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850
2부 92화
‘검선은 내일 온다며?’
케일의 시선이 대번에 호 장로에게로 향했다. 찌푸려진 미간은 그의 짜증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그때, 꼬장꼬장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개방이군.”
“…검선 어르신을 뵙습니다.”
호 장로가 황급히 허릴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뒤이어 다른 정파 인물들도 허리를 숙였다. 정파의 최고수를 향한 예의 표현이었다.
“흥.”
하지만 검선 남궁태수는 다른 이들의 인사는 무시하고선, 콧방귀를 꼈다.
그러고는 탐탁지 않은 기색으로 퉁명스럽게 말했다.
“길을 왜 이리 막고 있지?”
호 장로에게 길 막지 말고 어서 비키란 소리였다.
“그것이-”
“흥.”
호 장로가 뭐라 말을 하려고 했으나, 검선은 바로 무시했다. 대신 그의 시선에 옆에 있던 청년이 앞으로 나섰다.
“이보게.”
“네, 대협.”
그는 점소이에게 물었다.
“방을 주게.”
“그것이-”
점소이는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것이, 지금 빈방이 없어서-”
점소이는 몸을 움츠러트렸다. 꼬장꼬장한 노인이나, 살벌한 표정의 청년들이 무서웠다.
무인들은 무슨 짓을 할지 가늠이 안 되는 존재라 더 두려웠고, 목덜미가 서늘해져 왔다.
“그런가? 그러면 방을 만들면 되겠군.”
청년은 평이한 어조로 말했다.
“예?”
그에 점소이가 멍하니 되물었으나, 청년은 성큼성큼 1층에 놓인 식당 탁자들 쪽으로 다가가더니, 가장 가까이 있는 이들에게 물었다.
“방을 비워주겠소?”
“뭐요?”
낭인들로 보이는 이들이었다.
“하! 아무리 남궁이라고 하여도, 이렇게 사람을 쫓아낼 수는 없지!”
“정파라면서 이렇게 사람에게 협박을 해도 된다는 거요?!”
청년은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였다.
“협박을 할 생각은 없소.”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답한 그는 상의에서 무언가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두었다.
“…….”
“…….”
금화 몇 개가 탁자 위에서 그 빛을 반짝이고 있었다.
청년은 담담하게 말했다.
“방을 비워주면, 그 사례를 하겠소이다.”
그러고는 씨익 웃더니 점소이를 보며 입을 열었다.
“여기 가장 비싼 술이 무엇이지? 이 대협들에게 대접하고 싶은데.”
오.
케일이 그 모습을 흥미진진하게 바라봤다.
청년은 금화를 보고 당황한 낭인들의 어깨에 각각 손을 올리고는 넉살 좋게 말했다.
“방을 빌려주지 않더라도, 술은 한 병 대접하겠소. 혹 기분이 상했다면, 이해해주면 좋겠소.”
“크음. 큼.”
금화와 술. 두 가지에 고민하는 이들에게 청년은 부드럽게 어깨를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우리가 급하게 사천에서부터 오느라, 계속 바깥에서만 잤소. 그래서 좀 편하게 씻고 쉬고 싶은데, 어떻게 안 되겠소?”
낭인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 금화면, 그들의 몇 달 치 의뢰비에 버금갔다.
물론 무공 경지가 높은 낭인들은 존재 자체가 금덩이와 같았으나, 일류에도 미치지 못하는, 갓 삼류를 벗어난 이류 초입의 두 낭인에게 이 금화는 무시할 수 없는 돈이었다.
거기다가 남궁가의 사람이 좀 사정을 봐달라 말하며 술까지 준다.
“크흠. 큼. 몇 날 며칠 야숙을 했다면, 힘들 만하긴 하지.”
“그렇지?”
이 금화와 술을 받고.
하루쯤 밖에서 자거나, 혹은 객잔에 못 미치지만 인근 인가에 돈을 조금 주고 작은 공간을 빌려 낑겨서 자도 된다.
“그래! 검선 어르신을 위해 방이라도 내어드릴 수 있으면, 실로 그것으로도 영광이 아니겠어?”
“그렇지, 그렇지!”
낭인들의 반응에 청년은 활짝 웃었다.
“고맙소.”
