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812
2부 54화
순간 분위기가 술렁였다.
“정화의 불…이라고?”
이번 2차 시험 명단에 적힌 단체 중 가장 위에 적힌 단체명이 정화의 불이었다.
사사건건 문제를 일으켜 골치를 아프게 하는 멸망단조차 정화의 불 이름 아래에 적혀있었다.
“그 사이비 집단을……!”
최악의 사이비 집단이라고, 광신도 집단으로 알려진 곳.
“…거기가 어딘데?”
“정화의 불 몰라?”
하지만 생각만큼 광신도인 ‘이유’가 잘 알려진 곳은 아니었다.
“어. 거기가 뭔데?”
“아, 너 제국 밖 출신이지. 거기 신도는 즉결 처형 대상이잖아.”
“간부가 아니고 그냥 신도인데 즉결 처형이라고?”
“어.”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이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보냈다. 즉결 처형 대상. 아주 근처에 가지도, 엮이지도 말아야 할 곳이 정화의 불 교단이다.
“세상에, 얼마나 사이비길래? 뭔 짓을 했는데?”
“…몰라? 그냥 미친 곳이란 소리만 들었는데.”
“그게 뭐야?”
“…그러게. 그래도 이유가 있으니까, 최악의 집단 아닐까?”
순간 묘한 기류가 흘렀다.
하지만 이 기류는 다수가 되지 못했다. 오히려 최악의 집단이라 알려진 곳의 교황이 나타나자 조금은 가라앉았던 광장의 열기가 스멀스멀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이를 받아들일 수 없는 이들도 있었다.
“말도 안 돼!”
후보자 중 한 명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메리를 노려보았다.
“수도를 샅샅이 뒤져도 신도 한 명 찾지 못했는데, 교황에 주교 모두를 잡아 왔다고?”
제국에서 제일 잡지 못하는, 꽁꽁 숨은 집단이 정화의 불이다.
그 신전 위치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곳을, 어떻게 헤니 위시로프가 찾는단 말인가.
고작 멸망한 왕국의 왕족이!
“거짓이다!”
후보자 중 한 명이 목소리를 높였다.
“19후보자는 거짓 술래를 잡아 온 게 틀림없습니다!”
그는 헤니 위시로프, 메리를 가리키며 사람들에게 시선을 주었다.
“멸망한 왕족이, 조력자도 잃은 자가 어떻게 제국에서도, 황가에서도 백여 년간 찾지 못한 교황과 그 주교들을 잡아 온단 말입니까! 신도면 몰라도, 이건 높은 점수를 노린 뻔한 거짓입니다!”
거기까지 말한 후보자는 메리를 노려보았다.
“!”
그리고 놀랐다.
헤니 위시로프는 웃고 있었다.
메리는 입을 열었다. 그녀의 시선이 시종장, 황제를 거쳐 화이언스 가주에게로 향했다.
“거짓인지 아닌지 확인을 해보면 됩니다.”
고저 없는 차분한 목소리였다.
“정화의 불 교단을 이끄는 교황. 그녀가 어째서 황궁에서 정한 즉결 처형 대상이 되었는지 그 힘을 보면 됩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공중으로 향했다. 여전히 해골 몬스터에게 뒷덜미가 잡힌 채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교황으로 추정되는 중년인. 그녀의 모습은 볼품없었다.
메리는 그녀를 가리켰다.
“확인해볼까요?”
제국민들의 시선이 교황의 묶인 손발로 향했다.
교황은 눈을 내리깐 채 허망한 표정으로 가만히 있었다.
메리는 후보자들을 바라보았다.
“그래야 인정하지 않겠습니까?”
화를 냈던 후보자는 보랏빛 눈동자를 마주하고 흠칫 어깨를 떨었다.
너무나도 투명한 눈동자였으니까.
어떠한 분노도, 짜증도 없는. 그저 올곧게 그를 비추는 눈동자는 오히려 두려움을 느끼게 만들었다.
-인간아, 메리 잘한다!
케일은 라온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들려왔다.
-그런데 화이언스 가주가 교황이 힘을 쓰게 만들까?
아니.
-힘을 못 쓰게 막을 것 같다! 교황이 죽은 마나를 이겨내는 모습을 보이면, 화이언스 가주는 망하지 않나?
