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893
2부 135화
“그러면 이제 나는 그만 가봐도 되겠지?”
케일의 물음에 천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오자마자 번거로운 일을 겪게 했군.”
“딱히. 별로 힘든 일도 아니었고.”
72% 봉인이 풀린 파괴하는 불에게 전각을 가득 채운 검은 연기 정도는 금방 없앨 수 있는 것이었다.
파괴하는 불은 과거 세계수까지 위협할 정도로 땅을 태우던 힘이었다.
오히려 사람 목숨이 달려 있어 세밀한 컨트롤을 해야 하는 게 어려울 뿐.
“그렇군. 별거 아닌 일이군.”
천마가 덤덤하게 케일이 한 말을 되풀이해서 말했다. 케일이 뭐하냐는 식으로 쳐다보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살짝 비틀거리기는 했지만, 곧 꼿꼿한 자세로 섰다.
강자존을 따르는 마교의 우두머리임에도 천마의 풍채는 케일 헤니투스 정도의 키에 적당한 체격을 지니고 있었다.
물론 현재 김록수의 모습인 케일이나 실제 케일 헤니투스만큼 마르지는 않았다.
그냥 조금 늘씬하다고 느껴질 정도?
“…30대 후반 맞지?”
케일은 저보다 반질반질한 피부에, 최한보다 어려 보이는 외모에 저도 모르게 물었다.
“맞다. 내년이면 마흔이지.”
무던하게 답한 천마가 흘러가듯이 되물었다.
“너도 지금 보이는 모습보다는 나이가 많겠지?”
“어. 그렇지.”
조금 살이 오르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삐쩍 말랐을 당시의 김록수이니.
이때보다는 케일이 지금 나이가 많았다.
‘으음.’
아니지, 케일 헤니투스보다 나이가 많지?
내가 서른 후반까지 살다가 케일 헤니투스에게 빙의했으니까.
나이를 계산하던 케일은 머릿속이 복잡해져 와서 그냥 대충 생각을 정리했다.
‘나이가 뭔 소용이야.’
그냥 대충 살면 되지.
케일은 방 문지방을 넘어서다가 멈칫했다.
“난 여기까지만 배웅하겠네.”
천마가 복도로 넘어오지 않고 방 문턱 앞에서 멈춰 섰다.
“그러든가.”
딱히 케일은 천마의 배웅 따위 필요 없었다. 오히려 저놈이 숙소까지 따라와도 문제였다.
걸리적거릴 만한 일이 벌어질 테니까.
“아.”
다만 궁금한 것이 있어 케일은 천마와 헤어지기 전에 물었다.
“그림자 호법은 검은 연기에 닿아도안전한 건가?”
덜컹.
천장 한쪽에서 또 소리가 들려왔다.
물론 대답은 천마가 했다.
“진법이네. 그 덕에 천장에는 검은 연기가 새지 않아 호법은 안전하게 나를 지켜볼 수가 있지. 참고로 소리와 기척을 느낄 수 있을 뿐, 우리가 보이지는 않네.”
“그렇군.”
의문을 푼 케일은 대충 천마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가볼게. 아, 또 아까 같은 일이 생기면 언제든 그냥 불러. 도와줄 테니까.”
천마가 잔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런 그에게 케일이 퉁명스럽게 툭내뱉었다.
“1주일 뒤에 실험을 할 거면, 그동안 수시로 조금 전과 같은 상황이 나올 거 아냐.”
“그렇긴 하지. 그러면 신세를 좀 지겠네.”
“얼마든지.”
그 정도쯤이야.
그냥 대충 파괴하는 불 살짝만 쓰면 날아갈 정도의 검은 연기였다.
케일은 천마에게 한 번 더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미련 없이 그에게서 등을 돌려 입구로 향했다.
검은 연기가 사라진 복도는 한적하고 평온했다. 그 복도를 느릿하게 걸어가며 케일은 생각을 정리했다.
‘천마가 정한 자신의 한계 시간은 2주. 그리고 실험은 지금으로부터 일주일 뒤.’
최대 내공, 최소 단전을 지키면서 죽은 마나만 없애는 실험.
이를 위해 천마가 제시한 날짜가 1주일 뒤였다. 그동안 케일은 마교에 머물러야 할 터.
그건 크게 문제가 아니었다.
당장 내일 할 수 있는 일임에도 케일은 왜 일주일을 미뤘나 의문이 들었는데.
