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80
79화.
두 시간 뒤, 케일의 일행은 모두 ‘나올 수 없는 길’ 숲 입구 앞에 모였다. 물론 그들만 있지 않았다. 케일은 한스에게 지시했다.
“네가 명단을 받도록.”
“네.”
한스는 케일을 바라보는 마을 사람들을 상대하러 멀어져 갔다. 그는 이번 참에 아마 고양이들의 비밀에 대해 알게 될 것이다.
케일의 눈짓에 메스와 늑대 아이들, 힐스만이 일렬로 정렬했다. 기사단과 같은 절도 있는 모습이었다.
“온은 우리를 데려다주고 홍과 함께 돌아올 거다. 그러면 너희들과 온이 함께 유품을 모으는 일을 하도록.”
메스를 비롯한 늑대 아이들은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꽤 흡족하게 바라보던 케일 아래에서 한이 가득 담긴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 공자님, 저는 왜? 설계를 해야 하는데.”
뮐러가 케일과 힐스만, 비크로스 사이에서 오들오들 떨며 케일을 올려다봤다. 케일은 그 모습이 띨해 보였다. 이 띨한 놈은 혼자 두기 걱정스러웠다.
“그냥 좋게 말할 때 따라와라.”
또 목덜미를 잡거나 옆구리에 끼고 데려가고 싶지는 않았다. 뮐러는 케일의 말을 어떻게 알아들은 것인지 하얗게 질려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품에는 설계를 위한 종이와 펜이 담긴 커다란 가방이 매여 있었다.
케일은 자신과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리타나에게로 다가갔다. 그는 부드러운 미소를 입가에 매달았다.
“이제 출발하면 될 것 같습니다. 두 시간 동안 기다리시느라 많이 초조하셨을 텐데.”
“아뇨. 괜찮아요.”
리타나는 그렇게 답하면서도 케일과 그의 일행을 살폈다.
케일은 무력을 배우지 않은 평범한 수준으로 보였기에, 그의 일행은 적당한 힘을 지닌 기사들일 줄 알았다.
‘비범한 사람이야.’
하지만 그건 명백한 착각이었다. 그녀가 깊이를 알 수 없는 강자에, 수많은 인재들이 곁에서 그의 명을 들었다.
조금 떨어져 있어 대화는 듣지 못했지만, 자신들을 대할 때와 달리 그는 일행을 카리스마 있게 통솔하는 것처럼 보였다.
반면에 케일의 일행은 리타나에게 부드러운 케일을 보며 각자 다른 표정을 지었지만 별다른 티를 내지 않았다. 케일이 일행에게 미리 말해둔 것이다.
‘나한테 맞춰.’
알아서 잘들 맞출 것이다. 눈치 없는 사람은 또 없으니까.
“온, 가자.”
냐아오옹.
온이 앞장섰고, 케일과 다른 이들이 따랐다.
“저, 케일 님.”
온과 함께 제일 앞에서 걸어가고 있던 케일의 곁으로 최한이 다가왔다. 그는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 듯 조심스러웠다.
케일은 리타나와 일행이 로잘린 뒤,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것을 확인한 후 다시 최한을 바라봤다.
“왜?”
“혹시 이번 정글 불도 그들의 짓입니까?”
조심스러우면서도 날카로운 눈빛. 케일은 최한이 말하는 그들이 누구인지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마법 폭탄 테러를 일으켰던 비밀 단체. 그들을 말하는 것이리라.
“아니. 그들의 짓이 아냐.”
최한은 수도에서 비밀 단체와 얽힌 후, 원래라면 브렉 왕국에서도 살짝, 아주 살짝 엮인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들과 얽힌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그렇군요. 저번 수도 때처럼 공자님이 부분적으로 아는 정보인가 싶어서.”
“난 아직 맹세를 기억해.”
케일은 최한에게 한 번 더 주지시켜 주었다.
“나는 그들의 정체를 알면 너에게 말해줄 거야. 그러니 걱정 마.”
“네.”
최한은 평소처럼 담담하게 안개를 헤치며 길을 만드는 케일을 바라봤다. 그는 입을 달싹이다가 비장하게 말했다.
“힘든 일을 혼자서 짊어지려고 하지 마십시오.”
뭐라는 거야? 케일은 최한을 황당하다는 듯 쳐다봤다. 그때였다.
“저도 그 말에는 동의해요.”
리타나 일행과 최한, 케일이 떨어지도록 중간에 서 있던 로잘린이 케일을 보며 싱긋 미소 지어 보였다. 케일은 두 사람의 말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힘든 일?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만. 힘든 일을 할 생각은 없습니다.”
힘든 일을 내가 왜 하나? 시킬 이들이 주변에 깔려 있는데. 케일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로잘린을 보며 두 사람의 물음에 답했다. 하지만 최한과 로잘린은 서로를 보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어 보였다.
