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813
2부 55화
9장. 흩날리는 재
“용, 용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릴!”
기사는 허튼소리 하지 말라는 듯 에르하벤을 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형편없이 떨렸다.
‘…궁이-’
황제궁의 바로 옆 궁이 통째로 사라져가고 있었다.
부서진 것이 아니다.
무너진 것이 아니다.
‘가루가-’
가루가 되어, 먼지가 되어 그 궁이 일순간에 없어지고 있었다.
“하.”
에르하벤은 짧은 웃음을 흘리며 입꼬리를 올렸다.
“내 존재가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 네깟놈이 왜 판단하는 것이지? 네가 무엇이라고?”
우우웅-
금빛 가루가 에르하벤의 주위에서 거대한 빛무리를 이루며 진동하고 있었다.
기사는 검을 쥔 손에 자꾸 힘이 빠질 것 같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주변에 있던 모든 이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동공이!’
금발의 남자. 그의 동공이 세로로 길게 변했다.
“이럴 수가, 진정, 진정 용이란 말인가……!”
털썩. 흑마법사가 손에 들린 마법 스태프를 지팡이 삼아 겨우 몸을 지탱하다가 한쪽 무릎을 결국 꿇어버렸다.
흑마법사. 죽은 마나를 사용하더라도, 결국 마법을 다루는 자.
그런 자에게 마나를 본능처럼 다루는 존재인 드래곤은 전설 속의, 신화 속의 인물이었다.
황태자의 조력자로 흑발 여인이 용으로 등장했으나, 그저 ‘용이구나.’ 인지하는 것과 그 힘을 마주하는 것은 너무나도 달랐다.
“…하아…….”
드래곤 아페가 깊은 탄식을 흘렸다.
그녀는 두 손을 내려다봤다. 손끝이 잘게 떨렸다.
눈동자가 손을 지나 다시 눈앞의 고룡에게로 향했다.
그 등을 바라보았다.
용은 분노하고 있었다.
이 세계에 드래곤이 사냥꾼에게 멸종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
죽은 마나 속에서 아페를 태어나게 했다는 것을 안 후로.
죽은 용의 흔적, 시신을 강시로 만들었다는 것을 듣게 된 후로.
그녀의 눈앞에 자리한 이 고고한 존재는 분노를 다듬어 날카롭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 고고한 용의 족쇄가 풀어진 순간.
‘아.’
아페는 다시 떠올려도 온몸이 떨려왔다.
그것은 전율이었다.
‘에르하벤 님, 중앙광장에서 보일 정도로 큰 폭발 하나 만들어주세요. 나머지는 에르하벤 님이 하고 싶으신 대로 하면 됩니다.’
정화자는 고룡에게 많은 지시 사항을 내리지 않았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고룡이 어떻게 할지 알겠다는 듯.
쏴아아–
바람에 금빛 가루가 일렁였다. 고룡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태연하게 말했다.
“그런데 왜 이것밖에 없지?”
황궁의 궁이 하나 날아가고,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던 황궁 흑마법사 건물에서 큰 폭발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에르하벤은 자신을 잡으러 온 병력이 얼마 되지 않은 것을 보고 물음을 던진 것과 달리, 금방 답을 찾아냈다.
‘중앙 광장으로 병력이 대거 이동했나 보군.’
그는 화이언스 가주와 황궁에서 무슨 수작을 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오늘은 자신이 하고픈 대로 하면 되는 날이다.
“내가 원래 성격이 안 좋아.”
우우—우우우—
에르하벤을 중심으로 일대의 마나가 진동했다.
그에게서 숨 막히는 압박감이 흘러나왔다.
드래곤 피어였다.
“그런데 오늘은 성격이 더 안 좋아질 예정이야.”
에르하벤이 손을 휘저었다.
금빛 가루가 파도처럼 적들을 향해 밀려들어 갔다.
“마, 막아!”
“빌어먹을, 중앙 광장으로 당장 가서 전해!”
