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800
2부 42화
노신관 더스트 주교도 허리를 깊이 숙이며 외쳤다.
“전설을 뵙겠나이다!”
그리고 덧붙였다.
“신화를 걸어가는 길을 함께하게 되어 제 생의 영광입니다!”
이 사람들이 왜 이럴까.
그만 좀 이러면 안 될까.
정말 그냥 집에 가고 싶다.
케일은 내면에 온갖 생각이 들었지만, 무엇 하나도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다.
대신 제국 수도 비밀 은신처에 가득 들어찬 교단 사람들을 보며 교황에게 물었다.
“수도 안가까지 들어와도 되는 겁니까?”
교황은 인자한 미소를 그리며 엉뚱한 답을 했다.
“수도 밖에 교단의 모든 전투 병력이 모여있습니다.”
그녀는 덧붙였다.
“정화자님께서 원하시는 순간, 모든 인원이 수도로 넘어올 것입니다.”
교황의 몸 주위에 붉은 기운이 넘실거렸다.
그녀는 본인마저 싸우겠다는 의지를 선보였다.
“오늘, 정화자님께서 화이언스 가문과의 전쟁을 시작한다고 들었습니다.”
헬슨 후작 측에서 보내온 연락에 따르면, 오늘 정화자와 그의 일행이 화이언스 가주가 없는 틈을 타 화이언스 가문을 선공한다고 하였다.
“그 싸움. 교단에서도 언제든지 함께할 마음이 있습니다.”
화이언스 가문 저택은 황궁 근처에 거의 붙어있다시피 했다.
그곳에 간다는 것은 곧 황궁의 전투 병력까지 함께 고려한다는 의미였기에, 교황은 정화자를 돕고 싶었다.
‘아니지, 돕는 것이 아니지.’
헬슨 후작 측에서 보낸 하얀 사막 영상을 보았다.
그전에 벌어진 거대한 붉은 불의 폭발도.
‘그런 분을 돕는다고 하기에는 우리의 힘이 미비하다.’
이단으로 명시된 교단의 힘이 세봤자 얼마나 세겠는가.
물론 그들의 핵심 전투 병력은 웬만한 제국 기사단은 훌쩍 뛰어넘는다고 자부한다.
‘…그리고 일단 정화자께서도 신은 아니다.’
교황은 잠시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아직도 갈색 머리칼로 염색한 마법을 풀지 않은 정화자를 눈에 담았다.
‘지난밤, 계시가 내려왔다.’
정화의 불께서는 교황의 꿈으로 찾아와 말씀하셨다.
‘그는 다쳐선 안 되는 인간이다.’
‘그가 다치면, 짱돌이, 아무튼, 그가 무리하지 않게 돕거라. 그의 길을 따라가다 보면 샤올렌에도, 그대들에게도 많은 이득이 있을 것이다.’
교황은 짱돌이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그 외의 말들은 모두 알아들었다.
‘어떤 존재라도, 어떤 놈들이라도!’
신이 말씀하셨다.
‘저분의 몸을 다치게 해서는 안 돼!’
그러니 지켜야 한다.
교황의 눈빛이 번뜩였다.
케일은 순간 교황의 시선에서 알 수 없는 꺼림칙함을 느낌과 동시에 몸에 소름이 돋았다.
뭔가 갑자기 교황의 존재가 찝찝하게 느껴졌다.
-인간아, 왜 그러나?
그때, 라온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들렸고, 케일은 지체할 틈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어떻게든 함께 싸우러 가려는 듯한 교황의 열정을 높이 샀으나, 오히려 그렇기에 솔직히 말했다.
“일단 지금은 싸우러 가는 건 아닙니다.”
“…그럼?”
“으음.”
케일은 잠시 고민하다가 교황에게 손짓했다. 가까이 다가온 그녀에게 케일은 작은 목소리로, 그녀에게만 들리도록 속삭였다.
“아주 빠르게 은밀히 다녀올 겁니다.”
은밀히?
교황은 정화자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정화자는 어느 때보다도 진지하게 말했다.
“정체를 숨기고 저택에 가서, 비싼 건 다 훔치고, 중요한 건 다 부수고, 저택 지붕 날리고 기둥도 부수고 올 거라서요. 저택 담장도 다 무너뜨리고.”
