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825
2부 67화
“난로 말이야!”
“교황이 받은 성물?”
굳이?
케일의 표정이 떨떠름하게 변해갔다.
정화의 불은 그 모습에 더 다급하게 말을 쏟아냈다.
“어! 그거! 그거 너 빌려줄게! 네가 죽을 때까지!”
네가 죽을 때까지.
케일은 이 말이 이상하게 별로 좋지 않게 들려왔다. 그의 표정이 점점 더 떨떠름하게 변해갔다.
그럴수록 강아지의 꼬리는 점점 힘을 잃어갔다. 정화의 불의 눈이 흔들렸다.
“그러니까!”
정화의 불은 앞발을 케일의 바지 위에 올렸다.
‘음.’
검은 흙이 바지에 묻었다. 케일은 슬그머니 다리를 뒤로 물리며 앞발에서 멀어졌다.
평균 9세도 아니고, 정화의 불을 받아줄 이유는 없었다.
“…….”
강아지의 귀가 축 늘어졌으나, 케일은 신경도 안 썼다. 정화의 불은 그 눈빛에 굴하지 않았다.
“들어봐봐!”
“어.”
“지금 샤올렌에 있는 강시를 모두 정화시키고 나면, 샤올렌에서는 더 이상 그 성물이 필요한 일이 없어! 그건 알겠지?”
“어.”
케일의 대충하는 대답에도, 정화의 불은 고개를 끄덕이며 힘차게 말했다.
“단, 중원에서는 필요할 거다!”
그때였다.
또각.
케일은 저 멀리 구두굽 소리를 들었다.
‘뭐지?’
마치 안개에 잠긴, 머나먼 곳에서 들려오는 듯한 소리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선명하게 들렸다.
희미한데 선명하다.
‘이상한데.’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으아!”
케일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정화의 불이 한껏 몸을 움츠러트린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겁은 집어먹은 모양새였다.
“이놈의 균형! 생각보다 더 시간이 없잖아! 균형의 신한테 들켰나 봐!”
붉은 털을 가진 강아지는 얼른 케일의 다리 근처로 가 바짝 몸을 붙였다. 숨으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케일! 혈교 7호를 더 조져봐!”
응?
지금 신이라는 놈이 조지라고, 그런 어휘를 사용한 건가?
역시, 이 녀석도 신이 맞다.
죽음의 신 같은 놈.
“그놈을 조지면 뭘 많이 들을 거다!”
정화의 불은 케일의 한쪽 다리를 두 앞발로 움켜쥔 채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덤으로 쏟아져나오는 목소리는 다급했다.
“혈교에서 만드는 강시들은 종류가 아주 다양해! 검은 피 가문에 사용한 강시는 하급 중에 최하급이야.”
하긴 사냥꾼 가문은 서로 경쟁 관계로 보였다.
푸른 피 가문인 혈교에서 검은 피 가문인 화이언스가를 위해 좋은 강시를 만들어주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아무튼, 강시 중에 생강시라는 게 있는데. 그걸 꼭 알아봐야 돼!”
케일은 머릿속에 들어온 단어를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내뱉었다.
“…생강시?”
“어! 모르지?”
“아는데?”
케일의 대답에 정화의 불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렇구나! 역시 장르소설 독자답네!”
당연히 케일은 그 말을 가볍게 무시하며 생강시에 대해 언급했다.
“살아있는 강시 말하는 거 아냐? 사람처럼 보이는 거.”
“맞아!”
생.
즉, 살아있는 강시를 뜻한다.
샤올렌에 있는 강시들이 보자마자 강시라는 것을 딱 알 수 있을 만한 특징이 존재한다면. 생각시는 전혀 강시로 보이지 않으며, 살아있는 사람으로 보인다.
더불어 일반인처럼 일상생활이 가능한 강시로, 강시 중에서도 최고로 쳤다.
