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899
2부 141화
“꼭 구경거리가 된 기분이네.”
케일이 중얼거린 말에 천마가 반응했다.
“맞다, 구경거리.”
그 답에 케일의 한쪽 입꼬리가 삐뚜름하게 올라갔다.
“나야 상관없다만, 너는 천마라는 지고한 위치에 있는데 이런 구경거리가 되어도 괜찮나?”
8대대와 8각. 아니, 혈교 첩자를 제외해서 이제는 7각과 7대대의 대표들이 이곳에 자리해 있었다.
그중에 이 상황을 탐탁지 않아 하는 공 각주 같은 이도 보였다.
더불어 정파와 사파의 사람들도 굳은 얼굴로 서 있었다.
“김 공자.”
천마는 담담하게 말했다.
“나는 원래 구경거리야.”
그는 주변보다 조금 더 높게 만들어진 단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천마라는 자리는 마교의 힘을 상징하는 동시에, 더 이상 인간이 아닌 존재로서 살아가며 마교도들의 시선을 받게 되지.”
“그래서 구경거리다?”
“그렇지. 거기다가 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마교, 나아가 정파와 사파에 큰 영향을 줄 걸세. 혈교에 대한 경각심이 아주 커지겠지.”
천마는 자리에 앉아 케일을 보며 웃었다.
“내가 바로 천마니까.”
생강시가 된 천마.
그것만큼 이 중원 무림에 혈교에 대한 공포를 심어줄 만한 것은 없다고 단언하는 그 모습.
언뜻 오만해 보였으나, 케일은 그 말에 부정하지 않았다.
혈교와 생강시에 대해서 설명을 들은 벽선. 그 고집불통의 얼굴이 지금 하얗게 질려 있었으니까.
“시작하지.”
천마의 말에 케일은 그의 등 뒤로 걸어 갔다.
“야.”
그리고 물었다.
“이 진법 안전하지?”
“설명 듣지 않았나?”
“듣긴 했지.”
이 진법은 뇌마와 세 호법, 더불어 천마의 지식까지 더해서 만든 것이라고 하였다.
저번에 케일이 천마를 만났던 전각에 새겨진 진법보다 더 강한 진법으로.
‘20배까지, 버틴다고 했던가?’
전각에 새겨진 진법이 죽은 마나 연기를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막았던 것처럼.
이 진법은 똑같은 역할을 하는데, 그 효율이 그 진법의 스무 배에 달한다고 하였다.
케일은 마법이 아닌 진법으로 이 정도의 효과를 내는 것이 신기했다.
그리고 진실을 의심했으나.
‘인간아, 이거 엄청 강하다! 스무 배맞는 거 같다! 솔직히 말하면 25배까지는 버틸 거 같다!’
지금 진법 밖에서 투명화한 채 맴돌고 있을 라온의 확언으로 믿을 수 있었다.
케일의 시선이 진법 밖으로 잠시 향했다.
수이 칸, 최정수, 론 등등. 그의 일행들이 마교 수뇌부들 옆에 모여서 대기하고 있었다.
-케일, 오늘 컨디션 아주 좋다!
-형님, 누님들이 계시니까, 마음이 아주 편해.
짠돌이와 울보 노인의 목소리가 연달아 머릿속에 들린 케일은 자리에 편히 앉아 천마의 등에 손을 올렸다.
“준비 다 됐다.”
그의 옆에는 난로 모양의 신물이 놓여 있었다.
한 손은 천마의 등. 한 손은 난로 위.
케일의 준비가 끝난 순간.
우우우—–우우—-
공기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천마가 눈을 감았다.
검붉은 기운이 넘실거리며 그에게서 피어올랐다.
이제부터 천마는 입을 열지 못한다.
-인간아, 괜찮나?
케일은 라온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들렸다.
“괜찮지.”
무심하게 답한 그의 시선이 천마의 머리로 향했다.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케일은 천마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짐작은 갔다.
‘찡그리고 있겠지.’
