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891
2부 133화
“라온, 넌 지금은 들어오지 마.”
-알았다, 인간아!
검은 연기로 가득 찬 공간 속으로 케일은 홀로 걸어 들어갔다.
“이런!”
뒤늦게 정신을 차린 좌호법이 놀라서 전각 안으로 들어서는 케일을 향해 손을 뻗었다.
탁.
하지만 그 손은 투명한 막에 가로막혀 김 공자를 붙잡을 수 없었다.
“!”
좌호법은 그 순간 허공에 나타나는 눈동자를 볼 수 있었다.
검푸른 눈동자는 세로로 길게 찢어진 동공을 가졌다.
“우리 인간을 막지 마라.”
그 목소리는 맑고 어렸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서늘함을 느꼈다.
이 세상에 저런 눈동자를 가진 존재를 본 적이 없으니까.
좌호법이 어찌해야 하나 생각이 든 순간, 검푸른 눈동자가 사라졌다.
투명한 막도 없어졌다.
그렇기에 볼 수 있었다.
“아-”
검은 연기로 가득 차 어둠만이 존재하는 공간.
타오르는 적금빛을, 좌호법은 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적금빛을 휘감은 존재가 김 공자라는 것을.
또한 그 검은 연기가 적금빛과 닿는 순간 회색의 재가 되어 바닥으로 떨어졌다.
끔찍함과 불길함을 떠올리게 하는 어둡기만 한 공간이 마치 회색의 눈이 내리는 한밤중처럼 보였다.
좌호법은 김 공자를 향해 뻗었던 손을 저도 모르게 아래로 내렸다.
회색의 재가 바닥에 내려앉는 양이 많아질수록 어둠이 사라져갔다. 하지만 적금빛은 여전히 찬란하게 빛났다.
-좌호법.
그 순간, 좌호법은 그림자 호법의 전 음이 들려왔다.
-주변을 경계하도록.
누구도 이 전각에 다가오지 못하도록.
혹여나 명을 어기고 이 근처에 누군가 있다면 쫓아내라고.
좌호법은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얼른 뒤돌아서며 주변을 살폈다.
평소라면 저 전각 안에 있을 천마를 보려 뒤돌아설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큰 걱정이 들지 않았다.
‘어쩌면-’
기대하지 않았던 바람이 이루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좌호법의 두 눈과 손발에 힘이 절로 들어갔다.
그 시각.
‘와, 이게 다 죽은 마나인 건가?’
전각은 생각보다 더 컸다.
케일은 양옆으로 여러 개의 방이 있는 복도를 지나고 있었다.
힐끗, 옆을 봤다.
문이 열린 방 안은 모두 시꺼먼 연기로 가득 차 있었다.
-케일, 일반적인 죽은 마나가 아니야.
파괴하는 불, 짠돌이의 심각한 음성이 들려왔다.
-내가 봉인되어 있던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만. 죽은 마나에 뭔가가 더 더해졌어.
죽은 마나, 그리고 이를 정화하는 것에 한해서는 케일 주변에서 파괴하는 불이 가장 전문가였다.
“뭐가 더해진 것 같은데?”
케일은 복도를 걸어가며 짠돌이에게 물었다.
-언젠가 찾아오는 것이 죽음이지만, 결코 죽음은 생의 의지를 쉬이 꺾을 수 없다.
긴 복도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아직 어두워서 보이지 않았다.
케일은 손을 뻗었다.
작은 적금빛 전류가 앞으로 날아갔다.
파직, 파지직.
“크으윽-”
누군가의 신음소리가 더 크게 들려왔고, 케일은 복도의 끝에 있는 방을 볼 수 있었다.
저 방에서부터 신음이 들려왔다.
방은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어둠으로 휩싸여 있었다.
저 어둠의 중심에 천마가 있을 것이다.
그 와중에도 짠돌이의 목소리는 이어졌다.
죽음은 생의 의지를 쉬이 꺾을 수 없다고 말한 그는 이어 말했다.
-그런데 강시도 아니고, 생강시는 살아있는 존재를 죽음과 같은 상태로 만들어내는 기술로 보인다.
-즉, 죽은 마나를 몸에 심어 죽음의 기운을 몸 안에 존재하게 만들고, 나아가 생의 의지를 꺾게 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케일, 너에게 생강시를 만드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한 것인데.
케일은 짠돌이가 대화가 가능한 상태가 되자마자, 그간 생강시에 대해 알아낸 것을 알려주었다.
황궁에서 위 상선을 통해 얻은 정보들.
‘생강시 하나를 만들려면, 살아있는 인간 하나와 제물로 443명의 목숨이 필요하다.’
위 상선이 말해준, 황궁에 남아있는 생강시를 만드는 방법.
‘다만 그 과정에 반드시 인간을 생강시로 만드는 데 꼭 필요한 약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 약은 황실에서도 알수가 없었습니다. 제조법은 물론, 정체까지도요. 다만 검은 액체의 형태라는 것만 압니다.’
