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785
2부 27화
그 순간, 케일은 심장이 뛰었다.
쿵. 쿵. 쿵.
이상하다.
이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렇게 고대의 힘이 크게 느껴졌던 순간이 있던가?’
파괴하는 불.
케일은 이 고대의 힘을 그간 수없이 많이 사용했다. 자유자재로 이용하며, 제 뜻대로 다룰 수 있었다.
‘조금 달라.’
하지만 지금 느껴지는 ‘파괴하는 불’은 그간 이 힘을 사용한 어떤 순간과도 달랐다.
-케일! 여기는, 다르구나! 정말이지, 지독한 어둠을 또 보는구나!
파괴하는 불, 짠돌이가 소리쳤다.
-내 살았을 적이 떠올라!
케일은 제 손끝을 내려다봤다.
죽은 마나 중독을 막기 위해 온몸에 휘감은 적금빛 불벼락. 그에 닿은 모든 검은 안개는 재가 되어 사라져갔다.
짠돌이는 지금 그가 살았을 적이 떠오른다고 했다.
‘…이게 파괴구나.’
짠돌이가 살았을 적, 어떻게 어둠을 파괴해왔는지 알 것 같았다.
더불어 이 세계, 샤올렌 속에서 얼마나 파괴하는 불 힘의 효율이 높은지도.
아주 잘 알 것 같았다.
“케일 님!”
최한의 다급한 음성이 들려왔다. 케일은 고개를 들었다.
쿠웅!
땅이 울리는 소리와 함께, 검은 뿌리 중 하나가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마치 간을 보듯.
스스스–
뿌리에 비하면 그 숫자가 너무나도 많은 넝쿨들.
어느새 일행 주위를 벽처럼 둘러싼 그것들 중 일부가 케일을 향해, 그 너머의 일행을 향해 달려들었다.
죽은 마나, 그 이상의 지독한 독기가 그것들의 움직임과 함께 바람에 실려 빠르게 다가왔다.
그 순간, 짠돌이가 웃음을 터트렸다.
-크하하하! 저놈도 적수를 알아보았구나! 하지만 어리석어!
그 웃음은 마치 광소와도 같았다.
세계를 불태울까 봐, 세계수가 자신의 안전을 걱정하게 만들었던 그 힘이, 감정이, 광기가 언뜻 드러나는 것 같았다.
-사냥감이 감히 사냥꾼에게 달려들다니.
짠돌이는 웃음을 멈췄다.
파괴하는 불을 다뤘던 고대의 영웅은 나직이 읊조렸다.
-우습구나.
최한이 케일의 앞에 섰다.
“돕겠습니다!”
케일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물러서.”
“네?”
뒤를 돌아보려던 최한은 멈칫하였다.
‘이건 무엇이지?’
등 뒤로 열기가 느껴진다.
케일이 가진 불의 힘이리라.
하지만 자신을 태울 것 같은 열기는 아니었다. 뜨겁지도 덥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최한은 등에 땀이 흘렀다.
열기가 아닌, 그 외의 다른 것을 느끼며 흐른 식은땀이었다.
‘내가 케일 님의 힘에 긴장을 했다고?’
감탄이나, 경외를 한 적은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조금 더 근본적인 무언가를 느꼈다.
문득 최한은 케일이 가진 힘의 이름을 떠올렸다.
‘파괴하는 불.’
그래, 파괴다.
여기서는 정화하는 불이라는 성스러운 이름으로 불리지만, 실제로 죽은 마나를 정화하지만, 결국 불은 모든 것을 태울 수 있다.
파괴할 수 있다.
“최한, 물러서.”
케일은 한 번 더 그리 말하며 최한을 지나쳤다. 그리고 덧붙였다.
“안 그러면, 너 타 죽어.”
최한은 앞서나가는 케일의 등을 바라봤다.
쿠웅!
검은 뿌리가 다가온다.
최한이 한참 동안 올려다봐야 할 정도로 그 끝이 잘 보이지 않는 검은 뿌리가 마치 거대한 뱀처럼 케일을 향해 그 뿌리를 뻗어왔다.
