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860
#2부 102화
15장. 기도 안 차네
나온다.
또 나온다.
피가 그냥 계속 나온다.
“커헉.”
이러다 과다출혈로 죽는 거 아냐?
“이, 인간아! 최한아, 인간 이렇게 피 토하다가 주, 죽으면 내가 세상 부순다! 중원 부순다!”
라온의 목소리가 들린다.
“오, 세상에-. 저, 저것은 어떤 존재-”
호 장로의 덜덜 떨리는 목소리도 들렸다.
“케일 님, 케일 님!”
최한의 당황한 목소리와 함께 케일은 결국 또다시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커헉!”
피가 또 나온다.
미치겠네.
그의 몸이 휘청이며 더욱더 앞으로 수그러졌다. 주저앉아있던 몸이 이제는 절을 하는 듯 고꾸라졌다.
두 팔을 뻗어 땅을 짚으려고 했지만, 몸의 반응이 빠르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몸은 앞으로 엎어지지 않았다.
“정신 잃지 마라.”
수이 칸의 부축을 받은 케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숨 제대로 쉬고.”
케일은 대답 대신 그냥 눈을 감았다.
피가 나와서 미치겠는데.
이렇게 피를 흘려도 되나, 인간이 이렇게 피를 흘리면 그냥 죽지 않나 싶은데.
‘…시원하다.’
속이 점점 편해지더니, 이제는 청량한 공기를 들이마신 듯 내부가 시원했다.
더불어 머리도 맑아졌고, 온몸에 피가 도는 것처럼 온기가 느껴졌다.
-히, 힘들다!
울보 노인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케일은 무시했다.
그는 느끼고 있었다. 지금 몸이 어느 때보다도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있다는 것을.
‘이제 좀 괜찮네.’
쿵. 쿵. 심장이 제 속도로 뛰는 것을 느끼자, 피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닦을 것 좀.”
이제는 제대로 말이 나왔다.
케일은 손바닥을 펼쳤다. 손끝도 안 떨리고 멀쩡했다.
“네.”
최한이 분명 ‘네.’라고 답했다.
‘응?’
하지만 케일의 손에는 아무것도 쥐어지지 않았다. 대신 최한과 라온이 어디서 가져온 것인지 모를 큰 수건으로 케일의 입가를 비롯해 얼굴 근처와 목을 닦아주었다. 옷에 묻은 것도 최한은 닦아댔다.
“인간아, 이제 괜찮나?”
“어. 멀쩡해.”
케일은 솔직하게 답했다.
“요 며칠 중에 지금이 제일 상태가 좋아.”
“…케일 님!”
“응?”
케일은 다그치는 듯한 최한의 부름에 멈칫했다.
‘얘가 왜 이래? 아까부터 김 공자라고 부르는 것도 까먹은 것 같은데.’
표정이 무섭다.
‘!’
하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을 보고야 말았다.
론이 최한의 어깨너머 가만히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원래라면 케일에게 묻은 피를 가장 먼저 닦아줬을 것 같은 사람이 우두커니 서서 케일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도 조금도 웃지 않고서.
‘뭐야?’
진짜, 무섭다.
냉막한 인상에 케일은 저도 모르게 시선을 슬그머니 돌렸다.
“하!”
그 순간, 론이 기가 차다는 듯 탄식을 흘리는 것이 들렸다.
케일의 어깨가 움찔했다. 그 꼴을 보고 수이 칸이 혼자 피식거렸지만, 알아챈 이는 없었다.
이어진 케일의 말 때문이었다.
“비켜봐.”
그의 시선이 한 곳으로 움직였다.
“남궁태위 상태 좀 보게.”
케일은 몸을 일으켜 세웠다.
‘아주 좋네.’
아까 주저앉을 때와 달리 지금은 아주 가뿐하게 일어날 수 있었다.
그는 수이 칸의 부축을 슬쩍 밀어내고서 수이 칸에게 가려져 있던 남궁태위에게로 다가갔다.
“…김 공자.”
검선의 눈가가 떨리고 있었다. 케일은 그를 힐끗 쳐다보고는 남궁태위를 먼저 살폈다.
폐가 바닥에 고이 누워 있는 남궁태위.
케일은 그 옆에 쪼그리고 앉아 그의 심장 부근을 바라봤다.
흉측한 모양의 검은 심장이 불거져 나와 있던 자리.
더 이상 검은 심장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하여 그 자리에 새살이 돋아난 것은 아니었다.
‘저게 뭐지?’
붉은 막이 그 자리를 덮고 있었다.
케일이 사용하는 파괴하는 불 빛깔을 꼭 닮은 붉은 막.
