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771
2부 13화
“이곳의 백마법은 개념이 내가 알던 것과는 다르군.”
에르하벤은 다리를 꼬며 나직이 읊조렸다.
정화의 벽과 관련된 사건이 한바탕 벌어지고 난 후, 교황을 따라온 곳은 서재 혹은 집무실 같았다.
방안 곳곳에 배치된 소파와 의자에, 혹은 일어서서 중앙 테이블에 놓인 지도를 바라보던 케일 일행. 그들의 시선이 에르하벤에게로 향했다.
“보통 백마법이라고 하면 죽은 마나가 아닌, 일반 마나를 이용한 마법을 흑마법과 구분하기 위해 붙인 명칭이지. 거의 사용하지 않지만.”
말을 끝맺으며 고룡은 교황을 바라봤고, 교황은 침을 삼켰다.
‘왜 눈치채지 못했지?’
아까까지만 해도 교황은 고룡의 존재감을 거의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 들어서서 고룡이 후드를 벗은 순간, 그에게서 거대한 존재감이 뿜어져 나왔다.
‘용일 확률이 높다.’
작고 귀여운 검은 용 말고도 용이 한 명 더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것도 제대로 된 성룡일 확률이 높다고. 교황이 확신과도 같은 추측을 하는 순간이었다.
그렇기에 교황은 자신에게 말을 낮춘 상대에게 도리어 말을 높였다.
“그 말씀도 맞습니다. 본래 쓰던 기본 마법을 백마법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에르하벤 옆에 앉아있던 케일은 오르세나 공작가 막내 공녀가 외쳤던 ‘백마법’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고 있었다.
‘어떤 백마법일까?’
7살의 아이가 가리킨 백마법은 일반 마나를 이용한 백마법일까, 아니면 성스러운 빛을 뿜어내는 흑마법을 가리키는 것일까.
교황의 말은 이어졌다.
“현재도 그 백마법은, 음, 구분을 위해 일반 마나를 이용한 백마법은 그냥 마법이라 칭하겠습니다.”
케일은 지도를 바라봤다.
샤올렌 세계에 자리한 3대륙. 그 대부분이 검게 칠해져 있었다. 바다 역시도.
정확히 말하면 세계가 가르쳐 주었듯 81.29%가 검게 변했다.
제 색을 유지하는 것은 20%도 되지 않았다.
“마법은 현재도 이름있는 마법사 가문에서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가문의 역사와 유구한 정통을 드러내는 상징이거든요.”
교황은 살짝 난감한 미소를 띠운 채 말을 이었다.
“물론 아직 20% 땅이 제 기능을 수행하고 있기에 마법이 쓰이는 경우도 꽤 많습니다.”
“어쩌다가 세계가 이렇게 되었지?”
에르하벤의 물음에 교황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땅이 검게 물들기 시작한 것은 대략 300여 년 전입니다.”
“음.”
최한이 침음을 흘렸다.
300년.
그 정도면 상당히 오래전부터 세계는 조금씩 죽은 마나에 침식되어 갔단 소리였다.
“과정은?”
고룡은 담담하게 물으며 가만히 생각에 잠긴 케일을 살폈다. 물론 케일만큼이나 깊은 생각에 잠긴 듯한 수이 칸이라는 수인도.
그러나 이어진 교황의 말에 고룡은 시선을 그녀에게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
“시작은 용의 멸종이었습니다.”
쿵!
교황은 큰 소리에 시선을 돌렸다. 작은 고양이, 묘족과 함께 있던 검은 용이 두 앞발로 바닥을 내리쳤다. 콰직. 신전 바닥이 부서졌다.
“멸종이라니!”
라온이 놀라서 케일을 쳐다봤고, 케일은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상세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교황님.”
“네, 정화자시여.”
한층 극진해진 말투로 교황은 말을 이었다.
“3대륙과 이를 감싼 바다에 있던 용이 모두 죽었습니다. 이 또한 처음에 인간들은 몰랐습니다. 용을 볼 일이 거의 없으니까.”
