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805
2부 47화
“기한은 일주일.”
두 번째 시험 술래잡기는 일주일 동안 이루어진다.
“일주일 뒤, 중앙 광장 공개 처형 전까지 목표물을 잡아 오시면 됩니다. 그리고 이 시험 내용은 지금 이후 즉시 제국 전역에 알려질 예정이며, 공개 처형은 입장 제한 없이 이루어집니다.”
용병 제로는 헛웃음과 함께 중얼거렸다.
“미쳤군.”
이 시험은 미쳤다.
“…공개 처형이라니.”
2황녀 올리비아의 눈가가 일그러졌다.
케일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무겁게 가라앉은 공기 사이로 기이한 열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후보자와 조력자들은 저마다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굳은 표정을 풀지 못했다.
오로지 시종장만이 웃었다.
“시험은 지금부터 1시간 후 시작합니다. 부디 순위권에 드시길.”
시종장은 이만 해산을 뜻하는 말을 내뱉었고, 그는 입을 닫았다.
대화를 하는 이들은 없었다. 다들 저마다 눈치를 보다가 누군가 먼저 자리를 뜨기 시작하자 그 뒤를 따라 하나둘 서둘러 각자의 별궁으로 향했다.
-인간아, 메리 간다!
제일 먼저 이곳을 떠난 이는 메리, 헤니 위시로프였다. 그 뒤를 에르하벤이 함께하고 있었다.
-케일, 대화가 필요할 것 같구나.
머릿속에 들리는 고룡의 목소리에 케일은 티 나지 않게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용병 제로도 사람들 속에 섞여 자리를 떴다.
케일은 그 와중에 보았다. 시종장의 시선이 메리와 제로에게로 향하는 것을.
‘…의심을 놓지 않았어.’
9구역 그 일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인 제로와 메리. 두 사람을 향해 황궁은 아직 의심 중이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당연히.
“황녀님.”
올리비아도 있었다. 시종장은 홀로 우두커니 서 있는 2황녀에게 말을 건넸다.
“어서 가셔야지요.”
“…시종장.”
“네.”
시종장을 나직이 불렀던 올리비아가 살짝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공개 처형이라니, 그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그녀의 눈동자에 작은 불길이 일렁였다.
“황녀님, 명단에 있는 단체들은 원래 발견 즉시 즉결 처형 가능 대상들입니다.”
“…누구의 생각이지?”
시종장은 무슨 말을 하냐는 듯 올리비아를 바라봤다.
“당연히 황제 폐하의 뜻이 담긴 시험이지요. 안 그렇겠습니까?”
올리비아는 시종장을 가만히 응시하다가 등을 돌렸다. 그런 그녀에게로 시종장은 입을 열었다.
“곁에 두신 신관님을 조력자로 두시면 안 되는 것 아시죠?”
시종장은 눈 아래를 천으로 가린 신관과 눈이 마주쳤다. 신관은 꽤나 기품있으면서도 밝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며 시선을 피했다.
올리비아는 뒤돌아보지 않은 채 답했다. 그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 정도는 알아.”
그리고 망설임 없이 자리를 떠나 별궁으로 향했다.
케일은 그녀의 걸음에 맞춰 뒤따랐다.
올리비아는 별궁으로 돌아오는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심지어 별궁에 들어서도 입을 꾹 다물었다. 그 탓에 다가오려던 시종들이 황급히 시선을 비켜섰다.
올리비아의 표정은 그만큼 굳어 있었다.
덜컥.
침실로 들어선 올리비아는 창가로 향했다.
촤르륵.
커튼을 걷었다.
달칵.
뒤따라 들어선 케일이 문을 닫았고, 라온이 케일의 머릿속에 말했다.
-방음 마법 친다!
그 순간 올리비아가 입을 열었다.
“방음했나요?”
“네. 황녀님.”
