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775
2부 17화
별들의 정원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아주 짧았다. 겨우 몇 초였다.
그 찰나의 정적은 1황자를 허겁지겁 따라오던 시종에 의해 깨졌다.
“감히 이분이 누구신데! 그딴 망발을 하는-”
“규칙이다.”
당연히 그 시종의 말을 끊어먹은 사람은 케일이었다. 그는 시종에게서 시선을 돌려 주변을 쓰윽 둘러보았다.
“시험에 등록한 순간부터, 후보자는 모두 동등하다.”
그의 시선이 다시 시종에게로 향했다.
“이 시험은 제국, 나아가 이 샤올렌을 위한 신성한 시험 아닌가? 그에 걸맞게 우리 주군께서는 행동하셨다. 무엇이 문제지?”
“이, 이-!”
시종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해갔다.
딱 봐도 눈앞의 새로운 후보자는 황족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황족 앞에서, 1황자 앞에서 당당하게 굴다니!
하지만 시종은 뭐라 말을 꺼내지 못했다. 가면 사이로 보이는 녹색 눈동자는 무심하면서도 차가웠다. 쉬이 대하지 못할 만큼.
케일은 시종을 빤히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우리 주군께서는 위시로프 왕가의 피를 이으셨다.”
아.
몇몇 이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케일은 가면 아래 드러난 입꼬리를 부드럽게 올렸다. 하지만 웃지 않는 눈동자가 여전히 시종을 바라봤다.
“우리 주군께 예를 다하도록.”
시종은 입을 꾹 다물었다.
‘멸망한 왕국의 힘도 없는 왕족 따위가 감히!’
터전마저 잃어버린 왕국들 중 몇몇의 왕족은 머리 좋게 타 왕국에 의탁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고서 그 왕국에 끝까지 남아 죽은 이들도 많았다.
‘위시로프는 대부분이 그렇게 죽었다고 들었다. 그런 멍청한 곳의 왕족 주제에!’
허울뿐인 왕족이었다.
터전을 잃었으니, 힘도, 돈도 무엇도 없을 것이 뻔했다.
하지만 시종은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다. 그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았다.
대신 어느새 차분해진 표정으로 1황자의 뒤에 섰다. 물론 메리를 향한 사과 따위는 없었다.
‘후보자가 동등하다고?’
웃기는 소리.
‘이 안에도 급은 있다.’
더불어 전쟁터였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온갖 수단을 동원해야 하는.
그렇기에 자신은 1황자가 머무는 1궁에 배정되기 위해 온갖 뇌물을 다 바쳤어야 했다. 1황자를 모시는 것이야말로, 미래를 위한 투자였으니까.
시종은 힐끗 1황자를 살폈다.
“…….”
표정이 없기로 유명한 1황자. 늘 냉철하며 말이 별로 없는 그가 이렇게 누군가를 찾아온 일은 드물었으며 먼저 말을 건네는 것은 더 드문 일이었다.
1황자는 입을 다문 채 19번째 후보자 메리를 바라보았다.
“…….”
상대가 침묵하니 메리도 가만히 침묵했다. 상대가 무표정한 얼굴로 쳐다보니, 그대로 했다.
케일의 조언을 제대로 받아들인 메리의 행동이었다.
“…….”
1황자는 자신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보랏빛 눈동자에 비친 제 얼굴을 본 순간, 눈썹을 찌푸리며 뒤돌아섰다.
“1, 1황자님?”
그러고는 다시 제 궁으로 돌아갔다.
사람들은 그런 1황자를 쳐다보았지만, 메리는 상대가 안 쳐다보니,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고 안내역 기사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런 메리를 관찰하는 몇 명이 있었다.
“아, 그, 안내하겠습니다!”
얼어붙어 있던 기사 빈센트는 더 예의 바른 자세로 메리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는 앞장섰다.
케일 일행은 그 뒤를 따랐다.
달칵.
창문을 열었던 이들은 슬그머니 창을 닫았다.
지켜보던 이들 중 몇몇은 빠른 속도로 어딘가로 움직였다.
“여기가 19궁입니다.”
“반갑습니다. 19궁을 담당하는 궁장 겸 시종입니다.”
기사의 안내가 끝났고, 케일 일행은 궁장이라며 나선 시종의 뒤를 따라 다른 별궁들과 똑같은 모양과 크기를 지닌 19궁 안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는 이들이 있었다.
그 숫자는 다섯 명.
그중 세 사람은 어딘가로 움직였고, 남은 두 사람은 잠시 서로를 바라봤다.
앞선 세 사람과 달리 두 사람은 모두 메리와 같이 얼굴에 검은 실선이 자리해 있었다.
“흥.”
2황녀는 눈이 마주친 상대를 외면하고는 자신의 궁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녀는 홀로 들을 수 있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분명 그 힘은…….”
