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814
2부 56화
금빛을 머금은 붉은 선이 하늘에서 한 줄기 떨어졌다.
그것이 벼락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은 조금의 시간이 흘러야 가능했다.
그만큼 그 벼락은 빨랐다.
하지만 그 빠른 벼락이 성스러운 흰빛을 뿜어내는 죽은 마나 화살과 부딪친 순간.
파스스-
덜컹.
황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흰빛이 부서졌다.
소리 없이.
그리고 터무니없을 만큼 손쉽게.
그것이 시작이었다.
금빛을 머금은 붉은 벼락은 고작 하나의 화살을 집어삼키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적금빛 벼락은 옆에 있는 또 다른 화살을 집어삼켰다.
그 옆에. 또다시 그 옆으로.
“…거미줄.”
죽은 마나를 이겨낸 자들의 온몸에 드리워진 그 검은 거미줄처럼.
적금빛 벼락은 거미줄처럼 퍼져나갔다.
그것도 아주 빠르게.
흰 화살이 도망칠 수도 없을 속도로.
빼곡하게 드리워진 채 광장으로, 수도로 떨어지던 하얀 화살은 그보다 더 빠른 존재에게 집어삼켜졌다.
“아…….”
멸망단 중 한 명은 그 광경을 보며 탄성을 흘렸다.
하늘이 붉다.
금빛을 머금은 붉은 전류가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퍼져 하늘에 드리워졌다.
‘아냐.’
저건 거미줄이 아니다.
얽히고설킨 적금빛은 마치 곱디고운 천처럼 보였다.
푸른 하늘에 드리워진 금빛을 머금은 붉은 천.
투욱.
멸망단 단원은 제 눈가에 닿는 것을 보며 눈을 깜박였다.
손을 뻗었다.
툭. 투욱.
하얀 재가 손바닥에 내려앉았다.
붉은 천 아래로 재가 떨어져 내렸다.
천천히.
마치 첫눈처럼.
“이, 이럴 수가!”
그는 갑작스러운 외침에 고개를 돌렸다. 흑마법사들이 그 하얀 재를 보며 경악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하얀 재를 움켜쥐려고 손을 뻗어댔다.
“어떻, 어떻게 이런 일이-”
흑마법사 한 명은 심지어 덜덜 떨어댔다. 믿을 수 없는 것을 목격했다는 듯, 그의 목소리는 사정없이 떨렸다. 눈동자도 흔들렸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절망이 아닌 다른 것이 섞여들어 있었다.
“…죽은 마나를 정화했어……!”
그 흑마법사의 말을 시작으로 곳곳에서 흑마법사들이, 그리고 다크엘프 출신 기사들이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지금 자신이 본 이 광경을 말하지 않고는 못 참겠다는 듯.
“사라졌어. 죽은 마나가 모조리 사라졌다고!”
“이게 말이 돼?! 이건, 이건 믿을 수가 없어!”
“…죽은 마나를 소멸시키는 힘이 있다고?”
흑마법사 중 한 명이 하얀 재를 움켜쥔 채 외쳤다.
“무해해! 이건 인체에 무해하다고!”
“그럼 죽은 마나가 정화되었다는……!”
거기까지 말한 이의 시선이 단상 근처로 향했다.
백발의 남자.
그는 가만히 서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서 알 수 없는 기운이 느껴졌다.
눈에 보이는 것은 없지만, 쉽게 범접할 수 없는, 기묘한 압박감이 그에게서 풍겨져 나왔다.
그때였다.
쿵. 쿵. 쿵!
해골 몬스터에 묶여 있던 주교들이 하나둘 땅으로 내려섰다.
그들은 교황의 뒤에 섰다.
교황을 따라 두 손을 맞잡았다.
털썩.
그리고 두 무릎을 꿇더니 절을 했다.
“정화자님을 뵙나이다!”
그제야 사람들은 교황이 조금 전에 말했던 ‘정화자’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 있었다.
“뭐야?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죽은 마나를 정화했다고? 지금 저 신관이 죽은 마나를 없앨 수 있다는 소리야?”
“그렇다는 거 같은데? 흑마법사들이 지금 난리잖아! 세상에, 그러면, 그러면-”
제국민들은 혼란을 감추지 못했다.
즉결 처형 대상이라고 생각했던 정화의 불 교단이 극진한 예를 표하는 남자.
그 남자를 정화의 불에서 ‘정화자’라고 불렀다. 누가 들어도 정화의 불과 관련되어 보였다.
어찌하면 좋을지 몰라 우왕좌왕하던 광장 사람들에게 또 다른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정화자님을 뵙나이다!”
용병 제로.
“정화자님을 뵙나이다!”
그를 시작으로, 멸망단 단원들이 제로를 따라 깊이 허리를 숙였다.
“어? 어?”
그 광경을 보던 후보자 중 한 명이 저도 모르게 얼빠진 소리를 내며 멸망단을 향해 삿대질을 했다.
