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862
#2부 104화
“이야기는 무슨 이야기.”
검선이 콧방귀를 꼈다. 태세를 바꾼 살마에게 그는 차갑게 말했다.
“너와 나는 상황이 다르다.”
검선과 살마는 상황이 달랐다.
세간에서는 검선이 검마를 찾는 이유가 단순히 대련에서 진 후, 그 자존심 회복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과 달리, 살마는 살문의 문주로서 복수를 해야 했다.
이는 명분에서부터 틀이 달랐다.
“검마를 죽여야만 하는 너와 무슨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지?”“아니, 이 노인네가!”
살마가 무슨 그런 흉악스러운 소리를 하냐는 듯 놀라는 시늉을 했다.
“내가 왜 꼭 죽여야 해! 누가 보면 내가 뭐 눈에 띄는 사람마다 다 죽이는 줄 알겠어! 정말, 어디서 그런 소릴 들은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는 듯, 살마가 기겁했다.
“…뭐?”
검선이 그 모습이 기가 차다는 듯 바라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살마는 슬그머니 검선의 시선을 피하며, 케일에게 인자한 할머니 미소를 지어 보였다.
‘살자! 일단, 살아야 돼!’
살마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살아남는 것이다.
육십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그녀는 하루라도 더 살고 싶었다.
그녀가 만 한 번째 살행으로 살문의 문주를 죽인 후, 문주가 된 것도 살기 위해서였다.
만 번의 살행을 성공한 희대의 살수.
그녀의 위세를 두려워한 문주가 그녀를 죽일 방도를 찾고 있었고, 이를 알아챈 그녀가 먼저 선수를 쳤다.
그렇게 그녀는 살문의 문주가 되었다.
그 후 나름 그럭저럭 살마라는 별호도 얻으며, 문주로서 평범하게 잘 이끌어갔다.
‘음!’
케일을 보고 미소 짓던 살마는 멈칫했다.
그녀가 호의를 담아 최대한 착해 보이는 인자한 미소를 지었건만, 오히려 상대의 표정이 차가워졌다.
마치, 그녀의 속내를 다 안다는 듯.
‘역시 쉽게 봐선 안 되는 자구나!’
살마는 긴장감이 밀려왔다.
‘내가 이 더러운 무림 바닥에서, 그것도 살수의 세계에서도 살아남았건만! 여기서 죽을 순 없다!’
그 생각에 그녀는 더욱더 선량한 몸짓을 하며 웃어 보였다.
‘으음.’
그럴수록 케일은 찝찝해져 갔다.
살마가 웃는 저 모습.
꼭 론을 떠올리게 했다.
‘…암살자들은 다 저렇게 웃는 건가?’
저 인자한 척하는 미소.
괜히 케일은 저 살마가 껄끄러워졌다.
이를 검선이 봤다.
스윽.
금빛을 머금은 검 끝이 한 걸음 살마 가까이로 다가갔다.
“거, 검선! 진정하라니까?”
살마는 케일에게 다급하게 말했다.
“김 공자님! 저와 이야기 좀 나누시면 안 될까요? 이야기로 충분히 오해를 풀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녀는 최정수를 두 손으로 가리켰다.
“여기 검마님을 죽일 생각이 저는 전~혀~ 없었답니다! 앞으로도 없을 거예요! 그리고 김 공자님과 검마님 근처에는 얼씬도 안 하겠습니다! 제 명예를 걸겠습니다!”
“허이구. 걸 명예가 있나 모르겠네.”
검선이 비웃듯 건넨 말을 살마는 못 들은 척했다.
사실 그녀에게 명예는 지나가던 개미에게 줘도 상관없는 존재였다.
“…….”
케일이 빤히 쳐다보니, 살마는 공손히 섰다.
주변이 조용해졌다.
잠시 정적이 찾아왔다. 그렇다고 하여 어떠한 움직임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까딱.
