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820
2부 62화
10장. 집으로 돌아왔더니
케일의, 정화자의 동상을 세우기로 했다는 교황은 왠지 모르게 기분이 아주 좋아 보였다.
“그럼 이만 저는 황궁으로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동상 시안이 나오는 대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정화자시여!”
“…….”
“참고로, 교단 내에서 정화자께서 정화를 한 모든 구역에 기념비를 세우자고 황궁에 건의안을 작성 중입니다.”
“…….”
“하하하!”
웃는 걸로 보아 확실히 기분이 좋아 보였다.
케일은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현재 수도 상황은 어떤지-”
그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삐이이–
교황은 품에서 흑마법 영상통신구를 꺼내 들었다.
“이런, 황궁에서 연락이 와서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도 잠시 틈을 내어 나온 것이라.”
아쉽다는 표정으로 교황은 케일에게 말했다.
“역시 정화자께서는 동상 같은 것들보다 수도의 안위가 중요하시군요. 역시, 정화자이십니다! 하하하하-!”
케일은 생각했다.
‘왜 이리 기분이 좋아 보이지?’
교황이 이렇게 웃음이 많던 사람인가?
케일은 이상하게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편한 얼굴로 웃고 있는 교황을 보는 내내 무언가 찜찜했다.
“그럼, 자세한 이야기는 여기 계신 분들께 들어도 될 터이니, 저는 먼저 가보겠습니다.”
하하하.
교황은 웃음과 함께 사라졌다.
“…….”
침묵으로 뒤덮인 방에서 케일은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푸흐.”
웃음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팀장 수이 칸이 웃음을 참다가 케일에게 딱 걸렸다.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궁금한데.”
케일의 입이 열렸고, 스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최한이 멈칫했으나, 아쉽게도 여기엔 최한을 제외하면 케일의 스산한 목소리에 움찔하는 반응조차 하지 않을 이들뿐이었다.
“이쪽 이야기보다 케일, 너에게 먼저 묻고 싶은 것이 있구나.”
에르하벤이 대충 의자 하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현재 그들이 있는 공간은 정화의 불 교단 비밀 안가였다.
여전히 그들은 이곳에 머무르고 있었다.
고룡은 케일의 안색을 살피며 입을 열었다.
“어째서 하루가 걸린 것이지?”
동, 남, 북. 끝마을 구역 밖에 생겨난 거대한 괴물.
각기 악어, 새, 사자의 모습을 하고 있던 괴물들을 케일은 꼬박 하루 동안 상대하다가 지금 막 돌아왔다.
“서쪽 검은 나무와 수도에 있던 괴물을 처리하는 것은 금방이었잖아?”
“맞습니다. 그런데 하루 동안 계속 괴물을 상대하는 중이라고 말씀하셔서, 그 연유가 궁금합니다.”
최한이 에르하벤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아, 그게.”
케일은 잠시 난감한 표정으로 손가락으로 이마를 긁적였다. 그때, 가만히 있던 이들이 입을 열었다.
“우리가 무리하지 못하게 했다!”
“우리가 쉬면서 하게 했는데!”
“적절한 휴식을 동반해야 한다고 배웠는데.”
다다다 말이 쏟아졌다.
라온, 홍, 온이 순차적으로 말하며 묘하게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온 빼고.
“…정말로?”
에르하벤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케일을 쳐다봤다.
‘네놈이 정말 쉬면서 일했다고?’
그렇게 그의 표정이 여실히 말해주고 있었다.
케일은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쉬면서 했죠.”
“이야.”
에르하벤이 저런 감탄사를 흘리는 것을 케일은 처음 보았다.
케일은 그 모습이 왠지 모르게 얄밉게 느껴졌으나, 일단 해야 할 말이 있었다.
“물론 다른 이유도 있었습니다.”
“다른 이유?”
“네. 그건-”
똑똑똑.
케일의 말은 이어질 수 없었다.
교황이 떠나며 닫혔던 문 너머로 교황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정화자시여.”
다시 모습을 드러낸 교황이 난감한 어조로 말했다.
“2황녀께서 뵙기를 청하십니다.”
그녀는 다른 이들에게도 시선을 두었다.
“다른 분들도 함께요.”
케일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제가 황제 위를 이어받기로 했어요.”
케일은 올리비아 2황녀가 마련한 자리에 앉자마자 그녀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렇군요. 축하합니다.”
케일의 담백한 인사에 올리비아는 쓴웃음을 흘렸다.
황제와 정면으로 부딪쳤던 올리비아. 그녀가 다음 황제가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빠르든 늦든 그렇게 나올 결말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앞으로 제국을 다스릴 생각을 하면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축하라. 그런가요?”
제국을 정상으로 되돌리는 것부터 시작해서.