그 검은 액체를 케일은 죽은 마나라고 예측했다.
다만, 그 검은 액체에 무언가 다른 것이 더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 중이었다.
-만약 그 생강시 만드는 방법이 사실이라면. 443명의 시체가 만든 죽은 마나와 더불어 443명의 죽음이 만든 무언가가 영향을 미쳤으리라 본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예를 들면, 증오, 원망, 두려움. 이런 감정들이 죽은 마나에 담겼거나. 혹은, 그 죽은 이들의 영혼이 원혼이 되었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케일이라고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영혼은 모르겠다만, 감정이 실체를 가지고 힘을 가질 수 있을까?”
-글쎄. 내가 겪어보지는 못했지만, 그 정도의 증오, 원망, 두려움이 담겨야 이 정도의 연기를 만들지 않을까?
-케일, 너도 알잖아. 이 죽은 마나 연기가 유독 더 숨을 막히게 만든다는 걸.
케일은 침묵으로 긍정을 표했다.
남궁태위를 정화할 때는 이것과 달라 몰랐다.
하지만 지금 검은 연기로 들어찬 이 공간에 들어선 순간, 그가 라온에게 따라오지 말라고 말한 이유가 있었다.
‘달라.’
연기임에도 끈적하고 질척인다.
더불어 알 수 없는 불쾌함을 선사했다.
“일단은, 추측만 해두고 좀 더 알아보자고.”
-그래. 좋다. 나도 조금 더 관찰해야 될 것 같다.
케일은 걸음을 멈췄다.
복도의 끝.
방 안으로 들어서는 문턱에서 케일은 저도 모르게 탄식을 흘렸다.
‘이게 다 한 사람의 몸에서 나온 건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연기가 꽉차 있었다.
케일은 발을 내딛는 게 순간 살짝 망설여질 정도였다.
하지만 멈출 순 없었다.
“으윽.”
신음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케일은 방 안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그 순간, 그는 전음이 들려왔다.
-중앙에 천마께서 계십니다.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이런 말을 할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그림자 호법.
‘이 근처에는 없는 것 같은데.’
죽은 마나 연기로 가득 찬 이곳에 웬만한 사람은 들어설 수가 없다.
그렇기에 케일은 의문이 들었지만, 신경을 껐다. 적만 아니라면 상관없다.
-힘을 더 쓰겠다.
케일의 주변을 휘감고 있던 적금빛이 더 그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파직. 파지직.
적금빛의 전류가 마치 사방을 잠식할 듯 거칠게 일렁이며 주변의 검은 연기를 집어삼켰다.
그 힘이 얼마나 과한지, 바람 한 점없는 공간이 진동하며 바람이 일어날 정도였다.
회색 재가 그 바람을 따라 흩날렸다.
저벅, 저벅.
케일은 그 와중에도 망설임 없이 방의 중심으로 걸어갔다.
“허억, 허억.”
신음 사이로 숨소리도 들려왔다.
공기가 희박한 곳에서 숨을 쉬는 것처럼, 절박한 숨소리였다.
-이런.
짠돌이가 탄식을 흘린 그때, 케일은 천마를 볼 수 있었다.
잠시 말문이 막혔다.
얼마 전, 전령인 척 나타나 케일에게 제 할 말만 하고 사라진 천마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 시야에 담겼다.
‘대단하네.’
하지만 그 모습이 볼품없지는 않았다.
천마는 가부좌를 튼 채로, 허리를 꼿꼿이 바로 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온몸은 덜덜 떨리고 있었으며, 전신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두 눈을 감고 있었다.
그의 감은 두 눈꼬리, 숨을 몰아쉬는 코, 신음을 내뱉는 입, 그리고 양쪽 귀.
모든 곳에서 검은 연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일그러진 표정은 그의 고통을 알려주었다.
케일은 입을 열었다.
“무슨 상황인 것이지?”
주변에 천마와 케일뿐이었지만, 대답은 곧 들려왔다.
-천마께서는 또 다른 자신과 싸우는 과정 중에 항상 이렇게 검은 연기를 피워올리십니다.
나이가 든 여인의 목소리가 담긴 전 음에 케일은 잠자코 귀를 기울였다.
-제가 전해 듣기로는 상단전을 자극하여 몸 안에 있는 삿된 기운을 밖으로 빼내려 시도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상단전은 뇌였다.
그 말을 들으니, 케일은 얼굴 쪽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늘 이런 과정을 겪었다면 상당히 힘들었을 텐데?”
-처음에는 이렇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검은 연기의 양이 늘어갔고, 더 자세한 이야기는 제가 드리기에는 알맞지 않은 듯합니다.
케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천마의 맞은편에 쪼그리고 앉았다.
-케일, 지금 정화를 할 수는 없지 않겠나?
짠돌이의 말에 동의했다.
‘상단전은 뇌야. 지금 상단전을 자극하는 와중에 괜히 내가 정화를 하려고 시도하다가 심각한 상황이 벌어질지도 몰라.’
