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882
2부 124
케일은 진심으로 짜증이 났다.
‘아니, 왜 좀 쉬려고 하면 일이 터지냐고!’
사실 케일은 빨리 로운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래서 헤니투스 영지에서 좀 쉬고 싶다.
생각보다 헤니투스 영지에 잘 적응을 한 것인지, 아니면 중원 음식이 입에 맞지 않은 것인지.
로운 왕국으로 돌아가 제대로 된 식사 자리 한번 가지면 아주 좋을 것 같았다.
그래도 텔레포트를 이리 많은 사람들 앞에서 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이 느긋한 여행을 최대한 좋게좋게 즐기자고 마음을 먹었건만.
‘그런데 이런 쓸데없는 시간 낭비를 왜 해야 해?’
케일의 시선이 녹림의 2인자 하문에게로 향했다.
“할 말이 있으면, 길을 막을 것이 아니라 다가와서 대화를 먼저 청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하문은 자신에게로 향한 눈동자를 마주한 순간, 거대한 범의 입 속에 머리가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뭐라 대답을 하고 싶었지만, 마주한 암갈색 눈동자의 남자는 그가 대답을 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덜덜. 손이 떨려왔다.
당장이라도 도끼를 손에서 놓을 것 같았다.
푸욱.
도끼가 결국 땅에 박혔다. 하문이 그나마 자존심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땅에 박힌 도끼를 두 손에서 놓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그는 도끼를 지지대 삼아 무너지지 않고 몸을 버틸 수 있었다.
‘이런 기운은-’
도대체 이것은 뭐란 말인가?
내공도 아니다.
외공을 주로 익힌 하문이었지만, 그래도 어느 경지에 오른 이상 내공에 대한 지식도 상당한 편이었다.
‘이건 내공이 아냐.’
그저 주변의 공기가, 기운이 저 공자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것과 같았다.
‘그게 가능해?’
그런 게 가능한 사람을 본 적도, 있다는 소리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배움이 짧아서 그럴 수도 있지만, 그건 아닐 것 같았다.
왜냐면 지금 공부깨나 한다고 잘난 척해대는 사마가 놈들도, 정파 놈들도 입을 꾹 다물고 있으니까.
“고, 공자님.”
그때, 누군가가 간신히 목소리를 내며 케일에게 다가왔다.
호 장로였다.
케일은 그에게는 지배하는 아우라를 그리 강하게 사용하지 않았다.
“이만 화를 푸시는 편이-”
그가 간절히 건네는 말에 케일은 살짝 멈칫했다.
호 장로의 말대로 짜증이 나서 좀 과하게 지배하는 아우라를 쓴 것이 맞다.
저번에 맹주한테 하듯이 사용했으니까.
‘인정해야지.’
케일은 그냥 솔직하게 말했다.
“저는 이 이동하면서 사용하는 시간도 아깝습니다. 그런데 쓸모없는 일들로 다툼이 일어나고 시간을 또 허비하는 것 같아 조금 화가 났군요.”
하긴, 정파와 사파의 끝없는 갈등과 감정의 골을 생각하면 이런 다툼은 그들의 삶에서는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외부인인 자신이 섣불리 판단할 수 없는 것일 터.
케일은 기운을 거뒀다.
“아.”
“허억.”
곳곳에서 숨 들이마시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살았다.’
하문은 절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김 공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감정을 참지 못해, 저도 일을 만들었군요. 미안합니다.”
담백하게 사과하는 목소리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무서운 사람이다.’
그렇기에 하문은 두려움을 느꼈다.
이곳엔 수많은 강자들이 있었다. 무림맹의 정예 중 정예에 벽선, 팽유 등이 있었고 사파의 미래라 불리는 사마가의 기재들이 함께했다.
더불어 자신도 있었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그의 기운을 이겨내지 못했다.
‘저 정도 기운을 지닌 자라면, 우리의 목숨은 그저 한낱 파리 목숨에 지나지 않을 터.’
그런 사람이 기운을 한 번에 거둬들이며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담백하게 사과했다.
하문은 볼을 타고 땀방울이 흘러내렸지만, 등이 식은땀으로 젖어 들어갔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그는 케일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숙였다.
이미 그의 부하들은 무기를 쥔 손에 힘을 잃은 상태였다.
케일은 이를 확인하고는 고개를 돌렸다.
“사마정.”
케일은 사파 망나니를 불렀다.
“흐, 흐흐-”
사마정은 숨을 몰아쉬면서도 활짝 웃어댔다. 그 모습에 케일은 찝찝했지만, 제 할 말을 했다.
그는 사마정 등 뒤의 사마단과 사마공에게도 시선을 주었다.
“사파의 일이니, 대화로 잘 풀어서 해결하도록. 더 이상의 시간 낭비는 곤란해.”
“그래, 알, 후욱, 겠다. 대장.”
그가 내뱉는 대장이라는 단어에 녹림의 하문이 멈칫했다.
‘대장이라고? 빌어먹을! 이미 한편인 거야?’
안 되는데!
