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817
2부 59화
다가오는 손을 보던 화이언스 가주는 문득 정화의 불 교황이 케일을 부르던 호칭이 떠올랐다.
정화자.
교황은, 교단에선 눈앞의 케일 헤니투스를 신처럼 떠받들었다.
하지만 화이언스 가주는 이자에 대한 정보를 기억하고 있었다.
‘다른 가주 놈들이라면 몰라도 나는, 분명히 읽었다!’
늘 한발 앞서야 한다는 생각에 작은 정보라도 어느 정도 기억해두었다.
그 정보에 따르면 눈앞의 케일 헤니투스는 실험체인 하얀 별을 막아냈지만, 운 좋게 고대의 힘을 다수 보유한, 망나니였던 과거를 지닌 평범한 자에 불과했다.
‘…아니지.’
그 정보가 거짓일 수도 있잖아?
지금껏 그가 가진 이자에 대한 정보는 모두 틀렸다.
전제가 틀렸다는 것을 깨닫자, 온갖 상상이 밀려들어 왔다.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 놈이니, 내 죽은 마나를 모조리 정화시켜 내 몸을 평범한 몸으로 되돌리지 않을까?’
나를 흑마법사가 아닌, 무엇도 못 하는 무능하고 약한 일반인으로 만들어버리지 않을까?
그렇다면.
‘나는 이놈을 막을 수 있을까?’
자신이 폭주한다고 해도, 이놈과 비등한 싸움을 할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내 세력은? 내가 가진 모든 세력으로 이놈과 그 동료들을 막을 수 있을까?’
그 순간이었다.
쿠웅-!
케일의 손이 멈췄다. 그는 덤덤하게 말했다.
“빠르네.”
화이언스의 시선이 움직였다.
그는 케일과 같은 감상을 내놓았다.
‘…빠르다.’
흑골뱀의 머리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검은 뼈는 깔끔하게 절단되었다.
뒤이어 거대한 뱀의 몸체가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쿠우우우–!
묵직한 진동과 함께 쓰러진 흑골뱀은 그 몸체를 꿈틀거렸다. 어떻게든 더 움직이려는 듯.
하지만 그 위로 거대한 흑룡이 내려섰다.
쿠웅-!
흑룡은 머리를 잃고 꿈틀거리는 흑골뱀을 짓밟으며 태연하게 고개를 숙였다.
머리 위에서 한 사람이 땅으로 내려섰다.
최한이었다.
촤악.
그가 검을 털자, 검날에 묻어있던 흙먼지들이 떨어져 나갔다.
“메리, 쉴 틈이 없어.”
흑룡의 빛나는 검은 눈을 보고 말한 최한의 시선이 광장 곳곳으로 향했다.
도망치는 제국민들 사이로.
사냥꾼들이, 화이언스 가주의 수하들이 도망치고 있었다.
“이야, 대단하네!”
여유로운 음성과 함께 최한의 곁으로 용병 제로가 다가왔다. 시선을 돌린 최한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왜? 멋지지?”
그는 온몸에 피를 두르고 있었다.
본인은 부상이 없었다. 모두 타인의 피였다.
“크큭. 너희들, 너희 모두, 강하구나.”
제로의 눈동자가 일렁였다.
“아주 강해.”
최한은 맛이 살짝 간 듯한 눈동자에 시선을 돌렸다.
저놈한테 신경 쓸 틈이 없었다.
“현황은?”
대신 현재 상황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입을 열었을 뿐.
“큭. 순한 놈인 줄 알았더니, 제일 날카롭네.”
제로는 능글맞게 답하더니, 피에 젖은 더벅머리를 뒤로 젖혔다. 그의 잿빛 눈동자가 흑룡 아래에서 점점 움직임이 멈춰 가는 흑골뱀에게로 향했다.
“교단과 올리비아 황녀는 제국민 대피에 신경 쓰기로 했다. 그리고 올리비아 황녀를 중심으로 한 일부는 황궁으로 갈 거다.”
제로는 스스로를 가리켰다.
“그리고 우리는 사냥꾼을 상대 중이지. 전투 위주의 신도들과 함께.”
“교황은?”
교황과 더스트 신관이 보이지 않았다.
“안 그래도 그것과 관련해서 전할 말이 있어서 왔다.”