그 표정이 케일은 상당히 찝찝했다. 그러나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 더 묻지 않고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잠깐의 휴식만 빼면 밤까지 지새우며 펼친 강행군으로 그들은 다음 날 ‘나올 수 없는 길’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음.”
“…세상에.”
케일의 일행은 숲을 빠져나오자마자 보이는 것에 저마다 탄식을 내뱉었다.
검은 연기.
또다시 하루를 더 가야 볼 수 있는 정글. 그 자리가 있을 법한 곳에서 검회색의 연기가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다.
또한 평지에서도 저 멀리서 붉은 불길이 조금 보였다.
리타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이 다스리는 땅이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저 불로 터전을 여전히 못 찾고 있는 자신의 식구, 백성들이 떠올랐다.
“서두릅시다.”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케일이 보였다. 분명 이 귀족은 힘들 것이다. 곱게 자라온 것이 보였으니까.
“네. 여기부터는 저희가 안내하겠습니다.”
그럼에도 리타나는 서둘러야 했다. 그래서 고마웠다.
그녀의 손짓을 따라 수하 다섯 명이 앞으로 나섰다. 리타나는 제일 선두에 섰다. 원래 무리의 우두머리는 제일 앞에 서야 했다.
“빠르게 이동해야 해서, 최단 길이라 험할 수도 있습니다.”
“상관없습니다.”
부드럽지만 단호한 그의 대답.
“갑니다.”
리타나는 고맙단 말 대신 앞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그렇게 그들은 검은 연기로 다가갔다. 그리고 하루가 다시 지났을 때, 강행군으로 지친 그들의 눈앞에 거대한 불이 나타났다.
정확히 말하면, 거대한 불길을 경계로 형성된 여러 천막들도 함께 보였다. 하지만 그것들은 보이지 않았다.
“무슨 불이-”
늑대 소년 라크는 저도 모르게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마치 화산이 폭발해 용암이 산을 뒤엎은 것 같았다.
불이 산처럼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고 있었다. 이런 광경을 일행은 처음 보았다.
“크흠.”
최한은 저도 모르게 헛기침을 하며 숨을 들이마셨다.
숨이 막혀왔다.
어둠의 숲에서 살아왔어도, 그렇게 강한 그라도 이런 불길은 처음 보았다. 정글 1구역. 그 넓은 영역을 모두 뒤덮으며, 성처럼 하늘을 향해 거대하게 몸집을 불려 그 높이가 어마어마한 불.
자연은, 자연의 재앙은 인간의 상상을 쉬이 뛰어넘었다.
“저 불이?”
마법사 로잘린은 리타나 일행을 보며 물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믿을 수 없다는 듯 흔들리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비가 오고 있었으니까.
하루에도 몇 번이나 소나기가 오는 정글은 여름을 향해 가고 있었다. 장마 시기였다. 하늘은 흐렸고 비는 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불은 그대로였다. 흐린 세상에서 유독 붉었다.
그것이 파괴적이었다.
“저 불이 맞아요.”
리타나는 씁쓸한 얼굴로 타오르는 불길을 바라봤다. 여전히 더 번지지 않고 그 자리에서 1구역의 숲을 삼키고 있었다.
“…정글이 죽어가고 있죠.”
그녀는 라크가 뒤로 물러서는 것을 봤다.
입술을 깨물었다. 상상을 뛰어넘는 무서운 재해는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안겨주었다. 남부인들도 두려워서 다가가지 못한 채, 그저 경계선만 펼친 채, 지켜만 보고 있지 않았던가.
리타나는 케일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불길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저 불길을 보고도 그는 불에 다가가려고 할까?
그녀는 차마 얼른 가자고 말할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덥네.”
케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우비와 상의 재킷을 벗었다. 귀족임을 드러내듯 간소하지만 고급스러운 재킷을 벗은 그는 흰 셔츠의 소매를 걷었다.
그는 뒤돌아서서 일행을, 정확히는 리타나를 바라봤다.
“가죠. 저는 불 가장 가까이에 가야 할 것 같습니다. 경계선을 넘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산책이라도 온 듯 평온한 모습이었다. 리타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의 수하들은 이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었다. 리타나는 자신의 수하들을 바라봤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케일을 다시 마주했다.
“제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혼자 갈 수 있습니다만.”
케일은 그냥 혼자 가고 싶었다. 리타나가 어떻게 모셔다 줄지 예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안 됩니다. 위험합니다.”
리타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시선을 돌렸다. 경계선 밖에 형성된 수많은 천막들. 거기서 이리로 뛰어오는 이들이 보였다.
“여왕 폐하!”
“폐하!”