“…….”
“그러니까.”
케일은 담담하게 말했다.
“전쟁 아닙니다.”
케일은 교황에게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낮췄던 목소리를 다시 높였다.
“어쨌든 소수 인원으로, 우리끼리 다녀오겠습니다. 한두 시간도 안 걸릴 겁니다. 대신 교황님과 교단 쪽에서는 해주실 일이 있습니다.”
“…….”
잠시 멍하니 있던 교황은 노신관 더스트 주교의 눈짓에 정신을 차렸다.
“아, 네. 정화자시여, 저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케일은 그녀에게 영상저장구를 하나 내밀었다.
그는 최한이 괜찮냐는 듯 쳐다보았으나, 그 안쓰러워하는 눈빛을 모른 척했다.
-케일, 괜찮겠나?
짱돌이 물었지만, 이 또한 못 들은 척했다.
‘지금은 이 방법이 제일 좋아.’
그래, 제국이, 화이언스 가문이 무너진다고 해서 샤올렌이 바뀔 것이란 보장이 없다.
대부분의 현 기득 세력은 죽은 마나에 오염된 이 세상이 마음에 드는 자들이니까.
‘교단, 그리고 멸망단.’
두 세력의 힘을 키운다.
‘더불어 새로운 세력을 제국의 중심에 오르게 한다.’
그리된다면, 화이언스 가문의 공백을 채움과 동시에 샤올렌이라는 세계를 정화시키는 것이 조금 더 수월해질 터.
케일은 교황 손에 들린 영상저장구에 눈길을 최대한 안 주려고 노력하며 입을 열었다.
“…이걸 보고 소문내십시오.”
교황은 이어질 케일의 말을 기다렸다.
“정화의 힘이 존재한다는 것을요. 이단에서 벗어나셔야죠.”
교황의 눈이 커졌다.
“곧 멸망단에서 연락이 올 겁니다.”
용병 제로를 통해 멸망단과의 연계도 생겼다.
그 단체에서 케일은 놀라운 정보를 하나 듣게 되었다.
‘멸망단에는 이미 자신의 터전이 멸망해버린 자들이 대부분이다.’
나라가 오염되었으나, 갈 곳이 없는 자들.
그리고 숲에서 살던 엘프와 수많은 광산 근처에 살던 드워프, 자연 속에 머물던 많은 부족과 수인족들.
‘우리는 지난 10여 년간, 서로 간의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연락선을 구축했다.’
제로는 과거가 사라진 10여 년 동안, 연락선을 구축했다. 샤올렌의 모든 곳에.
그리고 그 모든 곳에, 심지어 오염된 땅에서조차도 살아가는 생명들이 있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이 멸망단에 모여들었다.
‘우리의 목표는 단 하나다.’
케일은 제로의 눈빛을 떠올렸다.
‘지금 이 죽어가는 땅을 멸망시키고, 새로운 세상을 여는 것.’
제로의 눈은 충혈이 되어 벌겋게 물들었음에도,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아니, 번들거리고 있었다.
‘나는 새로운 땅을 보았다.’
그리고 히죽 웃어 보였다.
“으음.”
케일은 왠지 제로의 그 두 눈을 감겨주고 싶었다. 하지만 간단히 생각했다.
‘어차피 일 다 끝내고 뜨면 다시는 만날 일도 없는 사람들이야.’
샤올렌이라는 세계 역시도.
그렇기에 케일은 제 손으로 그 영상저장구를 넘겼다.
붉은 벼락의 폭발과 하얀 사막이 담긴, 가면을 썼으나 제 모습이 담긴 영상을.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교황의 눈동자에 결연한 다짐이 담겼다.
케일은 괜히 그 눈빛이 보기 싫어 시선을 돌렸다가 다시 최한과 눈이 마주쳤다. 최한은 걱정이 한가득한 눈빛으로 케일을 바라봤다.
케일은 그 시선도 영 떨떠름했으나, 최한의 뒤에 고개만 내민 채 입꼬리 양 끝을 한껏 올린 수이 칸을 볼 수 있었다.