그러고는 점소이에게로 다가갔다. 그는 낭인들이 앉은 탁자 쪽에서 등을 돌린 채 말했다.
“저 두 대협들에게 가장 좋은 술과 가장 비싼 안주들로 제공해주게. 값은 내가 치를 테니, 그리고 방도 안내해주게.”
“네, 네!”
케일은 이를 보며 생각했다.
‘희한한 수완이군.’
동시에 그의 머릿속에 위 상선의 전음이 들려왔다.
-현재 정파 중에서 남궁세가가 가장 부유하지요.
뒤이어 권왕 목현이 전음을 보내왔다.
-돈지랄하면, 남궁이지.
그가 이어 말했다.
-그것보다 독고세가의 눈빛이 심상치 않군.
케일은 주먹을 꽉 쥐고 있는 독고세가의 소가주를 볼 수 있었다. 그나마 독고창이 평온함을 유지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대협님. 이분들을 먼저 안내해 드리고 안내를 해드려도 되겠습니까?”
점소이가 케일 쪽을 가리켰다. 정확히 말하면 위 상선을.
“아, 괜찮습니다.”
위 상선이 손사래를 쳤다.
“조카에게 안내를 부탁할 테니, 조만간 식사 주문을 하지요.”
“네, 네!”
점소이의 대답에 위 상선은 동창에게 눈짓했다.
“가자꾸나.”
케일은 그 순간, 위 상선의 전음을 들었다.
-일단 자리를 피하겠습니다.
그렇지.
현명한 선택이다.
케일은 검선 노인네의 꼬장꼬장한 태도와 남궁세가 청년의 일 처리 방식을 보고 직감했다.
‘엮이면 피곤하다.’
그러니 그냥 피하자.
최정수를 구해야 하는 케일로서는, 남궁세가는 적군이나 다름없었다.
케일은 느긋하게 위 상선의 뒤를 따랐다.
그의 일행 역시도 뒤따라왔고, 이제 호 장로와 독고세가 일행이 따라 움직이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호 장로.”
하지만 호 장로는 걸음을 멈춰야만 했다.
검선이 그를 불러세웠다.
“개방에서 여길 왜 왔는지 궁금하군.”
날카로운 시선이 호 장로를 담았다.
“그것도 독고세가와 함께 말이지.”
그때, 처음으로 검선의 시선이 독고세가 소가주 독고령에게로 향했다.
그 매서운 눈빛에 독고령은 저도 모르게 멈칫하며 그 시선을 피했다.
‘제길!’
그녀는 분한 마음이 일었지만, 차마 어떠한 행동도 취할 수가 없었다.
“이야기를 들어봐야겠어.”
검선의 시선이 다시 호 장로에게로 향했다.
그 눈빛은 깊으면서도 맹렬했다.
“자네가 검마를 잡으러 온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닌지.”
검선. 그의 입에서 검마가 흘러나오는 순간.
객잔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후후-”
그때, 객잔의 한구석.
그곳에서부터 웃음이 터져 나왔다.
‘…감이 좋지 않은데.’
케일의 눈썹이 살짝 들썩였다.
하고많은 객잔 중. 가장 작은 이 객잔에 왠지 모르게 중요한 놈들이 다 모였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꼭 클리셰가 그렇지 않은가.
‘검선의 말에 비웃는 자라.’
케일은 그럴 만한 인물이 누가 있을까 고민하며 객잔 구석으로 시선을 옮겼다.
‘지금껏 기척을 못 느꼈다.’
아니다.
케일은 무언가를 발견하고 눈빛이 묘해졌다.
론 몰란.
이 객잔에 들어온 후 비교적 조용히 있던 그가 묘한 미소를 띤 채 웃음의 주인공을 보고 있었다.
마치, 저 인물을 주시했다는 듯. 아주 흥미롭게.
‘론이 관심을 둔다?’
케일은 구석에 홀로 앉아있던 이가 스륵 얼굴을 가리던 면사포를 벗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의 놀란 외침이 들려왔다.
“…살마!”
살(殺).
사도련. 정파의 무림맹과 같은 사파의 단체.
그 사도련에 속한 무림 최고의 살수 집단.
그 살수 집단을 이끄는 살마.