“대장님!”
저 멀리 그녀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리타나는 여왕이라는 말에 놀란 듯한 케일의 모습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물론 케일은 놀란 척 중이었다. 그리고 진짜 놀라기도 했다. 당연히 리타나가 여왕이라서 놀란 것은 아니었다.
‘이야, 진짜 크네.’
어마어마한 생물이 리타나에게로 뛰어오고 있었다.
“크르르르!”
“텐!”
리타나의 부름에 거대한 흑표범은 날아오르듯 그녀의 앞까지 달려왔다. 리타나는 자신의 앞에 내려서는 흑표범의 등 위에 유려하게 올라탔다.
정글의 여왕 리타나와 흑표범 텐. 케일은 죽음의 사자라는 별칭이 이해되었다.
짙은 남빛에 가까운 흑표범은 웬만한 성인 남자 두셋의 크기만큼 커다랬다. 그 위에 올라탄 그녀는 케일에게 말했다.
“저와 텐이 데려다 드리겠습니다.”
그때 안전지대에서 뛰어온 수하들이 그녀와 케일을 번갈아 바라봤다.
“폐하, 이분들은?”
리타나는 수하들의 물음에 바로 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자신이 온 것을 알고 안전지대 천막에서 하나둘 나오는 사람들, 그리고 동물들을 볼 수 있었다. 저들은 1구역이 터전이었던 자들.
저들은 자신을 기다렸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전설 속 용을 데려와야만 했다.
“용이지.”
“네?”
의아하게 쳐다보는 수하에게 리타나는 씩 웃어 보였다. 그녀는 케일에게 손을 내밀었다.
“타세요. 케일 씨.”
크르르.
케일은 흑표범이 크르르거리는 것을 보자, 썩 올라타고 싶지 않았다. 흑표범 텐이 라크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때 케일과 함께 왔던 리타나의 수하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다른 수하들에게 대표로 설명했다.
“불을 끌 수도 있을 것 같아 모셔온 분이다.”
“정말로 불을 끌 수 있다고요?”
놀란 눈동자들이 케일에게로 향했다. 그런 케일의 앞을 최한을 비롯한 다른 일행이 막아섰다.
“케일 님, 위험합니다. 제가 근처까지 모시겠습니다.”
“됐어.”
케일은 최한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 열기면 가까이 다가가도 화상이야. 위험해. 다들 안전지대에 있도록.”
괜히 따라오면 짐이었다. 불길은 다른 이들의 힘이 소용없었으니까.
“로잘린 씨, 실드 부탁드립니다.”
“…네.”
로잘린은 한숨과 함께 케일과 리타나, 텐에게 실드를 쳐주었다. 로잘린은 리타나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었다. 리타나는 로잘린을 모르는 것 같았지만.
“정글의 여왕이시니, 우리 중 누구보다 안전하게 모셔다 드릴 거예요. 공자, 잘 다녀오세요.”
아니, 흑표범 타기 싫다니까? 케일은 바람의 소리로 빠르게 가면 되었다.
그는 여전히 자신에게 손을 내민 비장한 얼굴의 리타나, 그리고 일행, 의문에 가득한 정글인들 등 모두를 바라보다가 결국 한숨과 함께 리타나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흑표범 위에 올라탔다. 흑표범의 털을 움켜쥐자 조금 무서웠다.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가죠.”
리타나는 꼿꼿이 허리를 편 채 저 멀리 불길에 시선을 둔 케일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는 몸을 숙여 텐에게 말했다.
“텐, 우리를 불까지 데려다 줘.”
“크르르!”
리타나는 허리를 폈고, 거대한 흑표범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흑표범과 검은 여인은 붉은 머리칼의 남자를 태운 채 불로 향했다.
그들은 안전지대를 가로질러 경계선으로 향했다.
“폐하!”
“텐!”
“무슨 일이십니까?”
리타나는 빠르게 안전지대 천막을 가로지르며 자신을 부르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모두 초췌한 몰골이었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더 빨리 가죠.”
그런 그녀에게 케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텐, 더 빨리.”
텐은 리타나의 말에 답하듯 안전지대의 나무와 수풀을 빠르게 헤쳐 달렸다. 케일의 일행과 수하들이 그 뒤를 따랐지만 역부족이었다.
사사삭, 사삭. 나뭇잎과 비, 수풀들이 케일의 셔츠에 닿았다.
하지만 그 물기들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엄청나군요.”
케일은 흑표범에서 내렸다. 경계선 앞까지 도달했다. 엄청난 열기가 느껴졌다. 경계선 안으로 5m 떨어진 곳에 불길들이 거대한 해일처럼 불타오르고 있었다.
‘황태자 이 미친 새끼.’
케일은 실제로 마주하니, 황태자가 정말로 미친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불 이상하다.
