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87
86화.
복면의 남자, 비크로스는 채찍을 휘둘렀다. 쉬익,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채찍이 베니온에게 휘둘러졌다.
“으아아악!”
몸은 무거웠으나, 아픔은 그대로였다. 채찍이 계속해서 베니온의 몸에 내려쳐졌다. 로브 안에 간편하게 차려입었던 귀족 일상복이 찢겨졌고 드러난 맨살에 붉은 선이 그어졌다.
채찍의 날카로운 쇠날이 피부를 찢었다. 그 안으로 채찍에서 떨어져 나간 유리가 박혔다.
라온이 태어나자마자 처음 맞았을 때와 같았다.
“으, 으윽, 으-!”
베니온이 뭐라 소리를 쳤지만 언어가 그의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는 몸부림을 쳤지만 움직임은 둔했다.
마나가 제어당한 용이 그러했듯이 그의 몸도 힘을 제대로 펼치지 못한 채 그저 부들거렸다. 그리고 한없이 웅크려졌다.
하지만 라온이 그랬듯 베니온은 식탁 위의 검은 용을 노려보았다. 절대로 굴복하지 않겠다는 눈빛이었다.
촤아악! 촤악!
그런 그의 뺨을 채찍이 훑고 지나갔다.
“으아악, 으윽!”
베니온의 몸이 경련을 했고 점점 그의 몸은 피로 물들어갔다. 하지만 비크로스는 어떠한 반응도 없이 일정한 속도로 채찍을 휘둘렀다.
피가 난 데에 또 채찍을 갈겼고, 피가 공기 중으로 비산하여도 조금의 거리낌도 없었다.
“으음.”
케일은 옆에서 들려오는 침음에 시선을 돌렸다. 아기 고양이 온과 홍이 투명화 장치 범위 안에서 몸을 웅크린 채 있었다.
홍이 힘겨운지 살짝 눈을 바닥으로 내리깔았다가 다시 베니온을 보았다가를 반복했다.
투명화 장치 안은 방음 마법도 미리 라온이 펼쳐놓아서, 소리가 나도 베니온에게 들킬 염려가 없었다. 하지만 소리가 들려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크윽, 으, 으, 아, 아!”
베니온은 볼 안이 다 터져 피를 흘리며 신음과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외쳐댔다. 그럴 때마다 비크로스의 채찍은 베니온에게로 더 무자비하게 휘둘러졌다.
말하지 마라.
가만히 있어라.
눈빛을 죽여라.
그렇게 말하듯 채찍은 끊임없이, 베니온이 조금의 반응이라도 보일 때마다 내려쳐졌다.
“…봐야 하는데, 그래야 하는데.”
은빛 고양이 온이 그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그 마음이 케일은 이해되었다. 온과 홍은 이 광경을 보는 것이 괴로웠다.
지하실, 베니온의 팔다리, 그리고 목에 족쇄가 채워진 이곳은 피로 새로이 칠해지고 있었다. 그 광경이 잔인해서, 불쌍해서 쳐다보기 괴로운 것이 아니었다.
라온이 겪은 일이 무엇인지 알았고, 지금 이 정도가 시작이라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케일은 온과 홍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애써서 보지 마.”
그리 말하며 그는 고개를 돌렸다.
식탁 위에 홀로 있는 검은 용이 보였다.
라온은 식사 중이었다. 평소 좋아하는 스테이크를 먹고 있었다. 볼이 미어터질 정도로, 꾸역꾸역 계속해서 라온은 입안에 음식들을 집어넣었다.
“아아악!”
베니온의 비명 소리를 들으며 라온은 음식을 먹고 또 먹었다.
라온은 이 순간을 바라고 또 바라왔다. 수없이 상상했던 순간이었다.
그래서 이 만찬을, 이 식사를 한순간도 놓칠 수 없었다. 반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귀한 음식들, 그리고 아프지 않은 몸, 자유로운 의지. 그 모든 것들을 만끽하기 위해 용은 입안에 음식을 욱여넣었다.
“크윽.”
라온은 입안에 음식이 너무 많이 들어와 순간 기침이 나왔지만, 멈추지 않았다. 케일은 그런 라온의 행동과 함께 라온의 얼굴을 응시했다.
라온은 울고 있었다.
하지만 절대 멈추지 않았다.
“으윽, 윽.”
사레가 들렸음에도 신음을 참으며 계속해서 식사를 했고, 베니온이 채찍에 맞는 장면을 눈에 담았다. 그런 라온을 온과 홍은 차마 보지 못했다.
