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803
2부 45화
-케일.
짱돌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케일을 불렀다.
“인간아! 금고에 비밀을 새겼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금고 그 자체가 보물이었다니!”
“나는 몰랐다.”
라온이 신난 목소리로, 드래곤 아페가 주눅이 든 목소리로 차례대로 말했지만, 케일은 들리지 않았다.
“…제 오러를 튕겨내는 금고여서 이상했는데, 비상한 물건이었군요.”
최한은 자신의 오러와 드래곤의 마법을 튕겨낸 금고가 예사 물건이 아니라 생각했다. 솔직히 말하면 에르하벤도 금고의 저 문자를 알아내지 못했으리라.
“하지만 가주는 벼락에 금고가 녹을 줄은 생각도 못 했을 것 같은데?”
수이 칸이 꺼낸 말에 최한은 침묵으로 긍정을 표했다. 화이언스 가주는 금고가 훔쳐져도 금고에 새겨진 내용이 읽히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확률이 높다.
그때, 가만히 있던 케일이 손을 들어 올렸다.
“다들 그대로 있어.”
그러고는 그의 손이 허공을 가로질렀다.
파지직. 파직!
화려한 적금빛이 허공을 가로질렀고, 공간 전체에 퍼졌다.
라온이 만든 검은 실드에만 닿지 않았다.
치이이익- 치이익-
금고가 박혀 있던 벽이 녹아내렸다.
파직. 파지직!
그리고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며 정사각형 형태의 검은 금고 표면이 녹아내려 갔다.
죽은 마나 연기가 공기 중에 퍼졌지만, 공간을 채운 적금빛에 닿는 순간 소멸했다.
스스스–
아니, 회색빛 재가 바닥에 떨어졌다.
벌컥!
“무슨 일이-!”
정화의 불 교단의 수도 비밀 은신처.
갑작스러운 신의 힘에 교황이 놀라서 방으로 들어섰다가 이 광경을 보고 잠시 비틀거렸다. 그녀는 열었던 문고리를 움켜잡은 채 문에 기댔다.
“아…….”
그녀의 눈동자에, 그녀를 뒤따라왔던 더스트 노신관을 비롯한 교단 핵심 인사들의 눈동자에 기이한 열기가 퍼졌으나, 케일은 몰랐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말했다.
“교황님, 나중에 사정을 설명할 테니, 지금은 따로 시간을 주십시오.”
“…그러십시오, 정화자시여.”
한층 경건한 음성이 교황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다크엘프 숀과 온이 그 모습을 보며 살짝 흠칫했으나, 교황은 조용히 문을 닫고 사라졌다.
피식.
검은 매가 바람 빠지는 웃음을 흘리고는 검은 연기마저 사라진 방안을 둘러보고는 라온에게 눈짓했다.
라온은 실드를 해제하였고, 수이 칸은 케일의 곁으로 다가갔다.
정확히 말하면 검은 금고였던 하얀 금고로 다가갔다.
하얗게 변한 금고는 겉면에 붉은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팀장.”
“그래.”
“절대신이라는 거, 압니까?”
수이 칸은 케일의 눈동자를 살폈다. 기이한 열기로 가득한 눈동자. 지금 김록수는 저 금고의 문자를 기록하고 있다.
“절대신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요?”
“그래. 표면적으로 신 사이에는 상하 관계가 존재하지 않아. 하지만 힘의 격차가 존재하지.”
“더.”
수이 칸은 더 많은 설명을 해달라고, 그것을 아주 짧고 거침없이 요구하는 케일을 보며 한 번 더 얕은 웃음을 흘렸다.
더 설명 못 할 것도 없다.
매의 붉은 눈동자는 어느새 가라앉아 있었다.
“또한 오랜 시간 후계자를 정하지도 않고, 자리를 넘기지도 않고 신의 자리를 유지해온 신들도 있지. 그들은 고대신이라고도 불리며 그 힘이 상당해.”
하지만.
“그러나 절대신은 없다. 죽음의 신, 그 녀석이 늘 말했지. 절대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케일은 눈을 감았다. 머릿속에 금고에 새겨진 글자들이 떠올랐다.
