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83
82화.
“무얼 말이냐?”
데르트는 알면서도 되물었다. 그걸 모를 케일이 아니었다.
“아버지, 아버지는 무엇을 두려워하십니까?”
갑작스럽게 던져진 물음에 데르트는 미처 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조금의 틈을 두고 아들이 답했다.
“전 우리가 다칠까 봐 무섭습니다.”
데르트의 눈빛이 살짝 풀어졌다. 같다.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이 아들과 같았다. 이기적이든 말든 데르트는 자신의 영지와 가족들이 다치는 것이 두려웠다.
“지금 서대륙 정세가 폭발 직전임을 아실 겁니다.”
갑작스럽게 성벽을 보수하고, 어찌 되었든 해군 부지 건설에 투자하는 귀족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5권까지 헤니투스 영지는 어떠한 전쟁에도 휘말리지 않았다. 하지만 미래에도 그런다는 보장이 없었다.
“아버지께만 말씀드립니다. 왕세자 저하께서 저를 위퍼 왕국에 보내서 시키신 일은 한 가지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케일은 일부러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말하면 아들을 아끼는 데르트는 왕세자의 명으로 비밀리에 일한 케일에게 불똥이 튀지 않도록 그 내용을 왕세자에게 물어보지 않을 것이다.
케일은 데르트에게 한 단어를 내뱉었다.
“북부.”
데르트는 물론 뮐러도 멈칫했다. 두 사람이 케일을 바라봤다.
“북부가 대연합을 이루었습니다.”
“무슨!”
데르트 백작의 미간이 깊게 파였다.
케일은 그 마음이 충분히 이해되었다. 서대륙 정세에 영향을 미칠 중요한 내용이었으니까.
북부에는 총 3개의 왕국이 있다.
그중 최북단에 위치한 파에른 왕국. 그곳의 수호 기사.
그가 기사단을 이끌고 풍족한 땅으로 내려오고자 마음먹었다.
데르트는 얼굴을 쓸어 넘기며 한숨처럼 중얼거렸다.
“…위퍼 왕국이나 모고르 제국이 아니라?”
순간 케일은 살짝 속으로 감탄했다. 구석 영지에 있음에도 데르트는 위퍼 왕국은 물론이거니와 컨트롤 타워가 되길 원하는 제국의 동세까지 눈치채고 있었다.
왜 제국이 컨트롤 타워를 하려고 하겠는가. 동부와 북부가 달라지니 이러는 것이었다.
“케일, 북부는 협곡을 어떻게 지나서 온단 말이냐? 그리고 어둠의 숲도 있거늘.”
5대 불가사의 중 유일하게 불가사의하지 않은 곳이 하나 있었다. 하지만 그 형세가 대규모 이동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어 불가사의에 포함되었다.
죽음의 협곡.
그 이름대로 대륙에서 가장 험한 협곡은 북부와 중부를 나누는 선이 되었다. 그리고 그 선이 끝나는 지점에 어둠의 숲이 존재했다. 그렇기에 북부는 중부로 오는 것이 힘들었다.
그러나 케일도, 제국도, 왕세자 알베르도 다른 방법을 알고 있었다.
“아버지, 땅만 있는 게 아니잖습니까?”
그때, 잊고 있던 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배?”
뮐러였다. 쥐족과 드워프의 혼혈인 그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재빠르게 제 커다란 백팩을 앞으로 돌려세웠다. 가방에는 입구 밖으로 삐져나온 돌돌 말린 종이가 두 장 들어 있었다.
하나는 성 설계도. 하나는 배 설계도.
그 종이와 케일을 번갈아 바라보는 서른의 혼돈 가득한 눈동자에 케일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배가 있지.”
하. 깊은 한숨이 데르트의 입에서 흘러나오며, 그는 집무실 내 소파로 걸어가 앉았다. 케일도 다가가 맞은편에 앉았다.
‘하지만 배가 끝이 아니지.’
왕세자도 아버지도 모르는 한 가지를 케일은 더 알고 있었다.
왜 다른 두 왕국이 파에른 왕국과 연합을 하게 되었을까. 척박한 땅에 단념하고 강인한 무의 정신만을 추구하던 기사들의 나라에서, 수호 기사는 전설로 치부되던 것을 실제로 재현해 냈다.
와이번 기사단.
하늘을 지배할 수 있는 수단이 생겼다.
협곡은 물론이거니와 어둠의 숲도 가뿐히 지나갈 수 있는 중형 규모의 이동 수단. 로잘린이나 용 정도 되어야 가능한 장거리 비행 마법을 제외하면 최적격이었다.
그 순간부터 3국은 해상까지 지배하기 위한 배를 비밀리에 축조한다. 이에 들어간 시간이 벌써 5년이 넘었다. 이제 그 끝이 2년도 채 남지 않았다.
왜 케일이 우바르 영지에 해군을 두는 것을 돕고자 했겠는가.
곧 멀지 않아서였다. 그리고 그때쯤 케일이 모르는 미래가 온다.