‘요즘 마교 내에도 일이 많아서 그렇네.’
‘일?’
‘후계자를 정하는 일이지.’
후계자. 그 단어를 듣는 순간, 케일은 침묵을 택했다.
‘하하. 자네들에게 해를 끼치는 일은 없을 거야. 다만 마교 내에는 꽤 힘있는 가문들이 여럿 있지. 그들은 내가 젊어 보여도 마흔에 가까워져 오니 얼른 후계자를 정하길 바라고 있네.
문제는 내게 자식이 없어. 혼례를 올린 이가 없거든.’
‘일이 복잡하겠네.’
‘그렇지. 전대 천마처럼 자식이 많아도 문제지만, 없어도 문제더군. 어쨌든 수하들은 내가 양자를 들여 후계자로 삼기를 원하지.’
‘정마 대전을 일으키기 전에?’
케일이 무심히 던진 말에 천마가 지긋이 미소를 그렸다.
‘김 공자. 자네는 꽤 영리해.’
‘이 정도는 기본이지.’
정마 대전. 그런 큰 싸움에서 아무리 천마가 강하다고 해도 죽을 수가 있다.
그럴 경우를 대비해 수하들이 다음 대 후계자를 정해두길 원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어쨌든 그 후계자를 이번 주 안으로 정해야 하지.’
‘그 후에 정화하고?’
‘그렇지.’
케일은 천마를 응시하다가 툭 내뱉었다.
‘후계자 감을 정해뒀나 보네.’
천마는 그저 미소 지었다.
그 모습에 케일이 한마디 더 덧붙였다.
‘문제는 그 후계자 감을 후계자 자리에 앉히는 게 꽤 어려운 일인가 봐.
그러니 일주일이나 걸리겠지. 천마라는 존엄한 지위에 있어도 말이야.’
‘하하.’
웃기만 하는 천마를 무시했던 케일이었다.
마교의 후계자 선정은 그가 상관할 바가 아니었으니까.
‘혈교도 지금 신녀를 뽑을 때라고 했지?’
그는 세계 샤올렌에서 검은 피 가문의 우두머리 화이언스 가주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정사마 대전과 오르세나 공작가가 무슨 상관이지?’
‘…정사마 대전과 함께 새로운 신녀를 뽑는 시기다.’
혈교는 현재 새로운 신녀를 뽑고 있다.
‘네가 혈교가 있는 차원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혈교는 그들의 신인 혈마가 있고, 그 신을 돕고 보필하며 하늘의 뜻을 전달하는 신녀라는 위치가 있다.’
‘현 혈마는 다음 대의 후계자를 정하기 전에 먼저 새로운 신녀를 뽑는 과정을 거친다.’
혈교는 다음 대 혈마 후계자를 뽑기 전에 먼저 신녀부터 뽑는다고 하였다.
‘만약 지금 신녀를 뽑았다면, 이제는 혈마 후계자를 뽑으려고 하는 시기겠지.’
거기다가 정사마 대전까지 준비 중이니, 혈교 안은 상당히 복잡하게 굴러갈 것이다.
“…어쨌든 꽤 능력 있는 놈들은 맞아.”
인정할 건 해야 했다.
혈교는 미래가 창창한 인재들만 골라 생강시로 만들었고, 그중에 천마도 있었다. 만약 케일이 이 세상에 오지 않고, 천마가 현경에 들어서지 않았다면.
진즉에 정마 대전이 벌어지고 사파까지 그 판에 끼어들었을 확률이 높았다.
‘신녀라-’
혈교. 푸른 피 가문 놈들은 로운 왕국으로 와서 오르세나 공작가의 막내딸을 데려갔다.
아마 사라진 오르세나 공녀도 혈교에 있을 확률이 높을 터.
‘아무래도, 신녀 후보자와 오르세나 가문의 두 공녀가 어느 정도 관련성이 있을 것 같단 말이지.’
케일은 가볍게 고개를 털었다.
‘뭐가 됐든 혈교를 더 파보면 답이 나오겠지.’
어느새 복도의 끝에 다다랐다.
‘응?’
좌호법 외에도 우호법까지 와서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말없이 케일을 멀뚱히 쳐 다만 봤다. 그에 케일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에 우호법이 멈칫하더니 입을 열었다.
“김 공자님, 그, 대화는 잘 끝나셨습니까?”
“네. 잘 끝났습니다.”
꽤나 얻은 소득이 많았다.
“그럼 이만 숙소로-”
“제가.”
