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786
2부 28화
6장. 태양이 떠올랐다
어두운 밤. 방벽 너머 저 멀리 붉은 기둥이 솟구쳐 올랐다.
주변의 어둠을 모두 불살라버릴 것만 같은 선명한 붉음.
모든 것이 어두운 세상 속에서 그 선명한 빛은 시야를 가득 채웠다.
“수이 칸아! 저거 봐, 봤나?”
라온, 온, 홍. 평균 9세는 창문에 얼굴을 붙인 채 눈을 크게 떴다.
검은 용의 푸른 눈동자가 수이 칸의 붉은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저 붉은 기둥! 저 빛은 우리 인간이 힘쓴 거 틀림없다!”
뒤이어 온이 차분한 목소리로, 하지만 아주 빠르게 말을 내뱉었다.
“상당히 먼 거리지만, 여기까지 보일 정도의 불벼락이면. 엄청나게 많은 힘을 사용했다는 건데.”
“위험한 일이 벌어졌다는 건데!”
홍이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따라가야 했다!”
라온의 두 앞발이 제 볼을 움켜쥐었다. 검은 용은 아까부터 말없이 다른 창문에 서 있는 수이 칸을 바라봤다.
“수이 칸아! 왜 말이 없나?”
그제야 온은 슬그머니 시선을 돌려 수이 칸을 살폈다. 이번 행성 일부터 함께 움직이는 새 동료였다.
케일과 최한, 특히, 알베르의 태도로 보아 믿어도 되는 사람은 맞았다. 은근히 경계심이 약한 케일과 다르게 최한, 그다음 알베르 순으로 경계심이 높았는데. 그 두 사람이 수이 칸을 동료로 받아들였다.
‘아!’
수이 칸을 살펴보던 온은 창문 밖을 향한 그의 시선 방향을 확인하고는 탄성을 삼켰다.
‘성을 살펴본다!’
수이 칸은 붉은빛에 온의 시선이 사로잡혔을 때, 그녀와 달리 성안을 살펴보고 있었다.
성에는 어떠한 경고음도 울리지 않고 있다.
하지만 온은 안다.
‘우리가 본 걸 저들도 보았을 거야.’
그제야 온은 어둠에 잠긴, 특히 방벽 쪽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병사, 기사, 더불어 흑마법사들도 보였다.
인간화하고 있던 온은 창문을 열었다.
달캉.
그리고 창밖을 내다봤다.
‘…변경백 침실에 불이 켜졌어!’
변경백 침실 옆에는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참모부가 있었다.
현재 변경백을 비롯한 참모부 전체가 비상 상황이 되었을 것이다.
성은 조용한 것 같았지만, 그 수면 아래는 지금 소란스러웠다. 곧 그 소란스러움이 수면 밖으로도 퍼질 터.
‘어떡하지?’
케일의 바깥 외출은 아직 들켜서는 안 된다.
온의 머릿속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온아. 춥지 않니?”
온은 등 뒤로 느긋한 음성이 들려왔다.
“밤바람이 차.”
수이 칸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 손으로는 라온의 머리를 쓰다듬고, 다른 한 손으로는 홍의 머리칼을 헤집으면서.
달캉.
온은 내밀었던 몸을 안으로 들이며, 창문을 닫았다.
문득 바깥에 자신의 이런 모습을 들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온은 수이 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변수는 늘 발생하지.”
담담했지만, 케일과는 다른 어투였다. 투박하고 차갑게, 무심하게 느껴지지만 그 속에 온기가 담긴 목소리의 케일.
수이 칸은 느릿하고 만사가 지루하다는 듯 말했지만, 분명 이름도 다정히 부르며 따스함이 담겨 있었지만.
“변수에 휘둘려서는 안 되고.”
묘하게 차갑고 이성적이다.
이는 제국 수도에서도 느꼈던 부분이었다.
물론 그 차가움이 ‘나’나 ‘동생들’을 향한 것이 아니다.
“혼란은 우리보다 저들이 심하겠지.”
적을 향해, 목표를 향해. 수이 칸은 그 냉정함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수이 칸아! 그래도 우리 인간이 다쳐서 오면 어떡하나? 메리는? 할배는? 최한은?”