그의 몸속 죽은 마나, 삿된 기운이 일부러 상단전을 노리게끔 유도하는 상황.
이를 만든 천마는 이전처럼 고통을 느꼈다.
그러나 신음 하나 흘리지 않았다.
‘천마시여.’
뇌마는 두 손을 맞잡고 고통으로 일그러지는 천마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진법 너머의 모습은 희미하게 보였지만, 무공 경지가 높은 그에게 그 정도의 방해는 별것도 아니었다.
선명하게, 천마의 고통이 느껴졌다.
그럴수록 그의 감은 두 눈, 코, 귀, 입. 얼굴의 모든 구멍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불길함을 잔뜩 품은 삿된 기운.
그것이 웬만한 연무장만큼 큰 규모를 지닌 진법 안을 채우기 시작했다.
처음은 느렸다.
아주 천천히 검은 연기가 하늘로 피어오르며 서서히 진법 안을 채웠다.
하지만 그 속도가 점점 더 빨라졌다.
‘검다.’
공간이 검게 물들어간다.
이미 천마의 모습은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환한 대낮이건만, 저 진법 안만 밤이 온 듯했다.
아니다, 밤이 아니다.
밤은 그래도 빛이 있다.
그믐 때조차도 희미하게 눈에 무언가가 보인다.
그러나 저 안은 무엇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어둠이었다.
“이거 괜찮은 거 맞소?”
공 각주가 심각해진 얼굴로 물음을 던져왔지만, 뇌마는 그녀에게 시선을 둘 겨를이 없었다.
“괜찮을 겁니다.”
그런 대답만 간신히 할 뿐.
이에 대해 공 각주는 불만을 표하지 못했다. 지팡이를 꽉 쥔 채 입술만 깨물 뿐.
‘저번에는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몰랐지만, 저 검은 연기는 실로 불길하구나.’
본능적으로 피하고픈 마음이 절로 들게 하는 연기였다.
그리고 그 양도 어마어마했다.
‘천마께서 몸 안에 저런 것을 품고 살아오셨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믿어야 했다.
천마는 지금도 끊임없이 진법 안을 어둠으로 물들여가는 저 어마어마하게 많은 검은 기운을 품고 살아오셨다.
스스로의 정신을 유지하려고 애쓰며.
동시에 마교를 건든 혈교를 무너뜨릴 생각을 하며.
‘…김 공자……!’
지금 이 순간 그녀는 한 사람의 이름을 염원하듯 부를 수밖에 없었다.
그가 부디 천마를 치료해주길.
그녀는 바랐다.
그 바람이 닿은 것일까.
“아-”
뇌마의 입이 열렸다.
좋은 신호인 걸까?
그에게로 시선을 움직였던 공 각주의 얼굴이 굳었다.
뇌마의 얼굴 위에 서린 것은 다급함이었다.
“이런-”
그는 진법을 보며 눈동자의 떨림을 감추지 못했다.
“뇌마. 무슨 일이오?”
“진법이, 진법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공 각주의 부름을 무시하고 뇌마는 황급히 진법 근처로 다가갔다.
이미 좌, 우호법이 그의 곁에 다가오고 있었다.
“지금 진법이 떨리는 것이오?”
우호법의 물음에 뇌마는 대답 대신 진법의 중심이 되는 8개의 주춧돌 중 하나를 바라봤다.
콰직. 콰지직.
주춧돌에 금이 가고 있었다.
‘이럴 수가.’
뇌마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평소 천마의 삿된 기운을 기준으로 하여 20배, 최대 25배까지 버틸 진법을 만들었건만!
그것이 지금 부서지려고 한다.
그때였다.
콰아아아앙—-!
굉음이 들려왔다.
진법으로 만든 희미한 막에서 들려온 소리였다.
뇌마는 고개를 들었다.
막을 두드리는 것은 거대한 검은 연기였다.
완전한 어둠.
그것이 막을 두드렸다.
콰아아, 콰아앙! 쾅!
