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9
8화.
늦은 밤. 부집사 한스는 백작 데르트 앞에 서야 했다. 그는 보고를 시작했고 그 내용이 끝날 때까지 데르트는 가만히 들었다.
“그리고 현재 주무시고 계십니다.”
마침내 모든 보고가 끝이 났을 때 데르트는 입을 열었다.
“플린 상단 서자의 찻집에 갔다는 마부의 보고. 그리고 오늘 신원 확인이 불가한 소년을 한 명 데리고 왔고. 술은 평소와 달리 정신이 멀쩡한 정도로 마셨다.”
한스의 보고는 짧았다. 그 짧은 내용을 테르트는 음미했다.
“사람을 붙일까요?”
그는 한스의 물음에 손을 휘휘 저으며 반대했다. 굳이 사람을 붙여 아들이 밖에서 무엇을 하고 돌아다니는지까지 알고 싶지 않았다.
“됐어. 어차피 영지 안이면 무슨 짓을 하든 내 범위 안이야.”
데르트는 젊은 부집사들 중 한스를 아꼈다. 시키는 일을 잘 하고 사람다웠기 때문이었다.
“지금처럼 자네가 저택 안에서 케일을 지켜보고 이에 대한 보고만 하도록.”
“알겠습니다.”
한스는 데르트의 말에 어떠한 토도 달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데르트. 특출한 능력도 없고 튼튼한 권력의 줄 하나 잡지 못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전대 영주가 그러했듯 헤니투스 영지를 다스리며 대리석과 와인으로 부를 축적한 인물이다. 자신만의 영역은 잘 지키는 사람이었다.
‘케일이 변했어.’
케일이 평소와 같은 듯 달라졌다. 갑자기 똑똑해진 것도 아니고 강해진 것도 아니지만, 행동거지가 이전과 달랐다.
“아. 한스. 그리고 말이야.”
“네. 백작님.”
“플린의 서자에 대한 정보 좀 가져와.”
찻집 주인 빌로스. 플린 상단의 서자인 그를 데르트는 알고 있었다. 영지에서 생산하는 와인의 가장 큰 거래상대가 플린 상단이기 때문이었다.
“가보겠습니다.”
“그래.”
데르트는 집무실 밖으로 한스가 사라지는 것을 보며, 혼자 남은 공간 속에서 생각에 잠겼다. 케일 말고도 생각할 것이 많았다.
대륙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마치 터지기 직전의 화산과 같았다. 이를 왕국 구석에 위치한 데르트는 명백하게 느끼고 있었다. 끊임없이 의심하고 주시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오늘 왕실로부터 온 전서에서 데르트는 더욱 더 그런 분위기를 확신했다.
대대로 부를 지키고 이를 조금씩 넓히며 살아온 헤니투스 백작가. 그들은 대대로 가주에게 한가지 말을 전했다.
‘역사에 기록될 필요는 없다. 대신 행복과 평온을 위해 살아라.’
“성벽을 보수해야겠군.”
싸워서 쟁취할 줄은 몰라도, 지키는 방법에 대해서는 부족한 머리지만 끊임없이 생각하는 데르트였다.
* * *
어떤 때에는 몸이 정신을 이기는 때가 있다.
“도련님, 곤히 주무시길래 깨우지 않았습니다.”
케일은 늦잠을 잤다. 거기다가 아침부터 냉수 대신 레모네이드를 건네는 시종 론 때문에 속이 더부룩했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시종 론의 목에 붕대가 감겨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친 건가?”
“…걱정해주시는 겁니까?”
“아니. 뭐. 눈에 거슬려서.”
“별 것 아닙니다. 발톱을 세운 고양이에게 조금 긁혔습니다.”
발톱을 세운 고양이는 또 어느 죄없는 인간이란 말인가.
케일은 분명 어젯밤 누군가 운명을 달리 했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는 지긋이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는 론의 시선을 피하며 침실 문으로 향했다. 늦잠을 자는 바람에 더 바삐 움직여야 했다.
