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788
2부 30화
똑똑똑.
침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헬슨은 눈을 한번 깜박이고는 정신을 똑바로 했다. 그는 정화자를 바라봤다.
“편히 하세요.”
정화자가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건넨 말에, 헬슨은 침을 한번 삼키고는 문을 열었다.
어느새 검은 용의 모습은 사라졌다.
“무슨 일이지?”
“후작님, 4황자님께서 참모부 문 앞까지 찾아오셨습니다.”
헬슨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곧 흠칫 어깨를 떨었다.
“쯧.”
등 뒤로 탐탁지 않아 하는 혀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화자였다.
‘4황자가 찾아온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건가?’
아니면.
‘우리 참모부 쪽에서 4황자 하나 컨트롤하지 못하고 이렇게 보고를 하는 것이 마음에 차지 않는 건가?’
과한 생각일 수도 있지만, 헬슨 후작으로서는 정화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그가 가진 힘은, 미래 그가 일으킬 변화보다도 일단 지금 이 9구역을 지켜줄 힘이었으니까.
정화자가 혼잣말처럼 내뱉었다.
“결국 오는군.”
-인간아! 최한과 수이 칸이 금 용 할배한테 연락했다! 아까와 같은 진동이 방벽 근처에서 느껴진다고 했다!
“도망갔으면 조용히 있을 것이지.”
나직이 읊조렸다.
“겁을 상실했나.”
헬슨은 침을 삼켰다. 열린 문틈 사이로 이안 참모장은 후작이 대화를 나누던 상대의 모습을 이제야 볼 수 있었다.
‘헤니 위시로프의 수하?’
그녀의 머릿속이 새로운 정보로 바빠지려는 순간, 케일은 입을 열었다.
“옵니다.”
헬슨 후작은 그 의미를 깨닫고 놀라서 정화자를 바라봤다.
그 순간, 참모부실 문이 벌컥 열렸다.
“다시, 다시 그 진동이 느껴진다는 보고입니다!”
흑마법사에게 갔던 참모가 다급하게 외쳤다.
“그 진동의 정체가 뭐냐니까? 왜 후작은 후보자에게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 건가!”
열린 참모부실 문 너머로 4황자 노이가 안쪽을 노려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언제라도 땡깡을 부릴 태세였다.
물론 4황자 노이의 시야에는 후작의 침실 쪽은 보이지 않았다.
“놔! 내가 들어가는 걸 감히 막겠다고?!”
그리고 참모부 안으로 들어서려던 그의 접근은 후작이 손을 들어 보이는 순간, 문밖에 대기 중이던 기사의 손에 가로막혔다.
후작은 황급히 케일을 바라봤다.
“당장은 안 온다고 하지 않았나?”
“그러게요.”
너무 헐레벌떡 도망가길래, 제 몸을 잘라내면서 도망가길래. 케일의 뒤를 쫓아오는 기색이 없길래.
케일은 괴물이 당장 방벽을 공격하지 않을 줄 알았다.
-케일, 어쩌면 저 괴물도 어쩔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케일은 머릿속에 울리는 짠돌이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저 괴물은 더 이상 잡아먹을 것이 주위에 없을 거다. 배가 너무나도 고파서, 더는 기다릴 수 없어서 움직여야만 하는 상태일 수도 있다.
짠돌이는 저 괴물이 죽은 마나를 생성하는 존재라고 했다.
땅을 좀먹고 타 생명체를 죽이며.
“후작님.”
“그래! 어서 말하게!”
“저 괴물은 배가 너무나도 고팠나 봅니다. 두려움을 이길 만큼.”
말속 의미를 알아들은 후작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갈 때, 날카로운 소리가 모두의 귓가를 때렸다.
끼이이—끼이이이—
이안 참모장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방벽이!”
이 경고음은 방벽이 공격당할 때 나는 소리였다.
한밤중. 무언가가 방벽을 공격한다.
쿠웅-!
거대한 진동이 성안의 사람들 발밑에서 느껴졌다.
“후작님, 저기-!”
참모 중 한 명이 창밖을 손으로 가리켰다.
경고음이 울린 순간, 9구역 전역은 불이 밝혀져 왔다. 그렇기에 그가 가리킨 것은 너무나도 잘 보였다.
“…이럴 수가.”
후작은 침음을 흘렸다.
방벽의 그 높이를 가볍게 넘어서며 솟구쳐 오른 검은 무언가.
그것은 나무뿌리 같았다.
그 나무뿌리에서는 찐득찐득한 검은 액체가 흐르고 있었다.
뿌리는 단 하나였지만, 방벽을 손쉽게 넘을 것 같았다.
저 괴물은 방벽을 부수기보다는 넘으려고 했다.
“저게 뭐야?!”
4황자 노이의 경악에 가득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에 케일의 눈동자에 이채가 스쳐 지나갔다.
‘몰랐나 보네.’
4황자는 저 괴물에 대해 모르는 듯했다. 저 반응이 연기라면 4황자는 배우를 해야 맞았다.
“후작님.”