대개 무협 소설에서 혈교나 마교에서 어떻게든 복구하려는, 그리고 주인공이 막으려는. 나타나서는 안 되는 금단의 비법으로 ‘생강시 구현’이 자주 나왔다.
“으음.”
케일은 생각한 바를 툭 내뱉었다.
“중원에 생강시가 나타났나 보네.”
“…말할 수 없어!”
“다 가르쳐주고, 말할 수 없다는 뭐야?”
“…그걸 내가 직접적으로 입으로 내뱉느냐 아니냐를 엄청 따지는 이상한 신이 한 명 있거든.”
강아지의 귀와 꼬리가 축 늘어졌다.
“아무튼 성물이 너한테 요긴할 거야. 내가 주는 선물이야.”
강아지의 꼬리가 다시 붕붕 요동치기 시작했다.
꽈악. 바짓단을 끌어당기는 힘에 케일은 시선을 내려 정화의 불을 바라봤다.
“샤올렌에서는 고마워.”
붉은색과 금색이 뒤섞인 강아지의 털빛이 점점 더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반짝이고 있었다.
“파괴하는 불을 좋게 써줘서 늘 고맙다.”
강아지의 눈동자에 한층 더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케일의 모습이 담겼다. 강아지는 피식 웃었다.
“쑥스러워하기는, 케일 너는 진짜,”
“공짜로?”
“…응?”
“고맙다며. 그냥 고맙기만 한 건가?”
“…어-”
정화의 불이 잠시 멍하니 케일을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여댔다.
“죽음의 신 마음이 조금 이해가 가네.”
“뭐?”
“아냐. 그래도 케일.”
“왜?”
케일은 갑자기 진지해지는 정화의 불 표정에 저 녀석이 왜 저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어째 점점 더 신으로 보이지 않았다.
“나를 죽음의 신과 같은 취급하면 곤란해.”
정말, 신 안 같다.
차라리 에르하벤 님이 더 신 같다.
“선물을 이미 하나 더 준비해뒀어.”
케일은 정화의 불이 그 말을 한 순간, 수긍했다.
“죽음의 신보다 훨씬 낫네.”
“그렇지?”
정화의 불의 꼬리가 다시 요리조리 휘둘러졌다.
“그 선물은 나랑 친구가 같이 만든 거야. 분명 앞으로 네가 무언가를 할 때, 큰 도움이 될 거다.”
그때였다.
또각.
또 그 소리였다.
다만 전보다 조금 더 선명해졌다.
케일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없는데.’
여전히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정화의 불 반응은 달랐다.
“어서 가!”
강아지는 케일에게서 떨어져 그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주변을 경계했다.
“궁금한 게 많겠지만, 어차피 차차 알게 될 거야!”
이럴 줄 알았다.
신하고 만날 때면, 뭐든 속 편히 아는 순간이 없다.
“케일, 다만 기억해!”
케일은 비장한 목소리로 말하는 정화의 불을, 제 주위를 뽈뽈거리며 빙글빙글 도는 강아지를, 한껏 주위를 경계하는 강아지를 쳐다봤다.
강아지는 아무것도 없는 주위를 살피며 말했다.
“순리니, 희망이니, 균형이니, 정의니. 그딴 거 생각하지 마!”
강아지의 시선이, 정화의 불 시선이 케일에게로 향했다.
그 눈동자는 케일을 똑바로 직시했다.
“네 하고픈 대로 하면 된다!”
케일의 입꼬리가 묘하게 비틀어졌을 때, 강아지는 나직이 말했다.
“적어도 우리는 널 도울 거니까.”
그 순간, 케일은 곧바로 입을 열었다.
“우리는, 고대의 힘을 말하는 건가?”
내 몸 안에 있는 고대의 힘들. 케일은 그에 대해 물었고.
씨익.
강아지는 그저 미소를 그렸다.
“고대의 힘 모두가 신이 됐어?”
케일은 또 물었다.
그리고 신은 답했다.
“아니. 모두는 아냐.”
그 순간이었다.