“바로 나가시는 겁니까?”
“어. 밖에서 다 알아서 할 거야.”
“네. 그런데 도련님.”
론의 부름에 케일은 잡고 있던 문고리를 놓고 뒤돌아 그를 바라봤다. 론은 의뭉스런 미소를 띠우고 있었다.
“레모네이드가 어떻습니까?”
“맛있어. 아주 맛있어.”
론의 목소리가 한층 낮아졌다.
“…그렇습니까?”
“어.”
뭔 시덥잖은 물음이야.
무시할 수도 없는 인간이라 케일은 대충 답하고 바로 문고리를 돌렸다. 문이 활짝 열렸다.
쾅. 그리고 바로 닫았다.
“…론.”
그의 부름에 론이 케일의 옆에 서며 인자한 미소와 함께 그에게 속삭였다.
“도련님 놀라셨습니까? 어제 오신 손님께서 문 밖에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놀래라. 케일은 문을 열자마자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최한의 눈동자에 순간 심장이 덜컹거려 문을 닫아버렸다. 그의 손이 상의 안주머니 위로 향했다. 그 안에 있는 1천만 켈론이 그의 마음을 안정시켜 주었다.
론은 케일을 빤히 보며 말을 이었다.
“바로 문을 여시길래 미처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편히 방에서 기다리시라고 하셔도, 도련님을 꼭 뵈어야 한다며 기다리시더군요.”
미처 말하지 못하기는. 말할 기회가 충분히 많았으면서도 말하지 않은 이 고약한 심보의 노인을 케일은 뭐라 하지 못했다. 케일은 슬그머니 론에게서 한발짝 떨어지며 문을 열었다.
“무슨 일이지?”
언제 면전에서 문을 닫았냐는 듯 케일은 최한과 마주했다. 그는 무덤덤하게 물으면서도 최한의 행색을 훑어보았다.
확실히 씻고 머리를 정돈하고 옷도 새로운 것을 입으니 그 선하고 깨끗한 분위기가 그에게서 풍겨져나왔다. 하지만 눈동자를 보면 그런 생각을 하기 힘들었다.
지금은 비틀어져 있는 상태. 그래서 최한의 눈동자를 보면 섬찟한 기분이 들었다.
최한도 역시 케일을 빤히 보다가 입을 열었다.
“밥값.”
“어?”
“밥값할 겁니다.”
어제와 달리 최한의 입에서는 존댓말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것보다 케일은 ‘밥값’이라는 단어에 눈가를 찡그렸다.
밥값이라니. 누구 심장에 소름돋게 할 일이 있나. 미쳤다고 최한의 노동력을 사용하겠는가. 그는 그냥 얼른 최한이 이 영지를 떠나는 게 유일한 바람이었다.
물론 최한은 케일이 밥값을 들먹이며 부탁을 하면 들어줄 것이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럴 일 자체가 애초에 케일에게 없다.
“됐어. 필요 없어. 그것 빼면 용건이 없는건가?”
그는 황급히 밥값 제안을 거절하며 다른 용건을 물었다. 최한은 더욱 더 뚫어질 듯 케일을 응시했다. 그 시선에 케일은 왠지 자신이 맞는 장면이 그려졌고 팔에 서서히 닭살이 돋으려 했다. 그 때 최한의 입이 열렸다.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부탁이라는 단어에 케일은 눈을 감았다. 엮이면 안되는데. 최한이 부탁할 것이라는 게 해리스 마을에 관련된 일밖에 더 있겠는가.
책 속의 케일이 해리스 마을 사람들을 버러지라고 칭했고 그 때문에 얻어맞은 것을 떠올리며 케일은 입을 열었다.
“네 부탁은 한스에게 말하도록. 그가 다 알아서 처리할 거야.”
