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871
#2부 113화
차갑다.
서리로 뒤덮인 이끼 위에 자리한 천년설삼.
그 가까이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손이 차가워졌다.
“인간아, 이거 잡으면 동상 걸리는 거 아니냐?”
“그러게.”
케일은 라온의 물음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최정수를 쳐다봤다.
“야, 최정수.”
“왜?”
“영약 섭취할 때 뭐 도움 될만한 참고 사항 있냐?”
최정수가 해맑게 웃어 보였다.
“나 안 먹어봐서 잘 모르는데.”
…뭘 물어볼 놈이 아니다.
케일은 잠시 잊고 있던 바를 다시금 일깨웠다.
그때, 그의 눈앞에 무언가가 나타났다.
“혹시 몰라 받아뒀습니다.”
흰 장갑이 3개나 케일의 눈앞에 자리했다.
최한이 쑥스러워하는 얼굴로 내밀었다.
“…고맙다.”
아무리 그래도 당숙의 연륜은 무시할 수 없는 건가.
케일은 새삼 최한의 연륜을 되새기며 장갑을 세 겹 꼈다.
“인간아, 잠시만 있어봐라!”
가장 안쪽에 낀 장갑에 라온이 체온 유지 마법을 걸어주었다.
케일은 솔직한 마음을 말했다.
“네가 제일 똑똑해.”
“당연한 소리다! 나는 위대한 용이다! 똑똑하고 착하고 멋지다!”
“그래, 그래.”
케일은 대충 답하며 설삼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별로 안 차갑다.
‘그래도 영약인데, 이딴 식으로 섭취하게 될 줄은 몰랐네.’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영약을 먹을 줄이야.
무협 소설을 보면 정갈한 분위기에서 고요함에 마음을 가라앉히고 몸을 가다듬고 먹던데.
“인간아! 어서 먹어라! 내가 옆에서 지켜보겠다! 혹시 무슨 일 생기면 내가 바로 론 할배한테 데려가 주겠다!”
“아냐. 그러면 안 돼.”
“뭐가 안 된다는 거냐? 먹고 자기만 하는 최정수야, 알려달라!”
“그, 무협 소설 보면, 영약 먹을 때는 안 건드려야 해. 잘못 건드리면 크게 다쳐.”
“그렇군.”
최정수의 말에 최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의 말을 내뱉었다. 그러다가 둘이 눈이 마주치자 서로 시선을 홱 돌렸다.
라온이 케일에게 물었다.
“인간아, 건들면 안 되나?”
“어. 건들지 마.”
케일이 무공을 배운 것도 아니라서 주화입마에 빠질 일은 없겠으나, 어쨌든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그는 왠지 진이 빠진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그냥 옆에서 셋이 뭐라 지껄여대든 말든 그냥 설삼을 입으로 가져갔다.
천년설삼.
천년을 버텨서 그 크기가 아주 클 것 같지만.
일반적인 인삼 정도의 크기였다.
얼마든지 한 번에 먹을 만한 수준이었다.
그래서 먹었다.
“윽!”
케일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인간, 아프나?”
“케일 님!”
“야, 괜찮냐?”
두 사람과 한 용의 말이 쏟아졌고, 케일은 설삼을 입안에 욱여넣어 씹으며 답했다.
“써.”
그리고 눈을 감았다.
왠지 모르게 주변이 조용해진 기분이었으나, 그가 알 바는 아니었다.
지금은 이 천년설삼에 집중해야 했다.
무협 소설을 보면, 영약은 삼키는 순간 몸 안에 그 기운이 퍼진다고 했다.
‘아, 못 삼키겠다.’
씹을수록 쓰다.
흙 맛도 나는 것 같다.
아니, 이끼 맛인가?
어떤 무협 소설을 보면, 영약은 순식간에 녹아서 몸 안에 퍼진다는데.
순 거짓부렁 같은데?
케일의 미간이 갈수록 일그러져 갔다.
“…인간, 아주 약이 쓴가 보다. 표정이 아주 안 좋다.”
용의 중얼거림은 흘려들었다.
‘삼키자.’
케일은 어느 정도 씹자마자 바로 삼켰다.
동시에 긴장되었다.
‘이제 무슨 일이 벌어질까.’
거대한 기운이 몸 안에 요동치며, 나와 이 천년설삼 간의 싸움이 시작되는 것일까.
아니면 그 기운을 받아들이는 과정에 고통이 일어나는 것일까.
그때였다.
-와!
응?
-신난다!
심장의 활력. 노인의 목소리를 지닌 울보가 엄청 신나 했다.
갑자기 뭔가 불길하다.
-케일, 누님들을 깨우자!
그 순간이었다.
‘커억!’