그것이 검은 심장이 있던 자리에 새로이 자리하는 중이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붉은 막.
그것의 촉감은 피부와 철. 그 중간이었다.
다만 따뜻했다.
인간의 체온보다 조금 더 뜨거웠다.
쿵. 쿵.
그리고 그 아래 뛰는 심장이 느껴졌다.
케일은 고개를 들었다.
남궁태위는 잠이 든 것처럼 눈을 감은 채 평온하게 숨을 쉬고 있었다.
그는 살아 있다.
온몸에 어떠한 검은 실선의 흔적도 없이.
그에게 남은 흔적이라고는 붉은 막뿐이었다.
케일은 시선을 옮겼다.
검선.
그가 떨리는 눈으로 케일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정화자시여, 죽은 마나의 기운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감격에 겨운 더스트 신관의 목소리에 케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위 상선을 바라봤다.
“위 상선, 한번 살펴봐 주겠습니까?”
“네, 네!”
눈이 마주친 위 상선이 멈칫했지만, 이내 남궁태위의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맥을 살피는 듯 눈을 지그시 감았다.
“라온, 너도 한번 살펴봐.”
“…알았다, 인간.”
라온이 불퉁한 얼굴로 케일을 쳐다봤지만, 이내 남궁태위를 살폈다. 그 눈빛은 꽤 진지했다. 케일은 라온의 뒤통수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때, 위 상선이 눈을 떴다.
“…맥이 정상적입니다.”
하지만 말과 달리 그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위 상선은 검선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말해주게.”
검선의 담담한 음성에 위 상선은 눈을 질끈 감으며 말했다.
“…내공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단전이 아예 망가졌습니다.”
허.
호 장로가 탄식을 흘렸다.
“내가 한 번 더 살펴보지.”
권왕 목현이 다가와 위 상선이 잡았던 맥을 살폈다.
“…정말이군.”
내공.
그것은 무림인에게 있어 목숨보다 소중한 것이기도 했다.
대부분의 무공이 내공, 즉 내부에 쌓아둔 기가 있어야 제대로 위력을 발휘한다.
더불어 그 내공을 쌓기 위해 무림인들은 평생을 바친다.
그렇기에 삶과 함께 쌓아온 내공이 사라지면 무림인들은 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단전이 파괴되었어.”
그리고 내공을 담아두는 공간이 단전이다.
즉, 단전이 망가졌다는 것은 더 이상 내공을 쌓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며. 무림인으로서 살아갈 수 없음을 뜻하기도 했다.
“…아무래도 아까 자폭을 하기 전에 남궁태위에게서 일어났던 기운은 단전을 망가뜨리면서 발생한 힘 같군.”
목현의 말에 케일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검선의 눈치를 슬며시 살폈다.
내공이 사라지고 단전이 부서진 무인.
그 사람의 삶은 앞으로 고난이 가득하리라.
‘그래도 살려줬는데, 이것 가지고 원망하진 않겠지?’
케일은 검선이 아까와 다른 태도를 보이면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하는 순간.
“…그렇군.”
검선은 담담했다.
그는 남궁태위의 평온한 얼굴을 눈에 담았다.
“살았으면, 그것으로 충분하오.”
이는 진심이었다.
그의 시선이 점차 아래로 향했다.
붉은 막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따뜻하면서도 청명한 기운.
저것이 남궁태위가 지금 살아 있게 한 힘일 터.
혈교의 생강시가 되어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남궁태위.
그 아이가, 아니, 이제는 아이라기엔 청년이 되어있었지만.
아이 때와 같은 얼굴로 곤히 잠든 모습을 보니, 검선은 여러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가문을 키우고, 세력을 넓히는 것이 가문을 위한 일이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자존심을 굽히지 않고, 늘 고개를 빳빳이 들고 살았다.
그렇게 해도 되었다.
자신은 정파의 최고수 오선 중 한 명인 검선이었으니까.
대남궁세가의 태상가주였으니까.
그러나, 그것이 과연 옳은 생각이었을까?
‘…김 공자.’
그의 시선이 김 공자에게로 향했다. 피를 닦아내어도 이미 굳어버린 핏자국으로 그의 외양은 엉망이었다.
그는 이렇게 될 정도로 남궁태위를 살리려고 했다.
‘그 검은 기운-’
그것은 참으로 사악했다.
어찌하여 인간이 그런 기운을 품고 있을 수 있나 싶을 정도였다.
그것을 누구 하나 죽이지 않고, 누구 하나 다치지 않게끔 정화하는 모습.
‘아니지, 본인만 다쳤구나.’
