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809
2부 51화
유리관의 크기는 제각각이었다. 하지만 케일이 보는 방향에서 점점 멀어질수록 유리관의 크기가 커져갔다.
“어두운데.”
케일의 시선이 7호에게로 향했다.
7호는 멈칫하더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크흠. 이 안의 조명 장치는 나도 잘 모르는데.”
그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혔다.
검사의 눈동자가 천천히 아래에서부터 위로. 7호를 관찰하고 있었다. 꼭 공격할 곳을 찾듯이.
‘죽음 따위 두렵지 않다.’
7호는 죽음이 겁나지 않았다. 그래서 최한, 검사의 눈빛에 간담이 서늘해지기는 했어도 두렵지는 않았다.
‘빌어먹을 정화자 새끼!’
하지만 그 검사의 어깨 너머, 그를 응시하는 정화자의 시선은 묘했다. 눈꼬리에 웃음기가 머물고 있었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분노는 명백하게 느껴졌다.
‘저런 눈을 가진 놈들이 훼까닥하면 선이 없어진다고!’
정화자는 7호에게서 시선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라온, 불 좀 켜자.”
“…알았다, 인간.”
라온은 힘없는 목소리로 답하며 어둠 속에 자리한 거대한 유리관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케일은 라온이 왜 저러는지 알았으나, 일행을 잠시 내버려 두고 정면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저벅저벅.
그의 발걸음 소리가 공동 안에 울려 퍼졌다.
공동 안은 휑하다 싶을 정도로, 오로지 셀 수 없이 많은 유리관만이 존재했다.
“7호 따라와.”
케일의 부름에 7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가 케일과 눈이 마주쳤다.
‘……!’
7호는 초록 눈동자와 마주친 순간 온몸이 굳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의 주변을 감싼 공기가 모두 사라져 숨이 막혀왔다.
“…허억!”
하지만 착각이었다.
그의 주변 공기는 그대로였다. 그저 그를 응시하는 시선이 주는 압박감에 숨을 쉬지 못했던 것뿐.
‘…이, 이런 기운은……!’
7호의 눈동자가 처음으로 갈 곳 없이 흔들렸다.
왠지 모르게 가볍고 얄밉게만 보였던 정화자. 하지만 조금 전 그를 바라보던 시선에 7호는 어마어마한 위압감을 느꼈다.
‘마치, 마치 혈마께서-’
이 차원으로 오기 전, 떠나는 그를 치하하기 위해 마주했던 혈마. 그분의 눈빛을 떠올리게 하는 정화자였다.
‘아냐, 그럴 일이 없어.’
혈마, 그분은 신이 되실 유일한 분이다.
그런 분과 정화자 따위를 비교할 수 없다.
7호는 그리 생각하면서도 정화자를 향해 걸어갔다. 그가 오라고 했으니까, 도망칠 생각 따위는 모조리 놓아버린 7호였다.
케일은 다가온 7호를 보며 걸음을 다시 옮겼고, 입을 열었다.
“강시가 맞나?”
“…그래.”
케일의 눈동자가 주변을 훑었다.
유리관. 그 속에는 다양한 생물체가 존재했다.
“…엘프, 드워프, 수인족-”
심지어 몬스터도 있었다.
모두 온전한 형체를 유지한 채로 눈을 감고 있었다. 심하게 창백하다는 것을 빼면 전혀 시체로 보이지 않았다.
“이마에 문양이 있군.”
하지만 공통적으로 강시들의 이마 중앙에는 보랏빛 꽃이 그려져 있었다.
“연꽃인가?”
“그래.”
케일은 묵묵히 답하는 7호의 목소리를 들으며 물었다.
그 와중에도 그는 뒤쪽으로, 점점 커지는 유리관들을 보며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이 정도 양이면, 꽤 오랫동안 준비한 것 같은데.”
“…….”
“화이언스 가문과 혈교 사이가 꽤 끈끈한가 봐?”
“…….”
7호는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 케일은 모든 사건의 전말을 말하라고 하고 있었다. 차마 그것까지는 말하기 힘들었던 7호는 망설임을 보였다.
그 순간이었다.
