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887
2부 129화
19장. 여기는 뭔가 다르다
뇌마는 위 상선이 가져다준 찻잔을 집어 들었다.
차 맛을 음미하는 듯, 그의 모습은 여유롭기 그지없었다.
-공자님. 뇌마는 천마의 오른팔이자 그의 스승이기도 합니다.
케일 역시도 느긋하게 차 맛을 음미하며 위 상선이 보내는 전음을 들었다.
‘마교에 대한 정보는 사파보다 많았지.’
강호로 나서기 전, 황궁에서 보았던 무림에 관한 많은 기록 중 마교는 단일 세력이었음에도 그 양이 꽤 많았다.
정파보다는 적었고, 사파보다는 많은.
중간 정도의 양이었다.
사건 사고를 많이 일으키며 백성들의 실생활에 영향을 많이 미치는 사파의 정보량이 적은 것에 의아할 수도 있겠으나, 황궁 입장에서 보자면 이는 당연한 것이었다.
‘마교는 한 번씩 크게 사고를 치니까.’
천마.
이 존재를 마교에서는 거의 신처럼 믿고 따른다.
즉, 황실 입장에서 마교도는 황제보다 천마를 따르는 존재들로, 위험하다고 판단하는 것이 그들 입장에서는 옳았다.
적어도 사파인들은 황제를 무서워하기는 했으니까.
‘다만 황실에서 마교를 내버려 두는 것은 그 지리적 위치가 상당히 외진 곳이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마교의 수뇌부들은 적어도 황궁의 말을 들었다.
그리고 지금껏 정마대전, 사마대전을 일으킬 때도 황궁과 관은 건드리지 않았다.
물론 일반 백성을 건드린 적은 꽤 있어서, 황궁이 나설 수밖에 없었으나.
적어도 관을 보면 멈추는 시늉이라도 했다.
그 때문에 황궁에서는 마교를 예의주시하면서도 쉬이 그들을 토벌할 수 없었다.
벌집을 건드렸다가, 잘못하다간 그 독침에 당할 수 있었으니까. 특히 상대가 일반 벌이 아니라 말벌이라면 말이다.
‘물론 더 잔인한 이유도 있지.’
케일의 시선이 위 상선에게로 향했다.
그의 소속은 내시부. 동창.
황제는 위 상선을 통해 케일에게 정말 기록을 있는 그대로 내보였다.
그때, 비로소 케일은 황제의 대범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황실은 무림을 관조한다.’
이것이 기본 골조였다.
‘그리고 정사마 간의 전투를 나쁘게 보지 않아.’
그렇기에 관과 일반 백성들에게 일정수준 이상의 피해를 끼치면 나서지만, 그들끼리의 싸움은 그저 관망했다.
왜냐면 그런 싸움이, 혹은 거대한 전투가 벌어질 때마다.
‘무림인의 숫자가 조절되니까.’
더불어 그 전체적인 무림인의 힘도 줄어드니까.
‘황실. 여기도 썩 좋은 데가 아니야.’
케일은 속으로 비틀어진 웃음을 지었으나,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게 위 상선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어쨌거나 그들이 사는 세상이지.’
무림과 관.
중원.
이들이 오랜 세월 동안 만들어 온 관계와 이치를, 떠나버릴 케일이 관여할 순 없었다.
다만 가만히 있던 케일과 그의 사람들, 로운을 건든 혈교, 푸른 피 가문의 그놈들만. 그 사냥꾼 놈들만 잡으면 된다.
달칵.
뇌마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김 공자님. 제가 어찌하여 찾아왔는지, 이리 긴밀한 만남을 청하였는지 궁금하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네, 궁금합니다.”
거칠 것 없는 케일의 솔직한 대답에 뇌마는 멈칫하기는커녕 푸근한 미소를 짙게 그렸다.
그러고는 부드럽게 물어왔다.
“공자님께서는 제가 어찌하여 뇌마의 자리에까지 올랐는지 아시는지요?”
그 질문에 위 상선이 멈칫했지만, 케일은 이번에도 망설임 없이 답했다.
“네. 압니다.”
그에 뇌마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그렇군요. 하긴 황궁에서는 어느 누구보다도 우리 마교에 대해서 잘 알겠지요.”
