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824
2부 66화
창백해진 케일의 안색에 올리비아가 반응했다.
“괜찮아요? 안색이 너무 창백한데.”
케일은 곧바로 입을 열었다.
“안색이 문제가 아니라,”
“문제가 아니라니요.”
올리비아는 단호한 얼굴로 말했다.
“큰 문제죠.”
뒤이어 그 표정에 미안함과 안쓰러움이 나타났다.
“…요 며칠 내내 무리를 하였으니, 힘드실 만합니다. 푹 쉬세요. 나머지 일은 저희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요.”
“아니-”
지금 진짜로 안색이 창백한 게 문제가 아니라니까?
뭐?
성대한 환송식?
‘나는 그런 거 딱 질색이라고!’
케일은 얼른 사실관계를 정정하고, 제 의견을 말해야겠다 싶어 입을 열었다.
“전 건강합니다.”
정말로.
요 근래 들어, 가장 컨디션이 좋은 상태다.
피도 안 토했고, 기절도 안 했다. 더불어 여기서는 잠도 꽤 잘 잤다.
이건 평균 9세가 증언할 수 있는 부분이다.
“정화자시여, 건강하다기에는-”
올리비아가 뭐라 말하려고 했지만, 케일은 무시했다. 눈앞의 사람이 확정적인 차기 황제이지만, 그게 알 바가 아니었다.
“성대한 환송식 필요 없습니다.”
“…….”
케일이 말한 순간, 올리비아가 입을 딱 다물었다.
“…하아.”
그러고는 곧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으며 노신관 더스트에게 말했다.
“이래서 제가 기밀로 부탁드렸잖습니까.”
“…그러게요.”
노인의 힘없는 목소리에 케일의 시선이 더스트에게로 향했다가 흠칫 어깨를 떨었다.
“정말이지. 정화자께서는-, 참, 진짜. 하!”
혼자서 별별 감탄사를 다 내뱉으며, 노신관은 손으로 두 눈을 가렸다.
‘왜 저래?’
케일은 더스트의 저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알 수 없는 불안함이 밀려왔다.
‘이 노인네, 진짜로 데리고 돌아가야 하나?’
왠지, 왠지 모르게 이 노신관을 데리고 갈 바에는 차라리 죽음의 신을 데리고 돌아다니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이상한 예감까지 들었다.
“정화자시여.”
그때, 케일은 올리비아의 목소리에 가까스로 더스트에게서 시선을 떼어 그녀를 바라봤다.
“그러면 이렇게 생각해주세요.”
“무엇을 말입니까?”
“저희가 하는 환송식. 그건 정화자님을 위한 것도 있지만, 우리를 위한 것도 있다구요.”
“…음.”
케일이 침음을 흘렸다.
“환송식을 시작으로 하여 며칠간 축제를 벌일 계획입니다. 그럴 때가 아닐지 몰라도, 사람들에게 세상이 바뀌는 시작점을 알려야 할 필요가 있으니까요.”
케일은 말하고 싶었다.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그냥 축제 따로 하고, 나는 그냥 조용히 가고 싶다니까?’
로운에서 이곳으로 올 때도 조용하게 출발한 케일이었다.
“더 이상의 말씀은 듣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올리비아가 더 이상 이야기를 듣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그녀는 씁쓸한 어조로 덧붙였다.
“이렇게 해야, 당신은 누릴 수 있을 테니까요.”
“네?”
“…아니에요.”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참 어쩔 수 없는 사람을 보듯 케일을 보며 말했다.
“당신은, 돈이 있어도 권력이 있어도 그걸 누릴 방법을 모를 사람 같아요.”
뭔 헛소리야?
케일은 자신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소리에 기가 찼다.
그 순간, 더스트 신관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화제를 전환하려는 의도였다. 올리비아와 눈을 슬쩍 맞추며, 케일의 시선을 돌리려는 의도가 보여, 케일은 다시금 환송식 거부 의사를 밝히려 했지만.