미친 듯이 싸우던 제로가 최한과 메리 곁으로 온 것은 따로 이유가 있었다.
“사냥꾼들이 모두 화이언스 저택으로 도망가더라고. 아무래도 그곳에서 뭉쳐서 싸울 작정인 듯싶다.”
“…그래서?”
“여기서 싸우면, 일반인들이 피해를 많이 입을 것 같고. 또 주변 곳곳이 엉망이 될 것 같아서. 한곳에 모아두고 싸우기로 했다.”
제로는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대부분의 화이언스 세력은 상대 가능하지만. 사냥꾼이라는 놈들은 아주 강하더군. 소드 마스터 같은 존재들은 우리가 상대할 수가 없어.”
“그들도 도망을 갔다고?”
“그래. 아무래도 화이언스 저택에 지킬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았어.”
제로는 최한과 메리 쪽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러니, 함께 가서 싸우자. 미안한 말이지만, 너희들이 저쪽의 소드 마스터를 비롯한 강자들을 상대해주면 좋겠군.”
“그자들이 갑자기 도망갔나?”
“아니.”
제로는 단상 쪽을 가리켰다.
“우리 정화자님한테 화이언스 가주가 잡히는 순간, 도망가던데? 안 그랬으면, 우리 쪽 사상자가 많았을 거야.”
그는 히죽거리며 입꼬리를 올렸다.
“우두머리의 목숨이 간당간당하니, 안 되겠다 싶어서 도망친 것이겠지.”
“…아냐.”
“응?”
최한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로는 그의 표정을 보고 절로 얼굴이 굳었다.
“…표정이 왜 그렇지?”
그가 의문을 드러낸 순간, 이미 메리는 흑룡을 향해 손을 뻗었다.
검은 용이 다시 날개를 펄럭이며 하늘로 올라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제로.”
최한의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사냥꾼은 도망가는 게 아니다.”
소드 마스터를 비롯해 자세히는 못 봤지만, 그 정도 급의 실력을 지닌 궁사, 권사 등을 본 최한이었다.
물론 소드 마스터 안에도 실력 차가 존재했기에, 최한이 지겠다 싶은 이는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그 정도 실력자 사냥꾼이라면-
“그들은 업을 바치면 돼.”
그러면 도망칠 수 있다.
다른 차원으로.
케일을 비롯한 그들의 일행이 가장 경계한 것이 바로 그 업을 바치는 행위였다.
다른 차원으로 도망가면 일이 귀찮아지니까.
‘케일 님이 분명 교단 사람들에게 사냥꾼들이 업을 바친다는 말을 하면 그 즉시 무슨 수를 쓰더라도 막고 보고를 하라고 일러뒀어.’
그렇다면, 저 사냥꾼들의 도망은-
“도망이 아냐.”
화이언스 저택으로 간다고?
‘거기에 뭔가 있다!’
분명 드래곤 아페와 함께 저택을 둘러본 최한이었다.
‘하지만 드래곤 아페는 모르는, 사냥꾼들만이 아는 무언가가 있을 수도 있어!’
그것도 화이언스 가주가 케일에게 사로잡히는 순간, 행동할 만한 무언가가!
‘안 좋다.’
예감이 좋지 않다.
“메리, 나는 보고하고 오마.”
“네. 저는 바로 저택으로 가겠습니다.”
“어, 어? 뭐야?”
용병 제로는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그는 이미 흑룡에게 뒷덜미가 잡혀 메리와 함께 하늘로 솟구쳤다.
최한은 저택으로 향하는 메리를 보며 빠르게 단상으로 향했다.
케일. 그에게 이 상황을 보고해야 할 것 같았다.
그 순간, 최한은 케일이 레독 화이언스의 머리칼을 움켜쥐는 것을 보았다.
가주의 백발을 움켜쥔 손에서는 무엇이든 녹여버릴 것 같은 적금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으, 으윽-”
레독 화이언스의 입에서 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의 눈동자가 어떻게든 제 머리 위를 보려고 했다. 제 머리칼을 움켜쥔 케일의 손을 보려고 했다.
케일은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레독 화이언스. 걱정하지 마.”
그의 입가에 다정한 미소가 걸렸다.
“나는 널 죽일 생각은 없어. 꼭 살려둘 거야.”