수이 칸이 고갯짓을 하자, 최정수가 슬금슬금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러고는 최한과 눈이 마주쳤는데, 최정수는 슬그머니 그 시선을 피했다.
최한이 그에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가 최정수가 연신 힐끔힐끔 저와 케일의 눈치를 보는 모양새에 미간의 주름을 폈다.
론은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수이 칸과 눈이 마주쳤다. 이수혁 팀장의 모습으로서, 수이 칸은 빤히 론을 응시했고, 그 시선에 론은 피식 웃으며 시선을 돌렸다.
그제야 수이 칸의 입가에도 나른한 미소가 맺히며, 최정수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윽.”
힘을 주어 꽉.
최정수가 아파하며 뭐라 입을 열려고 했지만, 잠시 찾아온 정적은 다른 이가 깼다.
케일이 아니었다.
“인간아, 먹고 있어라.”
토닥토닥. 케일의 등을 두드리던 라온이었다.
라온은 폐가 구석에 있던 비크로스에게 다가갔다.
그 모습에 케일은 살마를 보며 입을 열었다.
“조용히 보내드리면, 다시는 근처에 얼씬도 안 한다고요?”
“네? 네, 네!”
힘차게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살마.
그녀를 보느라, 케일은 비크로스에게 다가간 라온이 속삭이는 것을 듣지 못했다.
“비크로스야.”
모안 비로라는 가명 대신 그 이름을 부르며.
“등에 매단 거 나 주라.”
“……?”
어느새 흰 장갑을 끼고 있던 비크로스가 의아하게 바라보자, 라온이 그 귓가에 대고 아주 작게 말했다.
“석상. 돌 중원 나 좀 달라.”
그 순간, 비크로스는 라온의 눈동자에 일어나는 불을 보았다.
검푸른 눈동자는 맹렬하게 빛나고 있었다.
“나, 돌 중원이랑 할 말 있다.”
그 목소리는 아주 비장했다.
비크로스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부수면 안 됩니다.”
“당연하다! 나는 안 부순다! 중원은 부숴도 돌 중원은 안 건든다! 그냥 이야기만 할 거다! 우리 인간처럼, 대화만 할 거다!”
비크로스의 입꼬리가 삐뚜름하게 올라갔다.
곁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위 상선이 뭔가 좋지 못하다는 생각에 눈동자가 흔들렸으나, 비크로스는 흔쾌히 등에 매단 주머니에서 동자승 석상, 돌이 되어버린 중원이를 건넸다.
“…고맙다. 착한 비크로스야.”
라온은 두 앞발에 중원이를 움켜쥐더니 케일을 힐끗 보고는 폐가의 구석, 모퉁이로 향했다. 그리고 그 모퉁이에 등을 보이고 바짝 몸을 웅크려 앉았다.
물론 그 품에는 돌 중원이 안겨 있었다.
“돌 중원아, 내 목소리 들리냐?”
라온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물론 상대방은 답할 수 없는 대화였다.
“돌 중원아, 우리 인간 봉인 풀어라. 내가 중원 다 부수는 꼴 보고 싶나? 나 가능하다. 나는 위대한 용이다. 내 마법 한 방이면 산 하나도 그냥 날릴 수 있다.”
위 상선이 움찔하며 슬그머니 라온에게서 멀어졌다.
그때, 그의 귓가로 살마의 애원이 들려왔다.
“얼씬도 안 할뿐더러, 앞으로 살문에서는 김 공자님과 검마님과 관련된 어떠한 의뢰도 받지 않겠습니다! 이쪽 방향으로는 쳐다도 보지 않겠습니다!”
듣고 있던 케일이 툭 내뱉었다.
“그건 곤란하겠는데요?”
“…네?”
멈칫하며 되묻는 살마에게 케일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물론 말라서 덜 닦인 핏자국을 매단 채.
“살마. 당신은 내 시야를 벗어나면 좀 곤란하게 되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케일은 생각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살마를 마주친 것은 예상외의 일이지만.’
그럼에도 잘됐다고.
‘살마는 사파의 유명한 고수다.’