화이언스 가문이 이 세계의 오염 원인 제공자인 것이 밝혀지게 되면서, 그 가문이 있는 제국은 전 대륙적으로 책임을 져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
물론 현재 대륙에서 제대로 기능을 하는 국가 중 제국이 그나마 가장 온전한 상태인지라, 제국을 공격하는 타국은 없겠지만.
제국은 오랜 시간 책임을 느끼며 이 대륙을 되돌려야 할 의무가 생겼다.
“원했던 자리 아닙니까.”
담담한 목소리에 올리비아는 두 손에 힘을 주었다.
“…그렇죠. 내가 원했죠.”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녀가 황궁에 마련한 은밀한 회의실에 자리한 이들을 바라보았다.
올리비아를 비롯한 1황자와 4황자까지 포함된 황가 쪽 사람들.
그녀의 측근들.
용병 제로를 비롯한 멸망단 수뇌부.
정화의 불 교단의 교황과 주교 몇 명.
마지막으로 정화자와 그의 동료 일부.
“정화자께서 괴물들을 모두 해치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네.”
“변경백들이 모두 소식을 전해주더군요.”
긴급 소식이었기에, 수도가 엉망인 와중에도 올리비아는 그 소식들을 시시각각 받아볼 수 있었다.
“…정화자시여.”
올리비아는 잠시 멸망단 수장 제로와 눈이 마주쳤다.
두 사람은 잠시 시선을 교환했다.
그녀는 긴장감으로 입안이 바짝 말라 갔지만, 입을 열었다.
“혹 다른 곳의 정화를 부탁해도 되겠습니까?”
올리비아는 케일의 눈동자를 바라봤다.
무심한 눈동자.
저 눈빛을 한 자가 이룬 업적들.
그는 세상을 하얗게 만들 힘을 지녔다.
화이언스 가문처럼 반짝이는, 성스러워 보이는 하얀빛이 아닌.
누구나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만질 수 있는 눈처럼 하얀 재를, 하얀 모래를 만들 수 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 이 세계가 원하던 정화자의 모습이 아닐까.
그러니, 이 사람을 잡아야 한다.
부탁해야 한다.
“무언가 대가를 원하신다면,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그리고 정화를 하며 이곳에 머무르시는 동안 부족함이 전혀 없도록 일행분들까지 잘 모시겠습니다.”
다음 대 황제가 되어야 할 사람이었지만, 올리비아는 고개를 숙였다.
“부디 이 땅을 조금 더 정화해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이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원래 이 세계의 사람이 아니고,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그것을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이 알고 있었다.
“황녀님-”
“부디, 한 번만 깊이 생각해주십시오. 전 대륙의 정화를 책임져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올리비아는 말을 하려는 케일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 애쓰며, 최대한 간절히 청했다.
“다만 1년 만이라도 이곳에 더 머물러-”
그때, 정화자의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힘을 잃었습니다.”
“…네?”
올리비아의 눈이 커졌다. 그녀는 자신이 들은 말을 제대로 인지도 하지 못한 채 케일을 바라봤다.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용병 제로와 교황까지 놀라서 그를 바라봤다.
“음. 정확히 말하자면.”
하지만 케일은 담담했다.
“힘을 잃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것이 무슨-”
믿을 수 없어 하는 올리비아에게 케일은 도리어 물었다.
“변경백들에게 보고를 듣지 못했습니까?”
“네?”
“제가 괴물을 상대하는 시간이 점점 더 길어졌다는 말을 들으셨을 텐데요?”
“…듣긴 들었습니다만.”
올리비아는 더듬더듬 말했다.
“그, 그건 괴물들의 힘이 점점 더 강해져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어서-”
악어, 새, 사자.
단순히 괴물의 형태를 듣기만 해도 나무나 언덕에 비하면 더 강할 것 같았다.
“아닙니다. 검은 나무나 검은 언덕에 비하면, 나머지 세 괴물들은 약했습니다.”
확실히 약했다.
“다만 제 힘이 점점 더 줄어들고 있고.”
정확히 말하면 힘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힘을 사용하여 발생하는 효율이 줄어들고 있었다.
힘 1을 사용하면 50의 결과가 나오던 게, 마지막에는 10의 수준으로 떨어졌다.
“한번에 정화를 할 수 있는 범위도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케일이 순식간에 검은 나무와 검은 언덕을 없앴던 때와 달리, 이번에는 하루가 꼬박 걸렸다.
‘힘 효율이 떨어지니, 어느 정도 회복 시간을 두면서 천천히 괴물을 상대해야 했지.’
그래도 다행히 시간이 부족하지 않았고, 서쪽 변경백의 경고를 받은 다른 변경백들이 제대로 준비를 해둬서 큰 인명 피해 없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정화자시여, 그 연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교황의 떨리는 목소리에 케일은 생각에서 빠져나왔다.