그녀는 커튼을 도로 쳤다. 별들의 정원. 이곳에 다시 활력이 돌았다.
그 사실이 올리비아는 탐탁지 않았다. 그녀는 커튼 천을 뚫어질 듯 보며 입을 열었다.
“이번 시험은 말도 안 돼요.”
하.
짧은 웃음이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명단에 있는 자들을 찾아오는 게 결단이라고?”
그녀는 몸을 돌렸다. 케일과 시선이 마주쳤고, 그녀는 이어 말했다. 절로 목소리가 커졌다.
“분명 광기의 현장이 될 거예요!”
현재 수도는, 제국은 불안함과 혼란이 감돌고 있었다.
유력 후계자와 인재들의 죽음, 9구역을 노리는 위협, 화이언스 저택 침략. 이런 이유들로, 사람들은 저마다 불안감을 품고 지냈다.
물론 그 불안감은 아무렇지도 않게 2차 시험을 시행하는 황궁의 태도로 인해 어느 정도 진정되기는 했다.
“이런 때에 공개 처형이라니! 모든 화살이 다 그리로 몰릴 게 뻔하다고요!”
올리비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시험 내용을 공개하면, 명단도 공개가 된다는 건데. 사람들은 이 모든 일의 배후로 그 명단에 있는 자들이 범인이라고 은연중에 생각하게 될 거예요.”
거기다가, 문제가 더 있었다.
“일주일이라니. 그 정도 시간으로 이 모든 일을 치른다고? 말이 안 돼요.”
올리비아는 한 손으로 눈을 가렸다.
만약 명단에 있는 단체의 소속이라고 의심되는 이가 있어도 그가 그 소속인지 확신하려면 조사를 해야 한다. 더불어 그 소속으로서 한 일에 따른 경중이 있는 법이고.
‘무엇보다도 이 명단에 있는 단체들에게 죄가 있나?’
그녀는 소름이 돋았다.
지금껏 그녀는 즉결 처형 대상자들에 대해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들이 왜 죽어야 하지?’
죽을 이유가 없다.
죽으려면, 이 황궁과 화이언스 가문이 죽어야 한다.
황가의 일원으로서 그리 생각하는 올리비아였다.
“고작 일주일로, 모든 걸 처리하겠다는 건. 이건 그냥, 잡아 오는 대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다 죽이겠다는 소리잖아요…….”
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힘을 잃어갔다.
“…황제 자리를 원하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순위에 들기 위해 앞뒤 가리지 않고 사람들을 잡아 올 수도 있어요. 그 안에 무고한 자들이 많을 수도 있고, 아니, 그 명단 단체라고 해서 죄를 지었다는 확신도 없는데-”
목소리가 점점 떨렸다.
환멸이 난다는 듯한 음성이었다. 눈가를 가린 올리비아의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그녀는 절로 상상되었다.
떠올리고 싶지 않아도 자꾸만 떠올랐다.
중앙 광장.
그 넓은 공간에 만들어진 공개 처형장을 둘러싼 사람들. 그 사람들이 공개 처형장으로 잡혀 온 사람들을 보며 어서 죽이라고 외치는 광경이.
그리고 단상 위에서 그들을 죽이라 명하는 화이언스 가주의 모습, 아니, 아버지인 황제의 모습까지 그려졌다.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자신의 모습까지.
“…정화자여.”
그녀는 손을 내렸다.
눈동자에 피어올랐던 작은 열기가 커져 있었다. 지친 목소리와 달리 눈동자는 맹렬히 타오르고 있었다.
“나는 이 시험이 치러지는 꼴을 절대 볼 수 없어.”
그녀는 병상에 있는 동안 깨달았다.
지금껏 황제를 만들기 위해 치러진 이 시험이 얼마나 이상한지.
‘300여 년 동안, 이 시험으로 죽은 이들이 수없이 많았다.’
황위 후보자가 죽는다는 것은 그들을 따르는 이들도 죽는다는 것을 뜻했다.