또각.
전보다 더 가까이서 구두굽 소리를 들은 순간.
화르르-
케일은 강아지의 몸에서 솟구쳐오르는 적금빛을 보았다. 그 빛은 케일이 샤올렌에서 피워 올렸던 불벼락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찬란했다.
하지만 저 빛이 케일에게는 그저 따스함만으로 다가왔다.
화르르–
강아지를 중심으로 피어오른 불기둥이 잿빛 하늘까지 솟구쳤다.
둥-!
그 순간, 케일은 온통 검은 땅, 그 땅의 저 멀리 솟아오른 검은 산에서 북소리와 같은 울림을 들었다.
또각.
구두굽 소리가 더 가까워졌다.
두웅-
그에 상응하듯 북소리가 더 커졌다.
땅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저 밑, 땅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무언가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응?’
케일은 그 순간 저도 모르게 ‘무서운 짱돌’이 떠올랐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 땅의 파동은, 꼭 짱돌을 생각나게 만들었다.
이 땅이 하나의 거대한 바위가 되어, 돌이 되어 움직이는 것만 같았다.
그는 입을 열었다.
“조만간 싸움이라도 하나 봐?”
강아지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마도. 하지만 내 친구가 아주 세거든. 무너지는 세상을 지탱할 만큼. 걔는 자기 영역을, 제 사람을 노리는 적은 결코 용납하지 않아. 그게 존재 의의니까.”
힐끗. 강아지는 케일을 한번 쳐다보더니 툭 내뱉었다.
“수호. 그 단어는 기억해두면 도움이 될 거야.”
또각.
한 번 더 구두굽 소리가 들린 순간.
케일은 고개를 들었다.
“음.”
잿빛 하늘에, 하얀 빛기둥이 내려오고 있었다.
“케일.”
강아지는 케일을 향해 꼬리를 흔들었다.
“내가 갈 때인가?”
케일의 물음에 강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말했다.
“안녕. 다음엔 다른 애를 보게 될 거다.”
차분한 목소리가 내뱉는 그 말을 끝으로 케일의 세상은 암전했다.
그는 눈을 감기 직전.
검은 산에서 솟구쳐오르는 한 사람이 하얀 빛기둥을 향해 날아가는 것을.
정화의 불이, 강아지가 하얀 빛기둥을 향해 달려드는 것을.
꿈처럼, 희미하게 보았다.
* * *
“…음.”
케일은 정신을 차렸다.
그는 제단 단상에 기대어 있었다.
-케일, 케일!
-정신이 들어?
짠돌이와 짱돌이 연달아 케일을 향해 말을 걸어왔다.
“음.”
-어지러워? 괜찮아? 혹시 신이 파괴하는 불 힘 많이 썼다고 뭐라 해? 그리고 신이 나 맞아?
-좀, 조용히 해. 케일 머리 아파하잖아.
“안 아픈데?”
-…그런가.
케일은 멀쩡했다.
오히려 짱돌과 짠돌이가 시끄러워서 머리가 아플 뿐.
그래도 케일은 뭔가 변화가 있나 싶어 몸을 살폈다.
“이건-”
그는 목을 만지던 손에 걸린 것에 시선을 두었다.
은으로 된 목걸이.
셔츠 상의 안으로 숨길 수 있을 만큼의 길이를 지닌 목걸이에는 뭔가 달려 있었다.
“돌?”
웬 작은 돌멩이 하나가 펜던트에 달려 있었다.
-그런 게 언제 달렸지?
짱돌이 의아해하다가, 이내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케일, 그 돌멩이 뭔가 특이하구나.
“그래?”
-으음. 내가 처음 보는 물질이다. 어떤 과정으로 저런 돌멩이가 나타날 수 있는지 모르겠구나.
케일이 보기에는 그냥 작은 돌멩이였다. 엄지손톱 크기 정도로, 구멍이 숭숭 뚫린 검은 돌은 꼭 현무암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따뜻한데.”
