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795
2부 37화
눈이 절로 감기는 환한 빛이었다.
콰아아—-
거대한 폭발에 땅이 들썩였다.
아니, 갈라지는 것 같았다.
“허억!”
그 진동에 누군가 털썩 주저앉았다.
정찰조인 다크엘프였다. 그는 두 다리에 힘이 빠져 일어설 수가 없었다.
손은 두 눈을 가렸다. 환한 빛에 시력을 빼앗길 것만 같았다.
“하!”
하지만 그 두 눈을 감지 않고 뜨고 있는 이가 있었다.
“하하, 하하하-”
9후보자, 용병 제로.
그는 결코 눈을 감지 않았다. 환한 빛에 그의 두 눈가에 눈물이 맺히고, 두 눈은 충혈되어 갔으나 그는 절대로 그 빛을 피하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다시 어둠이 찾아올 테니까.
“크하하하!”
그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 웃음은 폭발음과 붉은빛에 삼켜져 버렸지만, 그는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이것이, 이것이야말로 어둠을 멸망시킬 빛이로구나!”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도 그는 붉은빛을 눈에 담고 또 담았다.
머릿속에 새기고 또 새겼다.
“그래, 이래야지!”
이런 빛이어야지!
어둠을 쫓아내는 빛이 아름답고 따스할 리는 없지!
제로는 두 손끝이 덜덜 떨려왔다.
“혀, 형님-”
겨우 눈을 뜬 수하가 제로의 그 모습에 당황해 그를 향해 손을 뻗었으나, 그 손은 그에게 닿지 못했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실핏줄이 터져 눈이 붉게 변해가면서도 저 붉은빛을 보며 웃어대는 제로.
그 미친놈을 건드렸다가 괜히 죽을까 겁이 났다.
제로의 눈은 광기로 가득 차 있었다.
“미친 빛이로구나!”
콰직. 콰지직.
자그마치 드래곤의 실드를 부수는 붉은빛이었다.
제로는 고개를 돌렸다.
“크크큭.”
드래곤과 눈이 마주쳤다.
콰직. 콰직.
드래곤은 끊임없이 실금이 가며 부서지는 실드에 새로운 막을 두르고 또 둘렀다.
그 덕에 땅이 흔들릴지언정, 실드 안의 사람들은 폭발에 휩쓸리지 않고 견딜 수 있었다.
-인간이여.
드래곤의 목소리가 제로의 머릿속에 들렸다.
씨익.
드래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너 멸망단이 맞지?
씨익.
제로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그 미소는 너무나도 밝고 환했다.
그 미소를 보며 에르하벤은 생각했다.
‘멀쩡한 정신머리를 가진 인간 놈은 아니구나.’
라온의 말투로 하자면, 약간 헤까닥한 놈 같아 보였다.
하지만 에르하벤은 제로에 대한 신경을 껐다.
‘도대체!’
에르하벤의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콰직.
콰지직.
벌써 몇 분이 지났는데, 붉은빛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오히려 더 그 빛이 퍼지며 일대의 어둠은 조금도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
‘케일 이 녀석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에르하벤은 케일이 하얀 별을 상대하며 여러 힘을 사용하는 광경을 목격했었다.
때에 따라서는 드래곤마저 넘어서는 강대한 힘을 사용한 케일이었지만, 지금 이 힘은 그것마저 넘어섰다.
‘…정말 신의 힘 같구나.’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지금껏 케일이 사용했던 힘의 몇 배는 되어 보였다.
콰직. 콰직.
마나가 풍부하지는 않지만, 현 상황에서 에르하벤이 최대로 만들어낸 실드를 부수는 힘이었으니까.
‘또!’
또 분명 피를 흘릴 것이다.
여기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더니! 그 말을 믿는 게 아니었다.
케일의 힘이 성장한 것이 대견하기보다는, 케일이 얼마나 기절할지 그게 걱정이었다.
에르하벤은 말년에 회춘한 것으로도 모자라, 다 큰 놈 몸 걱정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여유롭군.’
제로는 드래곤이 한숨을 내쉬는 모습에서 여유를 느꼈다.
마치, 이런 상황을 여러 번 겪었다는 듯 익숙한 모습으로, 실드를 끊임없이 만들어내었다.
‘소드 마스터도, 헤니 위시로프도 이 상황이 익숙해 보인다.’
두 사람은 여전히 결박한 1황자 무리를 주시하며, 저마다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걱정? 짜증? 답답함?’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오묘한 감정들이 담긴 표정이었다.
무심해 보이는 헤니 위시로프마저 미간을 찌푸린 채 붉은빛의 중심, 정화자가 있는 곳을 연신 힐끗거렸다.
제로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들 이제는 어느 정도 붉은빛에 적응했는지, 그 빛이 가라앉길 바라며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아니, 정신이 나간 놈도 몇 있군.’
주변을 살펴볼 여력을 잃은 채, 그저 붉은빛만을 멍한 얼굴로 바라보는 이들도 몇 있었다.