다시 눈을 뜬 케일은 입을 꾹 다문 채 석상처럼 서 있는 최한과 시선을 마주했다.
“유능한 부집사다. 웬만한 부탁은 그가 다 해결해 줄 수 있으니 하도록.”
케일은 옆에 선 론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론의 어깨가 흠칫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케일은 일단 둘 다 눈 앞에서 치워버리기로 했다.
“여기 론은 유능한 이다. 네 부탁을 잘 도와줄 거야. 론, 내 손님이니 최대한 그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
케일은 론에게도 지시를 내린 후, 그의 어깨에서 손을 뗐다. 그 때 최한의 목소리가 케일의 귓가에 들려왔다.
“제가 누군지 모르지 않습니까?”
케일은 시선을 돌렸다. 여전히 자신을 응시하는 최한의 눈동자가 보였다. 몇번 보아서인지 섬찟한 분위기는 사라졌고 삐뚤어져도 감출 수 없는 선함이 느껴졌다.
“내가 왜 너를 알아야 하지? 나보다 못한 이를 도와주는데 이유가 필요한가?”
케일의 말에 최한의 눈가가 살짝 일그러졌다. 아주 찰나였지만 그 광경이 고스란히 그를 주시하던 케일의 눈동자에 포착되었다. 저보다 못하다는 말에 기분이 나쁜 건가. 케일은 다시 급히 말을 이었다.
“네 꼴에 어려운 일을 부탁할 것 같지도 않은데. 뭐, 어려운 부탁이면 한스가 알아서 짜르겠지.”
그는 론을 최한 쪽으로 밀고는 두 사람에게서 등 돌렸다.
“그럼 난 이만 바빠서.”
케일은 바삐 아버지 데르트의 집무실로 향했다. 오늘 조금 많이 용돈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등 뒤로 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련님, 말씀하신 바를 열심히 완수하겠습니다.”
그러던가 말던가. 지지고 볶고 하는 건 케일이 아닌 주인공과 그 동료들이 알아서 할 일이었다. 자신 덕분에 예정보다 4일 일찍 만났으니 정도 더 빨리 들지 않을까.
론은 멀어지는 케일을 바라보다가 자신의 손에 들린 빈 잔을 바라봤다.
“흥미롭군.”
저 겁 없는 강아지는 신 것을 싫어한다. 지금도 싫어한다. 그런데 지금은 마신다.
론은 자신의 목을 매만졌다. 오랜만에 상처를 입었건만 그 상처보다 더 흥미로운 상대가 자꾸 신경을 건드렸다.
겁 없는 강아지가 자신에게 겁을 먹는다.
무얼 알고 있는 것일까?
“안내해.”
론은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시선을 돌렸다. 짙은 혐오감이 담긴 최한의 눈빛이 보였다. 이 놈은 자신이 사람 죽이는 인간이라는 것을 어제의 짧은 공방으로 알아차린 듯 했다.
“그러지.”
제 놈도 사람 피 냄새를 한껏 뿌리고 다니는 주제에, 깨끗한 척을 한다. 비틀어져도 꽤 많이 비틀어진 놈이 론은 우스웠다.
어젯밤 마주한 저 녀석에게서 어둠의 숲. 그곳의 지독하고 난폭한 악취를 맡았다. 론과 비크로스는 맡을 수 있는 냄새였다.
물론 최한 본인의 악취가 아닌 누군가에게서 묻혀온 악취였고, 지금은 씻고 난 후라 최한에게서 그 악취가 나지 않았다.
‘하긴 그들이 넘어올 리 없지.’
어젯밤의 일을 떠올리며 론은 사연 많아보이는 녀석에게 말했다.
“따라오게.”
론은 우리 강아지 도련님의 명을 따르기 위해 걸음을 내딛었고 최한은 그 뒤를 따랐다. 최한의 시선이 잠시 사라진 케일의 방향으로 향했다가 이내 앞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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