케일은 그 광경을 모두 눈에 담았다.
“으으, 크으으, 으, 아.”
베니온의 몸이 심하게 경련을 했다. 비크로스는 그런 그에게 아플 만한 부분으로 계속해서 채찍을 휘둘렀다. 베니온은 이제 식탁 위의 검은 용을 쳐다보지도 못했다.
멍한 얼굴로, 온몸이 피로 물든 채 그저 정신을 잃어갔다.
촤아아악!
강한 소리와 함께 채찍이 베니온의 머리를 강타했고, 그는 결국 정신을 잃었다.
라온은 스테이크를 하나 더 입에 욱여넣었다. 라온은 눈을 뜨고 있지만, 베니온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라온은 과거의 자신이 보였다. 자꾸만 보여서 멈출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체한다.”
툭, 툭. 라온의 등을 두드리는 투박하지만 꽤 다정한 손길이 느껴졌다. 익숙한 손길이었다. 용은 고개를 돌렸다.
“쯧, 입에 다 묻었잖아.”
평소처럼 무심하다 느껴질 만한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용은 제 입가를 닦는 소매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케일의 얼굴이 보였다.
라온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베니온은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용은 그 광경을 보며 툭 내뱉었다.
“난 계속 볼 거다.”
“그래. 같이 보자.”
그 말에 라온은 식탁보 위에 얼굴을 묻었다. 케일은 웅크린 용의 등을 토닥이며 비크로스를 쳐다봤다. 케일과 눈이 마주친 비크로스는 찡그린 케일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왜 그러십니까?”
“지금 포션을 왜 써?”
케일은 비크로스의 손에 들린 포션을 턱짓하며 그를 쳐다봤다. 그 시선에 비크로스가 무덤덤히 되물었다.
“치료는요?”
“뒈질 것 같을 때 써.”
베니온은 기절을 했음에도 사지에 경련을 일으키며 앓는 소리를 냈다. 온몸이 피로 덮여 그의 피부색이 붉은색인 것만 같았다.
비크로스는 케일의 말에 다시 한번 베니온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뒈질 정도는 아니군요. 훌륭하고 적절한 지시입니다.”
그는 포션을 다시 제자리에 놓았다.
케일은 그 모습에 한숨을 내쉬며 웅크리고 있는 라온을 안아 들었다. 그리고 인상을 더 찡그렸다.
무거웠다.
엄청 무거웠다.
몇 개월 새에 크기는 그대로인데, 몸무게는 한층 더 증가한 것 같았다. 케일은 살짝 팔이 떨려왔지만 일단 용을 들쳐 안았다. 그냥 두고 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케일은 제 어깨가 젖어가는 것을 느끼며 온과 홍을 쳐다봤다. 둘은 안절부절못하며 케일과 케일 품 안의 용 주위를 빙빙 돌았다. 케일은 잠시지만 슬슬 팔이 저려와 얼른 입을 열었다.
“일단 쉬자.”
그의 말에 반박하는 이는 없었다. 다만 비크로스는 물었다.
“이자가 깨어나면 어떻게 할까요?”
“어떡하긴.”
케일의 뒷말을 라온이 답했다.
“계속할 거다.”
“그렇대.”
“알겠습니다.”
케일은 지하실 입구 문을 툭 쳤다. 탕. 작은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최한이 분노와 침울함이 뒤섞인 얼굴로 서 있었다. 케일은 라온과 자신을 번갈아 보는 최한에게 지시했다.
“저 안에 와인 새 거 있다. 챙겨 와. 잔도.”
케일은 오늘 술을 마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케일은 지하실 위, 저택으로 향하며 라온에게 물었다.
“너 그새 컸냐? 저번보다 무거운데.”
“약한 인간, 네가 팔 힘이 없는 거다.”
“반박할 말이 없네.”
이른 새벽부터 거하게 음식을 먹은 라온은 고개를 들었다. 저택 창밖의 풍경이 보였다. 안개가 걷히며 아침이 오고 있었다.
“뭐, 크면 좋은 거지. 잘 컸다.”
라온은 그 말에 케일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었다. 케일의 팔이 조금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지만 모른 척했다. 그리고 케일도 기꺼이 그 모른 척하는 응석을 받아주었다.
이제 4살이니까. 충분히 그래도 되었다.
***
3일 뒤, 늦은 밤. 라온은 식탁에서 날아올라 베니온의 앞에 내려섰다.