더스트 신관의 입에서 나오는 새로운 화제는 일단 들어봐야 하는 내용이었다.
“강시 문제가 해결될 것 같습니다.”
더스트는 저에게로 확실히 향한 케일의 시선에 슬쩍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요?”
“조금 전 교황님께서 ‘온기’를 내려받으셨습니다.”
“온기요?”
“네. 정확히 말하면 성물인데, 신전으로 가시겠습니까? 교황님께서 보여드리고 설명하겠다 하셔서요.”
“음.”
귀환 전까지 주어진 시간 3일.
그 3일이 촉박하다고 느낀 가장 큰 이유는 강시였다.
이 강시들을 어찌 처리하면 좋을지, 혈교 7호와 황제를 협박하며 방법을 강구했지만. 3일은 부족한 시간인지라 고민이 많았다.
안 그래도 황궁 측에서는 강시들을 화장하여 제대로 된 장례를 치르겠다고 하였지만, 이래저래 고민거리로 남은 상태였다.
이왕이면 강시가 아닌, 원래의 모습인 채로 장례를 치르는 편이 좋지 않겠냐는 말이 계속 나왔으니까.
“좋습니다. 가죠.”
“네, 모시겠습니다.”
케일은 더스트를 따라가기 전, 올리비아를 바라봤다.
“제 의사는 전달했습니다.”
“네. 그 겸손하고 배려심 깊은 마음. 마음만 잘 받겠습니다.”
“…….”
케일은 황녀의 대답에서 더는 말이 통하지 않겠다는 것을 직감했다.
-케일, 그냥 누리자.
짱돌의 웃음기 섞인 목소리는 무시했다.
올리비아 인사도 무시했다.
“부끄러워하시기는.”
뒤에서 들려오는 올리비아의 목소리에, 더스트 신관의 나지막한 웃음소리에.
케일은 진심으로 생각했다.
‘뜨고 싶다.’
그냥, 집에 가고 싶다.
차라리 방패 공자를 외쳐대는 로운이 낫다.
역시 뭐로 보나, 집이 낫다.
케일은 오랜만에 고향이 그리운 마음이 일었다.
* * *
하지만 교황을 만난 순간, 케일은 잠시 고향 생각을 뒤로 미뤄뒀다.
“으음.”
“호오.”
수이 칸이 침음을 흘렸고, 고룡은 흥미롭다는 듯 교황의 손에 들린 것을 바라봤다.
“난로의 형태군.”
“그렇습니다, 드래곤이시여.”
교황은 에르하벤의 말에 답하며, 케일에게 두 손 안에 담기는 성물을 내밀었다.
“보십시오.”
케일은 교황이 내미는 성물을 건네받았다.
‘난로네.’
정말로, 성물은 난로의 형태였다.
아주 작은 난로는, 하얀 연기를 배출하며 끊임없이 타오르고 있었다.
“오늘 계시로, 이 성물을 받았습니다. 정화자시여, 안 뜨겁죠?”
“네. 난로를 잡고 있는데, 하나도 안 뜨겁네요.”
“역시.”
난로라는 말을 슬그머니 못 들은 척한 교황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을 이었다.
“그 성물은 주교급 이상만이 만질 수가 있더군요. 그 외에도 몇몇 신실하기로 유명한 신관들도 만질 수 있었습니다.”
“그 외는요?”
케일은 유리와 같은 투명한 것으로 몸체가 만들어진 난로, 목난로 형태의 성물 안에서 태우는 것 없이 피어나는 불을 바라봤다.
일반적인 불과 달리, 그 불은 적금빛이었다.
“다른 이들은 만질 수가 없더군요. 만지는 순간, 상당히 뜨거운 열기에 화상을 입더라구요.”
“그렇군요. 그런데 이 성물이 강시를 어떻게 해결합니까?”
“정화의 불 힘을 그 난로에 담는 순간, 연기가 피어오릅니다. 그 연기를 퍼뜨리면 강시의 몸을 덮었던 일부 혹은 전체의 죽은 마나가 사라지며, 원래의 자연 상태로 돌아왔습니다.”