케일의 입이 열렸다.
“난감하네.”
선뜻 무언가 행동을 하자니, 상황이 애매했다. 그렇기에 물었다.
당사자에게.
“천마. 당신은 어떻게 해주길 원하나?”
-천마께서는 지금-
그림자 호법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렸지만, 케일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 듣고 있어. 내가 들어온 것도 알고 있고. 그렇지?”
천마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저 신음만 흘릴 뿐이었다.
하지만 케일은 어둠이 걷히고 드러난 천마의 얼굴을 본 순간, 그가 자신을 이미 알아채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반, 갑다…….”
신음 사이로 천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케일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쓸데없는 인사를 나눌 때는 아니잖아? 필요한 거 말해.”
말을 뱉고 나서 케일은 문득 생각했다.
‘반말해도 되겠지?’
저번에 마차에서 갑작스러운 천마의 등장에 저도 모르게 반말로 답해버린 케일이었다.
‘뭐, 저쪽에서 먼저 반말했으니까 상관없겠지.’
반말은 천마가 먼저 시작했으니까.
케일은 가볍게 생각하고 넘기며 천마의 얼굴을 응시했다.
“…지, 지금처럼-”
간신히 천마가 한마디 내뱉은 것을 듣는 순간, 케일은 곧장 되물었다.
“지금처럼 검은 연기들을 없애면 되겠나?”
“그, 그래-”
천마는 신음을 겨우 참아내며 답했다.
지금 그는 머릿속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검은 연기가 상단전을 공격했다.
세뇌에서 벗어나려는 그를 검은 연기가 질척한 늪처럼 끌어당겨 깊이 집어삼키려 했다.
‘하지만 전보다 숨을 쉬기가 쉬워졌다.’
그건 이 진법 안으로 누군가 발을 들인 후였다.
천마는 지금 눈을 감아 무엇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 다가오는 것을 어느 때보다도 깊이 체감하고 있었다.
‘공기가 달라졌다.’
눅진하고 음험하던 공기가, 숨을 막 히게 만들었던 공기가, 조금씩 물러나며 청량하고 따스한 공기가 스며들었다.
파직, 파직, 주변에 벼락의 기운이 감돌아 살벌함을 느낄 수도 있었지만, 그보다도 맑은 온기가 천마의 주변을 조금씩 자리해갔다.
그것만으로도 살 것 같았다.
더불어 머릿속의 두통이 사그라드는 것을 느꼈다.
그렇기에 천마는 저를 찾아온 김 공자에게 부탁했다.
지금처럼, 이 검은 연기를 없애달라고.
그것도-
“…모두.”
모두 없애달라고 그는 말했다.
그리고 답이 들려왔다.
“그건 쉽지.”
천마는 그 순간 웃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대신 그는 거대한 힘을 느꼈다.
그러나 결코 그를 향해 공격적이지 않았다.
다만, 그는 모든 변화를 느꼈다.
검은 연기가, 어둠이 사라져간다.
그의 주위를 시작으로.
이 방을 넘어 복도, 더 나아가 복도 양옆의 방들까지.
대신 그 자리에 맑고 청량하며, 따스한 기운이 들어찼다.
마치, 어릴 적 이른 새벽잠에서 깨어 칭얼거리는 저를 안아준 어머니의 품속처럼.
새벽의 청량한 공기와 어머니의 품처럼 따스한 온기가 천마의 주변을, 이 진법 안을 가득 채웠다.
‘됐다.’
천마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두통이 가라앉는다.
이제야 온전히 자신의 힘을 쓸 수 있다.
그는 몇 분간 스스로를 가다듬을 수 있었고, 마침내 상단전의 두통을 모두 가라앉히고 제 몸을 요동치게 만들었던 삿된 기운을 억누를 수 있었다.
천마는 천천히 눈을 떴다.
“괜찮냐?”
그는 무심한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는 김 공자를 볼 수 있었다.
케일은 천마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30대 후반으로 알려진 천마는 상당히 젊은 모습이었다. 십 대 후반으로 보였다.
케일은 천마가 웃으며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여기 답이 있었구나.”
순간 케일의 얼굴이 저도 모르게 구겨졌다. 뒷목이 서늘해져 왔다.
착한 김 공자인 척하던 것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떨떠름함이 그의 표정에 여실히 드러나 버리고야 말았다.
-인간아, 괜찮나? 검은 연기가 다 없어져서 들어와 봤다!
뒤따라왔던 라온이 멈칫하더니 이어 말했다.
-오. 여기 인간이랑 왕세자처럼 웃는 인간이 있다! 인간아, 조심하자! 저 인간 사기 칠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말이야.
와중에 천마가 무뚝뚝하지만 웃는 얼굴로 말을 걸어왔다.
“김 공자, 이제야 제대로 대화를 해볼 수가 있겠군.”
왠지 대화가 하고 싶지 않아진 케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