케일은 놀란 듯한 후작을 불렀다.
후작의 눈이 커졌다.
케일의 발밑에 검은 마법진이 펼쳐져 있었다.
최상급 검사는 아니더라도, 상급 검사인 후작은 저 검은 마법진이 흑마법이 아니라, 마법임을 느낄 수 있었다.
“일단 가시죠. 서둘러야 할 겁니다. 그래도 큰 걱정은 마십시오.”
케일은 창밖을 가리켰다.
“저 뿌리는 제 동료가 처리할 겁니다.”
경고음과 함께 일시에 켜진 흑마법 전등으로 방벽 위는 밝았다.
그렇기에 검은 나무뿌리가 너무나도 잘 보였다.
그리고 그 검은 나무뿌리를 향해 달려드는 한 사람도 잘 보였다. 그 사람의 위를 나는 매 한 마리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모두가 잠시 당황하는 사이.
최한. 그리고 수이 칸이 괴물을 향해 움직였다.
* * *
“한아, 가능하나?”
최한은 머리 위에서 여유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검은 매는 활짝 날개를 편 채, 최한의 얼굴 근처까지 내려왔다.
“대답할 정신이 없나?”
나른한 목소리는 꼭 이곳이 한가로운 오후를 보내던 짱돌 저택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피식.
최한의 입에서 바람 빠지는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한아. 너는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 있어.”
그리고 이어진 말에 최한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저들처럼.”
검은 매의 붉은 눈동자가 향한 방향.
그곳을 바라본 최한은 당황하면서도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려고 애쓰는 이들이 보였다.
흑마법사, 다크엘프 기사, 일반 기사.
그리고 병사까지.
“실드를 펼쳐!”
“액체는 죽은 마나 같다! 기사와 병사들은 물러서!”
“함부로 공격하지 마라! 광범위 흑마법은 안 된다! 방벽에 영향을 주면 안 돼!”
“적의 숫자가 더 많을 수도 있다! 정찰조는 당장 방벽 밖으로 나간다! 문을 열어!”
모두 갑자기 솟구쳐 오른 검은 나무뿌리에 대응하고자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구역민들을 모두 피난처로 옮겨!”
“변경백께 보고하러 가!”
그중 한 명이 최한을 봤다.
“너는 누구냐! 후보자 쪽인가? 당장, 어서 내려가! 비상사태다!”
그녀는 최한을 보며 호통을 쳤다. 손에 들린 검으로 보아, 검사 같았다.
최한은 교단의 노신관 더스트를 통해 들었던 이 세상의 상식 중 하나를 떠올렸다.
‘현재 샤올렌 전체적으로 뛰어난 검사는 많지만, 오러를 잘 다루는 검사는 몇 없습니다.’
이유는 간단했다.
300여 년간의 시간이 샤올렌 행성에 오러와 관련된 한 가지 지식을 남겨주었다.
‘오러는 검사 본인의 내부에서 시작됩니다. 그의 내면이 담기죠.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인간도 결국 자연의 일부입니다.’
‘자연이 죽어갑니다. 마법사가 살기 힘들 듯, 오러 역시도 제대로 발현이 안 되더군요.’
정령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 결과로 이 세상은 오러를 다룰 줄 아는 검사가 줄어들었고 더불어 다크엘프들도 대부분 정령을 다루지 못했다. 정령이 몇 없어서.
흑마법사가 득세할 수밖에 없는 세상이 되어 갔다.
최한은 더 걸음을 빨리했다.
“어서 내려가라는 소리 못 들었나!”
검사의 목소리는 더 높아졌다.
콰직!
“실드가 부서졌습니다!”
“뿌리의 독액 때문에 실드에 구멍이 뚫려!”
방벽 근처 흑마법사들의 1차 실드는 검은 나무뿌리의 진득한 액체에 닿는 순간 허무하리만큼 손쉽게 녹아버렸다.
치이익-
“액체에 방벽이 녹습니다!”
검은 나무뿌리는 마치 탐색을 하듯, 방벽 위까지 치솟아 오른 채 그 끝만을 움직여댔다. 눈도 없건만 성벽 안을 둘러보는 것 같았다.
“록수가 설명한 것보다 뿌리 크기가 몇 배는 더 큰 것 같네.”
최한은 수이 칸, 이수혁 팀장의 목소리를 들으며 저를 막아서려던 검사를 가뿐히 넘어섰다.
“거기, 멈추라고-”
순간 검사의 눈이 커졌다.
“어?”
방벽 위는 밝았다.
그렇지만 지금은 한밤중이었다.
그래서 잘 보지 못했다.
하지만 분명 조금 전에 보았다.
평범한 로브를 입은 채 자신을 지나가던 반가면 남자의 손에 들린 검.
검을 두른 얕지만 선명한 검은색.
“…오러?”
그건 분명 오러였다.
검사들에게 지고의 경지라 불리는.
샤올렌 행성에 현재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
“…소, 소드-”
소드 마스터의 경지.
검사는 뒤를 돌아 그녀를 지나쳐 간 남자를 바라봤다.
