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875
2부 117
“…….”
맹주 고세범은 제 손에 들린 찻잔을 바라봤다.
달그락.
찻잔의 떨림이 멈췄다.
그는 자신의 손이 떨리는 줄도 미처 몰랐다.
‘뭐지?’
찻물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보였다.
한껏 눈을 크게 뜬 채, 그 이마에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
자신의 얼굴은 생전 처음 겪어보는 상황에 당황, 아니, 두려움을 느꼈다.
그래, 맹주인 자신이 지금 겁을 집어먹었다.
‘도대체 이게-’
그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인지를 할 시간이 필요했다.
물론 그 시간은 짧아도 상관없었다.
단 몇 초 전을 되새길 시간. 그 찰나 정도면 충분했으니까.
처음.
김 공자라는 자가.
‘손님을 이리 대하면 곤란하지.’
이리 말했을 때만 하여도, 그 콧대 높은 황족의 기질은 감출 수가 없구나 싶었다.
동시에 어찌하여 황족만큼은 아니어도 콧대 높기로는 만만찮은 남궁세가의 핏줄들이, 그중에서도 특히 고집이 센 검선이 이자를 향해 허리를 숙였는지 의아했다.
그때였다.
거대한 기운이 그의 숨통을 조여왔다.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막대한 내공을 지니게 된 후로, 그는 늘 내공을 이용해 상대의 경지를 가늠하는 것을 즐기고는 했다.
그럴 때면, 상대방도 내공을 일으켜 그에게 반항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의 내공을 이기지 못했다.
물론 천마나 사도련 련주와는 이를 겨뤄보지 못했지만, 검선조차도 무공을 떠나 내공만큼은 자신에게 한 수 접어줘야 했다.
나중에 가서는 고수라고 불리는 자들은 자신의 내공 시험을 은근슬쩍 피하였다. 자존심이 상하는 탓이리라.
그렇기에 맹주는 자신의 수하나 어린 후기지수들을 상대로 이 시험을 이어왔다.
이것만큼 그 사람의 그릇을 알아보기 쉬운 방법은 없었으니까.
그리고 총군사 제갈미려의 말대로 ‘질 나쁜 취미’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건 취미 수준이 아니다.’
고세범은 저도 모르게 그 거대한 기운에 반항을 하기 위해 내공을 일으켰다.
하지만 내공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 기운은 내공이 아니었으니까.’
내공의 고수이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저 거대한 기운은 지금 이 공간에 존재하는 공기와 같은 기가 움직인 것이라는 것을.
자연이, 자연을 품은 기운이 그를 내리눌렀다. 당장 그 고개를 숙이라고.
하지만 맹주는 맹주이기 때문에 간신히 온몸에 힘을 주어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있었다.
“하-”
깊은 탄식이 입에서 흘러나온 순간, 그는 이 기를 내공처럼 다룬 자가 누구인지 비로소 인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생각을 더 이어 나갈 수 없었다.
숨을 죄어오던 거대한 기운이 더 강해지더니 그를 지배해왔으니까.
달그락.
마침내 찻잔을 쥔 손이 떨리는 그때. 고세범은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 지배당하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깨달아버리고야 말았다.
동시에 자신이 내공으로 해왔던 그 시험이 진실로 성질머리 더러운 인간의 고약한 취미에 불과하다는 것도 알았다.
진짜는 달랐다.
인간은 아무리 강해지더라도, 다가오는 태풍을 막지 못한다.
황제조차 가을 들판을 물들이는 벼들을 꺾이게 하는 태풍을 없앨 수 없다.
‘나는-’
나는 김 공자 앞에서는 태풍에 꺾이고 마는 벼와 같구나.
그러나 김 공자의 기운은 태풍과도 달랐다.
세찬 바람을 일으키지도, 날카로운 소리를 뿜어내지도, 주변을 시끄럽게 하지도 않았다.
그저 고요하게.
모든 것을 내리누를 뿐.
“맹주님.”
고요를 뚫고 담백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 찾아온 맑은 하늘을 내려다보는 태양처럼.
김해일 공자는 말했다.
“손님을 언제까지 이리 세워두실 것인지요?”
고세범은 입술이 마르는 느낌이라 혀로 입술을 축이려고 했다. 하지만 입안이 쩍쩍 말라 있음을 깨닫고 무엇도 하지 못했다.
‘봐야 한다.’
김 공자를 바라봐야 한다.
그런데 그것이 왜 이리 겁이 나는 것일까.
거대한 문파나 세가 출신이 아님에도 맹주가 된 고세범. 그는 천재 중의 천재였다.
그러나 천외천은 처음 겪어보는 속세의 인간이기도 했다.
“후우.”
그는 숨을 깊이 내쉬었다.
그리고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이미 식어버린 차였지만, 감지덕지였다.
그는 찻잔을 내렸다.
‘오판을 했다.’
김 공자. 그에 대해 자신이 아주 큰 착각을 했다.
이런 강자를 상대로 내공을 내보였다니.
부끄럽다 못해, 우스울 일이었다.
그렇기에 저자는 그에게 경고를 보낸 것일 터.