우호법의 말을 자르고 좌호법이 우호 법과 케일 사이로 끼어들었다.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네. 부탁드리겠습니다.”
케일은 누가 안내하든 별 상관이 없었다.
오히려 잘됐다 싶기도 했다. 우호법은 능숙한 분위기가 느껴져서 괜히 말을 걸며 돌아가는 길 동안 대화를 해야 할 것 같았다. 반면에 좌호법은 말이 없는 인간이라 편했다.
“그럼, 모시겠습니다.”
좌호법은 앞장서며 걸음을 옮겼다.
역시 묵묵히, 적당한 속도로 걸어만 갔다.
‘좋네.’
케일은 산책이라도 나온 듯한 가벼운 기분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숙소로 향했다.
그리고 그런 뒷모습을 우호법이 가만히 응시하다가 고개를 돌렸다.
“…놀랍습니다.”
-나도 그렇네.
천마의 전음이 들려왔다.
우호법은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열린 전각의 문. 기나긴 복도의 끝에 자리한 방. 그 방의 문은 열린 채로 천마의 모습을 온전히 보여주고 있었다.
조금 땀에 젖었지만, 평소에 비하면 훨씬 상태가 좋은 모습이었다.
더불어 천마가 이 일을 겪은 후로 늘 전각 안을 드리우던 검은 연기. 그것이 마교 안으로 퍼질까 봐 전전긍긍하며 진법을 만들고 또 연구해야 했던 때가 언제였냐는 듯, 연기가 모두 사라진 전각 안의 모습은 그저 놀라웠다.
“뇌마가 제대로 된 사람을 데려온 것 같습니다.”
-하하.
천마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우호법. 자네가 판단해도 되는 사람은 아닌 것 같네.
그는 담담하게 딱 그 한마디만 했지만, 우호법은 저도 모르게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천마시여.”
-아닐세. 자네를 책하는 말이 아니었어.
알고 있다.
하지만 천마의 말을 허투루 들어서는 안 된다.
‘내 생각보다 김 공자가 더 대단한 사람이었구나.’
사실 그는 검은 연기를 김 공자가 없애는 광경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다만, 뒤의 상황을 보고 그렇게 추론했을 뿐.
‘하긴, 좌호법이 저러는 걸로 봐서는 김 공자를 내가 섣불리 판단해선 안되겠지.’
그때, 까악, 새 소리가 들려왔다.
우호법은 자리에서 일어나 팔을 들어올렸고, 그 위에 검은 새가 내려앉았다. 우호법은 새의 다리에 매달린 서신을 풀어 살폈다.
그러고는 다시 천마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천마시여. 8각과 8대대에서 추천하는 후계자의 명단이 정해졌습니다.”
-몇 명이지?
“3명입니다.”
-그러면 후보는 총 4명이겠군.
“그분을 모셔올까요?”
염려 섞인 우호법의 물음에 천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김 공자가 있는 동안만큼은 내 상태가 괜찮을 테니. 그 아이를 내가 보호할 수 있을 것 같구나. 데려오려무나.
“알겠습니다.”
우호법이 곧 사라졌고, 천마는 천장을 바라봤다.
“무엇이 불만인 것이냐?”
후후. 천마는 낮은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김 공자를 너무 믿지 말라고?”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누가 그를 믿는다고 하였지? 나는 그저 그자의 능력을 이용하려는 것뿐.”
덜컹.
천장에서 소리가 났다.
천마는 웃었다.
“그리고 이는 그자 역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리고 덧붙였다.
“8각과 8대대 중에서도 분명 혈교의 첩자 혹은 나 같은 이가 있을 터. 김공자가 아까 한 말 들었지? 생강시를 찾을 수 있다고. 그에게 확인을 부탁해라.”
덜컹.
“더불어 조만간 후계자 4명과 저녁식사 자리를 가질 것이다. 김 공자에게 그 자리의 참석을 부탁해 보도록.”
덜컹.
“그래, 나는 4명의 후계자도 믿지 않는다.”
철저히 확인해야 한다.
마교에 더 이상의 불순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천마의 주변에 검붉은 기운이 넘실거렸다. 천장에 있던 그림자 호법은 그 기세에 숨을 들이마셨다.
지난 몇 대 간의 천마와 비교할 수 없는, 제대로 된 진짜 천마.
끊임없이 무의 끝을 추구하며, 더 높은 경지로 향하는. 더불어 마교만을 생각하는 자.