입 밖으로 소리가 흘러나오지 않았다.
쿠웅.
심장이 크게 뛰었다.
심장의 활력. 아니,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쿠웅!
다시 한번 심장이 거세게 뛴 순간.
“……!”
케일의 입이 벌어졌다.
‘뭐야, 이거? 도대체 뭐야?’
아프지 않다.
하지만 그는 느끼고 있었다.
“최한아, 지금 인간이 차갑다!”
“잠시, 지켜보자.”
케일은 벌어진 입에서 그리고 온몸에서 차가운 기운이 퍼져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만큼.
‘춥다.’
몸 안이 거대한 한기로 가득 찼다.
천년설삼.
눈 속에 파묻혀 천년 동안 쌓여온 음기. 그리고 한기가 케일의 내부를 뒤덮었다.
‘저체온증으로 큰일 나는 것 아냐?’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쿠웅!
다시 한번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몸이 들썩일 정도였다.
그때.
-물 누님에게 보낼게!
심장에서부터 시작된 혈류가.
케일의 온몸을 흐르고 있는 피가 그 한기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움직였다.
케일은 이 힘이 어디로 움직이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는 제 몸 안에 봉인되어 있던 여러 개의 고대의 힘 중 하나의 봉인이 깨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 심상이 눈을 감은 케일에게 그려졌다.
-이어서 방패 누님한테도!
한기가 가신 자리.
케일은 멈칫했다.
“…최한아. 이상하다. 인간한테서 숲의 향이 난다.”
라온의 말대로 케일은 자신에게서 나무 향을 맡았다.
아니, 나무보다는 더 거대한 숲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한낱 풀에 지나지 않는 존재가 천년의 한기와 음기를 견디려면, 그 작은 몸 안에 숲을 담아야 했다.
-좋아! 아주 좋아! 안 아프지?
울보의 말대로 아프지 않았다.
케일은 다시 한번 온몸의 피가 또 다른 봉인된 힘을 깨우기 위해 그 봉인을 감싸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춥다.’
하지만 온몸이 시리지는 않았다.
마치 겨울의 초입, 첫눈이 내린 숲의 한가운데에 서서 그 상쾌한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 같았다.
케일은 기분 좋은 감각에 저도 모르게 깊이 빠져들었다.
그럴수록 그에게서 한기와 숲의 향이 피어올랐다.
이를 멍하니 보던 최정수가 툭 내뱉었다.
“…록수네.”
“응?”
라온이 그 말에 반응했을 때, 최한이 슬그머니 화제를 전환했다.
“밖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군.”
“가깝지는 않네요.”
어색하게 대화를 나눈 최씨 일가. 그중 최한이 방의 작은 창을 살짝 열었다.
케일이 머무는 전각.
연무장과 마당까지 딸린 그 전각 담벼락을 넘어오는 자는 없었다.
다만 그 근처로 사람들이 조용히 모여들었다.
그 수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하나같이 놀란 얼굴로 이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중에는 검선과 남궁마혁도 있었다.
“…아버지.”
“놀랍구나.”
검선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천년설삼이 아무리 영약이라도, 이런 기운을 뿜어낼 수 있다니.”
“…영약을 섭취하는 중에 주변을 영약의 성질에 따른 자연으로 채운다라- 놀랍습니다.”
“그렇지. 어쩌면 저것이 자연경일지도 모르겠구나.”
부자의 대화는 담벼락 너머까지 들리지 않았다.
최한은 검선이 사람들 중에 있음을 보고는 창문을 닫았다.
“괜찮을 것 같다.”
그가 있는 한, 케일에게 해가 될 일은 일어나지 않을 터.
“최한아, 인간 기분 좋아 보인다.”
라온의 말대로 케일은 어느새 편하게 앉은 채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만큼 청량한 겨울의 공기가 방안을 채웠다.
춥지 않을 정도로만.
-케일.
케일은 울보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맛있었어! 새로운 풀 맛이야!
부서지지 않는 방패. 먹보 신녀의 목소리와.
-…빌어먹을 신 새끼 같으니라고. 균형의 신이야? 나를 봉인한 게?
하늘을 잡아먹는 물. 거친 언어를 내뱉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어느 정도 봉인이 풀렸지?’
그 물음에 방패와 물이 차례로 답했다.
-70%.
-53%.
두 고대의 힘 봉인은 완전히 풀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들의 목소리가 케일에게 들렸다.
천년설삼이라는 귀한 영약을 사용했음에도 이 정도 수치는 아쉬울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그렇지 않아. 이 정도만 해도 엄청난 성과야.’
특히 부서지지 않는 방패의 힘을 70%라도 쓸 수 있다는 건, 아주 좋은 일이었다.