“저, 저 사람이 왜……?”
“1황자잖아!”
또 다른 후보자가 경악성을 내뱉었다.
마지막까지 얼굴을 가린 검은 포대를 벗지 않고 있던 두 사람.
그 두 사람의 검은 포대를 옆에 있던 멸망단 단원이 천천히 벗겨냈다.
1황자 센더스.
그리고 4황자 노이.
두 사람은 다른 이들과 다르게 손발이 묶여 있었다.
센더스는 하늘을 바라봤다.
적금빛 장막 아래로 떨어지는 재는 이제 얼마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화이언스 가주의 백마법.
그의 전력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큰 규모의 마법을 가뿐하게 없앨 정도로 정화자는 강하다.
‘그래, 그 광경을 나는 봤어.’
하얀 모래 사막.
그곳을 떠올리던 센더스는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쿵!
그는 무릎을 꿇고서 깊이 절했다.
“정화자님을 뵙나이다.”
4황자 노이는 센더스만큼은 아니지만 허리를 숙여 예를 표했다. 물론 그의 눈동자는 잠시 올리비아에게로 향했지만, 이내 다른 곳으로 움직였다.
‘아바마마.’
황제.
그의 모습을 본 노이는 서글픈 미소를 띤 채 말했다.
“정화자시여, 부디 이 땅을 정화해 주십시오!”
제국민들은 도통 이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점점 더 상황이 그들이 생각하던 것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결국 단상 근처로 향했다.
이 제국의 우두머리.
황제를 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작 황제는 다른 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케일을 뚫어질 듯 응시했다.
“…죽은 마나가… 재가 되었다고……?”
그는 케일과 케일 주위로 눈처럼 소복이 내리는 하얀 재를 멍하니 바라봤다.
믿을 수 없다는 듯 그 눈동자가 흔들렸다.
죽은 마나를 몸에 품은 그라서.
누구보다도 죽은 마나에 대해 잘 안다고 자부할 수 있는 황제이기에.
그는 적금빛 벼락이 화살을 소멸시킨 바로 그 순간, 정화되는 죽은 마나를 알아챌 수 있었다.
쿵.
황제는 심장이 뛰었다.
죽은 마나를 정화하는 힘.
그 힘이 있다면, 어쩌면.
‘나도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황제는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너무나도 많은 죽은 마나 흡입으로, 그의 몸은 버텨내지 못한 채 무너지는 중이었다.
‘만약 저자의 힘으로 내 몸의 죽은 마나를 해독한다면……!’
이 순간, 황제는 깨달았다.
‘모든 일은 저 백발의 신관이 한 일이다.’
9구역에서 벌어진 일.
수도에서 일어난 습격 등.
그 모든 사건의 중심에는 저 신관이 있다.
타닥.
황제는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스승님.”
그는 누군가의 등을 바라봤다.
레독 화이언스.
그의 커다란 등을 보며 황제는 물었다.
“…스승님, 왜?”
9구역으로 갔던 가주라면, 스승님이라면. 분명 저 백발 신관이 남겨놓은 흔적을 통해 그의 힘을 알아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황제에게 ‘검은 나무’가 부서졌다고 말해줬을 뿐, 그 외의 것은 말해주지 않았다.
‘왜 알려주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그 말을 완성할 수 없었다.
화이언스 가주가, 스승이 원하는 것은 황제의 죽음이므로.
그는 시선을 옮겨 자신의 딸을 바라봤다.
올리비아.
그녀는 황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말했다. 잘못 판단한 것은 황제 당신이라고.
‘아냐.’
그럴 리가 없다.
“크윽.”
황제는 심장을 움켜쥐었다. 갑작스러운 통증이 그를 덮쳐왔다. 익숙한 통증이기도 했다.
죽어가는 몸은 수시로 통증을 불러왔으니까.
“폐하!”
놀란 시종장이 다가와 그를 황급히 부축했다.
하지만 황제는 레독 화이언스의 등을 바라봤다.
“스승님-”
그 순간 레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
화이언스 가주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짧은 웃음을 탄식처럼 흘렸다.
그러고는 담담하게 말했다.
“제자님.”
레독은 뒤돌아보지 않고 황제에게 제 뜻을 전했다.
“안 되겠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지?
황제가 의아해하는 순간.
“어차피, 준비는 끝났으니. 계획을 변경해야겠습니다.”
레독 화이언스는 말했다.
“제물이 되세요.”
그 순간, 황제는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푸욱.
그의 옆구리에 검이 박혀 있었다.
작은 단검. 하지만 그 검날은 검은 액체가 묻어 진득했다.
황제는 저 검은 액체가 상당히 고농축된 죽은 마나임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죽은 마나 과다 흡입으로 죽어가던 황제.
그에게 다시금 죽은 마나가 몸에 파고들었다.
“…시종장?”
그의 몸에 검을 꽂은 이는 시종장이었다.