다만 돌멩이를 쥐고 있는 케일의 손으로 온기가 전해졌다.
마음이 편안해지게 만드는, 추운 겨울 밖에서 일하다가 실내로 들어섰을 때 몸의 긴장을 풀리게 만드는 그런 온기가 돌멩이에게서 느껴졌다.
-뭔지 모르겠지만, 분명 어딘가 쓸모가 있을 것 같구나.
짱돌의 말에 케일도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마지막에 검은 산에서 솟구쳐오른 남자는-’
짱돌일 것이다.
추측이지만, 케일은 확신했다.
‘이건 그 세계의 것이야.’
이 돌멩이는, 케일이 정화의 불 강아지를 만났던. 그 검게 변한 세상의 물건이라고.
‘일단 챙겨두자.’
뭐가 됐든, 일단 챙겨두면 될 일이다.
케일은 제단 위 타오르는 불꽃을 보다가 이내 중앙 기도실을 빠져나왔다.
“정화자시여-”
문밖에서 대기하던 교황이 그에게로 다가왔다. 케일은 동료들의 시선을 한 번씩 마주하고는 교황에게 툭 내뱉었다.
“강시들 정화하러 가죠. 그리고 성물은 제가 가져갑니다. 아셨습니까?”
교황은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네. 방금 알았습니다.”
에르하벤이 다가와 말했다.
“케일, 성물을 네가 가지라고 했어?”
“네. 앞으로 중원에서 쓰일 일이 있다고 가져가라더군요.”
“흐음. 신이 준 것이니, 분명 안배가 있겠지.”
수긍한 듯 고개를 끄덕이던 에르하벤이 살짝 난감한 표정으로 케일을 바라봤다.
“케일.”
“네.”
“며칠 뒤에 우리 돌아가지 않나?”
“네.”
답하던 케일의 표정이 굳어졌다. 무언가를 깨달아버리고 만 얼굴이었다.
이를 보던 에르하벤이 난감한 어조로 말했다.
“…강시가 대략 천이백여 구 정도 되는데. 난로는 크기도 작은 게, 한 번에 얼마 정화 못 할 것 같은데.”
수이 칸이 덧붙였다.
“그리고 시간도 얼마 안 남았네.”
에르하벤이 뒤이어 말했다.
“케일, 너 힘 많이 줄지 않았니?”
“…….”
“집 가기 전까지 천이백여 구, 정화하려면 한 며칠 밤새야 하지 않을까?”
고룡은 말이 없는 케일을 보며 이어 말했다.
“…피는 안 토하겠지?”
“…하.”
깊은 탄식이 케일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빌어먹을 신 놈들.”
케일의 나직한 중얼거림에 교황의 동공이 흔들렸으나, 케일은 손으로 이마를 매만지며 교황에게 말했다.
“교황님.”
한껏 짜증이 담긴 음성에, 교황은 저도 모르게 재빠르게 반응했다.
“네, 네. 정화자시여.”
“강시들 모두 한데 모아져 있죠?”
“네, 네. 현재 교단과 여러 관계자들이 모여서 함께 처리 중에 있습니다.”
“안내하세요.”
빌어먹을.
케일은 밤을 꼴딱 새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미간을 찌푸리며 손을 내밀었다.
교황이 곧바로 성물을 건넸다.
* * *
“…안 나가십니까?”
성물을 든 케일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의 일행들을 포함하여, 낯익은 여러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잘 모르는 이들까지.
꽤 많은 수의 사람들이 강시들 사이사이에 서서 케일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화자시여. 저는 교황으로서, 정화자께서 성물을 사용하시는 그 영광스러운 순간을 보아야 한답니다.”
교황의 말에 케일의 얼굴이 구겨졌다.
거대한 지하 공동.
그곳에 강시들과 함께 있는 이들의 눈동자가 반짝이며 케일에게로 향했다.
물론 최한을 비롯한 동료들의 표정은 이들과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