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816
2부 58화
처음으로 대해를 마주했을 때처럼, 고요한 바다. 하지만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고요함이 주는, 벅차오르는 찬란함.
그것을 닮은 하얀빛.
반면에 언제 부서져도 상관없다는 듯, 난폭하면서도 제 몸을 다 태울 듯 타오르는 위험한 강렬함.
그것을 닮은 적금빛.
“뭘 보고 있어?! 도망치라고!”
멸망단 단원이 윽박지르듯 보챘다.
“하, 하지만-”
광장을 벗어나 멀리로, 최대한 멀리로 도망가던 제국민은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빛과 빛의 싸움.
이제 그 빛을 일으킨 사람은 보이지도 않았다.
“뭘, 하지만이야!”
“공작님이-”
“하, 진짜 답답하게 구네! 지금 딱 봐도 몰라? 누가 너희를 지키려고 하는지?”
“아는데, 아는데-”
“그런데? 뭐가 문제야! 얼른 이동하라고! 안 그러면 저 싸움 여파에 너도나도 다 죽어!”
멸망단 단원의 보챔에 제국민은 왈칵 미간을 찌푸리며 외쳤다.
“공작이 밀린다고!”
“뭐?”
“터무니없이 밀린다고!”
“어?”
“그냥 잡아먹히잖아!”
바다를 닮은 빛은 불길에 잡아먹히고 있었다.
멸망단 단원은 저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았다. 조금 전까지 제국민의 시선이 닿아있던 곳을 자신도 바라봤다.
적금빛이 움직이고 있었다.
하얀빛을 잡아먹으면서.
“어떻게-”
레독 화이언스는 하얀빛이 적금빛에 닿는 순간, 밀리는 것을.
그리고 저 적금빛 사이로 조금씩 피어오르는, 희미한 푸른빛 알갱이에 완전히 잡아먹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내 계산대로라면-”
보고서에 적혔던 케일 헤니투스의 힘 종류와, 하얀 모래 사막을 토대로 생각했을 때.
레독 화이언스의 힘은 케일 헤니투스를 이길 만큼은 되어야 이치에 맞았다.
‘아무리 상성에서 밀린다고 해도-’
그것을 감안하고, 그 상성조차 잡아먹을 정도의 크기의 힘을 일으킨 화이언스 가주였다.
응축하고.
또 응축하여 밀집시킨 이 하얀빛.
규모에 비하면 그 안에 밀집된 힘은 하얀 모래 사막의 규모를 넘어선다.
확실히.
“그런데 어째서-”
“왜, 밀리냐고?”
피식.
화이언스 가주는 바람 빠지는 웃음을 흘리는 케일 헤니투스를 볼 수 있었다.
적금빛에 휘감긴 채, 그는 입꼬리를 올렸다.
난폭한 힘에 어울리지 않는 나른한 미소.
“그거야, 네가 약하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
화이언스의 손이 움직였다.
그의 손을 따라 하얀빛에서 화살이 쏟아져 나와 케일에게로 향했다.
‘우리 가문이 만든! 오로지 이 세계에서 우리만이 창안한 백마법이! 이 위대한 마법이 고작 저 힘에 밀릴 리가 없다!’
죽은 마나. 그 검은빛을 지우고 하얀빛을 덧입힌 위대한 마법 운용법.
“말이 안 되기는.”
케일은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파지직. 파직!
케일을 둘러싼 적금빛에서 뻗어져 나온 전류가 화살과 부딪쳤다.
콰아앙-! 콰앙!
여러 번의 충돌과 함께 화살은 모조리 사라졌다.
하지만 전류는 살아남았다.
콰아아아앙—–!
전류가 하얀빛을 공격했다.
“크윽!”
폭발음과 함께 화이언스 가주는 세 걸음 뒤로 밀려났다. 실드를 둘렀지만, 그 실드는 깨졌다.
그 여파로 그는 밀려났다.
‘내가 밀려났다고?’
작은 부딪침이지만, 명백하게 싸움의 결과를 예측하게 해주었다.
‘저 힘은 나보다 강하다.’
레독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무명 1.’
그 세계에 존재했던 실험체, 통칭 ‘하얀 별’.
그 실험은 실패하였다.
사냥꾼들은 당연히 실패의 요인을 파악하려고 노력했고, 다수의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케일 헤니투스.
하얀 별 실험체가 쓸모없게 되어버린 결정적인 요인.
그렇기에 당연히 그 요인에 대한 전투력은 파악해두었다.
“나를, 나를 이길 수 없어야 맞다.”
정보에 따르면, 케일 헤니투스는 결코 그를 이길 수 없다.
‘그래서 신경 쓰지 않았다.’
별것 아니니까.
사냥꾼 내부에서 보았을 때, 케일 헤니투스 정도의 힘은 얼마든지 컨트롤이 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렇기에 무시했다.
언제든 짓밟을 수 있는 하찮은 존재에게 심력을 쏟을 이는 없으니까.
‘그래, 분명히 그래야 맞다.’
이놈은 절대로 이 불의 힘을 이만큼 쓸 수 없어야 맞다.
그런데 이만큼 힘을 쓴다고?