“……!”
레독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에 케일의 미소가 더 짙어졌다. 아니, 화사해졌다.
‘죽일 수 없지. 왜냐면 물을 게 많거든.’
케일은 화이언스 가주에게 물을 것이 참 많았다.
로운 왕국을 왜 공격했냐.
국왕은 어떻게 된 것이냐.
그리고 공작가를 왜 불태웠으며, 공작가 1공녀와 막내 공녀는 어찌한 것이냐.
케일은 상냥한 어조로 화이언스의 머리칼을 움켜쥔 채 속삭이듯 말했다.
“꼭 데리고 다닐게.”
혈교 7호랑 같이.
사아아아—
바람과 함께 화이언스 가주의 하얀빛은 실시간으로 소멸되어 갔다.
대신 적금빛을 타고서 흘러나온 하얀 재가 광장 하늘을 수놓았다.
-인간아, 또 든든하게 웃는다!
케일은 라온의 목소리를 흘려들으며 한마디 툭 내뱉었다.
표정은 사라졌다.
“이제, 해볼까?”
파지직.
전류가 일어나며, 케일의 손은 백발을 놓았다. 대신 검게 물든 화이언스의 어깨로 천천히 움직였다.
“……!”
경악과 두려움에 가득 찬 화이언스 가주의 눈동자는 다가오는 적금빛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더불어 자신을 압박하는 케일의 기세에 짓눌릴 듯 숨이 막혀왔다.
파직.
“크윽!”
적금빛에서 흘러나온 전류가 살짝 어깨에 닿았다.
결국 화이언스 가주의 입이 열렸다.
“그, 그만-!”
화이언스가 그리 외친 순간, 케일은 가주 모르게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걸려들었구나, 케일.
짱돌의 말에 슬쩍 고개를 끄덕이며.
-인간아, 할배가 무덤 다 털었다고 했다! 강시들 다 텔레포트 시켰다고 한다! 역시 금 용 할배도, 소심한 아페도 대단하다!
라온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케일은 가주에게 다정히 물었다.
“왜? 정화하면 좋잖아. 응?”
“이, 이 미친놈-!”
레독의 눈에 독기가 서렸다.
“네놈의 수작을 모를 줄 아냐!”
모르는 것 같던데.
“힘을 숨겨온 네놈의 음흉함에 더 이상 속지 않는다!”
…거봐. 아직 모르고 있네.
“날 정화시킨다고 해도 나는 절대로 입을 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를 처리한다고 다 끝인 줄 아나 보지?”
크큭.
레독은 낮은 웃음을 흘리며 입꼬리를 한껏 비틀어 올렸다.
“이미 의식을 위한 과정은 시작되고 있다! 나는 죽을지언정, 이 세계는 멸망할 것이야!”
뒤이어 케일은 최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케일 님!”
그는 케일의 등을 보며 말했다.
“사냥꾼들이 화이언스 저택으로 도망치고 있다고 합니다! 아군은 그곳에 사냥꾼들을 한데 모아 전투를 벌일 작정인 것 같은데, 제가 보기에는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크크크-”
레독이 웃었다.
“내가 너보다 약할지언정, 내, 우리의 집념을 우습게 보면 안 되었어.”
그는 케일을 향해 한껏 입꼬리를 올렸다. 비웃듯이.
“검은 나무. 그게 끝인 줄 알지? 크흐흐흐-!”
그는 자신을 구속한 검은 나무줄기를 보며 외쳤다.
“세계를 멸망시키려면, 이 땅이 모두 검게 물들어야지!”
쿠우우웅——!!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거대한 진동이 수도에 울려 퍼졌다.
-인간아!
케일은 라온의 경악에 가득 찬 음성을 들었다.
“…이런……!”
최한이 깊은 침음을 흘렸다.
화이언스 저택이 있을 것이라 짐작되는 곳에서 무언가 검은 것이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진흙과도 같은.
무엇인지 정확히 형태를 파악할 수조차 없는 거대한 검은 덩어리. 그것은 보는 것만으로도 불쾌함과 끔찍함을 느끼게 만들었다.
무엇보다도 그 크기가 아주 컸다.
계속해서 치솟아 오르는 검은 무언가.
마치 하나의 거대한 언덕이 실시간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언덕이 아니라 산이라도 될 것만 같았다.