케일이 손을 들었다.
파직.
그의 손에 불벼락이 일었다.
적금빛이라기엔 조금 더 선명한 붉은빛이 섞인 벼락.
‘음?’
최한은 그 붉은빛 사이로 섞인 옅은 파란빛을 보았다.
마치 붉은 밤하늘에 뜬 작은 푸른 별처럼.
파란 알갱이가 붉은 벼락 사이에 스며든 순간.
“아.”
최한은 보았다.
죽은 마나 안개.
그 검은 안개가 물러선다.
마치 도망치려는 듯 케일 쪽에서 사라져갔다.
‘아니야, 물러서거나 도망치는 게 아냐.’
안개는 자아가 없다.
‘닿는 족족 소멸하는 것이겠지. 그리고 그 범위가 넓어져 간다.’
케일 주위가 정화되어간다.
그의 손에 맺힌 불벼락이 마침내 그의 손을 떠났다.
이 모든 건 단 몇 초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지만, 최한의 눈에는 너무나도 길었다.
최한은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에르하벤 님!”
“알아!”
에르하벤은 최상급 마정석을 하나 꺼내 들었다.
콰직. 마정석이 부서지며 금빛 가루가 그를 휘감았다.
우우우—-!
금빛 가루가 진동하였고, 고룡은 제 주위로 실드를 둘렀다. 메리와 올리비아를 보호하기 위해.
“…마법……?”
메리의 품에 안겨있던 올리비아가 흑마법이 아닌, 마법을, 그것도 이런 환경 속에서 피어오른 찬란한 금빛 마나를 보며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올리비아는 다른 광경에 시선이 사로잡혔다.
닿았다.
겨우 성인 주먹만 한 크기의 벼락이었다.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푸른빛 알갱이를 품은 적빛 벼락은 검은 뿌리에 닿았다.
콰아아아앙—-!
엄청난 소리에 귀가 멍멍해져 왔다.
‘어둠이-’
어둠이 사라졌다.
그녀의 시야를 가득 채우던 어둠이 모조리 사라졌다.
오로지 그녀의 눈에 담기는 것은.
‘붉다.’
붉은빛뿐이었다.
어둠이, 안개가, 모든 어두운 것이 지금은 단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아.’
그 순간, 그녀는 자신이 지금 입고 있는 로브의 안에 새겨져 있던 문양의 정체를 떠올릴 수 있었다.
‘정화의 불.’
제국에서 백여 년 전에 이단으로 선정되어 그 고위직은 즉결 처분 대상이 된 교단.
그 교단의 신도를 발견하기 위해 알아야 할 문양이 그 문양이었다.
몇 년 전 잠깐 보았던 그 문양이 이제야 떠올랐다.
‘거짓인 줄 알았는데.’
올리비아는 그곳이 허황된 교리를 지닌 사이비 단체라 배웠다.
그들이 믿는 신은 존재하지 않으며 오히려 멸망단과 비슷하게 일반 황국민을 교묘하게 선동해 세상을 혼란에 빠뜨릴 것이라 했다.
‘그런 종교는 많으니까.’
세상이 이렇게 되고 난 후, 사이비라 칭해도 맞는 종교 단체가 아주 많이 생겼었다. 올리비아는 그곳도 당연히 그런 곳 중 하나라 생각했다.
그녀는 기억 속 정화의 불 교단이 지닌 비정상적인 교리라고 배웠던 내용 중 하나가 떠올랐다.
붉은빛이 사라져간다.
그녀의 시야를 가득 채우던 붉음은 사그라들었다.
“…하.”
회색의 재가 공기 중에 흩날렸다.
올리비아의 입에서 감탄과 탄식이 모두 뒤섞인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없어.”
하, 하하-
그녀의 입에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마나 폭주처럼, 그녀의 몸을 잠식해가던 죽은 마나의 거친 통증이 지금은 잠시 잊혀졌다.
정확히 말하면 아까부터 잊고 있었다.