그는 문득 봉인된 신을 가뒀던 신전에서 치른 환상 시험을 떠올렸다.
그 시험 당시, 그는 어린 시절 김록수로 돌아가 최정건을 만났었다.
최한의 조상이자, ‘영웅의 탄생’ 저자이자, 단생자로서 죽음의 신과 함께 일하던 자.
그자는 케일에게 말했었다.
‘오래전, 사냥꾼의 중심에 ‘업의 굴레’라고 불리는 가문들이 있었다.’
본래 사냥꾼 가문은 7곳이었다.
그중에 붉은 피 가문이 멸문, 하얀 피 가문이 배신으로 빠진 상태였다. 최정건은 케일에게 붉은 피 가문을 찾으라고 했다.
‘현재는 다섯 가문으로, 그 다섯 가문을 이끄는 이가 ‘가주’이고 그들이 대부분의 사냥 계획을 수립한다고 알고 있다.’
‘선배의 목표는 가주겠군요?’
‘아니.’
케일은 환상 속 최정건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왕의 후계. 다섯 가주는 왕의 후계를 보호하며 후계가 성장하여 이룰 대계를 기다리고 있지.’
‘왕의 후계로 이루려는 대계가 무엇입니까?’
‘아직 불명확해.’
케일은 최정건이 아닌, 이제는 어떻게 되어버렸을지 알 수 없는 봉인된 신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절망의 신이었던 봉인된 신.
케일은 그에게 물었었다.
‘하얀 별은 결국 사냥꾼이 너를 위해 준비한 제물이군.’
봉인된 신은 답했다.
‘나에게 줄 제물이었지만, 나를 위해서 한 행동은 아닐 것 같군.’
사냥꾼으로서 신이 되었던 봉인된 신.
그를 다시 신으로 만들려던 사냥꾼들.
왕의 후계로 이룰 대계.
“…그리고 절대신이라.”
케일은 적어도 사냥꾼 가문들이 지금 목표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절대신을 만든다.’
물론 그 안에 든 이유는 알 수 없다.
왜 절대신을 원하는지, 절대신으로 무엇을 하려는지.
그것은 아직 알 수 없었다.
‘굳이 알 필요도 없고.’
구린 짓을 하는 놈들 속내를 알아서 뭐 하겠어?
‘신 하나 만든다고, 세계를 바치려는 놈들 생각 따위. 듣고 싶지도 않군.’
케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최한아, 인간 화난 것 같지 않나?
지켜보던 라온이 최한의 머릿속에만 들리게 은밀히 말했다.
최한은 입을 다문 채, 고개만 끄덕였다. 그는 케일의 저 특유의 미소가 짜증이 많이 났을 때 짓는 미소인 것을 알고 있었다.
케일은 글자를 다시금 읽어내려 갔다.
[각 가문의 목표 차원 좌표]그 좌표에 새겨진 행성 이름을 살피던 수이 칸의 담담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건 나도 처음 보는 정보군.”
목표 차원의 수가 십여 개를 훌쩍 넘었다.
그 스케일에 놀라지 않고 있던 수이 칸의 입꼬리가 비틀어졌다.
“지구라는 이름을 가진 전 차원은 목표 차원이었네. 1, 2, 3 지구가 다 있군.”
케일이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팀장, 우리가 겪은 대격변의 이유에 사냥꾼이 뒷배로 있을 확률은 얼마라고 생각합니까?”
“꽤 높지.”
다시 케일의 입이 열렸다.
“팀장.”
“어.”
“사냥꾼 가문, 검은 피 가문 말고 네 개 가문의 피 색은 뭡니까?”
수이 칸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곳에 있는 일행들은 들어도 될 터.
이들을 믿어서가 아니었다.
몇몇은 아직 당연히 믿지 않았다.
‘감당 가능하군.’
다만 믿지 못하는 이들의 입을 감당할 자신이 있을 뿐. 드래곤 아페도, 본신의 힘을 끌어올려 전력을 다하면 그 입을 다물게 할 수 있었다.