4황자 노이도 그중 하나였다.
“…진짜 신의 힘……?”
4황자의 눈가가 떨리고 있었다.
그의 눈도 제로처럼 붉게 충혈되었다. 노이의 시선이 천천히 한 곳으로 움직였다.
유력한 다음 대 황제 후보.
1황자 센더스.
노이는 친형을 바라봤다. 친형의 눈동자는 조금 전의 노이처럼 붉은빛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
노이는 멈칫했다.
웃고 있었다.
1황자가 웃고 있었다.
노이는 어린 시절 이후, 처음으로 친형이 웃는 것을 보았다.
그 웃음은 어딘가 공허하면서도 체념이 서려 있었다.
또한, 기뻐 보였다.
센더스 외에도 기쁨을 얼굴에 드러내는 이가 한 명 더 있었다.
참모장 이안이었다.
그녀는 경외를 느끼면서도 웃을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제대로 줄을 잡았다!
헬슨 후작은 제대로 된 자와 협력을 맺었다!
변경백이 틀린 선택을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안은 그간 헬슨 후작과 다른 변경백들이 비밀리에 뜻을 합해가는 과정을 함께하며 불안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적을 없앤다고 파멸을 막을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이안은 화이언스 가문과 황궁의 꺼림칙한 행동을 타파한다고 하더라도, 이미 이렇게 되어 버린 세상은 결국 멸망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 멸망을 최대한 늦추며 앞으로 살아갈 이들의 삶이 조금 더 이어지도록 돕는 것이 자신과 변경백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이라 여겼다.
‘…내 생각은 틀렸어.’
하지만 그 생각은 틀렸다.
봐라.
어둠이 사라져간다.
정말로, 죽은 마나가 소멸해간다.
회색 재조차 남기지 못하고, 없어지고 있었다.
그녀는 보물처럼 품에 꼭 안은 영상통신구를 쥔 손에 힘을 주며 입을 열었다.
“…후작님.”
하지만 후작의 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영상통신구는 아직 작동 중이었음에도.
이안은 후작이 무엇을 하고 있을지 알 것 같았다.
* * *
“…이럴 수가.”
후작은 말문이 막혔다.
영상통신구에 수많은 적금빛 벼락들이 뭉쳐 들며 거대한 빛덩이를 만든 순간, 영상통신구에는 붉은빛만이 보였다.
쿠웅-.
그 순간 땅이 진동했다.
9구역 전체에 깊고 넓은 울림이 한 번 일어났다.
곧바로 그는 창밖을 내다봤다.
“…허-”
그뿐만이 아니었다.
참모, 기사, 행정관. 그와 함께 있던 9구역의 핵심 인사들이 모두 창밖을 내다보며 멈춰 있었다.
방벽 너머.
낮에도 어둠뿐이고, 밤이 되면 밤보다 더 짙은 어둠을 흩뿌리는 그곳.
검은 안개로 무엇도 보이지 않아야 할 그곳이 지금은 달랐다.
뭉친 빛덩이는 터져나가며 붉은빛을 사방으로 뻗었다.
마치 태양이 땅에 머무는 것 같았다.
검은 안개가 소멸해간다.
방벽까지 그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보여.”
검은 모래로 뒤덮인 땅이 보인다.
빛덩이가 터진 중심부는 보이지 않았다.
거기는 워낙 강렬한 적금빛으로 휩싸여 분간이 가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희미한 적금빛이 닿은 모든 곳에서 어둠이 사라지며 오염된 땅이 보였다.
“이럴 수가…….”
후작은 창가에 서 있던 다리에 힘이 빠졌다.
“후작님!”
“됐네.”
그는 기사의 손길을 거부한 채, 창틀을 움켜쥐며 어떻게든 다리에 힘을 주어 똑바로 섰다.
적금빛이 공기 중의 어둠을 없애고, 그 불씨가 땅에 닿자, 곳곳에서 회색빛 재가 피어올랐다.
후작은 한 곳을 가리켰다.
“경, 저, 저기가 보이는가?”
“….보입니다.”
기사는 울먹이고 있었다.
중심부의 붉은 빛덩이가 조금씩 사그라들며, 그 일대의 모습이 차츰차츰 보였다.
후작은 입안에 맴도는 말을 결국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땅이-”
검은 모래가.
“땅이, 검지 않아.”
정화되었다.
“…정화의 불.”
벼락을 품은 불이 공기를 태우고, 땅마저 태웠다.
그리고 재를 바람에 흘려보내며 본래의 모습을 찾아주었다.
경이롭다.
후작은 고개를 돌렸다.
삐이이—삐이이—
아까부터 끊임없이 통신 신호를 보내오는 영상통신구가 하나 있었다.
“후작님.”
영상통신구 곁에 있던 흑마법사와 참모가 후작을 바라봤다.
“계속 황궁인가?”
“…네.”
검은 나무의 뿌리가 방벽을 공격한 후, 후작은 곧바로 검은 나무 공격조를 만들어 파견했다.