끊임없이.
쉴 새 없이.
그 막을 무너뜨리기 위해.
‘이건 예상 밖의 일이다!’
천마께서 이다지도 많은 삿된 기운을 품고 계셨을 줄은.
또 삿된 기운이 이렇게 강하고 난폭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만약 이 진법이 부서진다면 어떻게 될까?
저 거대한 어둠이 밖으로 흘러나온다면?
그는 김 공자가 한 경고를 떠올렸다.
‘저 죽은 마나, 삿된 기운을 조심해야 합니다. 물론 저건 혈교에서 변형한 기운 같은데, 일단 저 죽은 마나에 일반인이 닿으면 치명적인 독이 됩니다.
무림인들은 어느 정도 버틸지 모르겠으나, 아마 그들도 위험할 겁니다.’
뇌마의 입이 절로 열렸다.
“좌호법, 사람들을 뒤로 물리시오!”
진법 안. 무엇이 벌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콰아아앙! 콰앙!
하지만 끊임없이 일어나는 굉음이 저 안의 치열함을 설명해 주었다.
“우호법, 나와 함께 이 진법을 보수해야겠소!”
일단 자신이 할 일을 해야 한다.
그가 할 일은 천마와 김 공자가 정화외의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게끔 하는것.
“잘못하다간 진법이 깨질지도 모르는 상황이오!”
그때였다.
뇌마는 바로 옆에서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럴 일은 없다, 뇌마야.”
검은 연기를 보았을 때와 다른 섬뜩함을 느낀 순간, 뇌마는 허공에 나타난 두 눈동자를 볼 수 있었다.
인간이 아닌 존재의 눈동자.
“진법이 깨져도 내가 막는다.”
목소리는 어렸다.
하지만 알 수 없는 기운에 뇌마는 숨이 막혀오는 듯했다.
“우리 인간이 원하는 건 내가 한다.”
선명한 검푸른 빛에 뇌마가 아무 말도 못 했을 때.
콰직!
결국 주춧돌 중 하나가 완전히 반으로 금이 가 버렸다.
그 틈새로 검은 기운이 흘러나오려는 찰나.
뇌마는 검은 막이 나타나 그 틈새를 막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다만 그 검은 막은 연기와는 달랐다.
밤의 포근함이 담긴 듯, 따뜻하면서도 밤공기를 담은 듯, 시원하면서도 청량한 기운이 느껴졌다.
“아.”
뇌마가 저도 모르게 안도의 탄성을 흘렸다.
“!”
그러다가 등 뒤로 느껴지는 거대한 기운에 고개를 돌렸다.
우르르-
하늘이 울기 시작한다.
회색빛의 구름이 환한 대낮에 생겨났다.
“인간이 드디어 움직이나 보다. 뇌마야, 천마는 괜찮을 거다. 우리 인간 걱정이나 해라.”
어린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없었다.
뇌마는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진법은 거대한 원형을 그리며 천장까지 막혀 있었다.
그 천장 위에 하늘이 울고 있다.
파지직. 파직.
적금빛의 전류가 울음을 토해내는 구름 사이로 보인다.
저것이 무엇이냐고 물을 수 없었다.
그저 이런 질문만 던져야 했다.
“저, 저것이 김 공자님의 힘입니까?”
어린 목소리는 답했다.
“맞다! 우리 인간 힘이다!”
그 답을 들은 순간, 뇌마는 두 손을 아래로 늘어뜨리고 멍하니 하늘만 바라봤다.
콰아앙, 쾅, 콰앙!
여전히 검은 연기가, 아니 더 거세게 검은 연기가 진법을 깨부수고 밖으로 나오려고 하는데.
그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자연이다.’
거대한 자연의 기운이 느껴졌으니까.
아니, 불이다.
불이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려고 한다.
“아.”
짧은 탄성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순간.
그를 비롯한 이 장소에 있는 모든 이들이 하늘을 바라봤다.