자연경이라는 지고지순한 경지에 도달한 이가 피를 저리 쏟을 정도로 ‘정화’는 힘든 일일 터.
그것을 황궁의 큰 어른인 저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냥 죽여도 되는 존재인 남궁태위에게 사용했다.
‘…검선아, 검선아.’
검선이라는 이름이 부끄럽구나.
스스로가 부끄러워지는 검선이었다.
그는 살면서 처음으로 타인에게 이 말을 하고 싶었다.
‘고맙소.’
정말, 고마웠다.
“김 공자-”
이 말을 지금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검선은 생애 처음으로, 지금껏 하지 않았던 용기를 내보았다.
누군가에게 감사를 표하는 일.
겉으로 하는 감사가 아닌, 진심을 담은 감사.
내 핏줄을.
우리 가문을.
아니, 나를 살려주어 고맙다고.
만약 남궁태위가 잘못되었다면, 가문도, 자신도 무너졌을 것이다.
당신은 정말 우리의 은인이오.
“크윽!”
그때였다.
“!”
고맙다는 인사는 할 수 없었다.
김 공자가 갑자기 두 손으로 배를 움켜쥐며 몸을 웅크렸다.
“이, 인간아! 왜 그러나? 나 이런 건 처음 본다!”
“크으윽.”
케일은 당황스러웠다.
-…미안.
노인네가 울먹이면서 말한다.
-피를 너무 쏟아서… 배가 좀 많이 고프지?
이건 배가 고픈 수준이 아니잖아!
속이 쓰렸다. 배가 너무 고파서, 큰일 날 것 같았다.
그렇다고 쓰러지거나 기절할 것 같지는 않았다.
다만.
‘밥!’
참을 수 없는 엄청난 허기짐이 그를 덮쳤다.
“인간아!”
“케일 님!”
여러 목소리 사이로 케일은 라온의 통통한 볼살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사, 사과-”
사과파이.
그거라도 좀 줘-
“응?”
라온이 갸웃한 순간, 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라온 님, 사과파이 있으신가요?”
“아!”
라온이 곧바로 아공간을 열더니 사과파이를 꺼내 들었다.
“인간아! 이거 먹어라! 얼른 먹어라!”
그리고 그대로 케일의 입에 조각도 내지 않은 사과파이를 쑤셔 넣으려던 찰나.
최한이 그 모습에 당황해 검을 뽑아 들며 사과파이를 조각내려는 그 순간.
“음?”
“응?”
“!”
권왕, 수이 칸, 론의 시선이 한곳으로 향했다.
폐가의 천장.
콰지직!
그곳이 무너졌다.
“인간아! 머, 먹어라! 먹어야 산다!”
케일은 입안으로 들어오는 사과파이를 일단 되는 대로 한가득 베어 물었다.
‘뭐야?’
그리고 무너져 내리는 폐가 한쪽 천장을 멍하니 바라봤다.
폭삭 주저앉는 천장.
먼지가 일었다.
‘갑자기 뭔 일이야?’
저게 왜 무너져?
“역시.”
그때, 나직한 론의 음성이 들렸다.
뭔가 살벌했다.
그에 케일은 소름이 돋으려는 찰나.
“죽어라!”
천장에서 두 명이 훅 떨어져 내렸다.
‘뭐야? 언제 숨어 있었던 거야?’
케일은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거나 말거나 ‘죽어라!’를 외친 이가 가라앉는 먼지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살마?!’
오마 중 한 명인 살마.
살수 집단인 살문의 우두머리.
그녀가 양손 가득 쥔 비수를 허공에 던졌다.
비수가 먼지구름 사이로 날아갔다.
챙!
그때, 검이 뽑히는 소리가 들렸다.
채채채채챙, 챙!
비수들이 모두 땅으로 허무하게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케일은 천장에서 떨어진 두 번째 사람을 볼 수 있었다.
“어?”
케일은 저도 모르게 어벙한 소리를 냈다.
그리고 멍하니 말했다.
“최정수네.”
그에 먼지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최정수가 어색한 미소를 띤 채 케일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오랜만이야.”
케일은 오랜만에 팀장 수이 칸이 미간을 찌푸린 채 손으로 미간을 매만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최정수는 케일에게 조금 수줍다는 듯, 어색하게. 그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몸 괜찮아?”
우물우물.
케일은 입안의 사과파이를 일단 먼저 씹었다.
“인간아, 천천히 먹어라!”
그는 토닥토닥 등을 두드리는 라온의 앞발길을 느끼며 생각했다.
‘기도 안 차네.’
갑자기 이게 뭔 상황이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