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799
2부 41화
헬슨 후작은 생각했다.
‘참으로, 거침이 없구나.’
헬슨 후작은 실로 오랜만에 정화의 불 교단과 연락을 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주교?’
‘반갑군요, 헬슨 후작.’
흑마법 영상통신구 화면에는 정화의 불 주교가 있었다.
‘…그분은 교단에서 키운 분인가?’
주교는 헬슨의 말에 인자한 미소를 띤 채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고는 한마디를 했다.
‘그분을 보시면 답이 보일 텐데요?’
헬슨 후작은 잠시 눈을 감았다.
모든 것이 정화된 하얀 모래 사막.
이안 참모장의 품에 안겨있던 영상통신구 너머로 본 그 푸른 하늘과 어둠이 없는 세상.
그곳에 오연히 선 정화자.
‘나는 이 세계의 부름을 받고 왔다.’
그는 분명 이렇게 말했다.
헬슨 후작은 확신했다.
‘정화자는 분명 수도로 가서 화이언스 저택을 다 때려 부술 거다.’
적당히 부수는 것으로 부순다고 하지는 않을 사람이다.
아니,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그는 그저 ‘존재’다.
“다만 한 가지 걱정이 듭니다.”
헬슨 후작은 입을 열었다.
“화이언스 가주의 눈을 제가 속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케일은 헬슨 후작의 염려가 무엇인지 짐작했다.
“시신과 하얀 사막 때문이죠?”
“네.”
헬슨은 케일이 무슨 답을 줄지 기다렸다. 그리고 케일은 조금의 기다림도 필요 없다는 듯 곧장 답했다.
“모른다고 하세요.”
“…네?”
헬슨은 살짝 멍한 얼굴로 케일을 쳐다봤다.
케일은 산뜻한 미소를 띤 채 말했다.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고, 그곳에 가보니 모든 게 사라졌다고 하세요. 잡아떼면 됩니다. 그냥 다 모른다고. 그러면 그쪽이 어쩌겠습니까?”
“…음.”
“냉정히 말해, 화이언스 가주는 후작님이 그런 광경을 만들었으리라고는 생각 못 할 겁니다.”
“그렇죠.”
자신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다고 말함에도 헬슨는 쉬이 수긍했다. 사실이니까.
“그렇다면 화이언스 가주는 누가 그런 짓을 했는지 알아내려고 할 겁니다. 혼자서 지지고 볶고 하면서 온갖 추측을 하겠죠.”
“음.”
“그 추측 중에 우리 이야기가 있을 것 같습니까?”
“…아뇨.”
정화자.
그 존재를 어느 누가 떠올릴 수 있을까.
현재도 이 일의 내막을 모르는 9구역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붉은 폭발을 보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누구도 정확히 추측하지 못했다.
그만큼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후작님, 분명 9구역을 이 잡듯이 뒤지려고 할 겁니다.”
“음.”
헬슨은 화이언스 가주가 그럴 때 잘 숨겨야 했다.
살아남은 자들을.
케일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때, 가주의 귓가로 소식이 전해질 겁니다.”
“아.”
헬슨은 상황이 그려졌다.
“가주는 곧바로 수도로 가겠군요. 수도, 그것도 자신의 저택이 공격을 받았으니까요.”
“그렇습니다.”
“아마 이곳 조사도 포기할 수 없으니, 조사를 할 인원 몇 명은 남겨두겠지만-”
헬슨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 정도는 충분히 속일 수 있습니다.”
“그렇죠?”
케일과 헬슨 후작은 서로를 보며 미소를 그렸다.
그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혈교인의 속내는 뒤집어졌다.
‘저자는, 도대체 누구지?’
혈교인은 도망치는 것도 어느 정도 포기한 상태였다.
‘야, 너 업 바친다고 하면서 중원 갈 생각이지?’
그는 케일이 했던 그 말에 너무 놀라서 기절할 뻔했다. 그걸 사냥꾼이 아닌데도 아는 자가 있다니.
문제는 저 말이 끝이 아니었다.
‘사실, 네 정보 필요 없긴 해. 그리고 고향에 곧 같이 갈 거니까, 고향 땅 못 밟고 죽는 걱정은 안 해도 돼.’
유들유들하게 웃으며 가볍게 하는 말과 달리 그 의미는 충격적이었다.
사냥꾼이 아님에도 드래곤, 소드 마스터 등을 데리고 차원 이동을 할 수 있는 자가 존재한다고?