황실에서 얻은 무림 정보에 따르면, 사파의 대표 연합체인 사도련. 그곳에서 살문은 살수 단체 중 우두머리 격이며, 그 문주인 살마는 사파의 최고수로 꼽힌다.
즉, 사도련. 사파에서 영향력을 행세할 수 있는 자다.
‘그런 자가 굴러들어왔으면.’
써먹어야겠지?
안 그래도 고민이었다.
사파에 심어둔 생강시는 어떻게 처리하냐에 대해.
일단 정파는 지금 남궁과 개방이 케일과 협력하기로 했으니, 큰 산은 넘은 셈이고.
마교는 무림맹에서, 구파일방에서 회담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하니, 거기에 끼여서 살펴보면 될 것이다.
그러나 사파는 어떠한 연결 고리도 없어서 고민 중이었다.
‘오죽하면 툰카를 녹림에다가 집어넣어 버릴까 생각도 했지.’
현재 사파의 사도련은 우두머리가 있지만, 두 세력으로 양분되어 있었다.
그중에서도 한 세력은 산적의 집합체. 녹림 72채의 우두머리가 차지하는 중이었다.
그래서 툰카를 앞세워 그쪽으로 가볼까 싶었다.
‘하지만 살마가 내 밑으로 오면,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없지.’
더불어 은밀한 살수들이 한편이 되면, 아주 훌륭한 상황이 될 것이다.
이는 몰란 가문을 통해 한번 겪어봐서 안다.
‘음.’
몰란을 떠올리자, 케일의 시선이 슬그머니 론에게로 향했다.
아까와 달리 뭔가 편안해진 표정의 론이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케일은 그 시선을 슬그머니 피했다.
최정수까지 나타나자, 케일은 론과 비크로스에게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다.
‘일단, 살마 문제부터 해결하고!’
최정수랑 할 이야기도 많았지만, 그것도 차후로 미뤘다.
오랜만에 봐서 반갑다고 하기에는, 서로 마주친 꼴이 영 엉망이었으므로.
그리고 살마는 론을 쳐다보는 케일의 시선에 흠칫했다.
‘…저자는-’
천장을 부수고 아래로 내려올 때, 제일 먼저 눈이 마주친 존재가 저 반백발의 남자였다.
객잔에서부터 그녀의 은신을 간파했던 강자.
‘빌어먹을.’
김 공자는 저자를 시켜 내 목을 딸 셈인가?
어찌하여 김 공자는 자신에게 시야를 벗어나면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일까?
“살마께서는 봐서는 안 될 것을 보고 말았습니다.”
“…검마님과 김 공자님께서 친분이 있다는 걸 알면 안 되는 겁니까? 아니면 남궁세가와 김 공자님의 사이를 알아서요? 저 그런 건 진짜, 입 잘 다물 수 있습니다! 믿어주세요!”
흥.
콧방귀를 뀌는 검선은 무시한 채, 살마는 두 손을 맞잡고서 케일을 바라봤다.
“네? 김 공자님, 믿어주세요.”
김 공자가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살마. 그대는 생강시 치료 현장을 봤어요.”
“……?”
살마는 못 알아들었다.
“공자님-!”
위 상선이 당황해서 케일을 불렀다가 전음으로 말했다.
-공자님, 살마에게 알릴 겁니까? 그녀는 사파의 거두입니다! 또한 얍삽한 기질이 있어 쉬이 믿을 수가 없는데-
그때, 검선이 어깨에 힘을 빼며 툭 내뱉었다.
“김 공자, 당신은 살마를 끌어들일 생각이오?”
아.
그제야 위 상선은 케일의 생각을 알아채고 전음을 보내던 것을 멈췄다.
“검선, 괜찮겠습니까?”
케일의 물음에 검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알려질 일. 이제는 아오. 가문을 지키는 데 중요한 것은 흠을 감추는 것이 아니라, 상처가 생기지 않게 보듬는 일이라는 것을.”