“…그런데 그 과정이 축제였다니.”
멸망해가는, 오염되어가는 세계 속에서 사람들은 이 시험을 축제라 여기며 즐겼다.
그리고 그 시험에 기꺼이 뛰어들어 최고가 되길 원하는 자들이 늘 존재했다.
그녀는 생각했다.
‘이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이런 시험에 뛰어들 인재들이 이 세계를 지키기 위해 힘을 써도 모자랄 판에?
“…정화자여.”
올리비아의 목소리가 힘없이 떨렸다.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녀는 말없이 서 있는 정화자를 바라봤다. 백발에 초록 눈동자. 그녀가 알던 모습과 달랐지만, 그녀는 그가 어둠 속에서 피워 올렸던 불꽃을 기억하고 있었다.
은은히 빛나는 빛과 달랐다.
모든 것을 잡아먹을 듯한 기세로, 어둠을 잡아먹으며 저 스스로 빛나던 그 붉은빛.
홀로 빛나다 못해 주변인들에게 그 빛을 함께 느끼게 해주었던 이에게 올리비아는 답을 묻고 싶었다.
스윽.
그 순간, 정화자는 눈 아래를 가리던 천을 풀었다.
“……!”
올리비아는 그의 입이 웃고 있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기묘한 느낌에 오싹한 기분을 느꼈다.
웃고 있는 눈.
저 초록빛 눈동자가 순간 붉게 보였다.
그가 일으켰던 불처럼.
“황녀님.”
정화자는 차분하게 말했다.
그 목소리는 떨리기는커녕, 평소와 다름없었다.
마치, 식사를 하러 가자는 듯 그는 물었다.
“어떻게 하고 싶으신가요?”
그는 올리비아에게 물었다.
이 순간, 올리비아는 솔직하게, 그리고 신중하게 답해야 하는 때임을 깨달았다.
그렇기에 그녀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이 모든 것을 그만 끝내고 싶어요.”
그리고 이어 말했다.
“그리고 새로이 바로 세우고 싶습니다.”
케일은 작지만 떨림 없는 목소리를 들으며 잠시 생각했다.
-인간아, 굳이 3차 시험까지 갈 필요가 있나?
라온이 머릿속으로 의문을 던졌다.
제물.
숙주.
업.
몇 가지 단어가 케일의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의 고민은 1분을 채 넘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 정도면 충분했다.
한발 앞선 것은 저쪽이 아니라, 아직 케일이었으니까.
그의 시선이 올리비아에게로 다시 향했다.
“황녀님.”
너무나도 담백하고 담담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올리비아는 자신을 부르는 저 음성에 심장이 쿵쿵 뛰었다.
긴장감이 치솟아 올랐다.
‘정화자는 잠깐 왔다가 떠나가는 이다.’
그에게 이렇게 기대해도 될까?
하지만 떠나갈 이라서 기댈 수 있기도 했다. 손을 잡을 수도 있다.
‘손을 잡는다고 하기엔 내가 가진 것이 보잘것없지만.’
하지만 적어도 정화자는 떠날 존재이니, 이 땅을 지배하려고 들지는 않을 터.
솔직히 말하면, 올리비아는 화이언스나 황가보다 정화자의 불길이 더 경이롭고 무서웠다. 신을 떠올리게 했으니까.
그녀는 정화자를 바라봤다.
저 녹빛 눈동자를 피하지 않으리라.
그녀는 케일의 입가에 부드럽게 맺히는 미소를 볼 수 있었다. 만족의 미소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 정화자는 말했다.
“그렇게 하죠.”
올리비아의 뜻대로 하자.
“3차 시험은 없습니다.”
그 뒤 이어진 말에 올리비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리고 일주일 뒤. 엎죠.”
엎자.
그 결정을 내린 순간, 케일은 즉각 명령을 내렸다.
* * *
“교황님, 정말입니까?”
