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787
2부 29화
헬슨 후작은 용, 그리고 적금빛 불벼락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정적이 내려앉았으나, 그는 쉽사리 입을 열 수 없었다.
‘내가 지금 무엇을 보는 것이지?’
세상에서 사라진 용?
정화의 불 교단에서 말하는 신의 힘인 저 적금빛 불?
‘…이건 지금 현실인가?’
상당한 충격을 받은 헬슨 후작은 곧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어둠.
용과 적금빛 불벼락 외에 존재하는 어둠을 본 순간, 그는 현실을 깨달았다.
저절로 입이 열렸다.
“역시-”
한마디를 내뱉으니, 그 뒤는 쉬웠다.
“역시, 그쪽은 교단 사람이었군. 그렇지?”
아니지, 사람이 맞나?
헬슨 후작은 속으로 든 의문을 내뱉지 않았다. 그가 어릴 적 보았던 교황도 그저 붉은 아우라를 사용했을 뿐, 실제 중앙 교단에 가면 볼 수 있는 저 적금빛 불을 다루지 못했다.
그런데 그것을 다루는, 신의 힘과 같은 힘을 사용하는 자가 인간일까?
“어떻게 교단 사람이 이 시험에 참가했지? 헤니 위시로프는 가짜 정체인가? 교단 사람인가?”
헬슨 후작은 한번 질문이 나오자, 계속해서 의문이 터져 나왔다.
그 순간이었다.
콰직!
정화자가 손을 움켜쥐었다.
그의 손바닥에 있던 적금빛 불벼락이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음.”
헬슨 후작은 저도 모르게 입을 다물었다.
몇 초의 침묵이 흘렀을까.
정화자는 다시 입을 열었다. 담담하면서도 무심한 목소리였다.
“질문에 답할 시간이 부족하군요.”
헬슨 후작은 상대방이 존댓말로 자신을 대함에도 알 수 없는 압박감을 느꼈다. 무형의 기운이 저 정화자에게서 풍겨져 왔다.
케일은 ‘지배하는 아우라’를 적당하게 두른 채 말했다.
“답은 스스로 찾길.”
케일은 시시콜콜 헬슨 후작의 모든 의문에 답해줄 생각이 없었다.
‘궁금하면 알아서 답을 찾겠지.’
나는 내 할 말만 하고 간다.
그게 케일의 지금 속내였다.
“아. 하지만 하나는 답해드리죠.”
그래도 한 가지는 짚고 넘어가야 할 듯싶었다.
케일이 답해준다는 말에, 헬슨 후작은 흠칫하며 케일과 눈을 마주쳤다.
“헤니 위시로프는 교단 사람이 아니라, 우리 사람입니다.”
헬슨 후작은 저를 꿰뚫어 보는 듯한 서늘한 눈동자에 꼼짝도 할 수 없었다.
“후작님 쪽에서 헤니 위시로프를 이용해 뭘 해보려는 수작이 있던 것 같은데, 그건 접는 편이-, 살아가는 데 좋을 겁니다.”
케일은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다.
그리고 진심은 통하는 법. 지배하는 아우라가 순간 강하게 증폭되었다가 가라앉았다.
“…이용하려는 생각은 없었네.”
헬슨 후작은 겨우 정화자의 말에 답했다.
정화자는 별다른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대답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듯.
“후작님, 조금 전에 방벽 너머에서 무언가를 보았을 겁니다. 현재 성 내에서도 무언가를 감지하고 지금 그에 대해 은밀하게 방비 중이겠죠.”
헬슨은 그 말을 듣고 생각했다.
‘역시 조금 전 붉은 빛기둥은 저들이 한 건가? 방벽 너머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케일은 헬슨 후작의 모습에서 의문, 호기심, 조급함을 느꼈다.
-인간아, 이 후작 지금 초조해 보인다.
길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는 초조한 법이다.
케일은 입을 열었다.
“올리비아 황녀님을 구했습니다.”
“……!”
“심각한 죽은 마나 중독 상태로, 현재 치료를 하고 있으나 전문 인력을 배정받아 제대로 된 치료를 시급히 받아야 합니다.”
“…올리비아 황녀가 죽은 마나 중독 상태라고?”
그 정도의 실력자가 죽은 마나 중독 상태라고?
도대체 방벽 너머 검은 땅에는 죽은 마나 농도가 얼마나 높다는 소린가?
“네. 중독 상태이고, 또한 부상도 상당히 입었습니다.”
“…공격을 받았다?”
헬슨 후작의 표정이 굳었다.
방벽 너머로 정보 탐색과 정찰을 나간 인원 중 꽤 많은 수가 반년간 사라졌다.
오염된 땅에서의 사라짐은 죽음을 의미했다.
헬슨 후작은 정화자의 말에서 한 가지를 깨달았다.
“2황녀 전하의 조는 모두 죽었나 보군.”