다크엘프가 아님에도, 죽은 마나에 대한 저항성이 없음에도 이곳에 자리한 검사는 괴물에게로 오는 이들을 저지하는 것이 그 역할이었다.
그녀의 검은 저 나무뿌리를 벨 수 없다.
죽은 마나를 이겨낼 힘이 없다.
“…아…….”
검사의 눈동자에 남자의 손에 들린 검이 담겼다.
성난 짐승의 포효처럼, 치솟아 오르는 검은 오러.
그 검은 오러는 검은 나무뿌리와 달리 밤하늘의 별처럼 빛을 머금은 듯 반짝였다.
하지만 그 빛처럼 온순해 보이기보다는 누구보다도 난폭해 보였다.
수이 칸은 최한의 오러를 보며 입을 열었다.
“지키고 싶고, 보호하고 싶은 마음은 알지만. 한아, 너는 여유가 없어.”
최한은 검은 매에게 시선을 두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오로지 저를 보고 놀란 사람들 너머에 자리한, 방벽 안으로 점점 더 그 고개를 내밀려고 하는 나무뿌리에 닿아있을 뿐.
‘여유라-.’
여유를 가지고 살기에 최한의 삶은 어둠의 숲에 떨어진 후로 썩 평화롭지 못했다.
물론 마음의 안식처는 이제 생겼지만.
“더 성장하고 싶지?”
검은 매는 최한의 곁을 떠나 날아오르며 말했다.
“곧 기회가 올 거다.”
최한의 눈동자에 이채가 감돌았다.
그 순간, 수이 칸의 웃음기를 머금은 느릿한 음성이 들려왔다.
“한아, 여유가 없어도 돼. 그것이 너라면.”
최한의 눈동자가 검은 매에게로 향했다.
그 찰나의 순간 검은 매는 웃으며 말했다.
“칼을 쥔 것들이, 여유로운 척을 하는 건 몰라도 여유로울 수는 없거든.”
그리고 덧붙였다.
“내 손으로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는데. 여유로울 순 없지.”
최한은 그 찰나 검은 매, 수이 칸. 아니, 이수혁의 본질을 조금 알 것 같았다.
최한의 입이 열렸다.
“대련해보고 싶습니다만.”
“얼마든지. 그런데 아직 이 몸은 적응이 덜 되었어.”
“그럼 제가 이기겠네요.”
검은 매는 최한의 입가에 걸린 미소를 보았다. 평소 짓는 미소와는 달리, 조금은 사나운 미소였다.
수이 칸 역시 최한의 본질을 조금 깨달았다. 최한이 읊조리듯 말하고는 바닥을 박찼다.
“지금처럼.”
최한의 눈동자에 오로지 베어야 할 대상만이 담겼다.
‘이번 일도 케일 님이 거의 다 하실 거야.’
적금빛 벼락이 저 괴물을 태우리라.
‘그렇다고 하여 내 할 일이 없는 것은 아니지.’
늘 그렇듯.
자신의 역할은 존재했다.
-최한아! 나 간다!
라온의 반가운 목소리를 들으며 최한은 검을 들어 올렸다.
검은 나무뿌리. 그것의 끝이 최한을 향해 고개를 틀었다.
스윽-
반짝이는 검은 오러를 머금은 검이 선을 그었다.
마치 밤하늘이 잠시 땅으로 내려와 무지개를 그리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기운을 본 순간, 방벽 위에 있는 검을 든 자들도, 마법사들도 모두 멈칫하며 입을 다물어야 했다.
사납다.
광폭하다.
나무뿌리는 검은 오러를 집어삼키려는 듯 달려들었다.
자신의 몸에 비하면 한없이 작은 이 오러따위 별것 아니라는 듯.
“아…….”
누군가 탄식을 흘렸다.
쿠웅—!
나무뿌리 일부가 잘려 바닥으로 떨어졌다.
방벽 너머 떨어진 나무뿌리로 근처가 울렸다.
뿌리에 있던 진득한 검은 액체는 검은 오러를 녹이지 못했다.
아무리 크고 단단한 나무뿌리라도, 검은 오러의 길을 막지 못했다.
끼이이—
기묘한 소리와 함께 나무뿌리가 요동쳤다.
하지만 모두 한 사람의 등을 바라봤다.
“…저, 저 사람이, 저 소드 마스터가 누구지?”
누군가의 물음에 누군가가 더듬더듬 답했다.
“…그, 헤니 위시로프, 그 사람 수하인데-”
그때였다.
-최한아, 수이 칸아! 나랑 메리 먼저 왔다!
최한은 뒤로 고개를 돌렸다. 사람들의 시선도 따라 움직였다.
“화살-!”
화살은 아니었다.
수백여 개의 하얀 뼈가 밤하늘을 가로질러 화살처럼, 유성우처럼 목표물을 향해 움직였다.
그 목표물은 나무뿌리였다.
최한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 유성우의 시작 지점. 그곳엔 하얀 본 드래곤의 위에 올라선 메리가 자리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