“맞는데! 그게 걱정인데!”
라온과 홍이 불안함을 숨기지 못하는 그 순간, 온은 수이 칸의 눈동자가 창밖의 어딘가로 향하는 것을 보았다.
그곳은 아까 일행이 방벽을 넘기 전, 에르하벤이 텔레포트를 했던 장소.
“나보다 똑똑한 녀석이니, 지금 오고 있겠지.”
온은 수이 칸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아니면 이미 왔거나.”
그때, 라온이 고개를 들었다.
“아!”
라온의 시선이 방안의 중심으로 향했다.
라온이 그 행동을 취하자마자, 온은 수이 칸이 커튼을 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촤륵.
커튼 소리와 함께 방안에 촛불만이 남은 순간.
우우웅—!
방안에 마나가 모여들었다.
라온은 익숙한 마나 기운에 미소를 지었다.
“왔다! 금 용 할배다!”
파아앗-!
환한 빛과 함께 금빛 텔레포트 진 위로 총 다섯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법진의 중심에 서 있던 케일은 침실로 돌아온 것을 확인하자마자 정면에 자리한 수이 칸, 그의 붉은 눈동자를 보며 입을 열었다.
“변경백 침실 위치 좌표 찾아놨습니까?”
“당연한 소릴.”
적의 위치를 파악하고, 그 동태를 늘 확인하며, 언제라도 목표물에 닿을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은 김록수와 이수혁이 하던 회사 일의 기본이었다.
* * *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지?!”
변경백. 헬슨 후작은 침실과 연결된 총참모부 회의실 중앙에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다.
잠시 잠을 잤던 그의 옷차림은 사뭇 가벼웠으나, 곧 시종이 갑옷을 가져오리라.
“이안!”
“네, 후작님!”
“그 빛의 정체는 파악했나?”
조금 전, 거대한 힘의 파동을 느낀 헬슨 후작은 침실 창가에서 저 멀리 솟구쳐 오르는 붉은빛을 보았다.
뒤이어 흑마법사들이 미세한 진동을 감지했다고 한다.
“아직,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얼른 서두르라고 하게!”
붉은 빛기둥은 일시적이었지만, 분명 방벽에서 꽤 먼 거리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런데, 그 진동을 영주성 중심 지하의 흑마법사들이 감지했다.
아마도 빛기둥이 생긴 중심지에서는 엄청난 진동이 있었으리라.
‘제길! 무슨 일이지?’
헬슨 후작은 머리가 아파 왔다.
머릿속이 복잡하다 못해 터질 것 같았다.
“…참모장!”
“네.”
이안. 수석 보좌관으로 알려진 그녀의 진짜 정체는 참모부 수장이었다.
현재 참모부의 일부는 보좌관으로 위장한 채 몇몇 후보자들을 살피는 중이었다.
“방벽 너머로 파견하는 것은 어렵겠나?”
“…음.”
이안은 미간을 찌푸리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가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적어도 해가 뜨면 모르겠으나, 현재는 위험합니다. 검은 비구름이 언제 올지도 모르고, 갑작스러운 인원 파견은 오히려 또 다른 피해를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이안이라고 해서 방벽 너머로 인원을 파견하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파견해서 하나의 실마리라도 얻고 싶었다.
“…후작님. 실종자가 많습니다.”
“알아! 그러니까 이러는 것이지!”
반년.
그동안 수색을 위해 내보냈던 다크엘프와 흑마법사, 그리고 몇몇 정찰 인원들 중 꽤 많은 수가 실종되었다.
황궁에서는 이 실종에 대한 보고를 단순한 사고로 판단하여 무시했지만, 변경백 쪽에서는 이 또한 어떠한 전조로 보고 있었다.
“제길!”
후작은 손바닥으로 탁자를 내리쳤다.
“2황녀도 돌아오지 않았어. 분명 방벽 너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 맞아. 후보자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었어!”
“진정하십시오, 후작님.”
이안이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그래도 후보자들이 왔으니, 분명 황궁에서는 현 상황에 신경을 쓸 것이고. 방벽 너머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파악이 가능할 겁니다.”
“…….”