‘그 사냥꾼들’이 모은 정보가 틀렸다고?
그들이 거짓된 정보를 알릴 리는 없다.
그렇다면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화이언스 가주는 그 무심한 얼굴에 경악을 한가득 담은 채 케일 헤니투스를 바라봤다.
“…너, 힘을 숨긴 건가?”
응?
케일은 잠시 의아했다.
‘안 숨겼는데?’
케일은 힘을 숨기지 않았다.
-쟤 모래 사막도 봤으면서. 힘을 숨기기는! 쓸 만한 데는 다 쓰고 다니는데! 크하하하하! 왜냐면 기절을 안 하니까! 크하하하!
케일은 광기에 젖은 짠돌이의 말은 가뿐히 무시했다.
그는 오히려 가주에게 집중했다.
이상하다.
‘왜 저리 겁을 먹었지?’
가주는 경계심을 한껏 돋운 채, 케일에게 차마 공격을 못 하고 있었다.
그는 케일의 행동 하나하나를 모두 관찰하겠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넌 원래 이 정도의 힘을 쓸 수 없어야 맞다.”
그건 그렇지.
케일은 가주가 힘겹게 내뱉은 말에 속으로 긍정을 표했다.
‘나도 이상하거든.’
케일도 이렇게 파괴하는 불의 효율이 좋은 세상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래서 찝찝하지.’
그때, 조용하던 짱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빛이 강해지면 그림자가 길어지듯. 죽은 마나에 대한 반작용이 이 세상에서는 더 큰 힘이 된 것 같다.
-세상은 늘 균형을 이루려고 하니까.
나직이 짱돌은 덧붙였다.
-균형이 그래서 무섭지.
짠돌이가 뒤이어 말했다.
-크하하하! 어쨌든 좋은 일이니까 마음껏 즐기자고!
케일은 대책 없는 짠돌이의 목소리에 고개를 살짝 가로저었다. 그러면서도 화이언스 가주에게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하!”
화이언스 가주는 고개를 가로젓는 케일의 행동을 무엇으로 해석했는지 깊은 탄식과 같은 웃음을 짧게 터트렸다.
“그래, 내가 우습겠구나!”
음.
케일은 슬슬 움직일 준비를 했다.
화이언스 가주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케일이 긴장감을 의식적으로 끌어올리려는 그 순간, 화이언스 가주가 자조하듯 말했다.
“네 주력은 불의 힘이 아니지. 자주 사용하는 힘이 아니야. 그런데 그 불의 힘이 그 정도면, 다른 힘들은 어마어마하겠지.”
응?
“그러니, 내가 우습겠지. 하하, 정말 꼴이 우습게 되었어. 너는 고작 그렇게 판단할 놈이 아니었던 거야. 그래, 그러니 차원을 넘나들어 이 세계까지 와서 내 목을 노리는 것이겠지.”
잠깐만……?
우습게 본 건 맞다만, 나 지금 불의 힘만 뻥튀기된 거지. 나머지는 그대론데?
케일은 굳이 적의 착각을 정정하지 않고, 입을 꾹 다물었다.
“너, 케일 헤니투스. 너는 다른 가주들도 노리고 있겠지?”
화이언스 가주의 옷자락이 펄럭였다.
“재밌겠구나. 다른 놈들은 네 존재에 관심도 없거나, 알고 있다고 해도 나처럼 생각할 테니!”
“말 다 했냐?”
“……!”
케일이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그의 발목에는 이미 조금 전부터 준비해둔 바람의 소리가 머물러 있었다.
“시간 끌려는 수작을 모를 줄 알았냐?”
“크윽!”
화이언스 가주의 두 손이 다급하게 움직였다.
무언가 수인을 맺는, 마법 캐스팅을 하려는 것 같았다.
“다 보고 있었다니까? 그렇지?”
케일이 담담하게 누군가에게 물었다.
화이언스 가주는 등골이 서늘해져 왔다. 저 물음, 아무리 봐도 자신에게 한 것 같지가 않았다.
그때였다.
“……!”
발밑.
화이언스 가주는 바닥에서부터 치고 올라오는 은밀한 힘을 느꼈다.
케일 헤니투스의 적금빛에 시선이 사로잡히느라 느끼지 못했던 그 힘.
“이런!”
화이언스 가주가 맺고 있던 수인을 그만두고 바닥을 향해 두 손을 뻗었다.
“히히, 내가 더 빠르다!”
어린 목소리와 함께, 바닥에 검은 마법진이 나타났다.
마치 하얀빛 때문에 생겨난 그림자처럼.
촤아아악—!
검은 마법진에서 검은 나무줄기가 솟구쳐올랐다. 마치 9구역 밖에 존재했던 거대한 검은 나무의 줄기처럼, 넝쿨처럼.
솟아오른 나무줄기는 화이언스 가주의 발을 휘감고 타 오르기 시작했다.
“……!”
가주의 눈이 커졌지만, 그 대응은 침착했다.
그는 곧바로 또 다른 마법을 발동했다.
하얀빛을 머금은 검들이 생겨났다. 그 마나 검은 나무줄기를 모조리 잘라버리기 위해, 허공을 갈랐다.