그 얼마 지나지 않은 후부터 황궁에서는 통신 신호를 보내왔다.
처음에는 일반 통신 신호였지만, 후작이 연락을 받지 않자 그 신호의 수위가 점점 높아져 이제는,
“…황제 폐하의 통신 요청입니다.”
황제가 직접 통신 신호를 보내왔다.
헬슨 후작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 입꼬리의 끝이 잘게 떨렸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곳에 있는 이들은 모두 그의 수족과 같은 이들로, 9구역의 핵심이나 다름없었다.
“자네들, 지금 무엇을 보았는지 잘 알고 있겠지?”
대답을 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은 모두 어떠한 결의로 가득 차 있었다.
처음 헬슨이 진행한 검은 나무 공격조에 대한 걱정과 불신, 방벽 방어에 관한 염려 등. 여러 가지 감정들은 이제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헬슨은 입을 열었다.
“우리는, 우리가 본 것을 믿고 나아가는 일만 남았네.”
정말로 후작은 자신이 역사의 변곡점에 있다는 것을 체감했다.
“통신 연결하게.”
그는 영상통신구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촤르륵.
기사가 얼른 회의실의 모든 커튼을 쳤다.
사그라들고 있다고 하더라도, 바깥의 어떠한 적금빛이 이 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연결되었습니다.”
흑마법사의 비장한 음성과 함께 영상통신구 위로 화면이 떠오르며 황제의 얼굴이 드러났다.
-…헬슨 후작.
“폐하!”
헬슨 후작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폐하!”
그는 황제의 반응 따위는 생각하지도 않고 움직였다.
허리를 숙이는 것뿐만 아니라, 무릎까지 꿇었다.
여전히 그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화이언스 가주도 있군,’
하지만 이미 화면이 뜨자마자 황제 폐하의 곁에 있는 현 황궁의 실세들 얼굴은 확인했다.
‘후작. 내가 한 말대로 하면 될 겁니다.’
헬슨은 정화자가 한 말을 떠올렸다.
‘1황자 세력은 내가 모두 붙잡을 테니, 후작은 여기 남아있는 1황자의 시종이나 수하들이 허튼짓 못하게 감시하시면 됩니다.’
과연 정화자가 1황자를 잡을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이 들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의문은 없다.
저 적금빛을 보았는데, 그런 생각을 할 수 없었다.
“폐하, 죄송합니다!”
후작은 몸을 납작하게 숙였다.
-…후작, 9구역이 공격을 받았다는 소리를 들었,
“죄송합니다!”
후작은 황제의 말도 제대로 듣지 않고 사과했다.
황제가 그 광경에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다시 열려던 찰나.
털썩.
털썩.
후작의 뒤에 있던 이들도 하나둘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 광경에는 비장함이 감돌았다.
황제가 입을 다물었고.
-…후작. 무슨 일인가?
황제의 가장 곁에 있던 화이언스 가주가 대신 물었다.
후작은 표정을 갈무리하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1황자께서-”
정화자는 이렇게 말하라고 했다.
후작은 당연히 받아들였다.
“1황자 전하께서 도, 돌아, 크흑!”
그는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어깨를 들썩였다.
“죄송합니다, 폐하! 1황자께서는 저를 대신하여 9구역과 제국 서부를 수호하겠다며 방벽 너머로 향하셨고, 그러셨고……!”
후작은 울부짖는 연기를 이어갔다.
“며, 명예로운 죽음을……!”
-후작! 지금 무슨 소린가?
가주 화이언스가 드물게 놀람을 얼굴에 감추지 못한 채 후작을 다그쳤다.
그 얼굴에 분노가 보였다.
후작은 송구하다는 듯 다시 고개를 숙인 채 외쳤다.
물론 케일과 충분히 상의가 된 부분이었다.
“죄송합니다, 공작님! 1공녀도, 1공녀도 명예로이 떠났습니다!”
-…….
영상통신구 화면에서는 어떠한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지만, 후작은 고개를 숙인 채 외쳤다.
“드래곤께서도, 다른 조력자도 돌아가셨습니다!”
-…….
“수많은 후보자가 죽었고, 그들의 죽음으로 제국 서부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정화자는 말했다.
‘셋 다 살아있을 겁니다. 아무도 안 죽을 겁니다. 그냥 말만 그렇게 해놓으세요.’
후작은 어깨를 한 번 들썩여주었다.
“크흐흑.”
그리고 울었다.
* * *
-케, 케일.
케일은 멍하니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짠돌이가 더듬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 케일, 있잖냐.
파괴하는 불은 한풀 꺾인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내가 100의 힘을 써본 적은 있었지만, 50의 힘으로 2,500의 효과를 내어본 적은 없어서 말이야… 아니, 어쨌든…….
짠돌이가 케일 눈치를 보며 말했다.
-…그… 우리가 여기서 심하게 강한 것 같다.
케일의 눈동자에 초토화된, 아니, 어쨌든 정화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