이 전율할 만한 광경에.
없다.
그녀를 쫒아오던 괴물이 이제 하나도 없다.
아니, 있긴 있다.
그녀는 말을 내뱉기 힘듦에도 말했다. 그래야만 이 감정을 표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도망…가네…….”
지상에 모습을 드러냈던 십여 개의 뿌리는 대부분 더는 존재하지 않았다.
재가 되어 사라졌다.
타닥, 타닥.
한두 개의 뿌리만이 일부만 남아, 타들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도망갔다.
쿠웅! 쿵!
타들어 가면서도 뿌리는 지하로, 모래 속으로 몸을 숨기며 도망간다.
스스스–
넝쿨도 대부분 재가 되었거나 혹은 타들어 가고 있었다.
불은 꺼지지 않았다.
스슷-! 스스스–!
넝쿨은 타고 있는 제 몸뚱이를 잘라냈다. 마치 자아를 지닌 것처럼, 아니면 명령을 들은 것처럼.
그렇게 제 몸을 잘라내 타지 않은 몸을 얼른 뒤로 물렸다.
이것들도 도망을 갔다.
모래에 몸을 비벼 불을 끌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모래도 타고 있어.’
그들을 중심으로 한 반경 10m. 그 주위 검은 모래 위에는 붉은 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올리비아는 그 불의 중심에 선 자를 바라봤다.
그 끔찍한 괴물을, 자신은, 동료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괴물을 단번에 도망가게 만든 사람.
그 사람. 케일은 가만히 서서 도망쳐가는 넝쿨이 사라진 방향을 응시했다.
“어, 어떻게 사람이- 사람이 저럴 수가 있죠?”
올리비아는 여전히 아픔조차 잊은 채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이런 광경을 그녀는 처음 보았다.
‘그는-, 저자는-’
사람이 맞을까?
지금도 적금빛의 벼락이 그를 감싸고 있었다.
정화자. 그는 사람이 맞는 건가?
“저자는 사람이 맞나요?”
사람이 어떻게 저런 힘을 휘두를 수가 있죠?
현 황제, 그리고 황제의 스승인 화이언스 가문의 가주.
그들이 힘을 쓰는 걸 올리비아는 몇 번 보았다. 그 힘도 엄청났다.
두려웠다.
이길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경이롭지는 않았다.
“아, 저 녀석 말인가?”
평이한 어조가 들려왔다.
올리비아는 시선을 움직였다.
조금 전 마법을 펼쳤던 자가 정화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 녀석은 사람이 맞지.”
담담하게 그리 말하는 모습.
‘…저 녀석‘은’?’
그렇다면 사람이 아닌 자도 있다는 소린가?
올리비아는 마법사의 주위를 여전히 감싸고 있는 금빛 가루를, 마나를 보다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런 실력의 마법사를 나는 본 적이 없다. 있다는 소릴 들어본 적도 없다.’
흑마법사 중에는 흑마법 외에도 마법을 정통처럼 이어오는 가문이 꽤 있다.
화이언스 가문만 해도, 마법을 잘 다뤘다. 그들은 흑마법, 백마법, 거기다가 마법까지 능수능란했다.
‘하지만 이런 오염 구역에서 마법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마법사가 있던가?’
마나를 자유롭게, 구애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있던가?
적어도 최상급 마법사 이상은 되어야 할 것인데?
‘…그리고 이 마법사는-’
저 녀석은 사람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사람이 아닌 자가 있단 소리다.
‘만약 눈앞의 마법사가 사람이 아니라면?’
사람이 아닌데, 이렇게 마나를 잘 다루는 존재는?
“아.”
올리비아는 저를 바라보는 남자의 눈동자가 순간 색이 변하며 금빛으로 변하는 것을 보았다. 그 금빛 눈동자의 동공은 세로였다.
인간도, 엘프도 아니다.
‘설마-’
용.
그 단어가 떠올랐다.
남자의 눈동자는 다시 녹빛의 인간의 것이 되었다. 그 남자는 손가락을 까딱였다.
