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855
2부 97화
검선은 권왕의 인사를 아무렇지도 않게 넘기는 김 공자를 볼 수 있었다.
“별것 아니었습니다.”
케일은 정말 별것 아니라 생각했다.
‘도대체 어디서 깨달음을 얻은 거야?’
사실, 도대체 권왕에게 무슨 도움을 줬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겠지. 김 공자에겐 이 모든 것이 그저 무(無)로 돌아가는 자연의 흐름. 아무것도 아닌 순리일 테니.”
이 노인은 지금 뭐라고 하는 걸까.
케일은 그냥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한 걸음 내디딘 것 축하합니다.”
“고맙소.”
어느새 권왕이 케일을 향해 반존칭을 사용했지만. 케일은 그 이유도 묻기 번거로워 그냥 모른 체했다.
대신 검선과 시선을 마주했다.
“따라오십시오. 안쪽에서 대화를 나눌 테니.”
으음.
검선은 나직이 침음을 흘렸다. 그는 불편함을 감추지 못한 얼굴로 먼저 걸음을 옮기는 케일의 뒷모습을 보다가 힐끗 호 장로를 쳐다봤다.
“…역시…….”
호 장로가 감탄을 흘리며 권왕이 아닌 김 공자의 등을 보고 있었다. 연신 고개를 끄덕여대며.
“오시지요.”
그때, 위 상선이 다가와 호 장로와 검선에게 한 번 더 보챘고, 검선은 한숨을 내쉬며 위 상선의 뒤를 따랐다.
“동창인가?”
그 한마디를 위 상선에게 툭 던지며.
“역시 검선께서는 탁월한 안목을 지니셨군요.”
위 상선은 제 정체를 바로 알아채는 검선에게 딱히 부정의 말을 건네지 않았다.
“흥.”
검선은 콧방귀를 뀌면서도, 다가오는 기운에 고개를 돌렸다.
“…권왕 어르신을 뵙소.”
아무리 독불장군 같은 검선이라도 하여도, 권왕 목현에게는 존칭을 사용하며 고개를 살짝 숙여 보였다.
전대 고수에 대한 그 나름의 예의 표현이었다.
“현 정파의 유명한 고수를 만나서 반갑군.”
권왕은 그 말만을 남기고 함께 걸음을 옮기지 않았다.
그는 위 상선에게 말했다.
“나는 뒤처리를 하겠네. 내 탓에 이리되었으니, 객잔에 보상을 제대로 해야겠지.”
목현의 시선이 방 모퉁이로 향했다.
“목희야.”
“…….”
목희가 감격한 얼굴로 권왕을 바라보고 있었다. 증조할아버지를 따라 무의 길을 걸어가는 그녀에게, 태산과도 같은 권왕이 또다시 성취를 얻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목희는 기쁘고 뿌듯했다.
“나 좀 도와주려무나.”
“…네!”
목현의 곁으로 목희가 다가갔다.
‘…잘됐다.’
검선은 권왕이 알아서 대화 자리에 빠지자, 마음이 편해졌다.
권왕은 경지는 물론이거니와 무림 연배를 따졌을 때, 검선이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그런 이가 알아서 빠진다면, 황족과의 대화는 조금 더 수월할 터.
권왕이 벽을 부순 방을 나와 복도 맞은편에 자리한 또 다른 방.
그 안에 검선이 들어서자, 김 공자가 그를 맞이했다.
“앉으시지요.”
김 공자의 맞은편에는 오로지 의자가 하나뿐이었다.
즉, 검선만이 그와 마주 앉을 수 있다는 뜻일 터.
‘괜찮은 자군.’
검선은 자신의 체면을 알아서 챙겨주는 김 공자의 행동이 흡족했다.
황족이라고 하여 기고만장할 줄 알았건만, 생각보다 괜찮은 자였다.
‘흐음.’
그는 슬쩍 주위를 둘러보았다.
위 상선, 호 장로가 당연하다는 듯 시립했다.
그리고 김 공자의 수하로 보이는 듯한 2명이 각기 창가, 그리고 김 공자의 뒤에 섰다.
창가는 수이 칸, 케일 뒤는 최한이었다.
“문을 닫겠습니다.”
그리고 반백발의 수하 한 명이 밖에서 문을 닫았다.
드르륵.
케일은 론이 문을 완전히 닫은 것을 확인한 후, 위 상선을 바라보았다.
그에 위 상선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들고는 입을 열었다.
“이리 방문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자신을 향한 인사에 검선은 별것 아니라는 듯 살짝 손을 들어 보였다.
그리고 살짝 멋쩍은 듯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아닐세. 안 그래도 불미스러운 일이 있다고 들어, 이리 연락을 줄 것이라 예상을 했었네.”
“…….”
위 상선이 멈칫했다.
호 장로도 마찬가지였다.
-장로님, 미리 언질을 했습니까?
-아니요! 안 했는데요!
두 사람은 긴박하게 전음을 주고받았다.
케일의 미간도 찌푸려졌다.