정치적 중립을 추구하는 헬슨 후작. 끝 구역을 사수하는 일에 인생을 건 그가 이번 후보자 시험을 자신의 구역에서 펼치도록 받아들인 이유는 방벽 너머의 일을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그래. 황궁도 이번에는 우리 쪽 보고에 귀를 기울이겠지. 귀하디귀한 후보자를 살려야 하니까.”
후작은 후보자‘들’이 아니라, ‘후보자’라고 하였다.
“1황자나 4황자 쪽 동태는?”
“조용합니다.”
“분명 그것들은 방벽 너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있을 확률이 높아. 물론 4황자는 모를 수 있겠지만, 1황자는 알겠지. 화이언스 가문 공녀와 함께니까.”
“안 그래도 그들에 대한 감시를 한 단계 더 높였습니다.”
후작은 후보자들을 통해서만 정보를 얻을 생각은 아니었다.
분명 황궁에서는 지금 10개의 끝 구역 너머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어느 정도 안다고. 그는 그리 믿었고, 그렇기에 황궁이, ‘화이언스 가문’이 미는 1황자에게서 정보를 훔칠 생각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1황자를 견제할 강력한 후보자.
그 후보자와 접선할 생각이었다.
‘이미 나를 포함한 동북 변경백들도 함께하기로 했다. 남쪽 변경백은 중립을 지키기로 했고.’
동서남북. 제국의 각 방위를 맡은 변경백들은 대대로 이어져 온 유서 깊은 가문이었다.
그들은 제국을 지키기 위해, 끝 구역에서 대대로 사투를 벌여왔다. 그런 그들을 위한 중앙의 지원도 꽤 있었다.
‘…이상해.’
하지만 요즘 들어 황궁이, 중앙의 의도가 의심스러웠다.
‘그들은 정말 제국을 지킬 생각이 있는 건가?’
이는 변경백들 대다수가 가지는 생각으로, 그들은 현재 ‘화이언스 가문’을 의심 중이었다.
화이언스 가문. 권력을 탐하지 않고, 오로지 황제의 스승으로서, 제국 수호를 위해 움직인다고 대부분이 생각하는 집안이었다.
각 변경백은 각자의 이유로 화이언스 가문을 의심 중이었다.
헬슨 후작도 의심의 이유가 있었다.
‘…화이언스 가문은 정화의 불 교단을 이단으로 지정하는 데 가장 강력한 주장을 했었지. 그 가문 때문에 정화의 불 교단이 이단이 된 거나 다름없어.’
전대 가주. 할아버지가 믿으셨던 정화의 불 교단.
지금은 즉결 처분 대상이라 할아버지가 교단 사람이었다는 것을 헬슨 후작은 숨기는 중이었지만.
‘그 교단은 이단이 아냐.’
헬슨 후작은 어린 시절, 교황의 힘을 본 적이 있었다.
죽은 마나를 물리치는 그 붉은-
‘붉은?’
후작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쾅-!
그가 앉아있던 의자가 벌러덩 뒤로 넘어졌다.
“후작님?”
놀란 이안이 다가와 그를 불렀으나, 후작은 먼 조카의 얼굴은 보이지도 않았다.
그는 창가로 다가갔다.
‘조금 전 그 붉은 기둥-’
그것은 불기둥과는 달랐다. 후작이 빛기둥이라고 계속 말했던 이유가 있었다.
‘마치 벼락이 땅에서부터 하늘로 솟구치는 것처럼 느껴졌어-’
그래, 분명 그런 힘이었다.
그리고 그 선명한 붉은 기둥이 너무나도 잘 보였다.
왜냐면 어둠이 그 기둥을 피해 잠시지만 물러났으니까.
죽은 마나가 그 붉은 빛기둥을 피했다.
‘설마-’
후작은 전대 가주,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할아버지가 하셨던 말씀을 떠올렸다.
‘헬슨. 내가 믿는 신께서는 벼락을 품은 불로 어둠을, 죽음을 물리쳤다고 하신다.’
그는 옷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 손이 덜덜 떨렸다.
누구에게 들킬 수 없어 품에 지니고 있던 쪽지 한 장.