나는 너와 같이 시험을 하는 짓은 하지 않는다.
대신, 목숨을 꺾어놓을 뿐.
그 경고에 고세범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답해야 했다.
남궁세가.
그놈들이 현명한 것이었다.
“……!”
그리고 놀랐다.
그 거대한 기운을 일으켰음에도 김 공자는, 비실비실한 안색의 청년은 단아해 보이는 미소를 짓고 있을 뿐. 조금도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산책을 나온 듯 가뿐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이는 사실이었다.
-케일! 몸에 힘이 넘쳐흘러! 누님들이 깨어난 덕인 것 같아!
심장의 활력 노인의 신난 말에.
-인간아! 나 전음 들었다! 총군사가 호송이 장로한테 ‘도대체 저 사람은 누구입니까!’ 하면서 엄청 다그친다!
라온이 몰래 듣고 전해준 전음에.
또한 장난칠 생각이 싸그리 사라진 맹주 고세범의 안색에.
‘좋네.’
케일은 흡족했다.
‘무협 세계가 이런 점은 좋단 말이지.’
이래저래 설명할 필요 없이, 힘 한번 보여줘 버리면 대부분의 무림인들은 케일에게 집중해줬다.
그리고 그의 눈치를 살폈다.
‘정말이지. 의와 협을 따진다면서 결국은 힘에 따라 반응하는군.’
케일의 한쪽 입꼬리가 살짝 비틀어지듯 올라갔다.
그는 맹주가 있는 공간 안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그를 막아 세우는 이는 없었다.
타닥. 타닥.
느릿한 걸음이 천천히 맹주에게로 다가갔다.
‘제길!’
총군사 제갈미려는 이를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맹주의 허락이 없음에도 들어서는 객을 그녀는 제지할 수 없었다.
심지어 맹주실 앞에 대기 중이던 무사들조차도.
하나, 그녀는 그 무사들을 질책하지 못했다.
‘방금 전 그 기운은-’
자신이 아닌 맹주 고세범을 향했던 거대한 기운.
그녀가 그 기운을 직접적으로 맞이할 일은 없었다.
하지만 찰나, 그 기운이 그녀와 호위 무사들을 지나쳤다.
‘일부러 그런 것이 틀림없어.’
김 공자는 이 기운에 짓눌리기 싫으면 가만히 있으라고, 더 이상 허튼짓을 하지 말라고 경고를 보낸 것일 터.
-호 장로님, 뭐라 말씀을 좀 해주세요!
그녀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호 장로를 보채는 일뿐이었다.
그에 호 장로는 미간을 찌푸렸다.
-보면 모르오? 총군사가 그런 것도 몰라? 응?
호 장로는 짜증이 났다.
이 콧대 높은 무림맹 인간들이, 헛똑똑이들이 지금 우리 김 공자님을 막 대하고 있다.
이 눈에 뵈는 게 없는 것들!
이러니 혈교에 그렇게 당하고 있는 줄도 모르는 것이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는 총군사에게 냅다 전음을 날렸다.
-자연경이잖소! 딱 봐도 우리 김 공자님은 자연경이잖아!
자연경. 그 단어에 제갈미려는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굳어버렸다.
이를 보고 혀를 짧게 찬 호 장로는 한마디를 더 날렸다.
-우리 방주님 좀 불러주십시오. 그리고 맹주의 저 고약한 취미 좀 말리시지. 쯧! 총군사가 맹주의 저 시험을 은근히 지지하는 거 우리도 다 아오! 그걸 공자님이 모르겠소?
호 장로는 제갈미려에게서 시선을 돌려 맹주를 바라보며 전음을 날렸다.
-맹주님!
고세범이 흠칫했을 때.
-자연경이오. 내 말 무슨 뜻인지 아실 거라 믿습니다.
그 말에 고세범이 굳어버렸을 때.
호 장로는 얼른 뛰어가 케일을 앞질러 갔다.
‘응?’
케일이 그 모습에 의아해하자, 호 장로는 씨익 웃으며 맹주의 맞은편에 놓인 의자를 잡아당겼다.
“공자님, 여기 앉으십시오.”
탁탁.
의자 방석의 먼지까지 털어주었다.
호 장로는 자신이라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무림맹에 대한 안 좋은 인상이 남지 않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
“아이구, 공자님 찻잔이 없군요. 제가 얼른 준비해오겠습니다.”
케일에게는 아주 친절함이 철철 넘치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감사합니다. 장로님.”
왜 저래?
갑자기 호 장로가 왜 이러나 싶었지만, 케일은 좋은 게 좋은 거다 싶어 자리에 앉았다.
호 장로가 아주 재빠르게 찻잔을 구해오더니, 조심스럽게 그 찻잔에 찻물까지 부어 케일의 앞에 놓았다.
-인간아, 저 호송이 장로 론 할배처럼 행동한다.
그러게 말이다.
케일은 론을 생각나게 하는 행동에 익숙하게 그 찻잔을 들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 모습은 누가 보아도 타인의 시중에 익숙한 황족의 모습 같았다.
“맹주님.”