‘…불미스러운 일이라니. 생강시에 대해서 검선은 알고 있는 건가?’
하긴, 검선 정도의 위치가 되면 어느 정도는 파악하고 있으려나?
그래서, 검선이 남궁태위를 굳이 데리고 다니는 건가?
케일의 머릿속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크흠.”
검선은 케일의 미간이 찌푸려지는 듯하자, 입을 열었다.
“서로 간의 작은 오해가 발생한 듯하니, 이는 조용히 해결하는 것이 좋을 듯싶소.”
그는 꽤 괜찮아 보이는 황족인 김 공자와 남궁유학 사이의 일을 수월하게 해결하고 싶었다.
“그러니 원하는 바를 말해주면, 내 검선의 이름을 걸고 최대한 성의를 표하겠소.”
허.
호 장로가 저도 모르게 탄식을 흘렸다.
반대로 위 상선의 미간은 찌푸려졌다.
“…지금 작은 오해라고 하셨습니까?”
“그렇네. 큰일도 아니지 않은가?”
하!
위 상선이 탄식을 터트렸다. 물론 호 장로와 달리 그 탄식에는 분노가 조금씩 서리고 있었다.
“남궁세가의 이름이 무림에서 드높다고는 하나, 그것은 모두 하늘 아래의 일. 지금 남궁가에서 벌어진 일을 단순히 작은 오해라고요? 큰일이 아니라고 했습니까?”
위 상선은 말을 할수록 화가 났다.
혈교도 혈교지만 자그마치 생강시다.
그 생강시가 폭주해서 폭발하게 되면, 무림인들도 다치겠지만. 잘못하다간 일반 백성들이 다칠 확률이 있었다.
아니, 그 확률은 높다. 그리고 그리된다면, 많은 사상자가 발생할 터.
그런데 그것이 고작 작은 오해이고, 큰일도 아니니. 조용히 넘기자고?
그리고 그걸 성의로, 돈으로 해결을 보겠다고?
위 상선의 눈동자에 불이 일었다.
검선이기에 어느 정도 대우를 해줬으나, 따지고 보면 벼슬 품계도 없는 자였다.
그런데 감히, 이런 행동을 보인다니. 위 상선은 참을 수가 없었다.
“참으로, 오만방자한 발언이군요.”
“…뭐라?”
검선의 잠잠하던 눈동자에도 불꽃이 일었다.
지금 대남궁세가를 향해 오만방자하다고 해?
눈앞의 김 공자가 황족이고 또 꽤 강할 것으로 추정이 된다지만. 그렇다고 하여도 자신은 검선이었다.
손자의 망나니 같은 행동을 수습하려고, 검선쯤이나 되는 자신이 나서서 성의까지 표하겠다고 하면. 충분하지 않은가?
설사 그 방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사과를 요구하거나 뭔가를 더 요구하면 되는 일.
“…우리 남궁이, 이 내가 오만방자하다고?”
그런 말을 들을 일은 결코 아니었다.
달그락.
탁자 위에 있던 빈 찻잔이 진동했다.
검선 주위의 공기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렇습니다. 참으로 오만방자합니다.”
하지만 위 상선은 굽히지 않았다.
“하! 자네야말로 참으로 방자하구나, 감히 이깟 일로 남궁을 모욕해?”
“이깟 일이요?”
하하! 위 상선은 기가 차다는 듯 웃음을 터트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생강시를 이깟 일이라 판단하는 자는 검선, 당신과 남궁세가뿐일 것이오!”
어느새 위 상선은 존칭도 집어치워 버렸다.
“무림, 나아가 이 중원 전체를 위협하는 일을, 고작 남궁세가의 체면을 위해 조용히 넘기자고? 그것이 말이 된다고 보오? 현 정파의 존경을 받는 오선 중 검선이 할 말이란 말이오?”
“…지금-”
검선이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니까, 지금, 생강시라고 했나?”
위 상선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 얘기가 아니면, 지금 검선 당신을 만날 일이 무엇이 있소? 아니, 뭐 처음 듣는 것처럼-”
그의 눈이 커졌다.
위 상선은 입을 다문 채 검선을 바라봤다. 분노가 가시니, 검선의 표정이 그대로 보였다.
“…생강시라고- 생강시가, 왜……?”
기세를 올리던 이답지 않게, 당황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위 상선을 지나 호 장로에게로 향했다.
“호 장로. 이게 무슨 말이지? 내가 지금 무슨 소릴 들은 것이지?”
“그것이-”
눈치만 보던 호 장로는 힐끔 케일을 쳐다봤다.
케일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침음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혈교에서 생강시를 만들었는데, 그 생강시가 현재 남궁세가에 있다고 추측되어 이를 확인하여야 합니다.”
침묵이 내려앉았다.
검선이 허공을 보며 중얼거렸다.
“…혈교라니-”
마교라면 몰라도, 혈교는 무림에서 모습을 감춘 지가 오래였다.
그런데 뜬금없이 혈교라니?