기사 한 명은 수하에게 말했다.
“황궁이 모두 무너질지도 모른다고! 당장 가!”
그 순간, 에르하벤은 드래곤 아페의 머릿속으로 뜻을 전했다.
-보고 배워라.
아페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다 때려 부수는 것을 볼 생각에 아페의 손가락이 더 빠르게 꼼지락거렸다. 하지만 에르하벤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는 입으로 내뱉는 것과 달리 머릿속으로 전달할 때는 냉정했다.
-적을 가장 화나게 하는 법은, 그들의 가장 소중한 것을 훔치는 거다.
응?
아페가 한쪽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에르하벤은 도도한 용의 모습으로 적들을 금빛 마나 파도로 휩쓸어 밀어버리며 말했다.
-대충 분노해서 뒤집는 척하다가, 지하 무덤 가서 다 털고 나온다.
-즉, 훔치고 튀는 거다.
에르하벤은 자신에게 별다른 지시를 내리지 않은 채 황궁으로 가라고 한 케일을 떠올렸다.
‘재밌는 녀석.’
케일은 분명 알 것이다.
아무리 에르하벤이 화가 났다고 하더라도, 지하 무덤에 용의 시신이 있는 한 황궁을 모두 부수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리고 용의 시신부터 빼돌릴 것이라는 걸.
‘나를 너무 잘 안단 말이지.’
에르하벤은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수준이 낮구나.”
소드 마스터가 없을 때부터 알아보았다.
이 세계는.
샤올렌은.
분명 300여 년 전부터 퇴보 중이다.
타닥. 타닥.
에르하벤은 자신의 걸음을 멈추게 할 존재조차 없다는 것을 확인하며 거침없이 황제궁 지하로 향했다.
한편으로 그는 생각했다.
‘중앙 광장에 모든 전력이 배치되었겠군.’
황궁, 화이언스 가문. 그들의 핵심 전력이 광장에 있으리라, 거의 확신했다.
고룡은 황제와 화이언스 가주를 떠올렸다.
‘강했지.’
평균적인 수준은 떨어졌으나, 이 세계의 강자들은 드래곤도 쉬이 승리를 장담하지 못할 정도로 강했다.
그들을 따르는 핵심 전력. 특히, 사냥꾼들도 상당히 강한 힘을 지녔을 터.
‘그래 봤자지.’
하지만 에르하벤은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 힘은-’
9구역 방벽 너머. 검은 나무가 자리한 그 호수에서 케일이 펼쳤던 힘을 마주한 순간.
에르하벤은 생각했다.
‘진다.’
무조건 진다고.
승리를 장담하지 못한다, 이런 수준이 아니라 그냥 진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게 절반의 힘이라고?’
‘네, 에르하벤 님.’
케일과의 대화를 떠올린 에르하벤의 미소가 더 짙어졌다.
에르하벤은 뒤따라오는 아페의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지하 무덤으로 향했다.
콰앙, 쾅! 쾅!
함정 따위 모조리 다 부숴버리며.
“얼른 처리하고 광장에 가봐야겠군.”
* * *
광장이 다시 한번 술렁였다.
하지만 그 분위기는 이전과 확연히 달랐다.
“왜, 황궁에 불이?”
“황궁이 또 습격을 받은 거야?”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냐고!”
공포와 혼란이 광장을 지배해 갔다.
이는 후보자들에게까지 미치고 있었다.
“이게 뭐가 시험이야-”
영리한 축에 속하는 후보자들은 이제 더 이상 이 상황은 시험과 연관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한발 잘못 삐끗했다가는 목숨이 위태로울지 모른다는 것도.
‘…화살이-’
왜냐면 지금 그들이 머리 위에는, 하늘에는 빼곡하게 하얀 화살이, 백마법으로 만든 화살이 성스러운 빛을 토해내고 있었으니까.
달칵. 달칵.
더불어 해골 비행 몬스터들은 아직도 용의 형상을 한 채 하늘에서 날개를 펄럭이고 있었다.