“하아, 하아.”
베니온은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며칠 새 그의 얼굴은 엉망이 되어 있었고 그 당당하고 귀해 보이던 이는 울며 애원하였다.
처음에는 구하러 올 것이란 기대로 노려보기도 하였으나, 시간의 흐름을 모른 채 매 끼니 음식을 먹는 라온을 지켜보는 그의 심신은 지쳐갔다.
“베니온 스텐.”
라온은 땅바닥에 얼굴을 붙인 채 자신을 쳐다도 못 보는 베니온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베니온 외에도 자신을 괴롭힌 이들을 라온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들에 대한 처분도 곧 케일의 계획을 통해서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후작도. 직접적으로 괴롭힌 적은 없어도 모든 일의 원흉인 그도 곧 비극을 맞이하리라.
“나는 너를 살려둘 생각이다.”
그래서 라온은 베니온을 살려둘 생각이다.
이제 자신을 보지도 못하고 떨고 있는 약하고, 한심하고, 증오스러운 베니온. 인간이라는 지칭도 아까웠다.
라온은 베니온이 자신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역시 짜증 나는 일이 있을 땐, 이 용 새끼 피를 보면 입맛이 돋는단 말이야.’
베니온의 귓가로 평온하고 한없이 차분한 목소리가 닿았다.
“그래서 언제고, 입맛이 없을 때마다 너를 찾아올 거야.”
베니온이 그랬듯, 검은 용 자신도 그러할 것이라고.
라온이 그리 말하자 베니온의 몸이 떨렸다. 그런 그의 몸을 다시 검붉은 안개가 감쌌다. 베니온은 두려움에 떨었다. 시야에 보이는 검붉은 안개를 보며 그는 정신을 잃지 않으려 했다.
“정신을 잃었군요.”
그러나 결국 그는 정신을 잃었다. 비크로스는 정신을 잃은 베니온을 확인하고는 케일을 바라봤다. 케일은 그런 비크로스를 보며 속으로 살짝 감탄했다.
3일. 그 콧대 높은 베니온에게 공포와 두려움을 심어주었다. 온몸이 다친 것은 당연했고, 이따금씩 이지를 잃게 할 정도의 공포를, 비크로스는 베니온에게 안겨주었다.
‘굳이 케이지 신관의 정신 고문이 필요 없었어.’
케이지를 부를 필요가 없었다.
물론 비크로스의 그 과정이 많이 잔인해 케일이 쳐다보기 힘들 때도 많았다. 하지만 보기로 약속했으니, 보아야 했다.
최한이 다가왔다. 그는 케일 옆에 서서 베니온을 내려다봤다.
“후작가에서 구하러 오나 안 오나 3일 내내 기다리는 것 같던데. 안됐습니다.”
베니온이 단 하나, 정신을 붙들고 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을 찾을 후작가를 기대해서였다. 아무리 공식 후계자가 아니라도, 후계자가 사라졌다. 이건 스텐 후작가 위상상 찾아야 할 일이었다.
“진심인가?”
“아뇨.”
최한은 케일의 물음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더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라온의 영역이라 참습니다.”
“그래.”
“아무튼, 살려준다고 그나마 희망을 품었을 텐데 말이죠.”
최한은 묘한 눈빛으로 베니온을 내려다봤다.
후작가는 베니온 스텐의 바람대로 그를 이 잡듯이 찾고 있는 중이었다.
장남 테일러의 동료인 케이지의 능력으로 베니온의 두 수하가 잡혔고, 그들을 통해 베니온이 스텐 영지의 뒷세계와 협력하며 온갖 불법적인 일을 저지른 것이 드러났다.
그 사실에 영지민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스텐 후작가가 권위적이더라도 가장 귀족다운 이들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현재 스텐 후작가는 케이지와 동료들이 현장을 급습했을 때 수하들이 다치는 것을 내버려 두고 홀로 도망간 베니온 스텐을 찾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이 일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이는 관련 증거들을 손에 쥐고 있는 장남 테일러 스텐이었다.
케일은 비크로스와 최한에게 지시했다.
“준비해.”
비크로스는 새 흰 장갑을 꼈다. 그의 손에는 포션이 들려 있었다. 베니온 스텐은 깨끗한 모습으로 자신이 뒷골목에 마련해 두었던 비밀 아지트에서 잡힐 것이다.
살아남은 뒤의 절망을 느껴볼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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