그것도 ‘업’이라는 대가 같은 것도 바치지 않는 모양새였다.
‘정말 신이 보낸 자일까?’
아니다.
혈교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가 믿어야 하고 모셔야 할 신은 단 한 분뿐이다.
‘혈마시여.’
인간이지만, 곧 신이 되실 분.
그분이 교의 대업을 이루시리라.
혈교인의 생각은 이어질 수 없었다.
“최한.”
“네.”
최한이 손을 움직였고, 혈교인은 혈마를 찾다가 그대로 기절했다.
‘빌어먹을! 자꾸 왜 기절시키냐고!’
기절하면서 혈교인이 한 생각은 어느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 * *
“나는 여기 남도록 하지.”
“그래도 되겠습니까?”
케일의 시선이 에르하벤에게로 향했다. 고룡은 묘한 미소를 입가에 그렸다. 비틀어진 미소였다.
“…화이언스 가주 얼굴을 좀 자세히 보고 싶네.”
화났군.
케일은 고룡의 분노가 사라지기는커녕 더욱 깊어진 것을 깨달았다.
케일의 시선이 자연히 한 곳으로 향했다.
흑발의 여인. 아페가 침실 한쪽에 놓인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물론 그 눈동자는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추적 장치는 없다.”
케일은 에르하벤의 말이 의외였다.
화이언스 가문에서 드래곤 아페를 어떻게든 손안에 가두려고 했을 터. 그런데 아페 몸에 추적 장치를 하나 안 달아놓았다는 것이 조금 놀라웠다.
“그래요?”
“…있었는데, 없다.”
아하.
에르하벤이 부순 듯싶었다.
“그 정도 흑마법 추적 장치 따위, 손만 대면 사라지는 것이지.”
…아예 먼지가 되어 흩날려 버린 듯싶다.
케일은 잘한 일이기에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이어진 말에 그의 미간이 살짝 일그러졌다.
“…대신 저주가 걸려 있다고 하더군.”
케일의 시선이 아페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분명 케일과 에르하벤의 대화가 들릴 것임에도 이쪽을 보지 않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저주요?”
“그래. 화이언스 가주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그 목소리가 고통이 된다고 해.”
“본인 입으로 한 말입니까?”
“그래. 그래서 도망칠 생각을 못 했다고 하더군.”
에르하벤과 케일의 시선이 부딪쳤다.
“이 세상 어디를 가도 사냥꾼이 쫓아올 테니까. 홀로 남은 자신이 버틸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다더군.”
죽은 마나 속에서 태어난 드래곤 아페는 사냥꾼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에르하벤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용은 화이언스 가문이, 후우. 검은 피 가문이 중심이 되어 사냥한 것이 맞더군.”
아페에게서 직접 들은 듯한 모습에, 케일은 잠시 고민하다가 아페에게로 다가갔다.
그녀의 시선이 이 방에 케일이 들어선 후, 처음으로 케일에게로 향했다.
정작 케일의 눈동자는 아페가 아닌 다른 것들을 담고 있었다.
‘…얘네들 이래 둬도 되나?’
조금 전까지, 아페의 시선을 묶어둔 존재들.
평균 9세.
라온과 온, 홍이 아페 주위를 괜히 얼쩡거리고 있었다. 특히 라온은 아페의 긴 로브 자락 끝을 툭툭 건드리며 중얼거렸다.
“나도 검은 용인데~”
홍의 말투를 흉내 내면서.
힐끗.
그리고 본인은 은밀한 줄 알지만, 아주 티 나게 아페를 계속 쳐다보면서.
“나 아주 쎈데~”
“나도 쎈데~”
홍이 뒤를 이었다.
“우리 다 쎈데~ 다 구할 수 있는데~”
라온이 또 그 말을 이어받으며 말했다. 온은 슬그머니 케일의 곁으로 다가와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홍과 라온을 쳐다보던 케일의 귓가에 에르하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깊은 한숨이 섞여 있었다.
“아까부터 계속 저런다.”
음.
케일은 짧은 침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의 시선이 아페에게로 향했다. 죽은 마나 속에서 태어난 드래곤 아페.
케일은 아페와 마주하며 첫 질문을 던졌다.
“…연세가?”
에르하벤의 표정이 일그러졌으나, 케일은 몰랐다. 그리고 이어진 아페의 대답에 에르하벤의 눈동자가 커졌다.
“…올해로 99살.”
에르하벤이 말했다.
“애군.”
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아직 백 살도 안 되었다니.”