시종장은 황제의 어머니. 그녀가 어릴 적부터 함께해온 시녀의 아이였다.
“커억!”
황제의 입에서 괴로운 신음이 터져 나왔다.
으아아악–!
허억!
곳곳에서 경악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황제는 들리지 않았다.
씨익.
시종장은 웃으며 단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단검의 방향이 틀어졌다.
옆구리를 지나 심장 쪽으로 향했다.
“제물이 되십시오.”
시종장이 속삭였다.
“아시잖습니까? 당신의 마지막 역할. 제물이 되어, 이 세계를 멸망시키십시오. 우리 사냥꾼들을 위해.”
시종장은 거침없이 단검을 쥔 손을 움직였다.
그 찰나.
“커헉, 컥!”
황제가 몸을 뒤틀며 눈을 크게 떴다.
시종장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발악해봤자-”
그 순간, 시종장은 레독 화이언스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런!”
낭패라는 기색이 가득 담긴 목소리였다.
그에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순간.
“시종장아. 너도 사냥꾼이냐?”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종장은 고개를 돌렸다.
검푸른 눈동자.
세로로 길게 찢어진 동공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웃었다.
“황제는 내가 데려간다.”
“…저, 저 눈-?”
허공에 눈만 드러났다.
저런 눈을 본 적이 있던가?
시종장은 곧 답을 알아챘다.
지하 무덤.
그곳에 있는 죽은 용.
그 용의 시신들이 저런 눈을 가지고 있었다.
“어, 어째서 용이-?”
하지만 그의 말은 끝까지 이어질 수 없었다.
“커헉!”
그는 갑자기 숨이 막혀왔다.
단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독……!’
어디서 갑자기 독이?
시종장은 고개를 숙였다.
단상 위에도 하얀 재가 쌓여 있었다.
하지만 그의 발밑 아래 하얀 재는 뭔가 달랐다.
‘연기?’
하얀 연기가 하얀 재와 함께 그의 발 근처에 맴돌았다.
“으윽!”
시종장은 레독 화이언스를 바라봤다.
우우웅—
가주의 주위에 하얀 증기가 일어났다.
하얀 죽은 마나였다.
그의 주위로 거대한 기운이 모여들었고, 가주는 곧바로 시종장, 아니 반드시 죽여서 데려가야 할 제물인 황제 곁으로 움직이려 했다.
파직. 파지직.
하지만 그는 움직일 수 없었다.
황제를 향해 등을 돌린 순간.
그의 등 뒤로 거대한 기운이 느껴졌다.
“……!”
레독 화이언스, 그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시종장은 이렇게도 크게 놀라는 가주를 처음 보았다.
하지만 그 심정을 시종장도 충분히 알 것 같았다.
마비독에 당해 몸이 굳어져 가는 시종장.
그의 눈동자에 가주의 하얀 죽은 마나는 담기지도 않았다.
불이다.
아니, 벼락이다.
정화자라고 불리는 남자.
그에게서 거대한 불길이, 벼락이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그 기운은 지극히 난폭했다.
하지만 정화자의 몸에 휘감긴 채, 일렁였다.
그 모습이 사뭇 아름답게 보였다.
“크윽!”
쿠웅.
시종장의 몸이 단상 바닥으로 쓰러졌다.
“화, 크윽, 황제-!”
그는 황제를 향해 손을 뻗었지만, 황제는 이미 그의 손을 벗어났다.
“흐음.”
위아래로 검은 옷을 입고 복면까지 쓴 소년. 수이 칸은 침음을 흘리더니 황제를 집어 든 채 날아올랐다.
펄럭.
그의 등에 돋아난 두 검은 날개가 그를 공중으로 데려다주었다.
“……!”
화이언스 가주가 그런 황제에게로 잠시 시선을 주었지만, 이내 그는 정면을 바라봐야 했다.
“어딜 봐.”
정화자가 한 걸음을 내디뎠다.
“내가 웬만하면 평화롭게, 좋게 해결하려고 했는데 말이야.”
피식.
짧은 웃음을 흘린 케일은 레독 화이언스를 향해 걸어가며 최한에게, 교황에게, 메리에게, 그리고 일행들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사냥꾼을 모두 잡아라.”
그 순간.
타닥.
케일이 발을 굴렀다.
휘이잉.
그의 발목에 소용돌이 바람이 맺힌 순간.
“!”
케일은 화이언스 가주 코앞까지 순식간에 도달했다.
그는 가주를 보며 말했다.
가주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너네 사냥꾼은, 왜 우리 형님 집 망가트리냐?”
왜 로운 왕궁을 무너뜨렸냐?
응?
거기다가 국왕은 또 왜 건드려?
“왜 자꾸 우리 동네를 건드냐고, 응?”
케일의 손을 떠난 불벼락이 가주 화이언스를 덮쳤다.
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래서 내가 왔잖아.”
콰아아아앙—-!
굉음이 광장을 뒤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