‘먼치킨 물이라서 문제지.’
‘영웅의 탄생’은 먼치킨 물이다. 분명 달걀이었는데 책 한 장을 넘기면 치킨이 되는 그런 이야기였다.
그 속에서 버티려면 케일은 최대한 준비를 해놓아야 했다.
“케일.”
“네.”
한참 만에 데르트 백작은 입을 열었다. 그는 아들을 똑바로 응시했다.
“난 아버지로서 네 말을 믿지만, 영주로서 네 말이 사실인지 확인해야 한다. 그 확인은 분명 쉽지 않겠지. 너는 왕세자 저하께 들은 말이었으니까.”
당연히 그럴 것이다. 케일이 책을 읽어서 알 수 있는 부분이었지, 일개 귀족이 알 수 있는 영역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데르트는 큰일에 앞서 최대한 모든 것을 알아보려 노력해야 했다.
“최대한 빨리 확인을 해보마. 확인을 해도 이 아버지의 능력이 부족해 아무것도 못 찾으면 나는 네 말을 믿을 것이다.”
데르트는 자리에서 일어서 자신의 집무 책상으로 걸어갔다.
“아들아, 내가 돈을 만지기 시작하면서 하나 깨달은 것이 있단다.”
몇 대에 걸쳐 헤니투스 백작가는 부를 축적만 해왔다. 물론 쓰기도 했지만 이는 버는 금액에 비해 아주 미미했고, 데르트 백작은 아직까지 자신이 돈을 제대로 썼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아들에게 깨달은 것을 말했다.
“그건, 돈을 써야 할 데가 생기면 놀랄 정도로 써야 한다는 거다.”
전쟁 때 돈은 큰 힘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전쟁이 일어나기 전 돈이 만든 결과는 힘이 된다.
“조만간 연락 주마.”
“네. 충분합니다.”
데르트는 여유로이 답하며 집무실 문으로 향하는 아들을 불렀다.
“케일.”
“네.”
뒤돌아보는 그에게 데르트는 얼마 전 차남 바센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후계자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나?”
“없습니다.”
조금의 틈도 없이 단호한 대답이었다. 데르트는 바센과 똑같은 반응에 절로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래, 그런 문제는 생각하지 말거라.”
“네.”
당연히 생각하지 않을 참이었다. 후에 후계자로 말이 나오면 자신은 포기한다고 말하며 그냥 떠나면 될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아직 데르트 백작이 정정해 십오 년 이상은 더 영주로 있을 텐데, 성급히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바센이 나에게 와서 너를 걱정시킬 일은 만들지 않을 거라고 하더구나.”
“그렇죠. 바센이라면 이 영지를 위해 잘 해낼 겁니다.”
바센은 아주 적합한 영주감이었다.
“그래. 푹 쉬거라.”
케일은 데르트 백작의 표정이 좋은 것을 확인하고는 저도 밝은 미소와 함께 집무실을 빠져나왔다.
“저, 공자님.”
“왜?”
뒤따라 나온 뮐러는 주변 눈치를 보며 케일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그, 성과 배를 짓는 목표가 아까 안에서 말씀하시던 그런 이유로-”
“맞아. 그런 이유.”
굳이 길게 듣기 싫어 뮐러의 말을 자르며 답해주었다.
그런 성과 배를 지어 안락하게 전쟁을 피하는 것이 목표였다. 싸움은 싫었다. 삶은 전쟁의 연속이라고 하나, 진짜 전쟁 속에서 살고 싶지는 않았다.
“네가, 우리가 절대로 죽지 않을 공간을 만든다고 생각해.”
뮐러의 눈동자에 복잡함이 서렸다. 케일은 그런 그의 목에 선물을 하나 걸어주었다. 금목걸이였다.
“그러면 너는 살아 있으면서 이런 선물도 많이 받을 테니까.”
“기, 기필코 안전하고 죽지 않을 공간을 만들겠습니다!”
뮐러는 고양이보다, 드래곤보다 케일을 마주할 때 얼굴이 더 하얗게 질렸다. 케일은 그 우렁찬 대답에 만족했다. 역시 선물도 주고, 상냥히 대하는 게 답이었다.
***
그리고 일주일 뒤, 데르트 백작은 케일에게 허탈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북부 정보를 얻을 수가 없더구나.”
정보를 돈으로 얻지 못하는 이유는 없는 정보거나 혹은 돈 따위와는 비교가 안 되는 귀한 정보일 확률이 높았다. 데르트는 후자를 택했다.
‘어차피 쌓아놓은 돈도 많으니.’
아끼는 것도 정도가 있는 법이었다. 데르트는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 편안한 안색의 아들에게 말했다.
“아들아, 해보자.”
케일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그는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데르트는 케일 한 명만을 부르지 않았다. 아직 막내 릴리는 어려 영지 일에 뛰어들 수 없지만, 한 명은 가능했다.
“저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형님.”