케일의 시선을 받은 교황이 망설임 없이 말했다.
“즉, 이 성물의 연기를 이용하면 강시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듣고 있던 에르하벤의 입이 열렸다.
“…그야말로 성물이네. 그것도 정화의 불에 어울리는.”
죽은 마나에 오염된 강시를 다시 자연의 상태로 돌린다.
정화의 불 힘을 이용할 수만 있다면.
그야말로, 이 난로는 신비로운 힘을 지닌 성물이라 할 수 있었다.
가만히 있던 수이 칸이 교황을 보고 물었다.
“그럼, 다른 곳에도 사용 가능합니까? 강시 말고, 이 세계는 자연 상태로 돌릴 것이 많지 않습니까?”
케일은 수이 칸을 잠시 바라보다가 교황을 바라봤다. 그 역시도 같은 부분이 궁금했다.
“아니요.”
교황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강시에만 사용이 가능했습니다. 다른 곳에는 성물의 힘이 닿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시선이 케일에게로 향했다.
“정화자시여.”
교황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그녀의 눈동자는 오늘따라 유독 진지했다. 깊게 가라앉은 눈빛은 긴장을 품고 있었다.
‘뭐지?’
케일이 그 모습에 의아해하려는 찰나, 교황은 입을 열어 말을 이었다.
“정화의 불께서 대화를 청하셨습니다.”
아.
케일이 짧게 탄식을 흘린 순간, 교황은 고개를 살짝 숙인 채 말했다.
“신전 중앙 기도실을 비워두었습니다. 그곳에서 대화를 나누시면 됩니다.”
“…좋습니다.”
짱돌이 말했다.
-올 것이 왔구나.
짠돌이가 이어 말했다.
-그러게. 정화의 불은 진짜 나일까?
케일은 머릿속 고대의 힘 목소리에 답하지 않은 채, 교황에게 말했다.
“지금 가면 됩니까?”
“네.”
* * *
끼이이익-
문이 열렸고,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공간이 케일의 앞에 나타났다.
“들어가시면 됩니다.”
교황의 말에 케일은 입을 열었다.
“저만 들어가면 됩니까?”
“네. 홀로 들어가셔야 합니다.”
다행히 지금 곁에 라온이 없었다. 케일은 수이 칸과 에르하벤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기다리지.”
“케일아.”
기다리겠다는 에르하벤의 옆에 있던 수이 칸이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신도 별거 아냐.”
케일은 그 말에 피식 웃어 보였다.
“신이라고 겁 안 먹습니다.”
“하긴, 네가 그렇지.”
수이 칸은 어깨를 으쓱이며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케일은 미련 없이, 거침없이 중앙 기도실 안으로 발을 디뎠다.
“좋은 대화 나누시길.”
교황의 말과 함께.
끼이이익-, 쿵.
문이 닫혔다.
“흐음.”
케일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곳은 현재 제국 수도에 임시로 마련한 신전으로, 비밀 안가가 아닌 밖으로 드러난 공간이었다.
물론 현재는 정비를 위해,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 중이었다.
“또 보네.”
그리고 중앙 기도실로 마련된 이곳에는, 단 하나의 물건을 제외하고는 텅 비어 있었다.
기도실 정중앙.
다른 곳과 달리 꽤 높은 단이 있었고, 그 단 위에는 불이 있었다.
케일이 이 세계에 왔을 때, 정화자를 뵙는다고 말하던 신관들 사이에서 보이던 불.
그 불이 이곳에 자리해 있었다.
“이게 말을 하는 건가?”
케일은 천천히, 하지만 망설임 없이 불로 다가갔다.
불은 일렁였지만, 고요했다.
케일은 단 앞에 선 채로, 저보다 조금 높은 곳에 있는 불을 향해 고개를 살짝 들었다.
“대화하자면서, 왜 말이 없어?”