그리고 이곳에서 이뤄지는 일들을 모르는 사람들도 갑자기 하늘이 우는 소리에 고개를 위로 올렸고, 가까이, 혹은 저 멀리서 벼락이 내리치는 것을 보았다.
적금빛의 벼락이, 혹은 불이 하늘에서 땅으로 내리꽂혔다.
콰아아아—-
뇌마는 시야가 붉게,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눈물이 절로 났다.
하지만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콰아아아—
진법이 부서진다.
적금빛 불벼락이 진법의 천장에 닿은 순간, 진법은 허무할 정도로 쉬이 금이 갔다.
그 속으로 적금빛이 해일처럼 밀려들어 갔다.
적금빛의 해일은 폭포와 같이 거침없이, 흐트러짐 없이 아래로 내려갔고, 그래서 볼 수 있었다.
“아-”
천마시여.
뇌마는 다리에 힘이 풀려 저도 모르게 한쪽 무릎을 꿇었다.
적금빛에 감싸인 두 사람이 보였다.
김 공자와 천마.
두 사람은 처음과 같은 자세로 자리 해 있었다.
깊은 어둠 속에서도 그들은 그대로였다.
그런 그들을 적금빛이 감싸 안은 순간.
그 적금빛이 폭발하듯 퍼져나갔다.
어둠이 사라진다.
삿된 기운이 마치 비명이라도 지르는 듯, 도망가려는 듯.
콰앙, 쾅! 쾅! 쾅!
연신 진법을 두드렸으나, 천장이 뚫려 진법이 무너져 갔으나.
그보다 적금빛이 먼저 그 어둠을 모조리 잡아먹어 버렸다.
적금빛이 지나간 자리에는 어둠이 더 이상 파고들지 못했다.
일전에 후원에서 보았던 적금빛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압도적인 모습에 절로 말문이 막혀왔다.
우르르르-
하지만 하늘은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뇌마는 소름이 돋은 제 팔을 손으로 감싸 쥐며 진법 안을 바라봤다.
천장이 뚫린 채 겨우 무너지지 않고 버티고 있는 진법.
그 안에 여전히 처음과 같이 그대로 있는 두 사람.
케일은 제 물음에 천마가 답하지 못하는 것을 앎에도 물을 수밖에 없었다.
“야. 너 도대체 얼마나 많은 죽은 마나를 품고 있었던 거야?”
그의 등에 손을 대고 있어서 알 수 있었다.
손을 타고 느껴져 오는 거대한 기운.
끔찍하면서도 불길함을 담은 기운은 죽은 마나에 무언가가 더해진 것이 확실했다.
-케일,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이 다 느껴지는구나.
짠돌이의 말대로, 천마 안에는 혈교가 심어둔 수많은 악의가, 원망이 담겨져 있었다.
예상 밖이다.
천마 몸 안의 죽은 마나가 너무나도 많다.
“이제 삼분의 일 정도 쏟았지?”
그럼에도 케일은 담담했다.
그는 다른 손으로 난로를 꽉 쥔 채 말했다.
“남은 거 한 번에 다 쏟아부어. 진법이 완전히 부서지기 전에.”
-케일, 아직 수월하다! 안 힘들어!
짠돌이의 확언도 있겠다. 케일 스스로 아직 가뿐한 상태인지라, 그는 당당하게 말했다.
“내가 다 없애줄 테니까.”
아주 많이 해볼 만하다.
케일의 입꼬리가 올라간 순간.
우르르르—-
다음 번개를 내려칠 준비를 마친 하늘이 더 거세게 울음을 토해냈다.
동시에 케일은 천마에게서부터 시작되는 진동을 느꼈다.
두웅-
손을 타고 흘러오는 진동.
시작이구나, 깨달은 그때.
케일은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미친, 진짜 많네!”
온갖 부정적인 감정과 악의로 가득찬 죽은 마나가 천마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그는 순간 온 세상이 어둠으로 물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놀랄 뿐, 당황하지 않았다.
어둠을 말살시킬 불이 그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