네크로맨서 능력을 지녔기에 알 수 있었다. 갑자기 생겨나 하늘을 향해 치솟던 거대한 힘.
“제길! 1황자 말고도 괴물이 또 있는 거야?”
2황녀의 눈동자에 불길이 일었다. 그녀는 연신 소름이 돋은 팔을 쓸어내리며 다짐하듯 혼잣말을 했다.
“…그래도 지지 않아.”
2황녀의 머릿속이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정원에 남은 한 사람.
“크크큭-!”
“형님, 안 들어가실 겁니까?”
더벅머리의 남자는 술병을 입에 가져다 대며 다가온 부하의 말을 무시했다.
그는 술병에서 입을 떼며 흘러내린 술을 대충 손등으로 닦아내었다.
“재밌네.”
모두 동등한 후보지만, 어느 누구도 황족들에게 똑같이 대하지 못했다.
자신조차도, 1황자가 반말로 물었다고 해서 반말로 답할 수는 없었다.
“뭐? 대답하기 싫다고? 크하하하하!”
대답하라고 1황자가 명령을 했음에도 대답하지 않은 19번째 후보자.
“…그리고 강했어.”
황궁 입구에서 느껴지던 그 힘.
“그 1황자가 움직일 만했어.”
그는 술병을 수하에게 대충 던졌다.
“혀, 형님! 갑자기 던지면 어떡합니까!”
수하는 요령 좋게 그 술병을 받아 들고서는 더벅머리 남자를 향해 불만을 내뱉었다. 하지만 수하는 이내 입을 다물었다.
뒤돌아서 자신의 궁으로 향하는 더벅머리 남자. 그의 눈동자가 서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 * *
그리고 하루 뒤.
모집일 마지막 날까지 더 이상 후보자로 등록된 사람은 없었다.
헤니 위시로프.
메리가 19번째 후보자로서 마지막이었고, 그렇게 이번 시험의 총후보자는 19명이 되었다.
그 결과가 나오자마자, 19개의 궁을 관리하는 궁장들은 각 궁의 손님이자 주인에게 금박이 새겨진 하얀 초대장을 전했다.
자정을 향해 가는 어두운 밤.
달칵.
케일은 은밀히 침실 창문을 열었다.
사아—
한 줄기 바람이 검은 그림자를 품고서 창을 통해 침실 안으로 흘러들어 왔다.
“안 들켰습니까?”
케일의 물음에 검은 그림자는 유유히 테이블 위에 내려섰다.
“검은 매 일족은 밤과 친하지.”
수이 칸은 양 날개를 접어 들며 담담하게 물었다.
“여기는 어떤가?”
케일은 메리가 건넨 초대장으로 부채질을 하듯 흔들며 답했다.
“19궁 안에는 적어도 마법, 흑마법 장치가 없습니다.”
뒤이어 메리가 내비게이션과 같은 음성으로 말했다.
“궁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아직까지는 지켜만 볼 뿐, 탐색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언제든지 그 사람들은 황가를 위해 우리의 정보를 캐내려고 할 수 있겠지.”
고룡 에르하벤이 와인을 마시며 담담하게 읊조렸다. 그는 케일은 보며 물었다.
“최한은?”
“라온과 함께 별들의 정원을 탐색 중입니다.”
“하긴.”
에르하벤은 별것 아니라는 듯 단언했다.
“여기서 우리보다 강한 자는 없으니, 그 둘이서 거리낄 것은 없겠군.”
케일은 초대장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강자는 여기에 있겠죠.”
에르하벤은 침묵으로 긍정을 표했다. 그리고 메리가 케일을 보며 말했다.
“갈 겁니다.”
“그래야지.”
케일은 간결하게 답하고는 수이 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어떻습니까?”
검은 매의 눈이 반달처럼 휘었다.
케일은 황궁 밖 동료들에게 맡겨둔 일의 경과를 들을 수 있었고, 수이 칸은 보고의 끝에 덧붙였다.
“황제 곁에는 늘 황제의 스승이 있다고 한다.”
“그럼-”
케일은 연회가 펼쳐질 황제궁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면.
“내일 화이언스 가문의 가주를 보겠군요.”
검은 피. 사냥꾼들의 우두머리 중 하나를 보겠구나.
케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 * *
별들의 정원을 벗어나면 있는 꽤 큰 규모의 궁.
그곳이 오늘은 화려한 연회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밖은 이미 해가 지며 밤이 찾아들고 있었는데, 아름다운 보석과 꽃, 부드러운 실크로 꾸며진 연회장은 천사의 정원인 것처럼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12번째 후보자, 라로프 님께서 입장하십니다!”
그리고 그 연회장으로 차기 황태자 자리를 거머쥐게 될지도 모를 후보자들이 수하들을 데리고 하나둘 입장했다.