맞는 말이었다.
케일이 특이한 경우지, 인간은 생을 살며 용을 마주할 일이 극히 드물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대륙 중앙에 위치한 산이 하나 폭삭 가라앉는 일이 발생합니다.”
“산이 무너졌다고요?”
“아뇨. 무너진 것이 아니라 가라앉았습니다. 땅 밑으로요.”
음.
갑자기 에르하벤이 침음을 흘리며 꼬고 있던 다리를 풀었다.
그 모습에 케일의 눈동자에 이채가 감돈 순간, 교황은 떨리는 목소리로 이어 말했다.
“그때, 엘프들이 찾아와 용의 멸종을 언급하며 말했습니다.”
교단의 기록에 남아있다.
그때의 광경이.
엘프들이 인간을 찾아와 비장하게 혹은 울면서 말했다고 한다.
“세계수가 죽었다.”
에르하벤이 깊은 탄식을 흘렸다.
교황은 정화자의 흔들림 없는 눈동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엘프들은 그렇게 말했고, 그 뒤로 이 세상은 검게 물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잠시.”
케일은 손을 들어 그녀의 말을 잠시 막았다.
“세계수는 불멸자 아닙니까?”
세계수는 죽더라도 그 존재 그대로 다시 살아나지 않나?
그렇기에 끊임없이 생을 이어가지 않나?
“모르겠습니다. 기록에 남아있기를 엘프들은 알 수 없는 존재가 세계수를 죽였다고 했고, 이에 대해 그 당시 각 종족의 대표들이 찾아가 그 말이 사실임을 확인했다고 합니다.”
“케일 님.”
가만히 있던 최한이 입을 열었다.
“유사합니다. 하얀 별이 했던 방식과요.”
케일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최한의 말이 맞다. 행동 패턴이 비슷해.’
하얀 별이 모조리 실패해서 그렇지.
그 역시도 용을 죽이려고 했으며 엘프들이 사는 마을을 찾아가 세계수 나뭇가지를 노렸다. 이는 어쩌면 세계수를 죽이기 위한 과정의 한 단계일지도 몰랐다. 거기다가 그놈들은 가짜 세계수도 만들어서-
‘아!’
케일은 자신의 상의에 매달려 있는 배지를 바라봤다.
이 안에 가짜 세계수가 있다.
그것도 검은 세계수.
‘으음.’
묘한 빛이 그의 표정에 맴돌았고, 이를 알아챈 오랜 동료들은 왜 그러냐는 듯 바라봤지만. 케일은 손사래를 치며 교황에게 계속 말해달라 손짓했다.
“그 이후의 과정은 별다를 것이 없습니다.”
별다를 것 없다고 말하는 것과 달리 교황의 표정은 상당히 어두웠다.
“땅은 죽은 마나에 침식되어갔고, 그에 따라 죽어가는 생명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갔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힘이 떠오르고, 권력 관계가 재편되었죠. 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나중에 문서로 정리하여 함께 설명드리겠습니다.”
케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설명을 듣지 않아도 대강의 권력 관계는 알겠군.’
아직 물들지 않은 약 20% 땅.
그곳이 권력 중심일 터.
“그런데 말입니다.”
다크엘프 숀이 이 방에 들어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어느 정도 땅이 죽은 마나에 침식된 후에야, 그에 따라 죽은 생명체가 많아서 죽은 마나가 자연히 많이 발생할 수 있었겠지만- 아, 아닙니다.”
그는 평균 9세를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대신 다른 이들을 바라봤다.
‘알고 있구나.’
이미 숀이 말하려는 부분을 짐작하고 있었거나 혹은 그의 말에 바로 눈치채고 있었다.
숀이 말하려던 것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케일, 저 다크엘프의 말이 맞다.
에르하벤이 케일에게 머릿속으로 뜻을 전했다.
-초기에 땅을 침식시킬 정도의 죽은 마나를 생산하려면 수많은 생명체가 인위적으로 죽어야 가능할 것이다. 하얀 별이 모고르 제국과 합심하여 연금술 종탑 밑에 막대한 양의 죽은 마나를 생산했듯이 말이야.