저렇게 강한 자가 사마가와 친하게 지낸다고?
그건 막아야 한다.
‘어떡하지?’
하문의 눈동자가 고민으로 깊게 물들어갈 때, 케일은 사마가에게서 등을 돌려 벽선에게로 다가갔다.
사마정은 그 뒷모습을 뚫어질 듯 바라보며 혀로 입맛을 다셨다.
“···언젠가는 한판 붙어봐야지.”
싸움에 미친 자. 사마정의 눈빛이 번들거렸다. 한편 그런 형을 지켜보던 사마공은 겨우 숨을 안정시키며 누이에게 속삭였다.
“누님. 이거 제가 잘못 생각한 것 같습니다.”
“···나도 그런 것 같다.”
사마단은 옆구리에 차고 있던 술병을 꺼내 그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사마공은 이를 말리지 않았다. 술병을 쥔 누이의 손이 떨리고 있는 것을 보았으니까.
“하아.”
술을 몇 모금 들이켜고 나서야 사마단은 진정이 되었다는 듯 술병에서 입을 뗐다.
-누님.
그때, 사마공이 전음을 보냈다.
-못해도 현경. 아니, 그 이상일 수도 있습니다.
김 공자의 경지를 가리키는 말에 사마단은 어떠한 대꾸도 하지 못했다.
까마득한 경지를 생각하니 절로 숨이 막혀왔기 때문이었다.
-그는 황제의 지낭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황제의 검. 아니, 어쩌면 황실에서 귀중히 여기고 있는 중원의 검일지도 모릅니다.
다다다 전음을 쏟아 보내는 사마공의 볼살이 얕게 떨리고 있었다.
사마단은 동생의 두 손이 소매 안으로 감춰진 것을 보았다. 분명 진정하려고 주사위를 매만지고 있을 터.
-누님. 이거 어쩌면, 어쩌면.
사마단은 멈칫했다.
마음을 가라앉힐 줄 알았던 사마공의 눈빛이 사마정처럼 번들거리고 있었다.
그의 흥분한 감정이 전음에 그대로 실렸다.
-누님, 어쩌면 저는 지금 제 인생에서 가장 큰 판에 들어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음.
사마단이 침음을 흘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마공의 눈빛이 더 깊게 타올랐다.
-중원 전체를 놓고, 거대한 싸움판이 벌어질 것입니다. 그 중심에 저는 왠지 저분이 계실 것 같군요.
사마정처럼, 김 공자의 뒷모습을 응시하는 사마공이 건넨 말에 사마단은 단 한마디를 건넸다.
“나도 똑같이 생각한다.”
그리고 그녀도 다시 술을 들이켰다.
그녀는 깨달았다. 자꾸만 술을 찾게 되는 것은 거대한 싸움판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떨리는 이 마음을 가라앉힐 수 없기 때문이라고.
술을 잡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검을 뽑아 들 것만 같았다.
무인. 그 존재로 살기로 마음을 먹은 그녀에게 검을 들 수 있는 거대한 전쟁은 심장을 뛰게 만들었다.
-누님. 이걸로 확실해졌습니다. 총군사도, 맹주도 김 공자의 말을 따르고 있을 뿐일 확률이 높습니다.
“공감한다.”
그녀는 짧게 답하고는 사마정의 옆으로 다가갔다.
“오라버니.”
“왜?”
저를 쳐다보지도 않고 김 공자의 등만을 바라보는 둘째 오라버니에게 말했다.
“대장이라고 부른 이유가 있었군요. 진짜, 대장이었네요.”
“그걸 이제 알았냐?”
그제야 사마정이 그녀를 보며 활짝 웃어 보였다. 이를 다 드러내고 웃는 모양새가 참으로 신이 나 보였다.
사마단은 안다.
사마정이 즉흥적이고 사고를 많이 치는 인간이지만. 그는 동물과 같은 이라는 걸.
그래서 본능적으로 본질을 알아채곤 했다.
김 공자를 대장이라고 어느 순간 부르기 시작했다는 모습처럼.
사마단은 자신의 핏줄들처럼, 혀로 입맛을 다셨다. 그 모습이 꼭 뱀과 같았다. 세간에서 사마가를 뱀이라고 칭하는 것처럼.
“벽선 어르신.”
그리고 삼 남매의 시선을 전혀 모른 채 케일은 벽선의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
벽선은 쉬이 입을 열지 못하고 케일을 바라보았다.
-인간아, 저 벽선이라는 할배 겁먹었다!
라온이 알아챈 것을 케일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잘됐네.’
안 그래도 케일 일행을 탐탁지 않아 하는 기색을 숨기지 못했고, 이러다가 일을 방해하면 어쩌나 싶은 인간이었는데.
이참에 기를 잘 눌러주었다 싶기도 했다.
‘그래도 그건 그거고, 할 말은 해야지.’
케일은 날을 세우면서도 그 속의 두려움을 숨기지 못하는 벽선을 향해 입을 열었다.
“많은 것이 못 미덥고, 마음에 들지 않으실 수도 있지만. 모든 것은 곤륜으로 가면 끝날 일입니다.”