그 순간이었다.
화르르르—-
불이 일렁였다.
-어?
-아?
-음?
짱돌과 짠돌이, 그리고 바람의 소리까지.
고대의 힘 목소리들이 의아함을 드러낸 순간.
“아, 진짜.”
케일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의 머릿속으로 묘하게 짠돌이와 비슷한 음성이 들려왔다.
-나는 너와만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 말이야. 양해를 구할게.
빌어먹을.
“그렇다고, 이럴 필요는-”
케일의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그의 시야가 점점 어둡게 변해갔다.
즉, 그는 정신을 잃는 중이었다.
‘빌어먹을! 힘을 쓸 때도 기절을 안 했는데!’
그깟 정화의 불이랑 이야기한다고, 기절을 해?
케일은 기가 찼지만, 그의 시야는 속수무책으로 까맣게 변해갔다.
‘아, 진짜.’
케일의 세상이 온통 어둡게 변했다.
그 순간, 케일은 짜증에 가득 차서 외쳤다.
“빌어먹을, 신!”
“미안.”
응?
케일은 눈을 떴다.
“여긴 어디야?”
모든 땅이 검었다.
갈라지고 메마른 검은 땅 사이로, 용암과 비슷한 붉은 액체가 흐르고 있었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보기 힘든 곳이었다.
그리고 하늘은 잿빛이었다. 태양 빛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였다.
“여긴, 내 친구 동네.”
케일은 차분한 목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그는 고개를 돌렸다. 그는 떨떠름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네가 신이냐?”
“응.”
웬 강아지 한 마리가 케일의 발치에서 꼬리를 흔들며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케일의 팔뚝만 한 길이를 지닌 강아지의 몸은 붉은색과 금색이 뒤섞인 털로 뒤덮여 있었다.
짧은 다리를 지닌 강아지는 털 때문인지 상당히 통통해 보였다.
그 통통한 몸집만큼 풍성한 꼬리가 쉴 새 없이 붕붕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너하고만 대화를 하고 싶었어. 고대의 힘들은 안 들었으면 했거든.”
여전히 목소리는 차분했다.
하지만 강아지의 꼬리는 점점 갈수록 빠르게, 주체할 수 없다는 듯 흔들리고 있었다.
“…네가 정화의 불?”
“그래. 내가 지금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이런 모습으로 네 앞에 있지만, 이래 봬도 신이야.”
붕붕.
꼬리가 흔들린다.
“네 얼굴을 한번 보고 싶어서, 불렀어. 이해하지?”
붕붕.
이러다 저 꼬리 혼자 프로펠러처럼 하늘로 날아가 버릴 것 같았다.
“…어… 그래…….”
케일은 떨떠름한 얼굴로 답했고.
“하하, 나를 이해해주는구나!”
강아지의 꼬리가 더 신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크흠. 이런 변변찮은 곳에서 보자고 해서 미안해. 내가 지금 도망, 아니, 어떤 존재의 시선을 피하는 중인데. 여기 내 친구의 땅이 제일 시선을 피하기 좋거든.”
강아지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다.
케일이 그간 들어본 신 목소리 중에서 제일 차분하고 뭔가 신다웠다.
“아! 내 친구도 너를 보고 싶어 하지만, 그 친구는 쑥스러움이 많아서 아마 보기 힘들 거야.”
케일은 무심코 든 생각을 툭 내뱉었다.
“너, 파괴하는 불 맞지?”
그 순간, 케일은 강아지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강아지는 여전히 꼬리를 흔들며 입을 열었다.
짠돌이와 톤은 비슷하지만 근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비. 밀!”
아.
그 순간 케일은 확신했다.
‘짜증 나네.’
역시 신은 짜증 난다.
그때, 강아지가 케일의 미간을 보더니 황급히 말했다.
“크흠, 큼. 케일, 그 성물은 너한테 빌려주려고 해!”
“…성물?”
케일의 시선이 강아지 모습을 한 정화의 불에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