헤니 위시로프. 그쪽에서 보내온 쪽지.
그들은 헬슨 후작이 교단과 어느 정도 관련되어 있음을 알고 있었다.
‘…난 이걸로 내 약점을 잡을 것이라 생각했어.’
그리고 어떻게 이 정보를 알고 있는지 궁금했다.
또한 초조했다.
‘그런데 만약-’
붉은 빛기둥.
‘그들이 교단에서 나온 자들이라면?’
저 빛기둥이-
‘그 정화의 불인가 뭔가라면?’
헬슨 후작은 쪽지를 쥔 손끝이 여전히 떨려왔다.
‘그리고 교단이 1황자를 견제할 만한 강력한 네크로맨서를 보유하고 있다는 소리고. 만약 그렇다면.’
한 가지 추측이 떠올랐다.
‘헤니 위시로프는 우두머리가 아니다.’
네크로맨서가 교단의 고위직일 수는 있으나, 저 빛기둥을 만들 수는 없다.
그 말은!
‘설마-’
헬슨 후작은 문득 그가 성루에 서서 쪽지를 받았을 때 눈이 마주쳤던 헤니 위시로프의 수하가 한 명 떠올랐다.
그러고 보면 그녀의 수하들은 모두 같은 머리칼 색에 같은 눈동자 색을 하고 있었다.
일부러 위장하듯.
‘설마 그자가-’
그 순간이었다.
끼이이익.
참모부 회의실과 연결된 후작의 침실.
후작은 그만큼 끝 구역 사수에 자신의 사생활을 버렸다.
그 침실의 닫힌 문이 열렸다.
분명 침실 안에는 아무도 없어야 하는 하는데. 그 문이 열린다.
“누구냐-”
놀란 참모 한 명이 외치려는 순간, 후작은 손을 들어 올렸다. 그의 행동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정적 속에서 문이 끼익 소리를 내며 모두 열렸다.
후작은 왠지 알 것 같았다.
저 침실 너머에 누가 있을지.
“후작님. 긴히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요?”
문 사이로 드러난 하얀 가면을 쓴 자.
가면에 가려지지 않은 입가에 미소가 맺혀 있었다.
‘그자다.’
헤니 위시로프의 수하로 알고 있던 자. 헬슨 후작이 쪽지를 받았을 때, 미소를 짓던 이.
‘수하가 아닐 수도.’
열린 문 사이로 그는 홀로 침실에 서 있었다.
“아무도 들어오지 말도록.”
“후작님-”
“내 명령을 따르도록.”
이안 참모장이 그를 불렀지만, 후작은 모두에게 명령을 내리고선 홀로 침실로 들어섰다.
여전히 미소를 띤 채 그를 홀로 맞이하는 남자.
“긴밀한 대화를 하려면 문을 닫는 것이 좋겠지?”
짐짓 헬슨 후작이 긴장을 감추며, 태평하게 말을 건넨 순간.
“그렇죠.”
남자가 손을 들어 올렸고.
끼이익, 쾅!
문이 닫혔다.
마치 마법처럼.
‘…마법?’
지신이 생각한 그 단어에 헬슨 후작의 머릿속이 다시 한번 복잡해졌고, 그 복잡함을 알 듯. 전과 달리 커튼이 처져 촛불만이 자리한 어두운 침실 안.
상대방은 손을 앞으로 뻗었다.
파직.
그리고 적금빛의 불벼락이 침실의 어둠을 밀어내며 타올랐다.
“……!”
후작은 마비독에 당한 것처럼 굳어버렸다.
그 순간, 케일은 나직이 입을 열었다.
‘오래 대화할 틈이 없으니. 기선 제압을 해야겠지?’
그는 누군가를 불렀다.
“라온.”
그때, 어둠 속에서 헬슨 후작은 검푸른 눈동자를 보았다.
“…용……!”
작지만 틀림없는, 검은 용이 모습을 드러냈다.
“반갑습니다, 헬슨 후작님.”
케일은 후작에게 새로이 인사했다.
‘하. 이걸 내 입으로 말할 줄은 몰랐는데.’
묘하게 떨떠름한 미소를 머금은 채 그는 자신을 소개했다.
“저는 정화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