모고르 제국 연금술 종탑 지하 공동에는 수많은 뼈와 함께 죽은 마나가 가득했었다.
“일단.”
케일이 입을 열자 시선이 그에게로 집중되었다. 그 와중에도 케일은 생각을 정리했다.
‘사냥꾼들이 로운 왕국을 건드렸다.’
거의 확신이었다.
‘그리고 오르세나 막내 공녀는 백마법을 말했다.’
그러니, 우선적으로.
“검은 피 가문에 한번 방문해야겠습니다.”
라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홍도 귀를 쫑긋거리며 한쪽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인간아! 부수는 게 아니고 왜 방문이냐?”
“맞는데! 이상한데! 왜 안 부수는 건지 이상한데!”
교황이 흠칫했으나, 케일은 태연했다.
“내가 언제 부수기만 하는 사람인가?”
씨익. 케일의 입꼬리가 올라간 순간, 평균 9세는 그러면 그렇지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동료들 몇몇은 슬그머니 방황하는 교황의 눈동자를 회피했다.
물론 최한은 케일을 따라 순한 미소를 지었고 메리는 느릿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최한이 입을 열었다.
“그러면 검은 피 가문이 있는 곳으로 가야겠군요.”
자연히 그의 시선이 지도 위 이스카 제국으로 향했다.
교황은 그 시선을 알아챈 듯 제국의 수도를 가리켰다.
“검은 피 가문은 현재 이곳에서는 ‘화이언스’ 가문이라고 불리며, 공작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 집도 공작이다!”
“맞는데! 좋은 집인데!”
라온의 말과 홍의 맞장구에 교황은 잠시 멈칫했다.
‘…정화자께서는 타 세계의 공작인가?’
의문은 일단 뒤로 미뤘다.
“화이언스 가문은 400여 년 전부터 황태자의 스승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죠.”
“400년 동안? 그걸 다른 이들이 그냥 놔두나?”
에르하벤의 물음에 교황은 쓴웃음을 지었다.
“화이언스 가문은 황제의 스승만을 할 뿐, 다른 관리직은 한 번도 넘보지 않았습니다. 또한 누구보다도 이 땅의 죽은 마나 침식화를 늦추려고 한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죠. 그게 아니란 것을 저희는 밝혀냈지만 말입니다.”
쓴웃음과 함께 살벌해지는 눈빛을 뿜어내는 교황의 모습을 보아, 무언가 사연이 있는 듯했다. 하지만 교황은 이에 대해 설명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아무튼, 화이언스 가문은 이스카 제국의 수도. 황궁 바로 옆에 있습니다.”
다크엘프 숀이 애매하다는 듯 낮게 중얼거렸다.
“접근이 쉽지 않을 것 같군요.”
가만히 있던 이가 케일을 보며 입을 열었다.
수이 칸이었다.
“괜찮다면 나 홀로 탐색은 가능하다.”
아직 그의 정체를 자세히 모르는 숀이 의아하다는 듯 수이 칸을 바라봤지만, 납득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최한의 모습에 의문을 숨겼다.
케일은 수이 칸이 나른하게 웃어 보이는 것을 탐탁지 않다는 듯 바라보다가 교황에게 물었다.
“검은 피 가문. 화이언스 가문에 가본 적 있으십니까?”
정보를 바탕으로 최대한 신속하고 편한 루트를 짤 계획인 케일이었다.
“네. 있습니다.”
“그럼 안내도 가능하겠군요.”
최한이 밝은 얼굴로 말했고, 교황의 표정이 흐려졌다.
“가능하긴 합니다만. 정화자께서 원하신다면 언제든 함께할 수는 있습니다만.”
“-다만?”
에르하벤이 의아하게 바라봤다.
교황은 케일 일행의 시선을 받으며 씨익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지친 얼굴로 짓는 미소는 상당히 고달파 보였다.