묘하게 흥미로워하는 눈빛에, 케일은 비록 팀장이지만 그 머리에 꿀밤을 주고 싶었다.
“일단 바로 움직이죠.”
케일의 말에 교황은 손짓했다.
순식간에 텔레포트 진 근처에 모여있던 교단 사람들이 흩어졌다.
‘확실히 교황이 일을 잘해.’
케일은 일행과 걸음을 옮기며 다가오는 두 명에게 손을 들어 올려 간단히 인사를 보냈다.
이곳에 함께 왔던 다크엘프 숀과 프레도 공작이 보낸 뱀파이어 제스나였다.
이 두 명도 이번 일에 함께할 작정이었다.
그 순간, 케일은 온의 중얼거림을 들었다. 저도 모르게 흠칫 어깨를 떨었다.
“…여기는 다른 세계니까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과연 그럴까?”
케일은 처음으로 온의 말을 흘려들었다.
물론 그렇게 하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이상하게 온의 말은 늘 머릿속 한편에 새겨졌다.
“…….”
수이 칸이 온의 곁에 서서 함께 걸음을 옮기며 케일에게 씨익 웃어 보였다.
뭔가 아주 어려 보이는 개구쟁이 같은 미소였다.
케일은 팀장을 외면했다.
대신 케일은 다크엘프 숀과 뱀파이어 제스나의 당황한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숀은 흔들리는 동공으로 손에 들린 것을 보며 케일을 바라봤다.
“…이걸 입으라고요?”
끄덕.
케일의 고개가 위아래로 움직였다. 숀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수이 칸은 싱글벙글 웃으며 재밌다는 듯해 보였다. 그리고 최한은 어딘가 체념한 얼굴로 손에 들린 옷을 입고 복면을 썼다.
숀에게 주어진 것과 같았다.
“아공간에 이걸 담아두기 잘했네.”
케일은 뿌듯하다는 얼굴로 복면을 썼다. 검은 복면에 검은 옷.
특히 상의는 뒤집힌 채였다.
“…이걸 또…….”
최한이 한숨과 함께 중얼거렸으나, 그의 손은 기계적으로 움직였다. 물론 상의에 새겨진 조금은 덜 조잡한 형태의 붉은 별 다섯 개와 하얀 별 하나를 본 순간 잠시 흠칫했으나, 아무렇지도 않게 그 옷을 뒤집었다.
그러자, 옷에 새겨진 별 자수들의 뒷면이 나타나며 제대로 형상을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붉은 실들이 이리저리 뒤섞인 것이 오히려 조금 불길한 무언가를 그린 듯한 형상이 되었다.
“꼭 심장 같은데.”
온이 뒤집힌 상의 자수 뒷면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럼 다행이고.”
케일은 이 옷을 이렇게 입으니, 쉬이 ‘암’ 옷을 재활용했다는 생각을 하며 조금 뿌듯함을 느꼈다.
-인간아, 뭔가 뿌듯하나? 왜?
라온의 호기심 어린 목소리는 무시했다.
-얼른 부수러 가자!
케일은 숀과 제스나를 바라봤다.
제스나는 무뚝뚝한 얼굴로 지도를 내밀었고, 숀은 입을 열었다.
“순찰 경로는 모두 기록해놨습니다.”
두 사람은 이곳에 담아 제국 수도 지도에 여러 가지 정보를 기록해두었다. 더불어 수도 곳곳 주요 건물과 귀족가의 동태를 살폈다.
“아페 님.”
묘하게 볼이 붉게 물든 얼굴로 검은 복면을 쓰던 아페는 케일의 부름에 그를 바라봤다. 케일은 저 홍조가 신경 쓰였으나, 입을 열었다.
“저택 안은 아페 님께 맡기겠습니다.”
끄덕.
아페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덧붙였다.
“나 가주 비밀 금고 위치 안다.”
일행은 검은 복면에 가려졌지만, 케일이 그 말을 듣는 순간 아주 환하게 웃었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숀과 제스나를 빼고.
“그럼 가죠.”
케일이 말한 순간, 수이 칸이 앞으로 나섰다. 그 뒤를 온과 홍이 따랐다.
