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78
77화.
밑밥은 잘 깔리고 있었다.
부드러운 동작으로 동굴 안으로 들어와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은 케일을 바라보는 시선들은 묘했다.
“머물 곳을 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중하면서도 다정한 어조였다. 당연히 목소리의 주인공은 케일이었다.
리타나는 전형적인 대륙 중앙인의 모습을 한 붉은 머리칼의 남자에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
“여행자들끼리 당연한 것이죠. 비를 많이 맞아 추우신 같은데, 불 쬐고 가세요.”
그러면서도 그녀와 수하들은 케일과 정확히 경계를 두었다. 아무리 비를 맞아 그 모습이 처량해 보여도 타인이었다.
-비는 무슨! 하나도 안 맞았는데! 그리고 따뜻한 물로 했다!
라온이 리타나의 말을 부정했다.
케일과 온은 동굴 근처에서 우비를 찢고 라온의 따뜻한 물과 체온 보호 마법을 사용해 동굴로 들어섰다.
케일은 연기를 꽤 잘해낸 온의 등을 쓰다듬었다.
냐아아옹.
온은 황당하다는 듯 케일을 바라봤다.
그런 두 사람을 리타나는 은밀히 매서운 눈빛으로 관찰했다.
‘평범한 사람 같지 않은데.’
리타나는 아까 전 부하가 창을 겨눴을 때는 몰랐지만, 이제 보니 눈앞의 이는 평범한 모험가와 여행자라기에는 그 분위기가 달라 보였다.
체격은 좋았으나 서 있는 자세, 걸음걸이, 그것들을 보았을 때 적어도 무를 익힌 자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마법사나 다른 종류의 강자 같아 보이지도 않았다.
그녀의 느낌은 정확했다.
-오늘 또 발톱만큼 강해 보인다.
라온의 평가를 받는 케일의 몸은 지배하는 아우라가 은은하게 감싸여 있었다.
케일은 리타나가 자신을 탐색하는 동안, 그 역시도 리타나를 스쳐 보듯 관찰했다.
남부의 정글 사람들, 통칭 남부인들은 구릿빛 피부에, 운동 신경에 특화된 체격이 특징이었다. 정글이라는 대자연을 지닌 만큼 그들은 상당히 자연친화적 성향이 강했다.
자연친화적.
그 성향은 명백하게 다른 방향으로 나뉘어져 한쪽은 위퍼 왕국 부족민들의 문화로, 다른 한쪽은 남부인들의 문화로 발달했다.
위퍼 왕국 부족민들 쪽은 자연의 확고한 진리 ‘적자생존’과 ‘투쟁’이 뚜렷하게 발달했다. 반면에 남부인들은 ‘상생’과 ‘우두머리와 집단’ 개념이 발달하였다.
어색한 침묵이 그들 사이에 놓였다. 그 정적을 깬 이는 별다를 것 없다는 듯 흘러가는 목소리였다.
“어제보다 비가 거세진 게 내일 숲을 나가야겠네요. 그렇지, 온?”
다정히 고양이에게 말을 건네는 남자의 모습은 모닥불만큼이나 따뜻했다. 온이 이를 기가 차다는 듯 바라봤다.
-…왜 저러나?
라온이 의문을 표했다.
그리고 리타나와 수하들은 굳은 얼굴로 케일을 응시했다. 리타나는 남자가 한 말로, 하나를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그, 저기-”
“케일이라 불러주시면 됩니다.”
“네, 케일 씨.”
리타나는 남자의 행색이 그제야 제대로 눈에 들어왔다. 마법 주머니를 차고 있었지만 칼도, 무엇도 없이 그저 산책 나온 듯 간편한 옷차림이었다. 그리고 길을 아는 듯한 태도.
마지막으로 비상한 분위기.
순간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용인가?’
전설이 떠올랐다. 소원을 들어준다는 용. 그가 어떤 모습인지, 어떻게 등장하는지는 전설에 나오지 않았다. 리타나는 자신의 생각이 황당하다고 느끼면서도 알 수 없는 긴장감이 차올랐다.
그때였다. 리타나와 케일이라는 남자의 눈빛이 맞닿았다.
남자의 눈꼬리가 휘었다.
“저 용 아닙니다.”
아. 그녀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옴과 동시에 그녀는 뜨끔했다. 리타나는 케일이 젖어서 얼굴에 달라붙은 붉은 머리칼을 쓸어넘기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길은 압니다.”
“…어떻게?”
정글. 그 복잡하고 불규칙한 곳을 제 집처럼 드나들던 자신과 수하들도 여기서는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눈앞의 남자가 해냈다고?