그녀는 얼굴이 알려진 유일한 살문의 살수였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얼굴을 안다고 하여 그녀의 목숨을 노리거나 복수를 감행할 수 없었다.
살문의 문주가 되기 전.
그녀는 총 만 번의 살행을 하였고, 이를 모두 성공했다.
그리고 만 한 번째 살행.
이는 의뢰가 아니었다.
그녀는 전대 살문 문주를 죽이고 스스로 문주 자리에 오른 이였다.
어느덧 육십을 넘어선 나이에 이른 그녀는 곱게 늙은 얼굴을 드러낸 채, 부드럽게 말했다.
“정파 나부랭이들이 말이 많아, 시끄럽구나.”
그녀의 시선이 검선에게로 향했다.
“그만 폼 잡고, 시끄러우니까 방으로 사라져줬으면 하는데.”
“감히, 사파가!”
세 명의 남궁 무리 중 유일하게 조용히 있던 이가 바짝 화를 내며 앞으로 나서려고 했으나.
“유학아.”
“…할아버지.”
검선의 부름에 입을 다물었다.
검선은 살마를 보며 이어 말했다.
“검마에게 살문이 깨졌다지?”
피식.
그렇게 웃음을 흘리고는 성큼성큼 객잔 2층으로 향했다.
살마의 입가에 화사한 미소가 지어졌으나, 검선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호 장로에게 눈짓을 했고, 그에 호 장로는 한숨을 살짝 삼키며 뒤를 따랐다.
-일단 다녀오겠습니다.
케일이 티 나지 않게 살짝 멈칫했다.
호 장로가 케일에게 보고를 해왔다.
‘왜 나한테?’
케일은 의아했지만, 좋은 것이니 일단 들었다.
-정보를 얻어올 것이고, 공자님에 대한 정보는-
잠시 망설이는 그에게 케일은 입을 열었다.
전음을 쓸 수가 없으니까.
별수 없다.
그냥 말해야지.
“안 숨겨도 됩니다.”
순간 검선과 호 장로 둘 다 걸음을 멈췄다.
검선의 시선이 케일에게로 향했다. 케일은 살짝 웃어주었다.
‘착하게 보여야지.’
검마랑 아무 상관 없는 사람처럼 보여야지.
‘호 장로에게 안 숨겨도 된다고 말했으니, 어느 정도 검선에게 말하겠지.’
그래도 눈치가 있는 사람이니.
‘내가 최정수 친구이고, 최한이 최정수 당숙인 건 말하지 않을 거야.’
…그렇겠지?
케일은 괜히 불안해져 왔다.
그래서 호 장로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은 구분하겠지요.”
그리고 웃어 보였다.
좋게, 좋게 잘 해결해 나가자는, 친근함의 표시로.
꿀꺽.
호 장로는 침을 삼켰다.
‘이리 대놓고 말하다니.’
저 김 공자는 전음을 할 수 있을 것이 뻔함에도, 그냥 대놓고 말했다.
이는 분명 경고이리라.
“흐음.”
검선은 잠시 케일과 호 장로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먼저 걸음을 옮겼다. 그런 검선의 뒤를 넉살 좋게 굴던 청년이 점소이와 함께 뒤따랐다.
물론 남겨진 청년에게 지시를 내린 후에.
“유학아. 곧 식사를 할 것이니, 주문 좀 해주거라.”
“네. 형님.”
케일은 그 모습까지 보다가 위 상선에게 눈짓했다.
“얼른 모시겠습니다.”
“그러지요. 허기가 좀 심해지는군요.”
-배고프다, 인간아!
내가 아니라, 라온이.
케일이 슬쩍 보채자, 위 상선 역시도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는 듯 동창 정보원과 함께 객당으로 향했다.
“안 오는데?”
그는 수이 칸이 슬쩍 다가와 건넨 말에 살짝 뒤를 돌아보았다.
독고세가와 후기지수들이 남궁세가 마지막 한 명과 함께 뭔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위 상선의 전음이 들려왔다.
-남궁유학은 남궁세가 직계로서, 가주의 둘째 아들. 즉, 소가주의 동생입니다.
-그리고 독고세가와 남궁세가의 사이가 상당히 안 좋습니다.