딱!
올리비아의 몸에 따스한 기운이 감싸였다. 로브에서 느끼는 것과는 조금 다른, 자연 속 마나의 순수한 기운이었다.
그 기운이 폭주하려는 죽은 마나를 토닥이듯 살짝 어루만졌다.
올리비아의 중독 현상을 치유하지는 못해도 늦출 것처럼.
그 온기와 달리 남자의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꽤 단호했다.
“저 녀석을 두고 이용할 생각이나, 허튼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물론 당할 녀석이 아니지만.”
물론 차가운 목소리는 아니었다.
“작은 경고지.”
하지만 허투루 들을 수 없는 기운이 담겨 있었다.
인간과 다른, 상위의 존재가 뿜어내는 아우라가 아주 조금 올리비아에게 닿았다.
“올리비아 황녀님.”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케일이 그녀의 곁으로 다가왔다. 모래 위에 타오르던 불이 꺼졌다.
최한이 케일의 곁에서 그의 안색을 살폈다.
‘괜찮구나.’
케일의 안색은 괜찮았다.
굉장한 힘이 담긴 벼락을 사용해서 걱정했건만, 안색도 창백해지지 않은 것이 케일은 아직까지는 괜찮아 보였다.
‘최한아! 네가 잘 살펴봐야 한다!’
‘맞는데!’
‘부탁하는데.’
최한은 평균 9세의 당부를 떠올리며 케일의 곁에 섰다.
이런 최한의 행동을 모른 채 케일은 무릎을 쭈그리고 앉아, 올리비아를 바라봤다.
“…정화자…….”
케일은 자신을 그리 부르는 올리비아의 모습에 메리를 슬쩍 바라봤다. 메리가 자신이 말했다는 듯 살짝 눈을 깜박였다. 케일은 다시 올리비아를 바라봤다.
‘음.’
앞으로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그는 이내 솔직하게 말했다.
“정화자는 내 이름 중에 하나기는 하죠.”
올리비아의 눈이 더 커졌다.
케일은 더 놀라는 연유는 몰랐지만 계속 솔직하게 뜻을 전했다.
“이 세상의 침식을 막기 위해 왔습니다.”
“…이 세상을 구하러……?”
올리비아 황녀가 겨우 내뱉은 말에 케일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냥꾼을 잡으면, 일단 침식도 어느 정도 막을 테고, 그렇게 보면 구하러 온 게 맞기도 하지.’
케일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군요.”
그는 올리비아에게서 시선을 뗐다.
올리비아는 충격이라도 받은 듯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지만, 케일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동료들에게 말했다.
이제부터 시간 싸움이었다.
“아까 그 괴물을 없애야 할 것 같습니다만.”
에르하벤이 입을 열었다.
“성으로 먼저 돌아가나?”
“네. 그게 먼저겠죠.”
케일은 9구역 방향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쪽에서 큰 소리와 불빛이 일었으니, 9구역에서도 무언가를 눈치챘을 겁니다.”
그 정도 파악도 못 한다면, 9구역은 제국 서쪽 방어선으로서의 능력이 형편없다는 소리였으니까.
적어도 케일이 본 변경백은 어느 정도 실력과 상당한 열정이 있는 자였다.
“동시에 진행합니다. 9구역으로 돌아가 황녀님을 치료하고.”
그와 함께.
“변경백을 만납니다.”
변경백을 만나 끌어들이고, 바로.
“그리고 곧바로 괴물을 처리합니다.”
무심하다고 여겨질 만큼 평온한 어조였다.
마치 산책이라도 나온 것처럼.
짠돌이가 케일에게 말했다.
-그래, 케일. 어서 없애자꾸나. 싸워보니 알겠다. 저건 위험해. 땅을 좀먹고 생명체를 죽여서 죽은 마나를 생성하는 놈이야.
하지만 동료들은 평온한 어조 그대로 케일을 믿지 않았다.
그들은 케일 주위에 아직도 일렁이는 붉은 벼락을 보며 그의 심정을 헤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