그 언덕은 점차 황궁으로 방향을 틀며 삽시간에 몸집을 키워갔다.
“레독 화이언스.”
가주는 저를 부르는, 케일의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에 입꼬리를 올렸다.
드디어 이놈의 당황한 얼굴을 보겠구나!
“저 검은 거, 저거 말고도 더 있지?”
“크크큭, 그래! 이 세계 곳곳에 지금 저것들이 곧 움직일 거다!”
드래곤 아페는 저것을 몰랐다. 그것은 우리 사냥꾼이 아닌, 고작 말에 불과하니까.
가주는 저택을 침입한 것도 케일이라는 것을 알아챘고, 때문에 이 상황을 조금도 짐작하지 못한 케일이 어떤 반응을 할지, 얼마나 당황할지 눈에 선했다.
“원래라면 시일을 두고 진행하려고 했지만, 네놈 때문에 이렇게 되었구나!”
‘저것’들은 화이언스 저택의 것을 시작으로 순차적으로 작동할 것이다.
시행 연습용이었던 검은 나무처럼. 다양한 형태의 저 검은 것들이 움직일 터.
레독은 비틀어진 웃음을 지은 채 외쳤다.
“네놈들 때문에 이 세계는 빨리 멸망을 겪겠구나! 아무리, 네가 하얀 모래 사막을 만들 만큼 정화를 할 수 있다고 해도! 나를 제압할 수 있다고 해도! 저건 못 막아!”
그는 자신을 우습게 본 케일을 비웃었다.
“300년을 우습게 보면 안 되지. 그동안, 준비한 것이 얼마나 많은데.”
그리고.
“아무리 너라도 이 세계 전체를 다 막을 수 없겠지! 한 시간이면, 모두 다 움직일 테니까! 크하하하- 컥!”
레독의 웃음이 멈췄다.
“크아아악—!”
그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파지직-!
그의 어깨는 케일의 손아귀에 잡혀, 적금빛으로 뒤덮여졌다.
“참, 시끄럽네.”
케일은 담담하게 말하며 최한을 바라봤다.
“이놈, 기절시켜 놓을 테니까. 아무것도 못 하게 해놔.”
“…가실 겁니까?”
최한의 나직한 물음에 케일은 잠시 침묵했다.
-케일, 저 검은 거, 심상치 않다.
파괴하는 불이 말했고.
-한 시간 내에 전 세계에 있는 모든 저 검은 것이 움직이나 보구나. 시간이 많지 않아.
짱돌이 뒤이어 한 말에 짠돌이가 다시 말했다.
-그래도 저 ‘검은 것’들만 없애는 조건이라면 어렵지 않을 거야. 우린 여기서 무적이니까! 크하하하하! 어때, 케일?
짠돌이는 광기 어린 어조로 외쳤다.
-진짜로 전 대륙을 불태우겠구나! 크하하하하하하!
케일은 어느새 모습을 드러낸 라온과 저를 바라보는 최한을 향해 툭 내뱉었다.
“갔다 올게.”
라온이 한숨을 폭 내쉬었다.
“…인간, 기절 안 하고 피 안 토한 지 좀 오래되긴 했다.”
케일은 미간을 찌푸렸다.
“기절 안 하고, 피도 안 토해.”
하얀 모래 사막은, 검은 나무를 정화하는 것 이상의 힘을 써서 일대를 다 정화한 경우였다.
힘 50으로 만든 2,500의 효율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정확한 목표물 파괴와 속도가 중요하다.
그러니 작은 힘으로 최선의 결과를 내는 것이 케일의 머릿속 계획이었다.
그때였다.
피식.
“……!”
케일은 처음으로 라온이 저를 보며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 웃는 것을 보았다.
“진짠데?”
피식.
라온이 못 믿겠다는 듯 또 피식 웃어 보였다.
케일의 눈동자가 이 세계에 와서 처음으로 흔들렸다.
“…라온이 점점 케일 님을 닮아가는군요.”
최한이 기절한 레독 화이언스를 꽁꽁 묶으며 한숨과 함께 말했다.
“어쨌든 서두르죠.”
“…어… 그래야지.”
케일은 뭔가 이상했지만, 일단 서둘러 화이언스 저택으로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