“네.”
“무엇에 의해서?”
케일은 이제야 정신을 차린 듯 중심이 또렷하게 잡힌 헬슨 후작의 눈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이 후작이라는 자. 적어도 제대로 된 변경백이다.
케일은 기꺼이 후작의 물음에 답해주었다.
“괴물.”
케일은 창가로 걸어가, 커튼을 걷었다.
촤르륵-
“오늘 밤, 방벽 너머를 탐색하던 중 올리비아 황녀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뒤쫓아온 괴물의 일부와 조우했죠.”
“일부?”
케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올리비아 황녀의 말에 따르면. 오염된 땅에 검은 호수가 존재하며, 그 호수의 중앙에 거대한 나무가 있다고 합니다.”
“아, 잠시.”
헬슨 후작은 케일의 말을 끊었다. 케일이 그를 쳐다보자, 헬슨 후작은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현재 유일하게 그 괴물을 본 자는 올리비아 황녀뿐인가?”
“전부를 본 건 황녀님뿐이죠.”
“그렇군. 잠시.”
헬슨 후작은 침실 문으로 다가가, 그 문을 살짝 열었다. 침실 안은 보이지 않도록.
“이안.”
“네. 후작님.”
“19후보자의 방으로, 중독 전문 치료사를 보내. 흑마법사도.”
“네?”
“당장.”
“…네!”
“치료사, 흑마법사는 우리 쪽 사람으로. 반드시. 알겠나?”
우리 쪽 사람. 반드시. 당장. 하나같이 무게가 있는 단어를 사용하는 변경백의 눈빛에 이안 참모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또한, 지금부터 9구역 방어 상태를 최고 등급으로 올린다. 모든 병력을 대기 시켜.”
“네!”
헬슨 후작은 그 말까지 전하고는 침실 문을 닫은 후, 케일과 마주했다.
케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일을 꽤 잘하는군.’
헬슨 후작은 입을 열었다.
“이제 설명해주게.”
정화자의 설명에 따라, 지금 9구역의 모든 전력이 어떻게 움직일지 정해질 터.
“그 나무는 자아를 가지고 있으며, 덩굴도 다룬다고 합니다.”
케일은 현재 메리와 에르하벤이 돌보고 있는 올리비아 황녀에게 이곳으로 오기 전 들었던 부분을 설명했다.
“그 나무 괴물은 일부의 뿌리와 넝쿨을 이용해 부상을 입고 도망치던 올리비아 황녀를 쫓았습니다.”
“…왜?”
“더 많은 먹잇감을 찾으러.”
으음.
헬슨 후작은 침음을 삼켰다.
“그 괴물은 일부러 올리비아 황녀를 놓아주었군.”
“네.”
“올리비아 황녀의 말로는 그 괴물은 자신은 털끝조차 제대로 건들 수 없는 괴물로, 중앙의 화이언스 가주와 흑마법 두 대대, 기사단 둘이 와야 상대가 가능할 것 같다고 했습니다.”
하.
헬슨 후작은 기가 찼다.
“그 정도 전력으로 괴물을 없애는 게 아니라, 상대가 가능하다?”
최고의 흑마법사 화이언스 가주. 거기다가 황궁 흑마법 2개 대대, 기사단 2개. 그 정도 규모로 괴물과의 승패를 장담할 수 없다고?
‘끝구역으로 감당이 불가능한 전력이다.’
9구역에는 꽤 많은 병력이 존재한다. 하지만 최고의 엘리트는 황궁에 있었다.
황제는 가장 강력한 전력은 손에 쥐는 스타일이었으니까.
‘아니, 황제가 아니라 화이언스 가주일 수도.’
음.
문득 헬슨 후작은 한 가지를 깨달았다.
‘그렇게 강한 괴물을, 물론 황녀를 쫓아온 괴물의 일부라고 할지라도-’
정화자는 조금도 다치지 않고 방벽 안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올리비아 황녀는 그 괴물이 방벽 안 사람들을 노리고 있다고 했다.’
분명 다급한 상황이 맞아야 했다.
그걸 눈앞의 정화자는 누구보다도 잘 알 만한 머리를 지닌 사람 같았다.
그럼에도 정화자는 어딘가 여유로웠다.
“…정화자여.”
헬슨 후작은 질문을 하지 말랬지만, 물을 수밖에 없었다.
“우린 지금 급한 상황인가?”
씨익.
정화자의 입꼬리가 다시 한번 올라갔다.
“당장은 아니지.”
어느새 정화자는 헬슨 후작에게 말을 놓았다. 누구도 그 상황에 어색함을 느끼지 못했다.
이어진 말 때문에.
“나를 피해 도망쳤으니까.”
그 괴물은 일단은 방벽을 당장 노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 순간, 케일의 머릿속으로 짠돌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크하하하! 맞다! 그놈은 우릴 피해 도망갔어!