그렇지.
교황은 케일처럼 죽은 마나를 정화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녀가 일으키는 붉은 연기 혹은 아우라는 죽은 마나에 저항하며 이를 밀어낸다.
그 모습을 이곳에서 드러낸다고?
피식.
케일의 입꼬리가 올라간 그 순간.
“확인 과정은 필요 없답니다.”
시종장이 앞으로 나섰다.
메리가 바로 말했다.
“정확한 확인 과정을 통해, 제 시험 결과를 제대로 인정받고 싶습니다.”
시종장은 메리를 보며 웃으며 말했다.
“그저 제국을 노리는 불손한 집단을 모두 죽이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케일의 미소가 더 짙어졌다.
시종장은 후보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자, 드디어 모든 후보자분들이 오셨네요. 이 중에 술래를 더 데려오실 분은 없지요? 그럼 이제 명단에 포함된 단체원들의 즉결 처형식을 집행하겠습니다.”
둥-
단상 뒤편에서 북소리가 났다.
시종장이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황궁 기사단에서 명단에 적힌 단체원들을 포박해가도록 하겠습니다.”
두웅- 둥-
다시금 울린 북소리와 함께 사람들은 흠칫 몸을 떨었다.
“헛, 언제?”
“…기사가 왜 이리 많아?”
골목, 건물, 단상. 곳곳에서 황궁 기사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후보자들 중 몇몇은 눈썹을 들썩였다.
“…황궁 기사가 아닌데?”
“수도 방위 기사단 아냐?”
황궁 기사단뿐만 아니라, 수도 방위와 수도 근방 지역 방위대에 배치된 기사들까지 나타났다.
“음.”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시종장의 부드러우면서도 밝은 목소리가 광장 안에 울려 퍼졌다.
“포박하라.”
기사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어느새 나타난 흑마법사들이 죽은 마나를 일으켰다.
“헉!”
후보자 중 한 명이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어째서……?”
채앵, 채, 채챙!
열 명의 기사. 그들이 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그 검 끝을 겨눴다.
헤니 위시로프를 향해.
“왜, 왜 저들에게?”
그녀 한 명만이 아니었다.
“크큭.”
용병 제로. 그를 향해서도 최정예라 일컬어지는 기사들이 검을 겨눴다. 그 뒤에는 언제라도 흑마법사들이 흑마법을 사용하기 위한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광장이 술렁였다.
황궁에서 후보자를 포위했기 때문이었다.
“너무 자신만만하셨습니다.”
시종장의 입꼬리가 그림처럼 올라갔다.
그는 메리와 제로를 내려다보았다.
시종장은 광장 사람들을 향해 살짝 고개를 숙여 보였다.
“제국민과 후보자 여러분께 먼저 죄송하다는 말씀을 올립니다.”
후보자들은 침을 삼켰다. 계속해서 병력이 튀어나오며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언제라도 싸우겠다는 듯.
“2차 시험은 후보자분들의 결단력을 시험하는 동시에, 쥐새끼를 잡기 위한 자리였습니다.”
쥐새끼.
그 단어에 광장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러트렸다.
왠지 모르게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가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다음 제국의 가장 꼭대기, 존엄한 자리에 오를 분을 모집하는 자리에 쥐새끼가 스며들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시종장의 목소리가 귀에, 그리고 라온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케일은 겹쳐서 들려왔다.
-인간아, 역시 화이언스 가주 쪽에서 가려뒀던 수가 하나 더 있었다!
2차 시험 술래잡기.
그것은 단순히 제국에 일어난 모든 일의 원흉을 명단 속 단체로 돌리기 위한 수작만이 담긴 것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술래.
이 후보자들 속에 숨어든 술래를 잡으려는 의도도 담겨 있었다.
‘머리 좀 썼네.’
케일이 그리 생각한 순간.
용병 제로가 두 손을 들어 올렸다.
더벅머리 사이로 그의 날카로운 눈동자가 시종장에게로 향했다.
“어떻게 알았지?”
단 한마디.
그는 그 말만 내뱉었지만, 그것이 기폭제가 되어 광장 안의 분위기가 삽시간에 혼란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제로의 저 말은 사실상 시종장의 말을 인정한다는 뜻과 다름없었으니까.
