이야기도 곧 해야지. 같은 팀이니까.”
최한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순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순간이었다.
쿠웅–!
땅이 진동했다.
“케일 님-!”
최한이 탄성처럼 케일의 이름을 불렀을 때.
‘빌어먹을.’
케일은 눈가를 일그러뜨렸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그는 일행이 죽은 마나를 어느 정도 흡수하자, 검은 안개가 들어서기 전에 정화의 벽을 보수하러 다가갔다.
스스—스스—
부식되는 벽을 통해 들어서던 검은 안개는 케일이 적금빛 불벼락을 휘감은 채 다가가자 모두 회색빛 재가 되어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아아— 정화자시여–”
케일은 뒤에서 웬 노인의 탄성이 들려왔으나, 무시하고 일단 검게 부식되어가던 붉은색 반투명한 벽으로 손을 뻗었다.
그의 손을 타고 흐른 불벼락이 그 정화의 벽을 향해 움직였다.
‘감이 와.’
케일은 직감적으로 느꼈다.
저 정화의 벽에서 파괴하는 불의 기운이 흐른다고.
그리고 바로 깨달았다.
이 불의 기운이 저 벽을 보수할 수 있다는 것을.
파직-!
적금빛이 정화의 벽과 닿았다.
그 순간.
쿠웅—!
땅이 진동했다.
그리고 정화의 벽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오오— 성스러운 빛이–!”
또 웬 노인의 목소리가 들렸고, 케일은 눈가를 찌푸렸다.
반투명한 붉은색 벽이 적금빛으로 물들면서 그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스스—스스—
그 빛에 벽 바깥에 닿아있던 검은 안개들이 재가 되어 흩날렸다.
빛이 닿는 범위는 모두 그렇게 변해갔다.
‘모두’는 검은 안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 정화의 불이시여!”
털썩. 신관 중 한 명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빛이 닿는 범위의 검은 안개가 재가 되어 사라짐과 동시에 벽 바깥의 땅이, 벽에서부터 대략 10m에 이르는 범위의 땅이 조금씩 검은색을 잃어가고 있었다.
물론 본래의 땅 색으로 돌아간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점차 검은색에서 고동색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였다.
이를 지켜보던 케일은 생각했다.
‘이건-’
마치 이건-
“정화!”
그의 생각을 알아챈 듯 뒤에서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다.
정화의 벽은 적금빛으로 빛나며 벽 바깥의 대략 10m 반경까지 정화시키고 있었다. 검은 안개는 차마 그 근처로 다가오지도 못하고 있었다.
닿으면 족족 재가 되어버렸으니까.
“저, 정화자시여-”
다가온 교황의 부름에 그녀를 쳐다봤던 케일은 흠칫 어깨를 떨었다.
교황의 눈빛은 마치 어디서 금광 100개를 찾은 사람처럼 번뜩이고 있었다.
케일은 얼른 그 눈빛을 피한 채 손을 뻗은 자세 그대로 정화의 벽을 응시했다.
‘아.’
교황은 그 침착하고 진지한 모습에 자신이 경거망동했음을 깨닫고 입술을 꾹 다물었다.
‘신이 자신과 같이 대하라 했던 분.’
교황은 새삼 신의 말씀을 되새기며 두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케일은 이를 모른 채 생각했다.
‘이상한데.’
-이상한데?
짠돌이도 마찬가지였다.
케일도, 짠돌이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별로 힘 안 썼는데, 왜 이래?
‘내 말이.’
케일은 부식된 벽만 보수하면 되겠다는 생각에 일단 아주 작은 불벼락만 정화의 벽에 흘려보냈다. 그리고 더 필요하면 더 쓸 생각이었다.
‘무리할 생각은 없었으니까.’
이곳은 케일의 기반이 있는 세계가 아니다. 아무리 조력자 집단이 있다고 하더라도, 상황을 보았을 때 이 조력 집단은 이 세계의 주류가 아니었다.
오히려 적이 주류일 확률이 높았다.
그렇기에 최대한 힘을 제대로 분배해서 쓸 생각이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효율이 좋지?
케일과 짠돌이의 생각이 계속해서 일치하는 순간이었다.
-케일, 이상하다. 지금 이 정도의 힘은 네 몸 전체가 힘이라고 했을 때, 손가락 하나 정도의 힘이다. 그런데 이런 효과를 보인다니, 저 정화의 벽이라는 것 때문인가?
