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884
2부 126화
곤륜파.
그 이름에 어울리는 전각들이 주변의 산세와 구름에 어울리게 운치 있게 자리하고 있었다.
화려한 모습을 하지는 않았지만, 자연에 어울리는 소박한 모양새가 오히려 더 격조 높아 보였다.
깨끗하게 관리했지만, 손때가 묻은 모습.
곤륜파에 사는 이들의 애정이 드러났다.
“공자님, 장문인께서 저녁 식사 자리에 초대를 하였습니다.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지요?”
그 많은 전각 중 중심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한 작은 전각.
크기는 크지 않았지만, 귀한 손님을 위한 곳이라는 느낌이 듬뿍 느껴지는 정갈하면서도 깨끗한 곳이었다.
케일은 그 전각의 몇 개 안 되는 방중 하나를 차지한 채, 입을 열었다.
“거절하세요.”
그 말에 위 상선이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이 전각은 케일 일행만이 머무는 장소였다.
“네. 알겠습니다.”
담백하게 답한 위 상선은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공자님, 혹시 바로 그것을-”
살짝 말끝을 흐렸던 그는 곧 케일의 눈빛에 똑바로 말을 이었다.
“그것을, 봉인을 푸실 생각이십니까?”
그 말에 케일의 방에 머물고 있던 몇 명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특히 권왕의 시선이 티를 내지 않았지만 집요하게 케일 앞 탁자 위에 올려진 두 개의 상자에 머물렀다.
그 순간, 케일의 담백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네. 풀어야죠. 장형이 생강시인 것을 안 이상, 지금으로는 부족합니다.”
허.
위 상선은 순간 튀어나올 뻔한 탄식을 겨우 삼켰다.
‘지금으로는 부족하다고?’
자연경에 이르렀으면서?
하지만 그의 판단이 그르다고 말할 수는 또 없었다.
‘차기 장문인으로 꼽히는 이가 생강시였을 줄이야.’
도 대협, 더스트 신관이 헛구역질을 하는 것을 본 케일 일행과 총군사 제 갈미려는 상황의 심각성을 바로 알아챘다.
곤륜파 측과 다른 무림맹 협상단은 지금 아무것도 모른 채 쉬고 있겠지만. 아는 이들에게는 지금 상황이 복잡하게 꼬이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케일의 지금 행동을 위 상선은 옳은 길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그의 마음은 편치 못했다.
‘그때 그 피는-’
남궁세가에서 김 공자는 자신의 봉인의 일부를 풀었다. 그때 서늘하면서도 나무의 향기를 품은 청량한 기운이 남궁세가를 뒤덮었다.
그 위대한 힘. 이를 느낀 남궁세가에서는 김 공자를 더 귀히 여기며 존경을 표했지만, 위 상선은 조금 더 다른 상황까지 알고 있었다.
김 공자의 시종 역할까지 하는 온 대협, 론이 가져다준 피로 범벅이 된 김공자의 옷.
그것을 본 순간, 그 봉인을 푸는 과정이 실로 얼마나 힘겹고 괴로운 과정인지 알게 되었다.
‘김 공자님에게 어떤 이유로, 무슨 봉인이 그에게 내려졌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지금도 강한 이가 쉬이 풀지 못하는 봉인이라면 얼마나 무시무시한 힘일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이 괴로운 과정을 다시 시작하려는 김 공자님을 막을 힘도, 명분도 나는 없다.’
그렇기에 위 상선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호법을 서야겠군요.”
그에 수이 칸이 앞으로 나섰다.
“제가 곁에 있겠습니다.”
“나도 있다!”
라온이 짤막하고 통통한 앞발을 들어 보였다.
권왕이 한마디를 나직이 덧붙였다.
“지붕은 내가 맡지.”
위 상선이 그에 마지막으로 말했다.
“대문 앞은 제가 지키겠습니다.”
“저도 돕겠습니다.”
권왕의 증손녀 목희까지 덧붙이며, 각자의 역할이 정해졌다.
이를 듣던 케일의 표정이 묘하게 떨떠름해졌다.
‘굳이?’
수이 칸이나 라온이 곁에 있는 거야, 그러려니 하지만. 지붕이나 대문 앞까지 지키면서 할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케일은 이들을 말리지 않았다.
‘괜히 여러 명 있으면 정신 산만해지지.’
권왕과 위 상선, 목희가 스스로 물러난다고 하니, 잘된 일이기도 했다.
현재 이곳에 있는 이들을 제외한 일행은 각자 할 일이 있어서 이 방안에 없었다.
“일단 물건부터 확인하죠.”
케일은 붉은 천으로 감싸인 보자기 2개를 하나씩 풀었다.
나무로 된 두 개의 함이 눈에 들어왔다.
같은 성질을 가진 것이라 했다.
‘불, 바람, 땅. 셋 중의 하나이고.’
케일은 어떠한 망설임도 없이 나무 함을 열었다.
‘제발!’