“그래. 네가, 그리고 부모님, 릴리가 살 곳이다. 열심히 해보자.”
케일은 물론 나중에 영지가 아닌 다른 시골에서 한가로이 살 생각이었다. 그러니 자신은 빼고 말했다. 바센은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는 끝까지 가족과 영지를 위해 살고 싶습니다.”
바센과 달리 자신을 위해 살고픈 케일은 그러려니 하며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 순간 직후, 황금 거북이 인장이 찍힌 비밀문서 하나가 관련자들에게 전해졌다. 기한을 최소 1년, 최대 2년으로 잡은 계획이 시작되었다.
그 계획의 시작 지점을 지켜보는 케일의 눈동자는 영 떨떠름했다.
“정말 쥐 수인족과 드워프의 혼혈이십니까?”
“크흠, 그렇죠.”
뮐러가 홀로 의자 위에 올라가 서서 헛기침을 하며 건축가의 물음에 답했다.
“오, 세상에! 손재주 엄청나시겠군요!”
“대단하네. 쥐족의 섬세함에 드워프의 능력이면.”
“실력을 한번 보고 싶습니다!”
뮐러의 어깨가 한없이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케일은 뮐러와 영지 내 몇몇 건축가들의 만남을 뒤편에서 몰래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곁에는 백작 부인 바이올란이 서 있었다.
“능력 있는 이들이고 입도 무거우니 믿고 맡기기 좋을 거야. 서약서도 모두 작성했고.”
영지 내 예술가들을 보살피는 바이올란이었으나, 조각과 예술, 그 사이에 건축이 빠질 수는 없었다. 바이올란이 고르고 골라 뽑아낸 건축가들이 현재 손재주와 만들기에 있어 장인 격인 두 종족의 혼혈, 뮐러를 보며 감탄하고 있었다.
“마탑 설계자 집안이시라니. 그런 위대한 분을 어디 소개도 하지 못하고 우리끼리 알아야 하는 게 참으로 아쉽습니다!”
“그러게 말일세. 세상에, 드워프의 힘을 실제로 보게 될 줄이야. 잘 부탁드립니다.”
크흠, 크흠! 연신 뮐러는 헛기침을 해댔다.
“제가 올해로 서른입니다. 그리고 경력이 29년. 1살 때부터 저는 설계도를 보며 살았고 5살 때부터 망치를 쥐었지요. 드워프와 쥐족에게는 일상인 일이었습니다.”
뮐러의 말에 케일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황금 브로치에 제일 좋은 옷을 입고 당당한 뮐러는 처음 보았다. 그때였다.
“관리하기 편하겠구나.”
무심하다 느껴질 정도로 담담한 바이올란의 목소리에 케일은 안심하며 부탁했다.
“뮐러를 부탁드립니다.”
“그래. 걱정 마렴.”
바이올란의 냉철한 눈빛이 뮐러를 향했다. 호랑이가 없으니 여우가 왕이 된다고, 뮐러는 아무것도 모른 채 왕 노릇을 해댔다.
“설계도는 확인하고 떠날 거니?”
“네. 최대한 빨리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걱정이 담긴 바이올란의 눈빛에 케일은 그저 미소로 답해주었다. 그는 곧 다시 한번 떠나야 했다.
케일은 영지에서 처리해야 할 일들을 대강 정리하고는 자신의 침실로 돌아와 푹신한 소파에 몸을 파묻고 있었다. 그는 맞은편에 서 있는 최한을 슬쩍 쳐다보며 툭 내뱉었다.
“최한.”
“네.”
“가자.”
“…지금 영지 도착한 지 4일째입니다만. 벌써요?”
최한은 말을 이었다.
“일단 일행들 다 불러 모으겠습니다.”
“아니.”
케일이 최한만 부른 것은 이유가 있었다.
“이번에는 우리만 간다.”
그 순간 케일의 침실에 늘 상주하는 존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냐아아옹.
“우리끼리는 오랜만인데!”
홍과 온이 가볍게 침대 위에서 폴짝 뛰어내려 최한의 곁으로 다가왔다.
“나도 당연히 간다.”
투명화를 풀며 검은 용 라온이 소파 옆 탁자 위에 내려앉았다.
최한은 함께 가는 일행들을 쳐다봤다. 그때 케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에 비크로스가 나중에 따로 뒤따라올 거야. 하지만 일단은 이 인원으로 움직이지. 이 인원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너라면 알 거야.”
“…스텐 후작가입니까?”
역시 머리가 잘 돌아가는 놈이었다. 케일의 한쪽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눈치 빠르긴. 준비해.”
검은 용을 처음 만나러 갔던 인원. 라온을 구했던 인원들이 다시 한번 모였다. 이 인원은 이번에도 용을 위해 움직이기로 하였다.
그날 밤, 헤니투스 백작가의 뒷문으로 아무런 인장도 매달지 않은 평범한 마차 한 대가 조용히 빠져나와 로운 왕국 서북부로 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