짠돌이의 목소리는 마치 불처럼 일렁였다.
타오르는 것 같았다.
-그놈은 강하다. 일부가 그 정도의 규모라면, 본체는 어마어마한 크기를 지녔겠지. 작은 숲과 같은 크기일지도 몰라.
하지만 그 중심은 가라앉아있었다.
-그렇다면 더 큰 불로 태우면 된다. 하늘을 벼락으로 뒤덮어 내리꽂으면 돼.
짠돌이는 꽤 진지했다.
-여기선 그렇게 해도 네가 다치지 않아.
케일의 입가에 지어진 미소가 더 짙어졌다.
-인간아! 왜 웃나? 나도 괜히 따라 웃고 싶다!
라온이 케일을 보며 따라서 미소 지었다. 어째 점점 더 케일을 닮은 미소를 더 잘 짓게 되는 라온이었다.
‘…세상에.’
그리고 헬슨 후작은 검은 용의 미소와 정화자의 담담한 말에 등 뒤가 식은땀으로 뒤덮였다.
‘나를 피해 도망쳤으니까.’
올리비아 황녀가 묘사한 그런 괴물이 저 사람을 피해 도망쳤다고?
용을 보고 도망친 것도 아니고?
후작은 그 순간 확신했다.
‘불기둥을 만든 건 저자다.’
여러 명이서 힘을 모아 만든 불기둥인가 생각도 해보았지만, 용이 가만히 있는 것으로 보아 오로지 저자 홀로 만든 힘일 확률이 높았다.
“아, 후작님. 나도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헬슨 후작은 대답 대신 케일의 시선을 마주했다.
“올리비아 2황녀도 죽을 뻔할 정도의 괴물입니다.”
점점 더 오염되는 샤올렌 행성.
이 현상에는 사냥꾼이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특히 검은 피 가문인 화이언스 가에 분명 원인이 있을 터.
“시험을 수행하려던 후보자가 다 죽었을 겁니다.”
케일은 메리를 통해, 1황자는 조사를 하지 않고 방관자적인 태도를 보였던 것을 기억해냈다.
그는 헬슨 후작의 얼굴이 조금씩 일그러져 가는 것을 보며 말을 이었다.
“나는 말입니다. 저 오염된 땅에 있는 괴물에 대해서 중앙에서 몰랐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거든?”
적어도 검은 피 가문. 화이언스 가는 괴물에 대해 알면서도 후보자들을 이곳에 보냈다.
후보자가 1차 시험에서 대부분 다 죽을 수도 있었다. 더불어 올리비아 황녀의 두려움대로 9구역 방벽이 괴물에 의해 망가지고 초토화될 가능성도 높았다.
‘그렇게 되면-’
이 땅이 오염되고 9구역 사람들이 죽을 터.
“후작은 중앙에서 버려졌나?”
케일은 자신의 물음에 지긋이 눈을 감는 헬슨 후작을 볼 수 있었다.
헬슨 후작은 몇 번 숨을 쉬더니 입을 열었다.
“변경백들은 중앙을 바꾸려고 한다.”
“그렇군요. 중앙에서 그걸 눈치챘나 보네.”
헬슨 후작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로, 이 모든 일에, 괴물에 화이언스 가문이, 중앙이 연관되어 있나?”
“최소한 화이언스 가문은 연관되어 있다고 봅니다.”
하.
헬슨 후작은 웃음과도 같은 탄식을 흘렸다.
“…중앙에서 서부는 버렸군.”
케일은 버려졌다고 말함에도 일렁이는 헬슨 후작의 눈동자를 포착했다. 후작은 분노하고 있었다. 후련해 보이기도 했다.
“하나만 더 묻지.”
후작은 한결 어깨에 힘을 뺀 채 케일에게 물었다.
“자네의, 교단의 목적은 무엇이지?”
“교단은 모르겠고.”
모르겠다고?
후작의 얼굴에 의아함이 서렸을 때, 그는 정화자의 입이 다시 열리는 것을 보았다.
“나는, 사냥을 할 생각입니다만.”
사냥.
그 단어를 듣는 순간, 후작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 괴물을 사냥할 건가?”
케일은 다 알아들었음에도 다시 확인차 묻는 후작을 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것‘도’ 사냥하고.”
후작은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나는 무엇을 하면 되지?”
그의 물음에 케일은 웃음기를 지웠다.
케일의 시선이 다시 창밖으로 향했다.
“저 괴물부터 사냥하러 가야지.”
“…다른 괴물도 사냥할 건가?”
케일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지. 내가 괴물들의 천적인 것 같거든.”
한없이 가벼운 어조였지만, 후작은 그에게서 느껴지는 지배자의 기운에, 그를 보고 웃는 용의 모습에 입안이 바짝 말라 갔다.
헬슨 후작은 자신이 역사의 변곡점에 서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