“이 부분은 아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 고달파 보이는 얼굴로 말했다.
“저희가 사이비입니다.”
“네?”
최한이 저도 모르게 되물었다.
교황은 더 화사하게 웃었다. 그래 봤자, 지친 얼굴에 짓는 미소인지라 상당히 처연해 보였다.
“원래 저희 교단은 대륙에서 인정하는 정식 교단이었는데, 백 년 전부터 사이비로 판명이 나서요. 이제는 교단 신관인 걸 걸리면 재판 없이 즉결 처분 가능합니다! 하하하하!”
하하하하-
교황의 밝은 웃음소리가 집무실을 가득 채웠다.
‘하아.’
케일은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조력자 집단이라고 하더니, 이 대륙에서 사이비로 통하는 교단이라고 한다.
거기다가 어느 정도의 위치이기에 단순히 신관이라는 이유만으로 즉결 처분이 가능하다는 것인가?
물론 이미 케일은 자신이 가진 의문에 대한 답을 알아챘다.
‘정화 능력을 검은 피 가문에 들켰거나 현재의 권력자들에게 들킨 것이겠지.’
멸망해가는 세상이지만, 이 세상을 반기고 이 세상에서 권력을 휘두르길 바라는 이들은 분명 존재할 테니까.
그런 이들에게 딱 봐도 정화를 내세운 정화의 불 교단은 눈엣가시일 확률이 높았다.
“그럼 함께하는 것이 힘듭니까?”
숀의 물음에 교황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정체를 숨기면 가능합니다. 평소라면요.”
음? 평소?
케일은 그 단어 사용이 이상해 교황을 바라보았다. 교황은 한쪽에 있던 달력을 집어 들었다.
“요즘은 제국 경비가 상당히 삼엄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케일의 물음에 교황은 달력을 케일 쪽으로 들이밀며 답했다.
“현재 다음 대 이스카 제국 후계자 자리를 모집 중입니다. 그리고 그 모집이 끝나자마자 바로 후계자 경합이 열릴 예정입니다. 그래서 어느 때보다도 제국의 경계가 철저합니다.”
음?
케일의 표정에 의문이 떠올랐다. 동시에 에르하벤이 입을 열었다.
“황태자 자리는 황족 중에서 뽑는 것 아닌가? 그런데 왜 모집을 하지?”
“결국 황족 중에서 황위 후계자가 나오기는 합니다. 하지만 300여 년 전부터 네크로맨서가 필수 조건이 된 이후로는 모집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왜?”
교황의 시선이 천천히 한쪽으로 이동했다.
케일도 따라 이동했다.
그의 시선에 가만히 꼿꼿한 자세로 앉아 테이블을 내려다보는 검은 로브 사람이 담겼다.
메리였다.
‘설마?’
케일은 수이 칸을 바라봤다. 팀장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참고로, 그 세계에서 가장 강한 제국의 황제는 반드시 한 가지 능력을 지녀야 해. 그 능력이 있어야 황족들도 황태자로 도전해볼 자격이 생기지.’
‘그래, 네크로맨서의 능력을 지닌 자는 그곳에서 후계자의 지위를 가진다. 방계든 직계든 상관없이 말이야.’
수이 칸, 전 팀장도 미간을 찌푸린 채 케일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것까지는 몰랐다는 듯.
두 사람은 이미 교황의 이어질 말을 그녀의 시선에서 어느 정도 알아챘다.
“황제는 가장 강한 네크로맨서 능력을 지녀야 합니다. 즉, 네크로맨서 능력을 지닌 자는 황제에 오를 자격이 있는 것이죠.”
메리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보랏빛 눈동자와 케일의 눈동자가 마주쳤다.
가만히 있던 라온이 무언가를 깨달은 듯 통통한 앞발로 바닥을 한 번 더 내리치며 외쳤다.
“착한 메리 황제 되나?! 메리는 네크로맨서 중에 최고다! 제일 쎄다!”
물론 라온이 아는 네크로맨서는 메리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