“으음.”
힘의 효율이 줄어드는 이유라.
-케일, 아무래도 그게 맞는 것 같다.
명확한 답을 모르는 케일이었지만, 짱돌과 그 문제에 대해 대화를 나눴었다.
-처음 우리가 생각했던 대로, 이 세계는 죽은 마나가 워낙 강성하다 보니 그 균형을 맞추기 위해 자동적으로 파괴하는 불의 힘 효율이 좋아졌던 것 같다.
빛이 강하면 그림자가 짙어지듯.
죽은 마나에 오염된 세계가 빛이었다면, 케일의 파괴하는 불이 그림자였다.
-하지만 화이언스 가문이 몰락하고, 괴물들을 잡아들이면서 일부 땅이 정화가 되었다.
‘그래서 파괴하는 불의 힘 효율이 점점 줄어들어 갔던 것이겠지.’
-그래. 내 생각도 그렇다.
케일은 이 추측이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명확한 답이라 확신하지 않았기에.
‘그리고 이 사람들한테 구구절절 다 설명할 필요도 없고.’
그렇기에.
“그냥-”
케일은 과정을 뺀 결말만 내뱉었다.
“그냥, 그렇게 되었어야 할 일이었겠죠.”
너무 결과만 말했나 싶어 케일은 덧붙였다. 조금 더 친절한 설명을.
“이 세상이 정화될수록 제 힘은 줄어들 겁니다.”
그리고 결국 원래의 파괴하는 불 정도의 위력만 내겠지.
-케일,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이냐?
에르하벤의 물음이 머릿속에 들려왔고, 케일은 슬쩍 고개를 끄덕이며 답을 대신했다.
그는 에르하벤을 비롯한 최한과 메리의 표정이 평온한 것을 볼 수 있었다.
-아쉽진 않나?
에르하벤의 물음에 케일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딱히.’
아쉽기는 했지만, 어차피 꽁으로 얻은 힘이다.
검은 피 가문을 제대로 압도할 수 있게 해주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음?’
고개를 가로젓던 케일은 제로와 눈이 마주쳤다.
용병 제로는 평소처럼 미친놈 같은 웃음을 짓는 대신, 한껏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힘을 많이 써서 그렇게 된 겁니까?”
“글쎄요.”
케일은 명확한 답을 내릴 수 없어, 대충 말하며 답을 피했다.
“…아니라고는 안 하는군요.”
제로는 작게 중얼거렸다.
케일은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사실 그렇잖아?’
이 세계를 오염시킬 괴물들을 없애고 정화하여 균형을 맞춘 것도 다 힘을 써서 그런 것이니까.
제로의 말은 어느 정도 정답이었다.
피식.
질문을 던졌던 제로는 곧 얕은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그 웃음은 비웃음도 기쁨도, 무엇도 담기지 않은 어딘가 공허한 웃음이었다.
‘왜 저래?’
케일이 의아해서 제로를 쳐다보았으나, 제로는 천장을 보며 중얼거렸다.
갑갑함을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 찡그린 얼굴로.
“제기랄. 결국-”
제로는 이어질 말을 속으로 삼켰다.
‘결국 스스로를 희생한 거였잖아.’
그는 분명 비틀거리던 케일을 보았다. 그리고 정화자의 희생에 대해 언급하던 메리도.
시선을 다시 내리던 제로는 교황과 눈이 마주쳤다. 교황은 눈을 감았다.
“정화자시여.”
깊은 탄식이 섞인 목소리였다.
“…얼핏 듣기로는 정화자께서 상대해야 할 적이 아직 다른 세계에 많다 들었습니다.”
교황은 케일의 눈을 쳐다보지 못한 채 말을 이었다.
“그래도, 그럼에도 괜찮으신 겁니까?”
그녀는 간신히 덧붙였다.
“…힘을 잃어도.”
힘을 잃어도, 괜찮으십니까?
교황의 말이 끝난 순간, 회의실 안의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검은 피 가문.
그곳은 정화자 일행이 아니었다면, 결코 상대할 수 없을 정도의 강한 집단이었다.
그런 적을 큰 피해 없이 무사히 상대할 수 있었던 것은 정화자의 압도적인 힘 덕분이었다.
그 힘을 정화자가 점점 잃어간다.
그래도 괜찮은 것일까.
교황은 본인이 물었지만, 케일이 무슨 답을 할지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괜히 물은 것일까.
그런 생각마저 들었을 때.
답은 금방 들려왔다.
“당연히 괜찮죠?”
무심하고 투박하면서도, 흔들림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교황은 케일을 바라봤다.
그의 눈동자는 평소처럼 고요했다.
케일은 말했다.
“안 괜찮을 게 뭐 있습니까?”
어차피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뿐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