“푸른 피, 보라 피, 오색 피, 투명 피.”
케일의 표정이 떨떠름해졌다.
“…오색 피랑 투명 피는 뭡니까?”
“오색 피는 피가 다섯 가지 색깔이라는 뜻이겠지. 투명 피는 투명하다는 소리겠고.”
“…그게 답니까?”
묘하게 띠꺼운 태도를 보이는 케일에게 수이 칸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피 색깔을 본 적은 없어서.”
“아, 네.”
라온이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투명 피는 뭔가!? 나 왠지 궁금하다!”
“흐음.”
케일은 라온의 말을 흘려들으며 목표 차원을 살폈다. 당연히 이 ‘샤올렌’도 있었다.
“이 차원들을 살피다 보면, 다섯 가문을 하나씩 건드려 볼 수 있겠네.”
수이 칸의 말에 케일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섯 가문 아닙니다. 네 가문이죠. 검은 피 가문은 이번에 부수고 갈 거니까.”
단정하는 말에 수이 칸은 딱히 반박하지도 긍정하지도 않았다. 그냥 그러려니 할 뿐.
가만히 기웃거리며 금고를 훔쳐보던 드래곤 아페의 볼이 발그레 물들었고, 온이 이를 확인하고는 살짝 고개를 가로저었을 뿐.
드래곤 아페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생각했다.
‘보니까, 차원을 넘나든다면. 곧 여기도 떠날 건데. 저기에 있는 차원들로 다닌다는 거지?’
아페가 금고에 새겨진 공용어를 열심히 외웠다.
“팀장, 내가 사는 차원의 이름이 뭡니까?”
“무명 1”
“……?”
케일의 시선이 팀장에게로 향했다.
“이름이 없다고요?”
“어. 없어.”
“왜요?”
“몰라?”
팀장의 무책임한 답변에 케일의 미간이 일그러졌으나, 팀장은 정말이라는 듯 바로 말을 이어붙였다.
김록수의 짜증을 감당하기 싫으니, 얼른 말이 튀어나왔다.
“모든 차원이 이름을 가지는 건 아냐. 그리고 이름이 있고 없고의 이유는 나는 정말 몰라.”
“…일단 알겠습니다.”
넘어가 주는 케일의 태도에 수이 칸이 씨익 미소를 지어 보였다. 케일은 그게 능글맞아 보여 영 찝찝했지만, 거짓말을 할 인간은 아닌지라 넘어갔다.
대신 그의 입꼬리가 묘하게 올라가며 비틀어졌다.
“…없네.”
목표 차원에 케일이 사는, 로운 왕국이 존재하는 차원의 이름은 없었다.
‘이상하네.’
케일은 알 수 없는 꺼림칙함을 느꼈다.
이런 감각을 무시하면, 꼭 뭔가 터졌는데.
‘왜 목표 차원이 아닌데, 내가 사는 데서 온갖 일이 다 벌어진 것이지?’
고대의 하얀 별, 하얀 별, 봉인된 신, 왕궁 폭파, 국왕 실종 등등. 사냥꾼과 연계된 온갖 일이 벌어지고 있건만, 목표 차원은 아니었다.
‘음. 일단 목표 차원이 아닌 점은 다행인데.’
적어도 ‘절대신’이라는 것을 위해 사냥꾼이 케일이 사는 세계를 멸망시키지는 않을 것이란 소리니까.
“어찌 됐든.”
케일은 금고를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꽤 유용한 정보네.”
이래저래 꽤 유용한 정보가 많았다. 그래서 확신했다.
“가주가 곧바로 수도로 돌아오겠는데.”
9구역보다 이 금고가 가주에게는 더 큰 문제였다.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고, 케일은 저를 보는 일행의 눈빛에 두 글자로 답했다.
“튀죠.”
한 대 쳤으니, 이제 빠질 차례다.
케일은 교황에게 몇 가지만 짧게 부탁을 가장한 지시를 내렸고, 일행은 수도를 떠났다.
그들은 9구역 내에 위치한 작고 소박한 저택으로 돌아왔다.