뼈가 있는 말이란 생각에 위 상선의 눈동자가 가라앉았지만, 뇌마도 케일도 딱히 그 말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있었다.
그저 대화를 이어갈 뿐이었다.
“지금의 천마께서는 어린 시절을 아주 어렵게 보내셨지요.”
“그리고 그 찬란한 재능을 알아본 뇌마님의 가르침을 받으며 성장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케일의 말에 뇌마는 작게 웃음을 흘렸다.
“맞습니다. 천마께서는 하나를 가르쳐 드리면 열을, 어떤 때는 스물까지 깨우치는 분이었지요. 그래서 처음에는 가르침을 드렸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분께서는 저를 뛰어넘어 스스로의 길을 개척하셨습니다.”
옛날이야기를 하는 듯한 뇌마의 말을 들으며 케일은 현 천마에 대한 기록을 떠올렸다.
‘전대 천마가 문제가 많았지.’
지금의 천마. 그는 어릴 적 비루한 인생을 살았다.
전대 천마는 수많은 처와 첩을 거느린 놈으로, 그에 따라 당연히 자식들도 엄청 많았다.
물론 그가 맺은 처와 첩은 정치적인 관계를 위한 계약과 같은 혼인이 아니라, 그냥 그런 놈이었다.
‘그놈은 망나니라는 말도 아까운 쓰레기지.’
케일이 이리 평을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전대 천마는 수많은 처와 첩, 자식들을 보호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 간의 암투와 혼란, 죽음을 관심 없어 하며 방조했다.
그 피해자 중의 한 명이 지금의 천마였다.
그는 힘없는 첩 중 한 명의 소생으로 어린 시절 어머니마저 잃고 외로이 살아야 했다. 그런 그의 재능을 뇌마가 알아보았고, 그 덕에 천마는 지금의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다.
‘그때는 뇌마가 아니고, 참모부 소속중간 관리급이랬지?’
마교 내의 이름 있는 가문의 출신이었으나, 그는 서자였다.
그렇기에 능력도 있고, 나이가 찼음에도 승진을 못 한 그의 한계는 중간 관리 급이었다.
그런 그가 지금은 천마의 오른팔이자 스승으로서 마교에서 큰 영향력을 펼치고 있다는 것을 보면, 사람 일은 알수가 없는 법이었다.
‘지금 천마가 30대 후반이랬나?’
천마의 나이는 한 세력의 우두머리치고는 꽤 젊었다.
달칵.
케일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저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시는 연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그가 굳이 뇌마와 천마의 옛날이야기를 들을 이유는 없었다.
“김 공자님. 총군사 제갈미려는 아주 훌륭한 사람입니다. 그녀의 뛰어난 두뇌에 놀랄 때가 많았지요. 그녀가 보낸 전서나 수하에게 받은 보고를 볼때마다 기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랍니다.”
맥락을 벗어난 이야기였다. 하지만 케일은 가만히 들었다.
푸근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래서 제가 직접 여기에 왔습니다.”
케일의 시선이 뇌마와 닿았다.
“왜냐면 사람의 표정을 읽는 것.”
푸근한 미소 사이로 웃지 않는 눈이 보였다.
“그것만큼은 이 뇌마가 총군사보다 조금 더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듣고 있던 위 상선의 표정이 굳어졌다.
“비록 머리는 그녀보다 떨어지나, 세상을 살면서 수많은 암투를 헤쳐오며 적어도 상대의 표정을 읽는 눈만큼은 조금 더 배울 수 있었습니다.”
겸손한 어조로, 그러면서도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채 뇌마는 케일에게 말했다.
“총군사. 저자도 정마 간의 협상을 원하여 온 것이 아니구나.”
음.
위 상선은 저도 모르게 침음을 흘렸다.
‘뇌마는 총군사의 의중에 다른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아챘구나!’
역시 뇌마였다.
무림맹의 다른 사람들, 곤륜조차도 아직 총군사의 뜻은 마교와의 협상에 집중되어 있다고 믿고 있건만!
위 상선은 소름이 돋았다.
그 순간, 케일의 목소리가 마찬가지로 부드럽게 울려 퍼졌다.
“뇌마께서도 정마 간의 협상을 원하여 이곳에 오신 것이 아니시군요.”