케일은 시선을 돌렸다가 흠칫했다. 에르하벤의 주위에 금빛 먼지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새삼 사냥꾼들에 대한 분노가 피어오르는 듯한 모습이었다.
‘…보지 말자.’
일단 케일은 아페에게 시선을 돌려 물었다.
“화이언스 가주 목소리를 들으면 안 된다고요?”
99살이면 존대를 해야지.
“…….”
끄덕. 아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언뜻 비협조적인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었으나, 케일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아챘다.
‘으음.’
99세의 드래곤이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몰랐는데, 꽤 소심해 보였다.
연회장에서 처음 보았던 그 도도해 보이는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긴, 아페의 본모습은 지금에서야 드러난 것일 터.
‘그만큼 마음이 편하다는 뜻일 테고.’
아페는 여전히 평균 9세를 계속 쳐다봤다. 가끔씩 에르하벤도 쳐다봤다. 물론 라온을 제일 많이 바라봤다.
그러다가 케일이 아무 말이 없자 그를 바라보았다.
“…응.”
그리고 뒤늦게 답했다.
고개를 끄덕인 게 부족했다고 생각한 듯싶었다.
-케일, 봤지? 용이 저런 소심한 모습을 보이다니! 도대체 이 사냥꾼 새끼들이 어떻게 했길래!
에르하벤이 차마 입으로 내뱉지 못한 답답함을 케일의 머릿속에다 내뱉었다. 얼마나 화가 났는지 고룡이 비속어도 썼다.
“하하.”
케일은 그냥 짧게 웃어넘기며 아페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내일 화이언스 가주가 여기에 온다고 해요.”
“…….”
아페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렸지만, 그 모습은 담담했다.
-의연하구나.
에르하벤이 기특하다는 듯 말했다.
-인간아! 사냥꾼이 소심한 아페 건들기 전에 우리가 먼저 화이언스 가주 때려잡자!
라온이 아주 씩씩하게 제안했다.
‘하. 이 용들.’
케일은 그냥 두 용의 말을 흘려들었다. 에르하벤의 말을 흘려듣는 건 처음이었다.
그는 상냥한 미소를 띠었다.
-인간아! 아페는 같은 편이다! 소심한 아페한테 그렇게 웃지 마라! 사기 치지 말라!
또 한 번 라온의 말은 흘려들었다.
“아페 님.”
“…….”
아페가 케일을 쳐다봤다.
케일은 부드럽게 물었다.
“내일 수도에 화이언스 가주 없는 틈을 타서, 화이언스 저택 부수러 갈래요?”
수이 칸 팀장과 온, 홍이 화이언스 가문을 살펴보았으나. 아페만큼 그곳에 대해 잘 아는 존재는 없었다.
“…….”
아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거길 부순다고?”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물었다.
케일이 입을 열어 대답하려고 했으나, 평균 9세가 빨랐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라온과 홍이 빨랐다.
“아싸! 인간아, 나도 갈 거다! 내가 부순다!”
“훔치러는 안 가는 건지 궁금한데!”
케일은 그를 보며 눈을 반짝이는, 온까지 끼어 있는 평균 9세를 보며 담백하게 답했다.
“둘 다 한다.”
그 순간, 그는 아페의 볼이 살짝 물드는 것을 보았다.
“…재밌겠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아페가 그리 대답한 순간, 케일은 저도 모르게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뭐야.’
묘한 광기가 보이는 것 같았다. 발그레 물든 볼은 보이지도 않았다.
아페의 눈동자가 번들거리고 있었다. 이 소심한 용 안에 머무는 거대한 분노와 광기가 보이는 것 같았다.
케일은 알 수 없는 한기가 뒤통수에 머물렀다. 그때, 낮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하.”
그의 시선이 침대로 향했다. 수이 칸. 팀장이 과일을 먹으며 웃고 있었다.
그리고 한마디를 툭 던졌다.
“막강하네.”
에르하벤, 메리.
두 명을 뺀 일행 전부가 다음 날 아침 수도로 향했다.
용 한 명을 더 데리고.
화이언스 저택을 부수러.
* * *
제국 수도.
그곳에 위치한 정화의 불 교단 비밀 은신처에 케일 일행은 도착했다.
화이언스 저택에 가기 전, 어느 정도의 준비와 상황 파악은 필요했으니까.
케일은 텔레포트 해오자마자 교황을 만났다.
교황은 외쳤다.
“전설을 뵙겠나이다!”
이런, 빌어먹을.
케일은 갑자기 팔에 소름이 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