‘그런가?’
케일은 적금빛으로 빛나는 정화의 벽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저 벽과 내 힘이 상성이 좋아서 이런 효과가 있는 건가?’
케일은 일단 벽이 모두 보수되었기에 슬쩍 불벼락 힘을 거뒀다.
“음.”
그리고 침음을 흘렸다.
‘그대로다.’
정화의 벽은 본래의 반투명한 붉은 벽으로 돌아가지 않고 그대로 적금빛으로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여전히 검은 안개가 10m 안으로 다가오지 못했다.
“괜찮으십니까?”
교황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급하게 건넨 말에 케일은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을 향한 말이 아닌 줄 알았으니까.
“혹시 어디 불편하십니까?”
하지만 한 번 더 이어진 말에 고개를 돌렸다. 교황은 케일에게로 다가오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조금 전, 진중한 얼굴의 정화자가 ‘음’하고 침음을 흘리며 힘을 거두는 것을 보았다.
‘분명 무리하신 것이겠지.’
안 그래도 안색이 허여멀건 한 것이, 교황 자신처럼 썩 체력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나도 힘을 쓰면 지친다.’
교황도 자신이 가진 정화의 힘을 쓰면 체력이 금세 동이 나고 말았다.
자신도 그러한데, 눈앞의 이 사람은 얼마나 힘들겠는가.
그럼에도 교황 자신이 그러하듯 ‘음.’하고 짧은 침음 한 번으로 모든 것을 참아내었다.
지켜보는 이들이 있으니까.
따르는 이들이 있으니까.
‘분명 그러실 거다.’
교황은 눈앞의 사람이 비로소 자신과 같은 인간이라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존경심이 치솟았다.
“아, 괜찮습니다.”
케일은 교황이 갑자기 왜 이러나 생각을 하면서 대충 별거 아니란 듯 쉬이 답했다.
정말 별것 아니었으니까.
대신 그는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메리.”
“네.”
“이쪽과 우리 쪽에 있던 것은 다른가?”
메리는 케일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바로 파악했다.
원래 그녀가 있던 세계의 죽은 마나와 이곳의 죽은 마나가 다르냐는 물음이었다.
메리는 검은 해골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해골의 뼈를 통해 스며든 죽은 마나. 그 힘을 그녀는 당연히 가늠할 수 있었다.
때문에 메리는 솔직하게 답했다.
“이쪽이 더 순수합니다.”
즉.
“이쪽이 더 사람에게 치명적이고 위험합니다.”
메리는 파악한 것을 그대로 말했다.
“이곳의 80% 이상이 이렇게 되어 있다면, 이곳은 인간에게는 멸망한 세계가 맞습니다.”
케일은 손가락에 묻은 죽은 마나수를 손등에 문지르고 있는 다크엘프 숀을 쳐다봤다. 숀은 슬쩍 고개를 들었다.
“저도 같은 의견입니다.”
뱀파이어 역시 묵묵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케일은 고개를 돌려 교황을 바라보았다.
‘음?’
그러다 흠칫했다. 교황 어깨 너머 노신관이 무릎을 꿇은 채 두 손을 맞잡고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케일을 바라보고 있었다.
-인간아!
냐아아옹!
냐아옹!
왠지 찝찝함이 생기는 케일이었으나, 이는 곧 다가오는 평균 9세를 보며 털어냈다.
그는 교황과 시선을 마주했다.
“이제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죠?”
“네.”
교황은 망설임 없이 답했다.
* * *
교황은 펼쳐진 지도의 중심에 위치한 이스카 제국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죽은 마나를 사용하는 흑마법사들 중 특이한 자들이 있습니다.”
그녀 주위를 둘러 앉아있던 케일 일행은 교황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그들이 죽은 마나를 사용해 마법을 쓸 때면, 항상 성스러운 하얀빛이 흘러나옵니다.”
케일의 눈동자에 이채가 감돈 순간, 교황은 담담하게 말했다.
“그 마법이 바로, ‘백마법’입니다.”
“그리고?”
당연히 그 뒤가 있을 것이라 확신하며 케일이 건네는 질문에 교황은 당연하다는 듯 이어 답했다.
“그 ‘백마법’을 최초로 만든 집단이 ‘검은 피’ 가문이며, 대대로 황제의 스승을 배출한 가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