의문을 여지없이 그대로 드러내는 리타나에게 케일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이 아이는 묘족의 아이입니다.”
케일은 온을 쓰다듬었다. 한없이 다정한, 꼭 성자와 같은 눈빛이었다.
“우연히 빈민가에서 이 아이를 만나 지금처럼 비 오는 날 함께하게 되었지요.”
그는 동굴 밖을 바라봤다. 꼭 그 비 내리던 날을 떠올리듯 우수에 젖은 눈빛이었다. 온은 그때를 떠올렸다. 이렇게 우수에 젖을 순간은 아니었다. 하지만 온은 입을 꾹 다물었다. 꼬리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온, 이 아이가 안개를 조종할 줄 압니다.”
“귀한 힘이군요.”
리타나는 우림을 덮고 있는 안개를 떠올리며 감탄을 흘렸다.
“그렇죠. 영지를 떠나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이곳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발견한 고대 문서에서 이곳이 안개에 의해 조종된다는 문구를 하나 보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온에게서 시선을 돌려 케일을 바라봤다. 보면 볼수록 그 행동과 말투에서 기품이 느껴졌다. 못해도 귀족으로 보이는 자였다.
“그래서 저와 이 아이는 함께 이곳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은은한 모닥불 불빛 사이로 케일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리타나와 수하들은 그게 보였다. 케일의 차분하지만 열정이 담긴 목소리가 동굴 안으로 스며들었다.
“우리의 힘으로 이곳의 비밀과 길을 잃은 자들, 그리고 그들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이들에게 하나의 희망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래서 왔습니다.”
-…이게 아닌데.
라온이 혼란스럽다는 듯 중얼거렸고, 온은 체념했다. 그저 가만히 꼬리를 살랑거렸다.
케일은 리타나의 눈빛이 변하는 것을 보며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띠었다.
“다행히 그 생각대로 안개를 조종하니, 길이 보이더군요.”
곧 그는 안개의 비밀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정신 착란과 길을 알 수 없도록 마나가 교란되는 구조라는 것을, 하나하나 다 설명해 주었다.
“그랬군요.”
리타나는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전설은- 없는 것이겠군요.”
안개와 마나의 작용이라면, 용의 힘이라던 전설은 거짓이나 다름없었다. 허탈함이 리타나와 수하들 얼굴에 드리워졌다. 하지만 한편으로 리타나는 잘되었다 싶었다.
이대로 숲에 불을 내어야 하나 고민하던 것보다는 상황이 나았기 때문이다.
“그럼 혹시 내일 나가실 때, 저희 안내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럼요. 도움이 필요하신 분들은 응당 도와야지요.”
케일을 바라보는 리타나의 눈길이 한층 부드럽고 따뜻해졌다. 인상대로 선한 이였다. 이런 마음가짐을 가졌기에 그에게서 비범한 분위기가 흘러나온 것일 터.
케일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간절한 소원이 있으셨을 텐데.”
“괜찮습니다. 어쩔 수 없지요. 안 그러면 숲에 불이라도 질러서 빠져나가야 하나 생각했는데. 그것보다는 낫죠.”
불. 그 단어에 케일의 눈빛에 이채가 반짝이다 순식간에 사라졌다.
“불이라. 참 무서운 단어네요. 자연을 아끼는 남부인분들께서 얼마나 큰 기로에 서 있으셨는지 느껴집니다.”
“남부에 대해서 아십니까?”
“잘은 모르고, 그저 책으로만 많이 접했습니다. 제가 여러 곳을 다니는 걸 좋아하고, 또 다양하고 아름다운 풍경들을 사랑하거든요.”
-호오, 그렇구나. 약한 인간.
케일은 라온의 반응에 뒤통수가 싸해져 왔지만 최대한 밝게 말했다.
“정글의 산과 강, 그 모든 것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책으로 많이 봤습니다. 이제 이 우림의 길을 벗어날 테니, 시간이 되면 가보려고 합니다.”
“그러시군요.”
미안함과 안타까움, 씁쓸함. 그런 감정들이 리타나에게서 차올랐다. 그녀는 정글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는, 이 우림을 벗어나면 보일 그 아름다운 광경을 기다리는 이에게 차마 거짓을 하거나, 모른 척할 수 없었다.
수하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쉽지만, 이 우림을 벗어나서 마주한 정글은 아름답지 않으실 겁니다.”
“…그게 무슨?”
우림을 벗어나 하루 정도 더 가면 정글 지대가 펼쳐졌다. 남부 전역의 대부분의 차지하는 정글. 그 영역은 상당히 넓었다. 그런데 왜 하필 리타나가 여기 이 우림으로 왔겠는가.