사실 그렇지 않다.
곤륜에서부터 시작이리라.
하지만 명목상으로 케일은 운선 도사의 초대로 곤륜파에 들르는 것이므로, 벽선은 곤륜행까지가 끝이라고 알고 있어야 맞다.
“그러니 보기 싫은 얼굴, 얼른 도착해서 그만 보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
벽선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케일은 대답을 들을 생각이 없었기에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호 장로님.”
그리고 마차로 향하며 호 장로를 불렀다.
“네, 공자님!”
“정리를 하는 대로 바로 떠나기로 하죠. 그래도 밤은 객잔에서 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네, 네! 맞습니다! 우리 공자님 말씀이 다 맞지요! 하하하하!”
케일은 과한 호 장로의 웃음에 뭔가 기분이 떨떠름해졌지만, 그냥 대충 넘겼다. 호 장로도 수완이 좋은 사람이니, 알아서 잘 해결하고 금방 이동이 시작될 테니까.
“부탁합니다.”
“네, 공자님.”
그리고 위 상선도 있고.
케일은 묘하게 어깨가 올라간 위 상선의 모습에 의아했지만, 제 알 바 아니기에 마차에 올라탔다.
달칵.
다시 마차 문이 닫혔고, 잠시 침묵이 내려 앉았지만 곧 그 정적은 깨졌다.
짝!
호 장로가 친 박수에 시선이 집중되었다.
“다들 정비를 하도록 합시다!”
그제야 사람들은 정신을 차렸다.
호 장로는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며, 하문과 사마단에게로 시선을 보냈다.
“정리해야 할 이야기가 있으니, 잠시 이쪽으로 오는 게 어떻겠소?”
그 물음에 사파의 두 세력 대표는 고분고분 다가왔다.
이를 보며 호 장로는 벽선에게도 시선을 주었다.
“어르신-”
“···난 됐네. 알아서들 하게.”
벽선(劈善).
그와 싸울 때면 상대방은 거대한 벽을 마주한 것 같다고 하였다. 벽선은 깊이 숨을 내뱉었다.
‘벽이다.’
저것이야말로 자신이 추구하는 벽이다.
너무 거대해서 감히 그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그런 벽.
자신이 꿈꾸는 경지.
‘최소 현경. 어쩌면 자연경.’
벽선은 오늘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무도의 종착지를 보았다.
“···김해일.”
그 이름을 중얼거리는 벽선의 눈빛이 점점 더 깊게 가라앉았다.
이를 본 팽유가 옆에 있는 남궁마희에게 속삭였다.
“벽선 어르신이 김 공자님에 대한 분노가 커진 것 같지 않습니까?”
남궁마희가 덤덤한 얼굴로 말했다.
“팽 대협은 눈치가 없습니다.”
“뭐요?”
팽유는 황당하다는 듯 남궁마희를 쳐다보다가 그녀가 아무 말이 없자, 이내 한숨을 내쉬더니 다시금 속닥거렸다.
“그런데 김 공자님은 예상외네요. 진짜, 저런 분이 어떻게 나타나신 것이죠?”
그 속에 담긴 것은 솔직한 경탄이었다.
팽유는 진심으로 김 공자의 경지에 탄복하며 경외하고 있었다.
그 순간 그는 목석과 같은 남궁마희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팽유가 그 모습에 놀라서 눈이 커졌을 때, 그녀는 담담하게 말했다.
“역시 남궁세가의 은인.”
쯧. 팽유는 혀를 차며 남궁마희를 외면했다.
저 남궁바라기.
말이 안 통한다.
‘···그나저나 우리도 선을 대어야 할 것 같은데.’
하북팽가도 김 공자와 연이 닿아있으면 아주 좋을 것 같았다.
정말 아주 많이.
그리고 팽유는 이런 생각을 자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자리의 모든 이들이 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젊은 아이들은 반한 것 같군요.”
팽유는 무림맹의 젊은 무인들을 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와.”
특히 소림에서 파견 나온 정찬이라는 청년이 두 손을 맞잡은 채 닫힌 마차 문을 선망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음.”
다만 이를 따라 시선을 두었던 남궁마희는 질끈 눈을 감으며 이를 조용히 외면했다.
정찬.
그는 생강시다.
남궁태위가 그랬듯, 정화가 된다면 그도 무공을 잃을 터.
남궁마희는 마음이 답답해져 왔다.
‘김 공자님 말씀대로 얼른 가야 한다.’
시간 낭비할 틈이 없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후발대는 다시 청해의 곤륜산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
마침내 곤륜산 초입에 도착했다.
“대장!”
“대장님!”
그리고 케일은 두 명에게 대장 소리를 들으며 얼굴을 구겼다.
“크하하하하!”
그는 툰카의 웃음소리 너머로 저를 대장이라고 부르며 해맑게 웃는 사마정과 대장님이라고 부르며 간신처럼 웃는 녹림 2인자 하문을 볼 수 있었다.
짐 덩이가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