“말해.”
다시금 온몸을 감싸는 압박감이 느껴졌다.
조금 전 숨을 못 쉬게 만들었던 그 지배감은 아니었지만, 그 순간의 공포를 떠올리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대략 400년 전에 우리 교는 화이언스 가문과 협정을 맺었다.”
“계속해.”
파앗.
케일은 공동 입구에서부터 하나둘씩 떠오르는 빛덩이를 보았다.
라온이 마정석을 부수면서 마법으로 빛을 불러내고 있었다.
공동이 조금씩 밝아졌다.
“화이언스에서는 각 종족별 강한 개체를 모아 강시로 만들기를 원했다.”
“왜 하필 강시지?”
“언데드보다는 훨씬 더 생전의 능력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군. 혈교에서는 왜 그 협정을 받아들였지?”
“자세한 내막은 모른다.”
케일의 시선이 7호에게로 향했다.
7호는 흠칫하며 입을 열었다.
“내가 이 일을 맡은 지는 고작 5년밖에 되지 않았어. 내 수준에서 내막까지는 알 수 없다.”
“자세한 내막은 모른다라. 그러면 겉으로 드러난 협정 이유는?”
“…강시 실험이다.”
케일의 녹빛 눈동자가 7호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7호는 한숨도 제대로 내쉬지 못한 채 입을 열었다.
“교에서 원하는 강시의 형태가 있다. 그것을 얻기 위한 실험을 명목으로 화이언스 가문과 손을 잡았다.”
“그 강시가 뭔데?”
“…죽여라.”
7호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의 눈동자는 이것만큼은 말할 수 없다는 듯 결연한 빛을 띠었다.
“죽이기는.”
케일은 피식 웃더니 천장을 바라봤다.
빛으로 눈이 부셨다.
“말할 수 있는 것만 말해봐. 화이언스 가문의 목적은 아나?”
“그것을 알아내는 게 내 사명 중 하나다.”
케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사냥꾼 가문들은 서로 별로 안 친한가 봐? 오히려 서로 경계하고 속내를 숨기면서 경쟁 중인 것 같은데? 이유를 아나?”
7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면서도 긴장으로 굳은 몸을 어떻게든 안정시키려 노력했다.
‘미친놈. 말하기 싫으면 하지 말라고?’
죽일 생각이 전혀 없다고 말하는 게 더 공포였다.
죽음이라는 안식을 줄 생각이 없다는 태도였으니까.
7호는 정화자의 시선이 바뀌었음을 깨달았다. 이 공동 안에 있는 셀 수 없이 많은 강시를 본 이후부터, 정화자는 7호를 같은 생명체로 보지 않고 있었다.
‘빌어먹을.’
손끝이 두려움으로 떨려왔다.
그는 입을 열었다.
“…가문 간의 경쟁은 늘 있어 왔다. 이유는 말하자면 길지만, 각자 우호적이거나 적대적인 가문이 존재한다.”
“그래? 그러면 그 긴 이유는 조만간 들으면 되겠고.”
파앗!
마지막으로 떠오른 빛 구가 공동 입구에서부터 허공을 가로지르며 공동의 끝에 도달했다.
어느새 라온과 최한이 그들에게로 다가왔다.
라온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공동의 끝을 바라봤다.
높은 천장에 닿을 것 같이 솟구친 유리관. 총 세 개의 유리관을 보는 라온의 눈동자가 일렁였다. 분노로.
“…인간아, 용도 있다.”
멸망했다고 알려진 용의 시체가 강시가 되어 세 개의 유리관 속에 존재했다.
‘…깨끗하지 않네.’
다른 시신들의 상태가 깨끗했던 것과 달리, 용의 사체는 모두 여기저기 누더기처럼 어떻게든 상처를 고치려고 한 흔적들이 보였다. 흉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용들이 목숨을 건 처절한 전투를 했음을 알 수 있었다.
‘자연으로 돌아가지 못했군.’
자연적으로 죽지 못한 용의 최후. 마나의 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남겨진 모습.
용들이 끔찍하게 생각할 최악의 죽음이었다.