“어떻게 알기는요.”
시종장은 여상스러운 말투로 말을 이었다.
“화이언스 가주께서 자리에 없던 그날, 저택이 습격을 받았지요. 그리고 많은 지역 중 후보자분들이 계시는 9구역에서 일이 일어났고요. 당연히 후보자 중에, 존재해서는 안 될 것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 않을까요?”
그의 손가락이 제로를 가리켰다.
“그리고 애초부터 황궁에서는 제로 님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답니다. 역시나, 당신은 멸망단이었군요.”
멸망단. 그 단어에 광장의 분위기는 더 무겁게 가라앉았다.
“이야. 황궁도 대단하네. 내 정체를 어느 정도 간파하고 있을 줄은 몰랐어.”
제로가 대단하다는 듯 박수를 짝짝 쳤다.
-인간아, 황궁이 의외로 정보 체계가 좋다.
라온도 동의를 표했다. 하지만 케일의 눈빛은 순간 날카롭게 변하며 가주에게로 향했다.
‘…제로의 정체를 어느 정도 간파하고 있었다라. 그럼에도 후보자 등록을 허가했다고?’
그것이 뜻하는 바는 하나였다.
‘제로도, 아니, 멸망단도 모두 강시로 만들거나 죽일 자신이 있었다는 소리네.’
그리고 그것은 이 자리에서도 마찬가지일 터.
케일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쩌면 적들은 케일의 예상보다 더 많은 병력을 이곳에 집결시켰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이것이 뜻하는 바는, 꽤 좋지 못한 상상을 불러일으켰다.
‘애초에 황궁에서는 이곳에서 전투를 벌일 마음이 있었다.’
그러자 케일은 자연스럽게 한 가지 생각이 뒤이어 떠올랐다.
그렇다면 이곳에 모인 수많은 제국민들은?
그저 자연스럽게 자신이 가진 ‘힘’을 보여줄 생각이었던 케일은 점점 뒤통수가 서늘해져 왔다.
‘…설마-’
화이언스 가주. 케일은 그를 바라봤다.
‘네놈도 3차 시험을 치를 생각이 없던 거냐?’
늘 한발 빠르게 적보다 움직였던 케일.
그를 상대하기 위해, 화이언스 가주도 한발 빠르게 움직이려고 마음을 먹었다면?
화이언스 가주는 충분히 그럴 머리와 힘이 있었다.
“그래도 놀랍군요.”
시종장은 제로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헤니 위시로프 님이 정화의 불 소속일 줄이야.”
그는 기사들에게 둘러싸인 메리와 하늘에 매달려 있는 교단 간부들을 보며 말했다.
“사실 긴가민가했습니다. 헤니 위시로프 님의 정체는요. 하지만, 황가에서도 찾지 못하는 교단 간부들을 이리 모조리 잡아 온 것은 뻔하죠?”
시종장은 처음 이의를 제기했던 후보자에게 웃어 보였다. 후보자는 흠칫하며 시선을 돌렸다.
시종장은 힘없는 표정의 교황을 보며 말했다.
“정화의 불 교단에서조차 황위를 노릴 줄이야. 역시, 사악한 집단이 맞군요.”
시종장은 손짓했다.
“그러면 이만 처형식을 거행하도록 하지요.”
흐음.
제로가 잠시 고민을 하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위아래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계획과 다르기는 한데.”
정말 계획과 달랐다.
황궁에서 이만한 병력을 여기에 끌고 올 줄은 몰랐다.
그것도 제국민들이 바글바글 모인 이 장소에.
‘별수 없지.’
그렇다고 가만히 있기에는 애매한 상황이다.
이미 적들이 자신을 알고 있다면.
‘드러내야지.’
그의 시선이 메리에게로 향했다.
메리는 가만히 서 있었다.
그 이유를 제로도 안다.
‘정화자의 계획에 따를 생각인 것이겠지.’
하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다.
“순순히 잡히는 편이 이로울 것이다.”
제로는 저를 향해 다가오는 수도 방위대 총 기사단장의 검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물었다.
“뭐가 이롭지?”
“최대한 아프지 않게 죽여주마.”