위 상선의 눈이 커졌다.
그제야 그는 뇌마가 한 말을 떠올릴 수 있었다.
‘총군사. 저자도 정마 간의 협상을 원하여 온 것이 아니구나.’
분명 뇌마는 ‘저자도’라고 했다.
‘저건 말실수가 아니다.’
뇌마 정도 되는 자라면, 일부러 저렇게 말한 것이 틀림없을 터.
“공자님.”
그는 케일을 보며 물었다.
“마교에 방문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케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마교에서 지금 저만 초청하는 것입니까?”
“공자님, 그리고 공자님의 일행도 초청하는 것입니다.”
케일은 흥미롭다는 투로 말했다.
“곤륜에 계시는 동안, 벌써 천마님과 저의 초청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신 겁니까? 아니면, 애초에 곤륜에 올 때부터 이럴 작정이셨습니까?”
가볍게 건네는 물음에 뇌마는 망설임없이 답했다.
“둘 다 아닙니다.”
“그러면?”
“제 판단입니다.”
여전히 웃지 않는 눈으로 케일을 응시하는 뇌마였다.
“제 주관으로, 꼭 공자님을 마교로 모시고 가야 한다 판단했습니다.”
“천마님의 허락도 없이요?”
“허락을 받기도 했고, 받지 않기도 했으니. 제 자의적 판단으로 움직여야겠지요.”
위 상선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저게 무슨 답이지?’
아주 부드럽게 쉬지 않고 진행되는 뇌마와 김 공자 간의 대화.
그런데 뇌마가 하는 말이 조금 요상했다.
그때, 케일은 깊은 생각을 하지 않고 편안하게, 솔직하게 물었다.
“조금 전에 하신 말씀을 이해하기가 어렵군요.”
제갈미려의 표정을 보고 그녀의 의중을 알아챘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그 의중을 알아보기 위해 직접 정파의, 그것도 가장 적대적인 문파에 수하도 몇 없이 제 발로 찾아온 뇌마의 실행력을 알아챘을 때부터.
케일은 그냥 솔직하게 행동하기로 했다.
이럴 때 어쭙잖은 거짓은 혼란만을 불러일으킬 뿐이니까.
뇌마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다시 열었다.
“천마께서는 천마의 자리에 오르신 후로, 정파와의 싸움을 원하셨습니다.
마교의 중원 진출을 자신의 목숨처럼, 사명처럼 여기셨지요.”
음.
위 상선이 침음을 흘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뇌마의 말은 이어졌다.
“그분께서는 ‘나는 명망 높은 집안의 핏줄도 아니고, 제대로 된 기반이 없다. 아직도 나를 노리는 적은 내부에 많다. 그러니 그들의 시선을 밖으로 돌리려면, 중원에 칼을 겨누는 수밖에 존재치 않는다.’라고 하셨지요. 저는 그 말에 동의했습니다. 다른 수하들도 동의를 표했지요.”
뇌마의 입가에 이전과 다른 부드러운 미소가 걸렸다.
“천마께서는 전대 천마와 달리, 무언가를 하실 때 꼭 수하의 의견을 물어보시는 인품을 지니셨습니다.”
그것은 천마에 대한 자랑스러움 혹은 기특함이 담겨 있었다.
이를 본 위 상선이 힐끗 케일을 쳐다보았다가 멈칫했다.
‘음?’
케일의 표정이 어느새 심각해져 있었다.
그 와중에도 뇌마의 말은 이어졌다.
“그렇게 천마께서는 중원 침략을 위해 마교를 정비하고 나아가 자신의 무공도 열심히 수련하셨지요. 열심히라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거의 목숨을 걸 다시피 수련에 매달리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도달하셨지요.”
뇌마의 눈이 처음으로 휘며 웃음을 그렸다.
“전대 천마의 경지를 넘어서셨습니다.”
“…현경!”
위 상선이 저도 모르게 외쳤다.
전대 천마의 경지는 화경과 현경 그사이로 기록되어 있었다. 이는 젊을 적 천재라 불리며 이룬 경지를 더 수련하지 않고, 주색에 빠져 그대로 머무른 것이라 하였다.
그리고 황궁에서는 현재 천마도 같은 경지로 알고 있었다.