“최단 경로는 우리가 안내하지.”
냐아아옹!
냐아옹!
* * *
그 시각, 9구역 영주성에 도착한 화이언스 가주는 손에 들린 종이를 멍하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1황자님, 4황자님, 내 손녀를 포함해서…….”
정말로.
“다 죽었다고?”
[1황자 본인 포함 조력자 모두 사망] [4황자 본인 포함 조력자 모두 사망] [2황녀 중태, 조력자 모두 사망] [헤니 위시로프 조력자 2명 사망] [……]“그것도, 시신도 찾지 못했다?”
그의 시선이 헬슨 후작에게로 향했다.
“후작, 이것도 모두 참이오?”
헬슨 후작은 커튼을 쳤다.
촤라락.
방벽 너머. 검게 오염된 땅을 뒤덮은 검은 안개 너머로 쾌청한 하늘이 희미하게 보였다.
헬슨은 그곳에 펼쳐질 하얀 사막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공작님. 가보시면 알 겁니다.”
주르륵.
후작은 한 줄기 눈물을 흘렸다. 그간 뒤에서 변경백들과 모의하며 황궁과 화이언스 가주 뒤통수를 치려던 후작에게 이 정도 눈물쯤이야, 하얀 사막이 만들어지던 광경을 떠올리면 쉬이 흘릴 수 있는 눈물이었다.
그때만 떠올리면 후작은 벅차올랐다.
늘 서부의 가장 최전선에서만 머물던 후작, 이 땅을 어떻게든 지켜내려던 자에게 그 광경은 눈물이 안 날 수가 없었으니까.
“…저는 실력이 부족해 그곳에서 무엇이 일어났는지 감히 짐작을 못 하겠습니다.”
헬슨 후작은 지금 솔직한 심정을 말하고 있었다.
“모시겠습니다. 공작님이 오시길 기다렸습니다. 얼른 함께 가서 그 현장을 보고 싶었습니다.”
이 또한 진심이었다.
하얀 사막에 가서 당장 그 하얀 모래를 움켜쥐고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알겠습니다.”
화이언스 가주는 조용히 눈물을 흘리기에 더 진정성이 넘쳐 보이는 헬슨 후작을 의심의 눈초리로 보며 그의 어깨 너머 창밖을 바라봤다.
“그곳으로 가지요.”
그는 생각했다.
예정보다 이곳에 더 오래 머물며, 답을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고.
화이언스 가주의 눈동자에 검은 기운이 불길하게 피어올랐다.
* * *
그 시각.
콰아아아앙—!
“무, 무슨 일이야?”
“방어막에 무슨 일 생긴 거야?”
화이언스 저택에 머물던 이들이 놀라서 위를 올려다봤다.
저택을 감싼 방어막으로 시선이 향했다.
“어?”
하늘은 푸르렀으며, 방어막은 멀쩡했다.
“그럼 조금 전에 들린 소리는?”
누군가 중얼거린 순간.
콰아아앙—-!
폭발음과 함께 땅이 들썩였다.
“아래다!”
사람들의 시선이 땅으로 향한 순간, 화이언스 저택 앞에 자리한 아름다운 정원이 들썩였다.
정원 중앙에 있던 거대하고 기품이 넘치는 모양새를 가진 분수.
콰아아앙—!
그것이 부서졌다.
그리고 그곳에서부터 검은 복면과 검은 옷으로 무장을 한 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뒤이어, 폭발음이 또 이어졌다.
콰아앙! 콰앙! 콰아아앙!
정원이 부서지고 있었다.
-인간아, 저택 지붕 날릴까?
라온의 물음에 케일이 답하기도 전. 그는 최한의 검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서걱.
콰아아아앙!
화이언스 저택을 둘러싼 담장이 길게 가로로 잘려나가며 부서졌다.
정문 역시도.
케일은 잘했냐는 듯 쳐다보는 최한을 잠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신호를 일행들은 찰떡같이 잘 알아들었다.
라온이 외쳤다.
-부순다!
냐아아옹!
냐아옹!
화이언스 가주가 하얀 사막으로 향하려던 그 시각.
케일은 지하로 화이언스 저택까지 가서 그곳을 부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