“하!”
결국 죽이기는 죽인단 소리였다.
“헛소리하고 자빠졌네.”
그 순간 제로가 손을 움직였다.
촤르륵-
품 안에 있던 검 손잡이가 튀어나왔다.
뼈로 된 검 손잡이.
그곳에서부터 검은 기운이 살짝 피어오르는 그 순간.
우우웅–
채채챙, 챙!
흑마법과 검술이 곳곳에서 바로 적을 향해 뻗어져 나갈 준비를 마쳤다.
덜컹. 덜컹.
짐마차에 있던 백여 명이 넘는 이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콰직. 툭. 툭.
그들의 손발을 결박하던 밧줄은 힘없이 부서지며 마차 바닥으로 떨어졌다.
제국민들은 슬금슬금 뒤로 물러서거나 몸을 움츠러트렸다.
그때.
쏴아아아—
바람이 불었다.
사람들은 고개를 들어 올렸다.
“아……!”
성스러운 하얀빛이 눈송이처럼 광장 위 창공에 드리워졌다.
“가주님……!”
황제의 스승이자 제국의 기둥 중 한 명인 화이언스 가주. 그가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나 백마법을 펼쳤다.
그제야 제국민들은 안심했다. 가주가 나섰으니, 특별한 일은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화이언스 가주는 제국민에게 절대적인 존재였다.
“어?”
하지만 하늘을 지켜보던 이들은 다시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껴야 했다.
눈송이 같았던 하얀 빛덩이가 이내 날카로운 화살이 되어갔다.
그 수는 점점 더 늘어났다.
수십여 개를 넘어 수백여 개가 되어갔다.
‘…너무 많지 않나?’
제국을 무너뜨리려는, 공개 처형을 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수의 화살이 광장 위, 메리의 해골 병단보다 더 높은 하늘에 빼곡하게 들어차기 시작했다.
점점 눈이 부셔왔다.
저 화살 중 하나라도 스쳐 지나가면 큰 부상을 입을 것만 같았다.
제국민들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여전히 화이언스 가주를 보고 안도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무언가 다르다는 생각을 하는 자들도 점점 많아져 갔다.
또각.
그 순간이었다.
또각. 또각.
올리비아 황녀.
그녀가 느긋하게 단상 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시종장. 시험 점수부터 매기죠.”
부드럽지만 단호한 음성에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모였다.
태연하다 못해, 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듯한 그녀의 언사에 시종장은 입을 열었다.
“황녀님, 지금 시험 점수를 매기는 중이랍니다.”
황제의 시선이 올리비아에게로 향했다.
그는 분명 올리비아에게서 황위를 향한 욕심과 무엇이든 할 자세를 보았다.
‘……!’
그 순간 황제는 저를 똑바로 보며 웃는 올리비아를 볼 수 있었다.
“맞아요. 제 점수부터 매겨달라는 말입니다.”
“…황녀님 점수요?”
시종장은 황당함을 감췄지만, 그럼에도 언짢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올리비아. 그녀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술래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아니지-’
시종장의 눈이 커졌다.
올리비아. 그녀의 곁에는 단 한 사람이 서 있었다.
신관.
눈 아래를 가린 백발, 녹안의 남자.
그 남자는 어느새 올리비아의 옆에 섰다.
올리비아는 황제에게 그를 소개했다.
“저는 제국을 좀먹는 쥐새끼를 사냥할 사냥꾼을 잡아 왔답니다.”
녹안. 케일의 눈동자가 화이언스 가주에게로 향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맞부딪친 그 순간.
콰아아아아앙——-!
거대한 폭발음이 북쪽에서 들려왔다.
황궁에서 불길이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 * *
그 시각, 황궁의 중심 황제궁.
“누구냐!”
“나?”
에르하벤은 자신을 향해 검을 겨누며 바들바들 떠는 기사들을 보며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나, 용.”
그는 옆을 가리켰다.
“얘도 용.”
아페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에르하벤의 뒤에 소심하게 서 있었다.
에르하벤은 웃으며 말했다.
“나 화났으니까, 막지 마라.”
고룡은 이 세계에 온 후 느꼈던, 꽤 오래 참아왔던 분노를 감추지 않을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