불이 난 곳과 가까워서 그렇다.
“정글에 불이 났습니다.”
“네? 그럼 당장 꺼야 하지 않습니까?”
“…꺼지지도 번지지도 않은 불이거든요.”
혼란스러워하는 케일의 눈동자를 보며 리타나는 현재 정글 한구석에서 타오르는 불길에 대해 설명해 나갔다.
“어느 날부터 1구역 정글. 그러니까 이 우림을 벗어나면 나오는 정글이 1구역입니다. 거기에서 불길이 치솟더군요. 물, 마법, 주술, 온갖 방법을 써도 불이 꺼지지 않아 큰 걱정을 했는데, 1구역만 태우고 그 이상은 번지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씁쓸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이지 모르겠네요.”
희한한 불길이었다.
하지만 케일은 이 불길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마법, 주술로도 꺼지지 않는 불길.
정답은 연금술이었다.
마법보다 과학적인 연금술. 그 연금술이 가장 발달했지만, 어찌 보면 연금술뿐이라 할 수 있는 나라가 하나 있었다.
모고르 제국.
연금술 종탑을 보유한 제국에서 이 일을 저질렀다.
‘정확히 말하면 황태자지.’
총 크고 작은 15구역으로 나뉜 정글을 통합한 리타나와 통합된 정글의 세력을 걱정한 황태자가 은밀히 진행한 일이었다.
하지만 세상의 비밀은 있을 수 없는 법. 4권 말미 우림에 불을 지른 리타나는 후에 황태자의 짓임을 깨닫고, 5권쯤 적자생존이라는 다른 개념을 내건 툰카와 모고르 제국의 황태자를 상대할 준비를 한다.
말 대신 흑표범을 탄 여왕은 전사들을 이끌고 정글을 지키고자 하였다.
‘그것까지 내 알 바는 아니지.’
케일은 이 일에 결코 끼어들고 싶지 않았다. 그는 이번 정글 불 건만 해결하고 돈을 받은 뒤, 몇 가지 일을 처리하고 영지에 박혀 있을 생각이었다.
왜냐면 황태자를 썩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성이 안 좋아.’
알베르 왕세자와 제국의 황태자는 비슷한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케일과 동류라 볼 수 있었으나, 조금 달랐다.
왕세자는 기본적으로 대의를 따지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케일이 대하고 이용하기 편했다.
그러나 황태자는 그런 것이 없다.
오로지 자신의 이득만을 따졌다.
그리고 보다 음험했고 교묘했다.
케일과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그는 서대륙의 중앙에서 모든 것을 컨트롤하려던 황태자의 인상착의를 머릿속 구석으로 밀어버리며, 얼굴 근육을 움직였다.
비통한 표정이었다.
“불길이 큽니까?”
“…살면서 그렇게 큰 불길은 처음 보았습니다. 밤낮 할 것 없이 하늘을 향해 치솟을 듯 솟아오르는 불길은 마치 폭발이 매일 일어나는 것 같아 보여요.”
“그럼 접근도 힘들겠군요.”
“그렇죠. 동물도, 사람도 다들 그 근처에 가지도 못합니다. 다가가기만 해도 화상을 입을 것 같은 열기거든요.”
“끔찍, 하, 정말로 끔찍한 일입니다.”
리타나는 진심으로 그 사실을 안타까워하고 슬퍼하는 케일을 보며 고마움을 느꼈다. 남부인들의 일에 대해, 자연에 이렇게 공감하는 중앙인을 보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그 불을 끄고자 합니다.”
“그렇군요.”
그녀는 자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케일이 고민이 생긴 듯 깊은 상념에 빠져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시간은 길지 않았다.
짧았다. 그리고 그의 눈빛에 결연함이 드리워졌다.
“저를, 하.”
그는 말을 하다 말고 한숨을 내쉬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러다가도 이내 비장한 눈빛으로 리타나를 바라봤다.
“저를 그 불길 속으로 데려다주십시오.”
“네?”
케일이 아는 리타나는 약한 자에게 한없이 약하며, 선한 이에게 하나라도 더 주고자 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복수는 열 배로, 은혜는 천 배로 갚는 여인이었다.
케일은 어느 때보다도 선하고 비장한 표정을 얼굴 위에 그려냈다. 그는 일부러 목소리를 살짝 떨며 말했다.
“그 불을 끌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검은 용이 케일의 머릿속에 외쳤다.
-약한 인간, 왜 그러나? 오늘 아주 이상하다! 넌 약하다! 왜 그러나?
그러거나 말거나, 케일은 여전히 결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제 힘으로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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