“각양각색이군. 누님이 보기에도 그렇지 않아?”
2황녀는 옆에서 4황자가 건네는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흥. 더럽게 도도하게 굴기는. 그래 봤자, 하녀 몸에서 태어난 주제에.’
4황자는 2황녀의 도도한 행동에 짜증이 일었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쯧. 품위 없게.’
황족들은 모두 연회에 걸맞은 옷차림이었으나, 그 외의 후보자들은 그 복장이 각양각색이었다.
물론 궁장은 후보자들에게 이 연회에는 복장의 제약이 없으며, 미리 고지한 부분이 아니기 때문에 무엇을 입든 신경 쓰지 않을 것이라 했지만.
‘그래도 그 수준이 드러나는군.’
4황자는 코웃음을 흘렸다. 2황녀가 그런 4황자를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바라보았으나, 그는 알아채지 못했다.
대신 그는 후보자들의 검은 실선을 눈에 담으며 생각했다.
‘결국 황족들 간의 싸움이 되겠지. 이번 대에는 방계들도 약하니, 직계들의 싸움이 될 거야.’
반드시, 반드시 1황자를 이겨내고 황좌를 자신의 손에 넣고 말 것이다.
4황자가 그리 다짐한 순간이었다.
“19번째 후보자, 헤니 위시로프 님께서 입장하십니다!”
시종장의 외침이 들려오는 것과 동시에 4황자는 모든 후보자들의 시선이 입구로 향하는 것을 보았다.
4황자의 수하가 다가와 그의 귓가에 은밀히 속삭였다.
“그자입니다.”
4황자는 입구를 노려보았다.
‘…흥!’
지난 이틀간, 황궁 입구에 떠오른 하얀 본 드래곤에 대한 이야기는 일파만파 수도 전역으로 퍼지고 있었다.
그에 따라 후보자들 사이에서 헤니 위시로프에 대한 경계가 한층 높아지고 있었다.
그녀가 정원에 등장할 당시, 수하만 보냈던 4황자는 그녀의 행동에 대해서 들었고, 결론을 내렸다.
‘어디서 위아래도 모르는 멍청한 게! 황가의 네크로맨서 비법만 한 것은 없어. 분명 하얀 본 드래곤도 별것 아닌 뭉텅이 정도였겠지.’
4황자는 들어서는 헤니 위시로프를 보고서는 한 번 더 코웃음을 흘렸다.
‘로브라니.’
그녀는 물론이거니와 수하들도 모두 로브 차림이었다. 거기다가 꼴에 수하들은 가면을 써서 얼굴의 절반 이상을 가리고 있었다.
‘그래 봤자, 멸망한 왕국의 신하 후예들이겠지.’
4황자는 미간을 찌푸린 채 고개를 돌렸다.
“음?”
그 순간, 그는 2황녀가 헤니 위시로프를 뚫어질 듯 바라보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뭐야?’
더 짜증이 치밀어올랐다.
그러나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후보자 대부분이 헤니 위시로프를 대놓고 혹은 힐끔거리며 연신 탐색했다.
그때.
“1번째 후보자, 센더스 님께서 입장하십니다!”
이 시험에서 황족은 그 성을 떼고 참가한다. 공정성을 위해서란 명목으로.
타닥. 타닥.
1황자와 그를 따르는 자들의 발걸음 소리가 잔잔한 연주 소리와 함께 연회장에 울려 퍼졌다.
‘용이 왔나?’
1황자와 함께한다고 알려진 용. 그 존재가 케일은 궁금했다. 별들의 정원에서는 아무리 탐색해도 용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
물론 걸릴까 봐 각 궁 안으로 잠입하지 못해 모든 것을 알 수가 없었지만. 적어도 용은 그 별궁들이 모인 곳에는 없었다.
케일은 1황자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음?’
그리고 머릿속으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멈칫했다.
-인간아! 저 검은 머리 용 맞는 거 같다!
뭐?
1황자 센더스 뒤쪽에 검은 머리칼을 지닌 여자가 뒤를 따르고 있었다. 모두가 용이 아니냐고 수군거리고 있었다.
-저 검은 머리, 용 맞다! 그런 느낌이 온다!
툭. 케일은 제 팔을 살짝 치는 손길에 고개를 돌리려다가 낮게 속삭이는 목소리에 움직임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51% 확신한다.”
에르하벤은 주어 없이 말했지만, 그 의미는 충분했다.
고룡이 절반 이상 저 흑발 여인이 용일 것이라 판단하고 있었다. 백 프로 확신하지 못하는 이유가 궁금했지만, 일단 저 용이 진짜라면-
‘진짜 용이라고? 검은 피 가문, 사냥꾼과 협력하는 용인 건가?’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한 순간, 에르하벤이 묘한 어조로 덧붙였다.
“정상이 아닌 것 같은데.”
용이 정상이 아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