거기다가 그 혈교가 생강시를 만들었다고?
이 또한 쉬이 믿기 힘든 말이었다.
그런데-
“생강시가, 남궁세가에 있다고……?”
위 상선은 검선의 눈빛에 그간 대화에서 오해가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는 당황한 노인을 향해 분노를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답했다.
쓸데없는 말은 지운, 핵심만 전했다.
“남궁태위. 그자가 생강시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뭐라?”
검선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남궁세가에서 일하는 이가 아닌, 남궁가의 피를 이어받은 자가 생강시라고?”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하지만 위 상선은 긴장감을 높였다.
조금씩, 검선의 눈동자에 피어오르는 불길을 보았으니까.
“더욱이 창천수호대. 우리 남궁세가를 수호하기 위해 평생을 바치는 아이가, 생강시라고?”
점점 검선의 언성이 높아져 갔다.
“그것이 말이 된다고 보나? 남궁태위의 어릴 적 모습을 내가 보았다. 그 아이가 크는 것을 내가 보았어!”
달그락 달그락.
탁자 위의 찻잔들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어찌 이리 말도 안 되는 소릴 하는 것이냐!”
달그락, 콰직!
찻잔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으음!”
호 장로가 침음을 흘렸다. 분노한 검선이 일으킨 거센 내공의 파동에는 살기와 분노가 가득했다.
그 서슬 퍼런 기세에 호 장로의 몸이 움츠러들었다.
“진정하십시오, 검선.”
“진정?”
말리려는 위 상선을 향해 검선은 비웃음을 흘렸다.
그는 자리에 일어섰다.
콰직. 콰직.
그가 앉아있던 의자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휘이이–
그를 중심으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검선 어르신.”
호 장로가 겨우 입을 열어, 검선을 달랬다.
“놀라신 것은 압니다. 그래도, 한번 확인을 해보아야 할 일이 아닙니까?”
그도 한 문파의 장로로서 검선의 마음을 이해했다.
갑자기 남궁세가에 혈교에서 심어놓은 생강시가 있다고 하면 누가 믿겠나?
그것도 혈족에, 조카 손주라면 말이다.
“믿기 힘드시겠지만-”
“닥치게, 호 장로!”
검선은 결국 분노를 터트렸다.
“이딴 허튼 말을 내가 믿을 것 같은가? 감히 남궁가의 핏줄이 생강시라고? 이제 보니, 개방이헛소리에 신나서 나를 이런 자리에 불러온 것이군!”
그의 시선이 위 상선에게 향했다.
“아무리 황실이라고 하여도, 이럴 수는 없소! 우리 핏줄을 이은 아이가 생강시라니! 그 말은 우리 남궁가에서- 남궁가에서-”
그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남궁태위가 생강시가 되었다.
그 말은 결국 남궁세가에서 남궁태위가 혈교에게 당해 생강시가 되는 동안 아무것도 몰랐단 소리였다.
노인은 그 사실을, 그 두려움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 분노를 대신 표현했다.
“우리 남궁세가에, 그런 말도 안 되는 누명을 나는 믿을 수 없다! 감히, 나 검선 앞에서 그딴 소리를 할 수가 있단 말이냐!”
“있지.”
담백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검선의 시야에 담긴 두 명.
그의 기세에 눌려있던 위 상선과 호 장로는 아니었다.
검선은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려 했다.
그때였다.
‘!’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김 공자.
그래, 그 황족과 시선이 부딪쳤다.
그러나 검선은 그 황족이 보이지 않았다.
아니, 보여도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거대한 산이 보였다.
실제로 거대한 산이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태산이 눈앞에 있는 것 같았다.
정확히 말하면, 태산이 자신을 짓누르는 듯했다.
김 공자에게서 흘러나온 기세가 태산이 되어 검선을 뒤덮었다.
“이, 이 무슨-”
검선은 스스로 말을 더듬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대신 그는 고개를 숙였다.
자신의 두 손이 떨리고 있었다.
분노해서가 아니었다.
가공할 압박감에 절로 몸이 움츠러들었고, 손이 떨렸다.
검선은 깨달았다.
‘내가, 이 내가 공포를 느낀다고?’
압박감은 점점 심해져 갔다.
숨이 막힐 것만 같은 기세.
그 기세를 이겨내고 겨우 고개를 들었을 때.
그는 미소 짓고 있는 김 공자를 볼 수 있었다.
케일은 저를 바라보는 검선을 향해 툭 내뱉었다.
“그래도, 검선이라 그런지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는 있나 보네.”
그는 손을 들어 올려, 금이 간 의자를 가리켰다.
“검선 어르신, 앉으세요.”
그리고 이어 말했다.
“아직 이야기가 다 끝나지 않았으니까.”
오히려 케일이 할 말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곧 그의 머릿속에 라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간아, 인간아! 드디어 터나?
케일은 검선을 향해 최대한 부드럽고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자, 얼른 앉아야죠? 세 번 말해드릴까요?”
털썩.
검선이 주저앉듯 의자에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