만약 에르하벤이 이 꼴을 보았다면, 아주 크게 분노했을 것이다. 에르하벤이라면 충분히 그럴 만한 존재였다.
‘용뿐만이 아니지.’
이곳에 있는 모든 시신들은 지금 자신의 모습을 끔찍한 죽음이라고 여길 것이다.
“케일 님.”
그리고 그 세 용 강시 앞에는 네크로맨서로 보이는 자들의 시신이 백여 개가 훌쩍 넘게 존재했다.
최한이 분노를 넘어 기가 차다는 듯 말했다.
“…지난 황제들 아닙니까?”
황위 후보자 시험에 참가하기로 결정한 만큼. 그곳에서 메리의 조력자로 함께하기로 한 만큼. 기본적인 황가의 정보는 숙지한 케일 일행이었다.
“그렇네. 황제들도 있네.”
지난 300여 년 간 제국을 다스렸던 황제들도 강시가 되어 존재했다.
물론 다른 네크로맨서들과 다른 점은 존재했다.
“인간아, 새까맣다.”
온몸이 검게 물든 채, 황제들의 시신은 강시가 되어 있었다.
케일은 현 황제가 죽으면 어떻게 변할지, 이 모습을 보고 깨달았다.
검집을 움켜쥔 최한의 손이 떨렸다.
‘어떻게 이런 짓을-!’
최한은 하얀 별을 상대하며 그가 저지른 꽤 많은 일들을 보았다.
모고르 제국 연금술 종탑 지하 죽은 마나 저장소나 엔더블 왕국 제물 사건이나. 끔찍하다 싶은 일을 겪어왔지만, 이런 광경은 처음이었다.
‘…미친놈들이구나.’
최한은 하얀 별보다 더한 자들이 사냥꾼 집단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크게 실감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았다.
‘그리고 그놈들이 로운을 건들고 있어.’
그가 사는 세계를, 그의 가족들이 사는 곳을 사냥꾼들이 헤집고 있다.
일렁이던 눈동자가 곧 자리를 잡고는 깊게 가라앉았다.
검집을 잡고 있던 최한의 손에서 떨림이 멈췄다. 그 순간 최한은 라온의 머리를 투박하게 쓰다듬는 케일을 볼 수 있었다.
케일은 7호를 바라봤다.
“7호.”
“…….”
7호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한껏 눈치를 보는 행태였다. 그 모습에 케일은 속으로 비웃음을 흘렸다.
‘이놈도 쓰레기는 쓰레기네.’
7호는 이런 광경을 누군가에게 들킨 것에 대해 일말의 부끄러움조차 느끼지 않고 있었다.
케일은 애초에 이놈에게서 죄책감이나 후회를 볼 것이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놈은 자신이 저지른 짓이 부끄럽다는 생각조차 안 하고 있었다.
그저 자신에게 어떠한 해가 갈까 봐, 나아가 혈교에 문제가 생길까 걱정할 뿐.
“하하-”
7호는 자신을 불러놓고 허공을 보며 웃는 케일의 모습에 등골이 서늘해져 왔다. 하지만 이내 케일은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7호, 이 강시들을 어떻게 작동시키는 것이지? 그걸 네가 조절할 수 있나?”
이곳을 들킬 때부터 오리라 생각했던 질문이 마침내 들려오자, 7호는 눈을 질끈 감았다.
‘망했군.’
하지만 그의 속내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검은 피 가문은 큰 손실을 입겠어.’
화이언스 가문이 300여 년 동안 준비한 일 중 가장 심혈을 기울인 일이 지금 눈앞의 정화자에 의해 망가지려 하고 있었다.
‘나쁘지 않아.’
그것은 썩 나쁜 일이 아니었다.
‘다만, 혈교에 피해가 가서는 안 된다.’
물론 혈교는 정화자에게 당하지 않을 것이다.
7호는 확신했다.
정화자의 힘을 보았으니까.
중원. 그곳의 그림자에 자리 잡은 혈교는 정화자가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그를 포함한 그의 일행 소수를 상대할 수 있었다.
‘나중에 기회를 봐서 저들이 중원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가게 만들어야 한다.’