검선은 의연하게 말했다.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 것인지?”
살마만이 이 대화를 못 알아들었다.
“오.”
물론 잘 모르는 최정수도 눈치를 보며 감탄만 해댔다.
“쉽게 말해드리지요.”
케일은 가볍게 말했다.
“혈교가 무림의 수면 아래에서 생강시를 만들어내서 정사마에 심어두었습니다. 그중 남궁세가에서 피해자가 나왔지요.”
“…설마-”
살마의 동공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렸다.
그녀는 남궁태위를 보고 있었다. 아까부터 곤히 자고 있던 남궁태위는 여기서 이질적인 상태이기는 했다.
“네. 남궁태위 대협이 그 피해자였고, 제가 그를 치료했지요.”
검선은 피해자라고 칭해주는 케일의 마음 씀씀이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살마는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생강시를 어떻게 치료합니까? 그런, 그런-”
그때, 남궁태위의 붉은 막이 살마의 눈에 들어왔다.
지금껏 다른 것들에 신경 쓰느라 예사로 보던 붉은 막.
“살마. 그의 말은 진실이다.”
검선이 케일의 말이 진실이라 인정했다.
“그, 그런-”
살마는 남궁세가에 흠이 될지도 모를 이야기를 선선히 인정하는 검선의 모습에 아연실색했다.
동시에 모든 상황이 납득되었다.
자연경에 이른 김 공자가 피를 통할 정도로 거대하고 정순한 힘을 써야 했던 이유.
폭삭 늙어버린 것 같은 검선의 몰골.
홀로 잠들어 있는 남궁태위.
더불어 남궁세가와 검선의 은인이 된 김 공자.
또한 무림맹 세력과 황실 간의 만남.
그 모든 것이 이해되었다.
그리고 자신의 앞에 처해진 상황도.
“살마.”
케일이 나직이 말했다.
“그대가 보지 못했다면, 그대는 이 일과 모르는 사이가 될 수 있겠지만. 이미 봐 버렸습니다.”
제기랄!
살마는 깨달았다.
“제가 이번 일을 끝낼 때까지, 살마님을 놓아드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아주 귀찮은 일에 휘말렸다.
사실 혈교든, 무림이든 그녀 알 바가 아니었다.
대신 그녀는 앞으로 골치 아픈 상황에, 주구장창 싸워야 하는 전장 속으로 끌려 들어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머리가 아파왔다.
“오늘부터 함께 움직여야겠습니다.”
케일이 환하게 웃어 보였다.
상냥하게.
“안 그래도 사파에 볼일이 많았는데, 덕분에 사파에서의 일도, 혈교 관련 문제도 우리 살마님의 도움을 많이 받겠습니다.”
살마는 도움을 준다고 한 적이 없다.
하지만 이미 김 공자는 도움을 많이 받겠다고 말해버렸다.
그리고 살마는 그 말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빌어먹을!’
자연경에 이른, 어쩌면 현 무림 최강의 고수일지도 모르는 김 공자.
검선과 검마.
그리고 이름 모를 반백의 암살 고수.
데굴. 살마가 눈을 굴렸다.
‘그래도 도망칠 구석이 없을까?’
그때, 케일이 온화하게 말했다.
“검선님에, 검마에, 살마에. 거기다 더하여 전대 고수인 권왕님까지 함께하시니. 앞으로 혈교는 무서울 일이 없겠습니다.”
권왕……!
살마의 흔들리는 눈에 그녀를 보며 씨익 웃는 노인이 보였다.
저자가 권왕! 3왕 중 한 명……!
살마는 눈을 질끈 감았다.
‘빌어먹을! 내가 호랑이굴에 들어왔구나!’
산의 왕.
호랑이가, 케일이 살마를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최정수도 찾았겠다, 이제 정사마, 혈교 문제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으리라.
-저기, 케일.
그때, 울보 노인이 말했다.
-…생강시 얼마나 더 정화해야 돼?
노인이 울먹였다.
케일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차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