덜컹.
그리고 제로가 끌고 온 짐마차에 있는 이들은 이제 검은 포대를 모두 치웠다. 손발을 묶은 밧줄도 가볍게 풀었다.
제국의 기사와 흑마법사들도 모두 조금의 긴장감도 풀지 않았다.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너구나.”
그 순간, 입을 연 것은 화이언스 가문의 가주이자 현 황제의 스승인 레독 화이언스였다.
그가 단상의 끝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너였어. 이 모든 짓을 벌인 자가.”
그는 케일을 내려다봤다.
케일은 그 시선을 마주하며 입을 열었다.
“그래, 나지.”
너무나도 깔끔한 인정이었다. 지켜보던 시종장이 그 반응에 살짝 움찔했을 때.
케일의 목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9구역 밖을 정화한 사람이 나지.”
-인간아, 드디어 스스로가 만든 결과물을 인정하는 것이냐? 잘했다! 자신을 알리는 것도 좋은 방도다!
하아.
케일은 머릿속에 들리는 라온의 목소리에 한숨이 나올뻔한 것을 간신히 삼켰다.
‘빌어먹을.’
스스로 정화자임을 드러내겠다고 마음먹었으나, 영 탐탁지 않은 기분이 드는 케일이었다.
‘찜찜하단 말이지.’
어차피 일만 해결하면 떠날 세계인데, 이상하게 케일은 알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꼭 뒤통수에서 죽음의 신이 낄낄 웃고 있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정화?”
그 단어에 몇몇 사람들이 반응했다. 그 안에 황제도 있었다. 케일의 눈동자에 이채가 감돌았다. 시종장이 곧바로 입을 열었다.
“정화라니요. 무슨 그런 얼토당토않은 소리를!”
쓸데없는 말을 할 저 입을 막아야 한다.
시종장은 기사단장과 황궁 흑마법사 단장에게 눈짓했다.
검 끝과 흑마법이 케일에게로 향했다. 망설임은 없었다.
-인간아!
라온이 놀라서 외쳤다.
-케일!
짱돌이 흠칫하며 황급히 케일을 불렀다.
“……!”
광장을 둘러싼 한 건물의 지붕.
그 지붕에 구경꾼처럼 앉아있던 이가 어느새 키만큼 거대한 활을 들고 있었다.
쏴아아아—
그리고 그 활을 떠난 화살이 날아오고 있었다.
올리비아를 향해.
올리비아는 그 화살을 알아챈 순간, 단상 위를 바라봤다.
‘!’
황제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숨을 내쉬었고, 가주는 무심한 얼굴로 올리비아를 바라봤다.
두 사람 모두, 마치 벌레를 죽이는 듯한 시선이었다.
그 정도로 무심했다.
올리비아는 고개를 돌렸다.
화살이 코앞이었다.
정화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최한.”
올리비아는 눈을 감았다.
콰아아앙—!
그녀는 눈을 떴다.
화살은 두 동강이 난 채 땅에 떨어졌다.
난폭한 검은 오러가 올리비아의 눈에 들어왔다.
그녀의 앞에 검사가 한 명 서 있었다.
케일의 시선이 단상 위로 향했다.
레독 화이언스. 가주는 어느새 케일에게서도 시선을 뗀 채 무심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죽여라.”
그 순간이었다.
콰앙!
폭발음과 함께 용병 제로가 인상을 찡그리며 외쳤다.
“빌어먹을!”
후보자 중 한 명.
제로를 향해 시기, 질투를 보이며 입을 놀렸던 자. 속으로 제로가 가소롭게 보고 있던 사람이 돌연 제로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뭐야, 네놈은 네크로맨서가 아니잖아?!”
제로는 후보자의 피부에 있던 검은 거미줄이 사라져가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그 후보자는 소드 마스터였다.
제로는 곧바로 상황을 파악했다.
“하, 하하하! 사냥꾼이 사방에 있었구나! 가주가 심어둔 자들이 사방에 있었어!”