7호는 그것이 위대한 혈마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어쩔 수 없이 지금은 정화자에게 최대한 협조하는 척 행동할 작정이었다.
“…하아.”
그는 말하기 힘들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힐끗 정화자를 쳐다봤다.
‘으음.’
복면 안 정화자의 눈꼬리가 초승달처럼 휘어 있었다. 왠지 모르게 찝찝한 기분이 들었으나, 7호는 무시하며 애써 입을 열었다.
“…이 강시들은 오로지 숙주의 명을 듣는다.”
“숙주가 황제인가?”
“그래. 물론 숙주를 변경하는 일이 가능하지만, 그 과정은 오래 걸려.”
7호는 공동 안을 대충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 정도 양이면 최소한 한 달 내내 밤낮없이 매달려야 숙주를 변경할 수 있다.”
7호는 덧붙였다.
“물론 너로 숙주를 변경하는 작업이니 너도 한 달 동안 여기에 머물러야 한다. 일반적인 숙주 변경이 아니라 전투 용도라서 조금 더 면밀한 연결 작업이 필요하니,-”
“아니. 내가 묻는 건 그게 아냐.”
케일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싸움에 쓸 생각 없어.”
“으음.”
7호는 정화자의 속내를 파악했고 그 순간 생각했다.
‘쓸데없이 착한 척이군.’
이 강시 집단은 엄청난 전투 요소였다.
그는 입을 열었다.
“무용지물로 만들고 싶은 건가?”
순간 최한의 눈가가 일그러졌다. 무용지물. 그 단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침묵했다. 케일이 가만히 있었으니까.
“…….”
7호도 잠시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 정적은 짧았다.
“이 강시들은 모두 사기를, 죽은 마나를 품고 있다. 이들을 돌려보내는 방법은 간단하다.”
케일의 시선이 7호에게로 향했고, 7호는 담담하게 말했다.
“태워. 네 힘으로.”
정화의 불로 모조리 태워버려라.
“그게 제일 깔끔하지.”
라온은 눈을 크게 떴다. 라온은 두 앞발을 꼼지락거리며, 용을 비롯한 시체들과 케일을 번갈아 바라봤다.
“어차피 영혼도 없는 빈껍데기인 몸이니까, 정화시켜버려. 그걸 저 시신의 영혼들도 원할걸? 이 공동 자체를 파괴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거고.”
스윽.
케일은 복면을 벗었다. 그리고 드러난 얼굴을 본 7호는 흠칫 어깨를 떨었다.
케일의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태우지 않고, 시신으로 되돌릴 방법은?”
“…있긴 있지. 하지만 그건 최소 반년은 걸려. 천천히 몸에 있는 사기를 빼내야 하니까.”
“사기를 빼내면?”
“…일반적인 시체와 같아질 거다. 자연히 부패하겠지.”
케일은 한쪽 고개를 기울이며 입을 열었다.
“7호. 왜 가장 간단한 방법을 말해주지 않는 것이지?”
“뭐?”
“저들을 싸움에 쓰지 않는 방법. 제일 간단한 게 하나 있잖아.”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7호가 한쪽 고개를 기울인 순간.
“황제.”
“……!”
“숙주가 힘을 못 쓰게 만들면 되지.”
케일은 이상하다는 듯 7호를 바라봤다. 7호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힌 순간.
“왜 그 방법을 안 말해줘?”
케일은 7호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강시 더 있지?”
멸종한 용의 시신이 세 구만이 강시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죽은 용은 훨씬 더 많았다.
과연 이게 끝일까?
이 강시들이 과연 전부일까?
300여 년 동안 모았다고 하기에는 강시의 수가 적었다.
이 세계를 멸하게 만들 만큼의, 업으로 바칠 만큼의 숫자는 되지 못했다.
7호의 눈동자가 흔들린 순간.
“이거 안 될 새끼네.”
케일은 그 한마디와 함께 최한에게 손짓했다.
“크윽!”
7호는 최한의 손길에 그대로 기절했다.
“최한.”
“네.”
“4일 뒤에 황제를 납치한다.”
“네.”
4일 뒤, 공개 처형장. 그곳에서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