“네. 정화자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교황은 자신과 함께 있는 정화의 불 교단 핵심 인사들에게 담담하게 정화자의 뜻을 전했다.
“일주일 뒤, 우리는 모두 공개 처형장으로 잡혀갑니다.”
교황의 시선이 한쪽에 고고히 앉아있는 존재에게로 향했다. 그저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알 수 없는 기품이 느껴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은은한 드래곤 피어이리라.
위대한 존재는 9구역을 다녀온 후부터 심기가 좋지 않았다.
“드래곤께서 우리를 이끄실 겁니다.”
에르하벤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그는 케일의 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에르하벤 님, 공개 처형장에는 화이언스 가주와 황제가 모두 온다고 하더군요. 저쪽이 강수를 두었으니, 우리도 강수를 두어야죠. 안 그렇습니까?’
에르하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는 케일의 말을 제대로 해석했다.
‘저쪽이 강수라면, 이쪽은 그냥 판을 엎자는 거지.’
그는 비장한 분위기가 흐르는 정화의 불 교단을 보며 눈을 감았다.
한편, 용병 제로는 자신의 별궁을 찾아온 검은 매를 보며 한껏 입꼬리를 올렸다.
“멸망단을 모두 공개 처형장으로 끌어들여라?”
“그래.”
“모두 잡혀서 말이지?”
“방법은 알아서 해.”
검은 매의 붉은 눈동자는 제로를 담았다.
수이 칸은 제로의 눈에 맺힌 광기를 읽었다. 기이한 열기가 그를 뒤덮고 있었다. 온몸이 근질거린다는 듯, 어서 그 순간이 오길 기다린다는 듯, 그는 입꼬리만 올렸다.
웃지는 않았다.
그것이 기괴했다.
“좋아. 정화자께서 내리신 명이면 따라야지.”
제로는 검은 매를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가서 전해.”
멸망단을 끌어들이라는 말만 전했을 뿐인데, 제로는 그 안에 담긴 속뜻을 짐작했다.
“우리가 드러나는 순간은 멸망의 순간이라고.”
제로는 케일을 정화자라고 추켜세우며, 높이는 말을 했지만. 그 광기에 숨기지 못한 강렬한 열망은 케일에게 경고하고 있었다.
제대로 하라고.
검은 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재밌구나.”
검은 매는 창틀에 올라선 채, 그 붉은 눈을 휘었다.
“제로.”
소년의 목소리였지만, 묘하게 그 목소리에는 연륜이 느껴졌다.
검은 매는 광기를 드러내는 남자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때를 정하는 건 네가 아니다.”
순간, 제로의 눈이 커졌다.
“크큭, 크하하하-!”
곧 그의 입에서 호탕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래, 그렇지.”
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검은 매에게 한결 가벼워진 어조로 말했다.
“잘 부탁해.”
검은 매는 대답 대신 피식 웃고는 창밖으로 날아갔다.
제로는 멀어지는 검은 매를 바라보다가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그의 시선이 올리비아 황녀가 머무는 별궁으로 향했다.
그곳은 현재 커튼이 쳐진 채 그 안이 보이지 않았다.
올리비아는 모든 시선을 차단한 채 정화자의 목소리에 숨을 들이마셨다.
“…정화자여, 그 말이 참입니까?”
“네, 황녀님.”
케일은 미소를 지었다.
-인간아, 맛이 간 클로페 같다! 그냥 클로페 말고, 맛이 간 클로페!
케일은 라온의 말에 살짝 멈칫했지만, 애써 흘려들으며 최대한 성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황녀님, 일주일 뒤 처형장에서 쓸 겁니다.”
화이언스와 황궁이 초강수를 두어 혼란을 일으키려 한다면.
올리비아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신, 신의 힘을 쓰실 겁니까?”
“네.”
케일은 그 혼란을 걷어낼 힘을 쓸 작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