그의 말은 묻혔다.
채앵!
콰아앙-!
곳곳에서 이미 병장기를 꺼내 드는 소리와 부딪치는 소리.
“으아아악!”
“거, 검! 자네와 왜 검을?”
광장 곳곳에서 갑자기 무기를 꺼내 들거나 마법, 혹은 또 다른 힘을 꺼내 드는 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미쳤어.”
올리비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소드 마스터를 시작으로 최상위급으로 보이는 마법사와 흑마법사, 거기다가 오러를 실을 줄 아는 권사, 궁사 등.
마치 300여 년 전.
아직 땅이 오염되기 전의 샤올렌 전대륙의 모든 강자들이 모여든 것 같았다.
‘저들이 사냥꾼인가?’
화이언스 가문.
그곳은 사냥꾼 가문으로, 검은 피 가문이라고 불린다고 했다.
그들은 저런 강자들을 다루는 것인가?
‘…그래. 그래야 말이 돼.’
조금만 생각해도, 저 정도 강자들이 모인 집단이어야 드래곤을 멸종시키고, 이 세계를 망가뜨릴 수 있을 것이다.
‘거기다가 강시도 있잖아.’
드래곤 사체를 이용한 강시도 황궁 지하에 잠들어있다고 했다.
올리비아는 손이 떨려왔다.
‘…다 엉망이 될 거야.’
저 사냥꾼 집단과의 싸움은 이기더라도 패자나 다름없는 결과를 만들지도 몰랐다.
수많은 이들이 죽을 것이고.
많은 것들이 파괴될지도 모른다.
“어리석은 것.”
단상 위에서 담담한 목소리가 유독 귓가에 박혔다.
올리비아는 고개를 들었다.
황제가 한숨을 내쉬며 한심하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리석다.
그것은 황제가 올리비아에게 한 말이었다.
피식.
그 순간, 올리비아가 웃었다.
황제의 눈썹이 살짝 들렸다. 그때, 올리비아는 입을 열었다.
“지나요?”
상대는 대답이 없었다.
대신 다른 이가 답했다.
“그래. 진다.”
올리비아의 시선이 움직였다. 화이언스 가주. 그가 올리비아에게 시선을 두고서 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아래로 까딱, 움직였다.
우우웅—
창공을 가득 메운 화살.
메리의 하얀 해골 병단보다 더 높은 하늘에 마치 태양처럼 떠 있던 화살들.
성스러운 흰빛을 띤 화살촉이 움직였다.
가주의 목에 하얗게 변한 죽은 마나가 맴돌았고, 가주는 말했다.
“사냥을 멈추지 마라.”
그 순간 화살들이 움직였다.
정화의 불 교단을 향해.
해골 몬스터들로 이루어진 하얀 용을 향해.
멸망단을 향해.
“어? 어?”
“어째서-”
그리고 후보자를 향해.
“뭐야, 왜 이리로 와?”
“피해!”
광장, 수도 전체를 향해.
화살들이 낙하했다.
케일의 시선이 가주에게로 향했다.
가주는 처음으로 입가에 작은 미소를 그렸다.
“오늘 양질의 제물을 모두 모으겠구나. 덕분에.”
고맙다는 듯 가주가 웃은 그 순간.
케일은 느릿하게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말했다.
한쪽 입꼬리를 삐뚜름하게 올린 채.
“맑은 하늘에 불벼락이라고 알아?”
짠돌이가 갑자기 높은 목소리로 반응했다.
-나 몰라! 알고 싶어!
우르르.
메리의 해골 병단보다 위.
낙하하는 화살들보다 위.
저 높은 하늘.
하늘이 울기 시작했다.
“정화자시여.”
교황이 두 손을 맞잡은 그 순간.
하늘에서 적금빛의 벼락이 떨어져 내렸다.
화살처럼 많은 수도 아니었다.
단 하나의 불벼락이었다.
하지만 케일은 그 정도로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