대신 속으로는 기도했다.
원하는 것이길.
그리고 열린 상자를 본 순간, 수이 칸은 말이 없는 케일을 향해 물었다.
“바로 시작할 거지?”
“네.”
담백하게 답하는 케일의 품에서 끊임없이 소리가 울렸다.
띠링, 띠링, 띠링!
하지만 케일은 무시했다.
위 상선이 경탄 어린 목소리로 읊조렸다. 그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이, 이것은 화, 화생화……!”
살아 있는 불을 머금은 꽃.
“황가의 보물……!”
황제는 중원을 구하겠다는 케일의 말을 믿었고, 그렇기에 황가의 보물을 내걸었다.
이전에 남궁세가에서 먹은 영약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진귀한 꽃을.
나무 함 안에는 진법이 펼쳐져 있었다. 그렇기에 여전히 꽃은 살아 있었다.
자그마치 이 땅의 초대 황제가 신선에게서 선물을 받았다고 알려진 전설을 품은 꽃이었다.
케일은 나머지 상자도 열었다.
“화석삼……!”
위 상선은 또 놀랐다.
화생화에 비하면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이름 높은 영약이었다.
용암에서 자라난 삼으로, 이 역시도 불의 성질을 품고 있었다.
케일은 탁자 아래로 주먹을 움켜쥐었다.
‘됐다!’
이 정도면 파괴하는 불의 봉인을 어느 정도 풀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생강시 정화가 더 수월해질 터.
띠링, 띠링, 띠링!
계속해서 이 세계인 중원이가 케일에게 메시지를 보내왔다.
케일은 결국 거울을 꺼내 메시지를 확인했다.
〈이거 먹으면 중원이가 균형의 신한테 혼날지도 몰라요!〉〈화석삼만 먹으면 안 될까요?〉〈그렇게 해도 봉인이 조금 풀려서 훨씬 편하실 텐데!〉띠링, 띠링-!
〈아니, 그, 화생화를 먹어도 봉인이 풀릴 거예요. 아주 많이요! 그래야 균형, 원인과 결과가 맞춰지니까요. 하지만, 저건 너무 엄청난 영약이라, 인세의 것이 아닌 신선계의 것이거든요!〉케일은 단 한마디만 했다.
“그래서 안 돼?”
무심한 목소리에 서린 짜증을 읽은 것일까.
띠이이이리잉.
케일은 깔끔하게 무시하며 거울을 뒤집어 대충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만 볼 것이니, 조용히 하란 뜻이었다.
“그럼 시작하죠.”
담백한 말과 함께 케일은 또다시 봉인을 풀기로 마음먹었다.
‘많이는 안 바란다.’
50%. 딱 절반 정도의 봉인이 풀리길.
케일은 그 정도만 바랐다.
* * *
“준비한 것들이 변변찮지만, 그래도 마음을 생각해 주시면 고맙겠소.”
장문인 인호의 말에 벽선이 곧바로 답했다.
“이미 충분할 만큼의 대접을 받고 있소, 장문인.”
“그리 말씀해 주시니, 감사하오. 벽선.”
두 사람의 연배는 비슷했다.
제갈미려는 살짝 미소를 지은 채 식탁 위를 바라봤다.
곤륜에서 준비한 식사는 화려하지 않았다.
오히려 제갈세가에서 평소에 먹는 저녁 식사에 비해 모자라다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갈한 차림새를 보아 곤륜에서는 최선을 다해 무림맹 인사들을 대했다.
‘장문인은 어떻게든 마교와의 대립을 막고 싶을 테니까.’
그리고 사실 이 식단이 왜 이런지도 여기 있는 이들은 모두 알아챘다.
무림맹의 주요 인사들이 장문인의 초대를 받아 곤륜파의 핵심 수뇌부들과 함께하는 식사 자리.
그런 자리에 초대받은 사람인 만큼, 흘러가는 시류는 인지할 정도의 연륜을 가지고 있었다.
‘곤륜은 전쟁을 준비 중이구나.’
아무리 도를 추구하는 문파라 하여도 손님이 왔을 때는 어느 정도 만찬에 어울리는 식단을 준비한다. 곤륜이 구파일방 중에서 가장 재물이 부족하다고 하여도 말이다.
‘그러니 그만큼 곤륜이 한 푼이라도 쏟아부어 진지하게 전쟁을 대비하고 있다는 소리지.’
총군사와 벽선을 포함한 무림맹 인사들의 표정이 조금 더 무거워졌다.
현 상황의 심각함을 인지했기 때문이었다.
그때, 장문인 인호가 입을 열었다.
“마교에는 연통을 넣어두었습니다.”
그는 총군사를 보며 말했다.
“조만간, 마교 쪽에서 사람을 보낼 것이오. 그러면 협상 일정과 방법 등을 자세히 정하면 될 것이오.”
협상을 위한 대화 자리는 마련하기로 합의를 이미 보았기에, 그 세부 사항만 상황에 따라 정하면 되는 일이었다.