그리고 여전히 말이 없는 맹주에게 물었다.
“제가 여길 왜 왔는지 아십니까?”
맹주는 그 물음에 답할 말이 없었다.
그는 김 공자가 왜 무림맹을 방문했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모른다는 대답을 쉬이 할 수 없었다.
‘황족에, 자연경이다.’
고세범은 이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상황 파악이 되기 시작했다.
김 공자는 황제에게 위협조차 되지 않는, 하찮은 방계 황족이 아니라, 황가의 숨겨진 검이다.
그걸 깨닫는 순간, 다른 의미로 식은땀이 이마에 맺혔다.
어느새 제갈미려가 고세범과 케일 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이를 본 고세범은 입을 열었다.
“모릅니다.”
어느새 그의 말투가 경어가 되었지만, 그것을 지적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자연경에 이른 자라면, 분명 그 나이가 엄청 많을 것이다.’
고세범은 케일을 숨겨진 은둔 고수이자 자신보다 더 높은 연배의 강호 고수라 생각했다.
“그래요. 모를 겁니다. 제가 호 장로님께 굳이 많은 것을 말하지 말라 일러두었으니까요.”
“그러면 그 연유를 이제는 들을 수 있습니까?”
제갈미려가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그에 케일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했다.
제갈미려는 무심한 눈빛에 멈칫했다. 마치 무엇이든 들여다보는 창을 떠올리게 하는 눈동자였다.
“총군사님.”
“네, 공자님.”
“한 가지 시험을 해봐도 되겠습니까?”
시험.
그 단어에 제갈미려와 맹주 고세범, 둘의 표정이 흐려졌다.
역시나 그들의 시험이 눈앞의 고수를 화나게 만들었던 것이 틀림없었다.
‘그래. 우리 쪽에서 한 짓이 있으니, 이번에는 내가 나서야겠지.’
판단을 내린 제갈미려는 입을 열었다.
“네. 무슨 시험이든 치를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 담담한 어조에 지켜보던 위 상선과 권왕은 작게 감탄을 흘렸다.
여기서 무공 실력은 가장 떨어지나, 그 배포만큼은 자연경을 눈앞에 두고도 당당했다.
그렇게 제갈미려에게 사람들이 각자의 판단을 내릴 때.
케일은 툭 내뱉었다.
“혈마 이 빌어처먹을 새끼. 쳐 죽일 새끼.”
“…….”
제갈미려는 잠시 침묵했다.
“…네?”
그리고 멍하니 되물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케일은 진지하게 말했다.
“지금 제가 한 말 따라서 한번 해보십시오.”
케일은 총군사는 혈교의 첩자가 아니라고 생각 중이었다. 하지만 제갈은소가 생강시인 이상, 제갈세가 사람들에 대한 확인이 한 번쯤은 필요했다.
“아, 까먹으셨나요? 다시 말씀드릴게요.”
케일은 멍하니 있는 제갈미려에게 다시 한번 더 예시를 들어주었다.
“혈마 이 빌어처먹을 새끼. 쳐 죽일 새끼. 쓰레기 같은 놈. 쉽죠? 해보세요.”
“네?”
제갈미려가 다시 한번 되물었고, 맹주조차도 당황하였고, 호 장로가 어찌해야 하나 안절부절못할 때.
“맹주님!”
누군가 황급히 5층으로 들어섰다.
꽤나 높은 직책을 가진 것으로 보이는 이의 등장에 케일의 시선이 그리로 향했을 때.
-공자님, 무림맹 주력 부대 중 하나인 정의대 대주, 화산파의 강고희입니다.
위 상선이 등장한 이의 신상을 전음으로 일러주었다.
강고희. 그녀는 케일 일행을 보고 멈칫했으나, 입을 열었다.
“금의위가 무림맹을 향해 오고 있습니다!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인지, 갑자기 와서는-”
그녀의 말꼬리가 점점 흐려졌다.
총군사, 맹주, 호 장로. 그녀가 익히 아는 이들이 한 사람을 바라봤다.
그 시선을 받은 케일은 창밖을 내다봤다.
무림맹의 성문을 향해, 붉은 무사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금의위였다.
케일의 표정이 떨떠름해졌다.
-인간아! 엄청 많이 온다!
그러게.
붉은 옷자락을 휘날리며 금의위들이 무한시 성문을 지나 무림맹을 향해 맹렬히 달려왔다.
“크흠.”
케일은 저를 바라보는 시선에 저도 모르게 툭 내뱉었다.
“…날 보러 온 것 같은데.”
그리고 뻘쭘해서 슬쩍 웃어 보였다.
물론 제갈미려에게는 한 번 더 말했다.
“어서 하세요.”
그에 결국 제갈미려가 케일이 말한 혈마 욕을 내뱉은 순간, 케일은 이곳에 그가 온 연유를 말하게 되었다.
혈교, 생강시, 정사마 대전. 모든 것들이 무림맹의 우두머리와 오른팔에게 전해졌다.
그리고 금의위가 무림맹의 성문 앞에서 멈춰선 채, 케일을 모시러 왔다고 뜻을 전한 때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