이것만으로도 현재 30대 후반인 천마는 가히 하늘에서 내려준 무재를 지녔다고 여겼다.
그런 천마가 완전한 현경에 접어들었다는 소식에 위 상선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위 상선은 저와 눈이 마주친 뇌마가 여상스레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마 한 달 전일 겁니다. 은밀히 저를 불러 그 경지에 도달했다고 하셨지요.”
뇌마는 허공을 바라봤다.
“그 대화를 나누던 순간을 저는 잊지 못합니다.”
마교 내에도 현경에 도달한 전대 고수들은 있었다.
단일 세력으로 정파와 사파를 상대하려면 그 정도의 고수는 존재해야 했다.
하지만 젊은 나이에 그 정도의 경지는 엄청난 것이었다.
“저에게 천마께서는 말씀하셨지요.”
그의 음성은 잔잔했다.
호수 위를 떠다니는 나뭇잎처럼.
“중원을 침략하고 싶다고요.”
위 상선이 멈칫했다.
그리고 뇌마는 이어 말했다.
“그리고 말씀하셨지요. 중원을 침략하고 싶지 않다고요.”
위 상선의 눈이 커졌고, 케일은 아예 의자 등받이에서 몸을 떼어 뇌마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있었다.
위 상선은 굳은 케일의 표정에 침을 삼켰다.
뇌마는 태연히 제 할 말을 이었다.
“천마께서는 정파와의 싸움을 원하시면서도 동시에 원하지 않으십니다.”
케일과 뇌마의 눈이 마주쳤다.
“천마께서는 무림맹과 대화를 원하시면서도 동시에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참지 못하고 위 상선이 끼어들었으나, 뇌마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천마께서는 지금 원하면서도 원하지 않음을 동시에 가지고 계십니다.”
“아니, 그것이 도통-”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에 위 상선은 질문을 던지려고 했으나, 케일이 손을 들었다.
위 상선은 그 동작에 입을 꾹 다물었다.
그 순간, 케일은 입을 떼었다.
“중원 침략을 원하는 것은 마교의 어느 누구도 아닌 천마님이었군요. 누가 먼저 말을 꺼낸 것도 아닌데, 천마께서 시작을 하셨던 거군요?”
“네. 그렇습니다.”
그 문답을 들은 위 상선의 눈동자가 순간 흔들렸다.
“서, 설마-”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는 위 상선은 뇌마를 바라봤다. 그러나 뇌마는 케일만을 응시한 채 입을 열었다.
“현경. 그 경지에 도달하며 천마께서는 깨달으셨습니다.”
화경을 넘어 현경에 도달하자, 천마는 깨달음을 얻었다.
“내가 세뇌당하고 있었구나.”
위 상선은 뇌마를 중심으로 거세게 일렁이는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뇌마는 지금 웃는 얼굴이었지만, 분노하고 있었다.
천마의 스승이자, 그의 첫 번째 동료로서. 그리고 서자로 태어나 가족을 만들지 않았던 그에게 천마는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지만 자식이자 가족이었다.
그 분노를 보며 위 상선은 한 가지 사실을 떠올릴 수 있었다.
‘혈교는 생강시를 통해, 정사마 대전을 일으키려 한다.’
그리고 차기 장문인이자 생강시인 장형과 지금 천마의 나이대는 비슷했다.
또한.
‘마교에서 정사마 대전을 일으키려고 한 자는, 이를 시작한 자는 천마다.’
위 상선은 천마가 중원 침략을 원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케일의 얼굴이 심각해졌음을 떠올릴 수 있었다.
“화경을 넘어, 현경. 그 경지에 도달하면 뇌. 상단전이 열리며 스스로를 관조할 수 있게 된다고. 천마께서는 말씀하셨지요.”
뇌마는 잔잔한 어조로, 푸근한 얼굴로 말했다.
“그분은 지금 자기 자신과 싸우고 계시지요.”
다만 그를 둘러싼 기운은 점점 더 광폭하게 변해갔다.
마교의 그 거칠고 광기에 가까운 난폭함을 담은 기운을 두른 채, 뇌마는 웃었다.
“천마께서는 정파와의 싸움을 원하십니다. 그리고 동시에 혈교와의 싸움을 원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