-독고세가의 세가 기울기 시작한 것이, 그들의 주요 사업장이 망하여서인데. 그 망한 자리에 모두 새로운 사업장이 나타났죠. 그리고 그 사업장의 주인은 전부 남궁세가였습니다.
-물론 남궁세가에서는 그 과정이 깨끗했다고 하지만, 이를 믿는 이는 정파에도, 사파에도, 마교에도 없습니다.
-하지만 증거가 없으니, 다들 심증만 가질 뿐이지요.
케일은 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 알 바는 아니거든.’
크게 그와는 상관없는 문제였다.
여기가 내 터전도 아니고.
-그래서 독고세가에서는 남궁세가라면 치를 떱니다.
-아무튼 남궁세가로서는 중검으로 유명한 두 가문 중 한 가문이 자연히 힘을 잃어서 득이었죠.
-어쨌든 그 이후로, 남궁세가와 독고세가는 견원지간이나 다름없습니다.
케일이 입을 열었다.
“사건을 일으킬 것 같습니까?”
위 상선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독고창 대협이 있으니, 사고는 없을 겁니다.”
나름 독고세가 큰 어른인 독고창이 뭔 짓을 하겠는가.
“거기다가 살마까지 있는 상황이니, 다들 조용히 신경전 정도만 할 겁니다.”
하긴, 생각이 있으면 이 객잔에서 싸우겠는가.
암, 그렇고말고.
케일은 그래도 어느 정도 머리가 돌아가던 독고세가와 후기지수들을 떠올렸다.
쾅!
응?
“숙부, 저 더 이상은 못 참겠어요!”
그때였다.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감히, 감히 우리 가문을 모독해?”
“하! 모독? 피해 의식이 아주 다분하군! 이렇게 수준이 낮으니, 대화를 할 수가 없어!”
독고세가 소가주 독고령과 남궁세가 둘째 아들 남궁유학.
두 사람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순간.
케일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하, 이것들이-’
무림인, 이놈들은 객잔에서 안 싸우면 뭔 큰일이 나니?
“어찌하여 정파의 빛나는 미래를 꿈꾸는 분들이 이리 법도를 모르는 자와 함께하시는 겁니까? 저희와 함께 식사를 하시지요.”
-인간아! 남궁유학인가 뭐시기가 독고령을 비웃으면서 운선 도사한테 친절하게 막 말 건다!
어휴.
꼭 집안에 망나니가 한 명 있다더니.
남궁세가는 남궁유학인가 보네.
…하.
우리 집 망나니는 난데.
케일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때였다.
쿵, 콰앙!
뭔가 더 부서지는 소리가 나더니.
“헉!”
누군가의 숨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렸고.
-인간아!
라온이 놀라서 외쳤다.
‘뭐지?’
케일은 왠지 모르게 등골이 서늘해졌을 때.
그는 그제야 뒤를 돌아보았다.
채앵!
최한이 검을 뽑았다.
하지만 그것은 보이지 않았다.
‘젓가락!’
웬 젓가락이 케일 쪽을 향해 날아왔다.
“뭐야?”
당황해서 저도 모르게 케일이 툭 내뱉은 순간.
최한이 젓가락을 쳐내려 검을, 수이 칸이 한숨을 내쉬며 손을 뻗던 그 순간.
우웅-
작은 진동과 함께 젓가락이 공중에서 멈췄다.
-인간아! 내가 멈춰 세웠다!
-마나로 잡아두었다!
그때였다.
덜컹!
큰 소리와 함께 의자가 뒤로 넘어갔다.
“……!”
살마. 그녀가 경악한 표정으로 케일을 바라보고 있었다.
객잔에 정적이 내려앉았고, 케일은 자신의 등에 닿는 통통한 앞발을 느끼며 라온의 목소리를 들었다.
-히히! 내가 잘 막았다! 나를 칭찬해라, 인간아! 약해진 너는 내가 지킨다!
으음.
케일은 흔들리는 동공의 살마를 보며 아무래도 뭔가 크나큰 오해가 발생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고로, 케일이 아는 무협 세상에서 손도 안 쓰고 젓가락이나 검을 공중에서 멈춰 세우는 건 상당한 고수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난감하네.’
케일은 정적 속에서 생각이 많아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