그를 향해 그림자 호법은 천장에서 내려와 공손히 예를 취했다.
그리고 케일은 어느새 숙소 근처에 도달했다.
“공자님!”
위 상선과 권왕, 그리고 최한 등 몇 명이 숙소로 배정된 전각 앞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의외로 벽선도 있었다.
케일은 저와 눈이 마주친 벽선이 슬쩍 시선을 피하는 것을 보고는 의아했지만, 별생각 안 했다.
“안내 고맙습니다.”
케일은 담백하게 좌호법에게 인사를 건넸고, 좌호법은 무뚝뚝한 얼굴로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때, 좌호법의 전음이 들려왔다.
-공자님, 진정으로 그분의 치료가 가능한 것입니까?
담담한 얼굴과 달리 그 전음은 상당히 조심스러웠다.
좌호법은 케일을 바라봤다.
검은 연기를 순식간에 없애던 적금빛. 그 광경은 밤을 밝히는 태양과는 달랐다.
오히려 어둠을 불살라버리는 파괴적인 불과 번개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성스러웠다.
그 안에 담긴 기운이 너무나도 순수하고 정순했으니까.
“!”
좌호법이 멈칫했다.
케일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는 답했다.
전음을 못 하니까, 그냥 입으로.
“궁금한 것은 그대의 주군에게 물어보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실험을 하자고 한 건 천마니까. 그놈이 답해줘야지, 내가 왜 해?
그 순간이었다.
이번엔 케일이 움찔했다.
“죄송합니다.”
좌호법이 아주 예의 바르게 허리를 숙여 사과를 전해왔다.
‘왜 이래?’
딱히 죄송할 일이 없는데?
케일은 솔직하게 말했다.
“죄송할 일 없습니다만?”
그에 좌호법이 더 멈칫하더니 허리를 들지 않았다.
대신 사과를 한 번 더 했다.
“부디, 저의 성급한 어깃장을 이해해 주십시오. 죄송합니다, 공자님.”
아니, 죄송할 일 없다니까?
케일은 저도 모르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놀란 위 상선과 권왕, 그러려니 하는 동료들. 그리고 벽선이 묘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케일은 처음으로 벽선의 호감 어린 표정을 봤다.
‘저 노인네는 왜 저래?’
케일은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어찌 저찌 좌호법을 달랬다.
“괜찮습니다.”
이 말을 하고 나서 말이다.
케일은 괜찮을 것도 없었지만, 그리 답해야 좌호법이 물러날 것 같아 그리 말했다.
그제야 좌호법은 편안한 표정으로 물러났다.
케일은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으며 다가온 위 상선과 최한에게 말했다.
“마교는 확실히 쉽지가 않군요.”
하나같이 사람들이 좀 상대하기 어려운 면이 있었다.
그 시각, 좌호법은 홀로 남자 두 손으로 제 심장께 위를 눌렀다.
쿵. 쿵. 쿵. 심장이 뛰었다.
“실수할 뻔했다.”
김 공자의 미간이 찌푸려질 때 얼마나 마음이 철렁했던지. 혹시 심기를 거슬려 그가 천마를 치료하는 일에 안좋은 영향이 갈까 걱정되었다.
소심한 좌호법은 자신의 입을 톡 쳤다.
늘 말을 해서 문제다.
좌호법은 다시 말을 하지 말아야겠다 다짐하며, 걸음을 옮겼다.
* * *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지?
케일은 생각했다.
‘아니, 그냥 나는 일주일 정도 쉬다가 천마 정화를 하면 되는 거 아닌가?’
그게 현재 당장 할 일이잖아?
‘그런데 내가 왜, 마교 소교주를 정하는 일에 한손을 거들어야 하지?’
케일은 멍하니 뇌마를 바라봤다.
푸근한 인상의 노인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김 공자님의 지혜와 인품으로 소교주 후보님들을 한번 살펴보고 말씀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왜요?”
케일은 저도 모르게 되물었고, 뇌마가 막힘없이 답했다.
“김 공자님이 김 공자님이시니까요.”
할 말이 없어지는 대답이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솔직한 속마음이 튀어나와 버렸다.
“천마, 그놈이 그렇게 하래요?”
뇌마가 멈칫했고, 달그락. 차를 따르던 위 상선이 움찔했다.
“그, 그것은 아니고 사정을 설명 드리겠습니다.”
뇌마의 이마에 땀이 삐질 맺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