검은 용 라온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들려왔다. 케일은 다가오려는 리타나에게 단호히 말했다.
“리나 씨, 물러서세요.”
“하지만!”
“저는 저 불길 앞까지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정도 불길이면 불을 제압하는 물의 힘을 삼분의 일 정도 사용해야 할 것 같다. 실제로 마주하니 그냥 일반 산불과는 차원이 달랐다.
‘물과 목걸이 힘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니. 넉넉하게 쓰지, 뭐.’
모자라면 또 힘을 쓰면 될 일이었다. 케일은 간단히 생각하며 함께 온 두 존재에게 말했다. 앞으로의 일에 리타나와 텐이 거슬렸다.
“물러서세요.”
리타나는 단호한 케일의 모습에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크르르.”
그때, 텐이 그녀의 옷깃을 잡고 뒤로 끌었다.
“텐?”
리타나는 의아한 눈빛으로 텐을 바라봤다. 흑표범 텐은 도망치지 않는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케일을 두고 물러서자는 것이 리타나는 의아했다. 그 순간 케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아이는 날 믿는군요.”
“네?”
불길처럼 붉은 남자는 씩 웃어 보였다. 여유로운 미소였다.
“전 안 다칩니다. 불을 끄고 나갈 테니, 떨어져서 지켜보세요. 뭐, 위험할 거 같으면 구해주던가요.”
그리 말하고 케일은 미련 없이 경계선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리타나는 그 광경을 바라보다가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텐이 몸을 숙였고, 그녀는 텐의 등 위에 올라탔다. 텐처럼 그녀도 위험하겠다 싶으면 바로 뛰어들어 구하기 위해서였다.
케일은 그런 텐과 리타나를 모른 채 불길 바로 앞까지 걸어갔다.
‘심장의 활력이 없었으면 큰일 났겠네.’
열기가 장난 아니었다. 그러나 아픈 줄은 잘 몰랐다. 어떤 자연의 힘이든 그대로 담아낼 수 있는 고대의 힘인 ‘스며드는 목걸이’에 담긴 물의 힘과 재생력 때문이었다.
-약한 인간, 저 불은 조금 미친 불 같다! 자연의 법칙을 어겼다!
라온이 시끄럽게 말해댔지만 케일은 불길 바로 앞에 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리타나와 텐이 보였고 저 멀리 천막이 보였다. 그리고 천막에서부터 다가오는 이들이 보였다.
오지 말래도. 분명 일행일 것이다.
케일은 혀를 차며 두 팔을 벌렸다.
쏴아아아-
화르르-
비 내리는 소리, 불타는 소리. 두 소리를 흘려들으며 케일은 ‘스며드는 목걸이’의 힘을 사용했다.
우우우우-
알 수 없는 울음소리가 케일에게서 울려 퍼졌다. 동시에 목걸이가 푸른빛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케일은 목걸이 속 물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눈을 감았다.
‘불길이 해일 같다면.’
진짜 해일을 만들면 될 터.
불을 제압하고 지배하는 물.
케일은 넉넉하게 그 힘의 삼분의 일을 꺼내 들었다.
촤르르르르르-
물길이 케일의 바로 위에서 치솟아 올랐다.
우우우우- 우우- 우우우-
울음소리가 점점 더 커지며 케일의 위로 거대한 장벽이 생겨났다. 물의 장벽이었다. 그는 눈을 감은 채 해일을 상상하며 최대한 큰 물길을 만들었다.
“…세상에.”
리타나는 저도 모르게 탄식을 흘렸다. 동시에 텐이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둘의 앞에 거대한 파도가 만들어져 갔다. 그녀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우우우- 우우-
쏴아아아-
비와 울음소리가 공존하듯 치솟은 물길은 짙은 푸른빛이었다. 경계선을 향해 달리던 이들도, 천막에서 이를 지켜보던 이들도 멈춰 서서 그 광경을 눈에 멍하니 담았다.
하늘에 닿을 듯 높이 치솟아 오른 불길. 그 불길만큼 파도는 높아져 갔다. 그리고 당장에라도 휩쓸어 버릴 듯 거대한 물길을 허공에 만들었다.
케일은 눈을 떴다.
그는 고개를 들었다.
“음.”
3분의 1은 너무 많았나?
케일은 조금 당황했다. 생각보다 자신이 만든 파도가 경이로워 보이고 엄청났다. 자신이 보기에도 그랬다. 그때 라온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이런 미친 불은 휩쓸어 버리자, 인간!
케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래, 휩쓸자고.
우우우-
울음소리가 뚝 끊겼다.
콰아아앙-!
거대한 파도가 휘몰아쳤다. 푸르른 물의 장벽이 불과 땅을 뒤덮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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