파스스스—
하지만 이는 모두 사라졌다.
어떠한 폭발음도, 진동도 없이.
타닥. 타닥.
화이언스 가주는 바람을 타고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케일 헤니투스를 볼 수 있었다.
스슷—스스스—
그가 가까워져 올수록, 적금빛에 닿는 하얀빛들이 모조리 사라졌다.
그리고 하얀 재가 되어 공기 중으로 날아가 버렸다.
마치 불이 눈을 만드는 것 같았다.
“제길!”
레독 화이언스는 도망치려고 했다.
제물도, 의식 준비도 모두 끝났다.
이제 실행만 하면 되는데!
‘착오다!’
그는 자신의 실책을 깨달았다.
그는 적의 정보를 알고 있기에, 한발 앞서 적을 제압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큰 착각이었다.
정보가, 적에 대한 파악부터가 모조리 틀렸다.
눈앞의 저자는 자신이 상대할 수 없을 정도의 파괴적인 힘을 지녔다.
그것도 불뿐만 아니라, 여러 자연의 힘을 저 정도로 가졌다.
‘빌어먹을!’
이건 자신뿐만 아니라, 가문, 나아가 사냥꾼 전체에 큰 위협이 되리라.
콰직, 콰지직.
나무줄기는 그를 계속해서 옭아맸다.
하얀빛에 부서지면서도 그를 붙잡았다. 어떻게든.
당연히 그 상태로라도 최후의 수단으로 텔레포트 마법을 가주는 펼치려고 했다.
하지만 소용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얀빛은 길이 뚫렸다.
당연히 그것은 적금빛을 몰고 온 자에게만 열린 길이었다.
바람에 날리는 하얀 재 사이로, 화이언스 가주는 제 목을 움켜쥐는 손을 느꼈다.
그리고 웃는 얼굴을 볼 수 있었다.
파스스—
전류에 닿은 셔츠가 타 재가 되어 사라졌다.
“역시, 텔레포트는 수작이고, 이게 진짜지?”
가주의 몸이 검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황제처럼.
하지만 황제와는 달랐다.
화이언스의 눈동자는 또렷했다.
“흐음.”
케일은 대강 이런 형태가 무엇인지 짐작이 가능했다.
“폭주 같은 건가? 마지막 힘을 발출하는, 최후의 수단 같은 거?”
화이언스는 목이 잡힌 채 입을 열 수 없었다. 케일 헤니투스, 저자의 눈빛이 너무나도 차갑고 냉정했다.
“만약에 내가 너를 정화할 수 있다면, 너는 지금껏 쌓은 네 힘이 모두 사라지겠다. 그치?”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친근하기 그지없었다.
-케일! 사람이나 생명체에 스며들어 일부가 된 죽은 마나는 정화 못 해!
짠돌이의 말을 무시하며 케일은 화이언스의 눈을 마주하며 상냥하게 말했다.
“너희들이 모르는 내 힘을 또 가르쳐줄게. 내 이 불의 힘이 가진 숨겨진 비밀 말이야.”
화이언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는 케일이 말하는 바를 깨달았다.
“서, 설마- 죽은 마나에 감염된 사람도 정화가 가능한 건가?!”
경악에 가득 찬 음성에 케일이 씨익 웃었다.
“가능한지 아닌지 궁금하지? 알려줄까? 지금껏 네가 가진 내 정보는 다 틀렸잖아. 그러니 내가 친히 보여주고 싶은데. 진짜 내 힘을.”
그는 덧붙였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넌 뭐가 되는 거지? 죽은 마나가 사라진 너는?”
재밌다는 듯 웃는 케일의 모습에 화이언스 가주는 거대한 압박감을 느꼈다.
힘을 모조리 잃은 사냥꾼. 평범한 인간이 된 모습. 화이언스 가주는 떠올리기도 싫은 광경이었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나았다.
‘진심이다!’
저놈은 진심으로 나를 정화시키려고 한다.
화이언스는 케일을 진심으로 미친놈 보듯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두려웠다.
‘정말일까? 정말로, 인간이 흡수한 죽은 마나도 정화한다고?’
가만히 있던 짠돌이가 또 말했다.
-케일! 이미 죽은 마나와 함께하게 된 흑마법사나 네크로맨서는 정화할 수 없다니까! 중독된 사람도! 내가 해봤어! 그래서 죽은 마나 다 태워버리려고 대륙을 불태우려고 했던 거야!
-아, 좀.
짱돌이 드물게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좀 조용히 해! 보면 모르겠어? 지금 케일 저 녀석이 화이언스 가주 협박하는 거잖아.
-…그런 거야?
짠돌이가 머쓱해하는 와중에, 라온이 씩씩하게 말했다.
-인간아, 지금은 그렇게 웃으니까 든든하다!
케일은 라온을 비롯한 고대의 힘 목소리들을 흘려들으며, 화이언스 가주의 목을 잡지 않은 다른 손에 적금빛 전류를 머금었다.
“자, 해볼까?”
그는 검게 물든 화이언스 가주의 상체를 향해 적금빛 전류를 머금은 손을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