그 시각.
“가주님.”
가주 레독 화이언스는 다가오는 집사를 보며 손을 움직였다.
촤악!
“커억!”
집사의 심장이 꿰뚫렸다. 가주는 시선 하나 주지 않은 채, 잘려나간 벽과 뻥 뚫린 천장을 바라봤다.
“적금빛 벼락이라고?”
그의 물음에 숨죽인 채 집사를 바라보던 기사단장은 무릎을 꿇으며 답했다.
“네, 가주님. 적금빛 벼락을 사용하는 자로, 흑마법사의 죽은 마나를 모두 소멸시켰습니다!”
가주는 눈을 감았다.
“…죽은 마나를 소멸시켰다라.”
기사단장은 눈치를 살피며 말을 이었다.
“모두 상의 가슴께에 붉은 형상을 한 문양을 새긴 이들로, 그 문양의 형태가 실로 괴이하였습니다.”
“붉은색 문양이라. 정화의 불 교단 문양은 아니었고?”
“제가 기억하는 문양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까득.
무릎을 꿇고 있던 기사단장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뚜욱. 뚝.
핏방울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기사단장은 조금 전 가주의 꽉 쥔 주먹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보았다.
“현재 대륙에 퍼진 1급 사냥꾼을 모두 모이라고 했다지?”
“커헉, 컥.”
“네, 가주님.”
기사는 죽어가는 집사의 숨소리를 들으며 황급히 답했다.
레독 화이언스는 눈을 떴다. 그는 제 손바닥에 흐르는 피를 보며 입을 열었다.
“시간을 조금 더 앞당긴다.”
“…그럼-”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는 기사를 보지 않은 채 가주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마지막 시험. 제물의 숙주가 정해진 순간, 이 세계를 멸망시킨다.”
* * *
“시험을 재개한다고요?”
“그렇습니다, 정화자시여. 시험은 속행할 것 같습니다.”
케일은 헬슨 후작의 더 예의 바르다 못해 심하게 과한 저자세를 애써 외면했다.
동시에 입가에 묘한 미소가 걸렸다.
-인간아, 왜 그러나?
지금 수도는 화이언스 가문에 일어난 일로 온갖 말이 다 나돈다고 했다.
거기다가 정화의 불 교단을 통해 여러 후계자의 죽음도 알려진 상태로, 혼돈이라는 폭풍에 휩싸인 상태였다.
‘그런 와중에, 시험은 재개한다?’
케일은 방 한구석에 놓인 금고를 바라봤다.
케일은 무심코 금고에서 시선을 돌렸다가 한 사람과 시선이 마주쳤다. 보랏빛 눈동자. 메리가 담백하게 말했다.
“시험에서 일등 하겠습니다. 숙주가 되기 전에 가주의 뒤통수를 치겠습니다.”
라온이 덧붙였다.
“인간아, 우리 이제 황궁 털러 가나? 황제는 내버려 두나?”
드래곤 아페가 소심한 목소리로 나직이 우물쭈물 물었다.
“…더 안 부숴?”
가만히 있던 헬슨 후작이 헛기침을 하며 한마디를 얹었다.
“…이 모든 세상을 하얗게 정화하면 어떻겠습니까. 정화자시여.”
케일은 메리의 어깨 너머 웃고 있는 수이 칸과 자신을 안쓰러이 바라보는 에르하벤, 비장하게 고개를 숙여보이는 최한을 볼 수 있었다.
케일은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일단, 수도에 가자.”
2, 3차 시험은 변경되었다.
모두 수도에서 치러진다고 했다.
대충 방향을 잡은 케일은 문득 떠오른 것을 입밖에 내뱉었다.
“…그런데 보상으로 마정석이든 뭐든 광산 몇 개는 너무 적지 않나? 본인 목숨이 달렸는데?”
케일은 품에서 죽음의 신이 건넨 신물인 거울을 지긋이 바라봤다. 이 너머에 샤올렌이 있기라도 하다는 듯.
부르르-
“응? 인간아, 거울이 떤다!”
씨익.
케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