‘걱정이구나.’
제갈미려는 마음이 복잡해졌다.
‘장형이 생강시라니.’
그 사실을 알고 나니, 마교에서 보낼 협상단에 대한 걱정도 커졌고, 아군이라 믿었던 곤륜파에서 변수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커졌다.
‘어찌해야 할까.’
고민이 깊어져 가는 찰나.
“일단 식사를 시작하도록 하지요.”
장문인 인호의 말을 시작으로 식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곧바로.
“음.
인호가 들고 있던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침음을 흘렸다.
그의 시선이 문으로 향했다.
그러자 곧 닫힌 문이 열렸다.
그 모습에 총군사는 그가 어떤 전음을 받았다고 확신했다.
끼이익.
열린 문 너머, 곤륜파의 무인이 허리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마교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섰다.
장문인의 행동에서 어느 정도 눈치를 챈 상태였기에 놀란 이는 없었다.
“총군사님. 다녀와서 먹어야겠소.”
“그래야지요. 생각보다 빨리 왔군요.”
담담하게 답하는 것과 달리 제갈미려의 마음은 무거워져만 갔다. 특히 마교라는 단어에 순간 일그러지는 차기 장문인 장형의 눈빛을 본 후로는.
‘좋지 않다.’
뭔가 예감이 좋지 않다.
그녀는 이럴 때마다 자신의 예상과다르게 일이 흘러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불안감을 꾹 누르며, 그녀는 총군사로서 망설임 없이 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 곤륜파의 정문 앞.
그곳에서 마교에서 보낸 전령이라는 존재를 맞이한 순간, 제갈미려의 입꼬리가 비틀리듯 올라갔다.
“이거 생각보다 큰 손님이 오셨군요.”
전령으로 온 마교인은 한 명이었다.
그러나 총군사와 일행이 곤륜파 정문앞으로 당도했을 때는 가마 하나가 도착해 있었다.
제갈미려는 비틀린 웃음을 지은 채 입을 열었다.
“뇌마가 직접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끼익.
가마의 문이 열리며 한 사람이 내려 섰다.
사람 좋은 인상의 푸근한 체형을 지닌 백발의 노인이었다.
“총군사께서 오시는데, 그에 걸맞은 사람이 와야지요.”
뇌마.
마교의 총군사이자 책사로서, 천마의 최측근이었다.
‘거물이 움직였다.’
제갈미려는 더 머릿속이 복잡해져 갔다.
‘과하다.’
마교의 행동이 평소와 달리 과했다.
뇌마. 이 자존심 높은 인간이 자신을 만나러 곤륜의 정문까지 왔다고?
그것도 제갈미려가 당도할 때까지 고분고분하게 기다리면서?
늘 자신보다 어린 제갈미려를 무시하던 인간이?
그녀는 순간 직감했다.
‘정말로 협상을 하려고 했다면 쉽지 않았겠어.’
그렇기에 제갈미려는 편하게 웃었다.
우리의 목적은 협상이 아니었으니까.
생강시와 혈교. 그 두 가지였다.
“뇌마께서 직접 와주시다니, 반갑고 고맙네요.”
그리고 그 미소에 뇌마는 멈칫했다.
‘뭐지?’
제갈미려가 저렇게 편하게 웃는 사람이 아니다.
나이는 뇌마보다 어릴지 몰라도 그 안에 수많은 능구렁이를 넣고 다니는 인간이었다.
그런데 저 편한 웃음은 아무리 보아도 거짓이 아니었다.
‘정파에서는 정말로 협상을 하려고 온 것인가?’
알고 있던 것과 좀 다른데?
뇌마의 머릿속이 복잡해지려는 찰나.
“!”
부채를 들고 있던 그가 부채를 탁 접었다.
그리고 제갈미려의 미소가 더 짙어졌다.
“이것은!”
그리고 장문인과 벽선을 포함한 모든 이들이 흠칫 놀랐다.
모두의 시선이, 몸이 한 방향으로 향다.
그곳은 곤륜파 정문 너머 어딘가였다.
“…화(火)의 기운이……!”
거대한 불의 기운이 곤륜파에서부터 그 정문을 넘어서까지 흘러나오고 있었다.
제갈미려는 팔에 소름이 돋았다.
불이다.
어디에도 타오르는 불은 보이지 않았지만, 지금 이 사방이 무엇이든 재로 만들 수 있을 것만 같은 파괴적인 불의 기운으로 뒤덮였다.
‘이것이 그의 진면목이구나!’
김 공자.
자연경에 이른 존재가 내뿜는 것이 틀림없는 이 불의 기운에 제갈미려는 숨이 턱턱 막혀오면서도 환희를 느꼈다.
이 어마어마한 힘이 모든 것을 바로 잡을 테니까.
불이 지나간 자리에는 모든 것이 무(無)로 돌아가 버리듯이.
그가 걷는 길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