‘심장의 활력에 부서지지 않는 방패가 있는 한, 적어도 크게 다칠 일은 없을 거야.’
거기다가 공격력으로는 부족함이 없는 하늘을 잡아먹는 물이 있으니, 혹시 싸울 일이 생겨도 어느 정도 버틸 수는 있으리라.
-이제 정리할게!
밝아진 심장의 활력이 건넨 말에 케일의 입가에 미소가 더 짙어졌다.
‘괜찮네.’
영약 섭취. 먹을 때 써서 그렇지, 어디 아프지도 않고 무난하고 부드럽게 일이 진행되어 케일은 흡족했다.
앞으로 영약을 많이 구해야 할 것 같다.
물론 정파 최고 부자 중 한 곳인 남궁세가에서 보물이라고 내놓은 천년설삼 정도의 영약을 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래도 황실에서 뜯으면 있겠지.’
위 상선이 구해온다고 하니, 기다려보면 될 터.
‘안 되면 중원이 보고 귀한 영약 있는 장소 불라고 해야지.’
물론 그 녀석도 균형을 언급하면서 자신이 말할 수 없다고 할지 모르겠으나.
‘본인 세계를 구하고 싶으면 말하겠지.’
케일이 신경 쓸 바는 아니었다.
‘이제 눈 떠도 되겠지?’
-응, 응!
기분이 좋아진 케일은 노인의 발랄한 대답도 넘어가 주며 눈을 떴다.
그 순간, 주변을 감싸고 있던 한기와 숲 향이 순식간에 사그라들며 케일에게 흡수되었다.
“…케일 님.”
최한이 차분하게 물었다.
“도움이 되셨습니까?”
그 물음에 케일은 어느 때보다도 망설임 없이 답할 자신이 있었다.
아주, 도움이 되었다고.
그렇게 말하기만 하면 되었다.
-정리 끝! 이제 마무리로, 노폐물만 버리자!
응?
심장의 활력이 산뜻하게 말했다.
-봉인을 푸느라, 피에 찌꺼기들이 생겼거든! 그거 버려야 돼! 안 아파!
아.
케일은 탄식을 내뱉을 뻔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
벌어진 입에서 피가 한 움큼 흘러나왔다.
“이, 인간아! 인간아! 이거 괜찮은 거 맞나?”
라온이 놀라서 앞발에 들고 있던 당과를 내팽개치고는 케일에게 다가왔다.
“최한아, 인간이 이상하다! 미소 지으면서, 아주 편한 얼굴로 피를 토한다! 나 이런 건 처음 본다!”
“으음.”
최한도 당황한 듯했다.
옆에서 최정수는 라온이 내팽개친 당과를 주우며 얼떨떨한 얼굴로 케일을 바라봤다.
“…케일 님?”
케일은 한 움큼 검붉은 피를 토해내자, 이제는 주르륵 입가를 타고 흐르는 피를 대충 닦아내며 답했다.
“나 멀쩡해. 아주 좋아.”
최씨 일가 2명과 어린 용의 표정이 구겨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케일은 솔직하게 말했다.
“진짜, 좋았어. 영약 계속 먹고 싶어. 건강해지는 기분이야. 아니, 건강해져.”
왠지 모를 감정에 다다다 말을 쏟아낸 케일은 세 존재의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피했다.
드르륵.
그때, 방문이 열렸다.
케일이 머무는 곳의 방문을 별다른 말도 없이 열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었다.
“…….”
론과 눈이 마주쳤다.
케일은 저도 모르게 입가에 묻은 피를 기나긴 옷소매 자락으로 훔쳐댔다.
“…갈아입을 옷을 가져오지요.”
론이 인자한 미소와 함께 옷을 가지러 사라졌다.
케일은 알 수 없는 찜찜함에 시선을 돌렸고 최정수와 눈이 마주쳤다.
“어, 어-”
머뭇거리던 최정수가 말했다.
“히, 힘내라?”
케일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고, 그는 최정수를 그냥 외면했다.
그날 밤.
남궁세가 장원에 기거하는 모든 무인들은 가장 좋은 객당에서 피어오른 그 차가우면서도 청량한 기운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 은인은 자연경이다!
그 소문이 남궁세가 안에서는 기정사실이 된 순간이었다.
물론 남궁세가 장원의 높다란 담벼락을 넘지는 못했으나.
“그, 그렇단 말이지?”
남궁세가에 머물고 있던 수하의 급한 연락을 받은 안휘성 성주의 동공을 흔들리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 * *
다음 날.
케일은 검선과 가주에게 말했다.
“바로 무림맹으로 가려고 합니다.”
최정수도 찾고, 봉인도 조금 풀렸으니.
이제 남은 것은 혈교를 처리하는 일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