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909
지금껏 여러 일을 이유로 로운 왕국에 신경을 덜 썼다.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불안감이 급격히 밀려왔다. 이럴 때마다 꼭 사건이 터졌기에, 케일은 태연하게 굴지만 그 표정이 점점 더 굳어져 갔다.
라온이 이를 보고는 슬그머니 다가와 케일의 허벅지 위에 얼굴을 턱 하니 올리고 그를 쳐다봤다.
케일은 라온의 맨들맨들한 머리를 매만지며 거울을 바라봤다.
파아앗-
그리고 마침내 화면이 떠올랐다.
“…….”
케일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알베르 크로스만. 그의 얼굴이 보였다.
“…괜찮습니까?”
안색이 안 좋아도 너무 안 좋았다.
눈 밑이 퀭했다.
“인간아! 왕세자 얼굴이 왜 저러나? 저건 태양이 아니라, 시무룩한 참외 같다!”
케일은 점점 기분이 미묘해져 갔다.
불안감이 싹 날아갔다.
그리고 라온도 목소리가 밝았다.
라온의 말대로 그 얼굴이 시무룩한 참외 같았으나, 왕세자는-
-하하하하, 우리 동생 오랜만이야?
웃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밝고 화사하게.
“왕세자야!”
-오랜만입니다, 라온 님. 하하하!
“나도 반갑다, 왕세자야! 그런데 너 사기 쳤냐?”
라온이 툭 던지듯 물었다.
“표정이 너무 좋다! 신나는 일 있나? 혼자서 뭐 털었나?”
그러게나 말이다.
케일의 표정이 떨떠름하게 변해갔다.
그러거나 말거나 왕세자는 퀭한 얼굴로 흐뭇한 미소를 한껏 지은 채 케일을 바라봤다.
-우리 동생. 얼굴이 왜 그래? 피 한번 토한 얼굴인데?
케일이 흠칫했으나, 왕세자는 다시 ‘하하하’ 웃었다.
“뭡니까?”
도저히 그 꼴이 이상해, 케일은 퉁명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그에 왕세자는 웃으며 답했다.
-우리 부자다.
“…네?”
-로운 왕국도 부자고, 우리 동생 케일도 부자고.
아.
케일은 문득 떠오른 바를 물었다.
“광산 관련 합의가 다 끝났습니까?”
-그래.
나직이 대답하는 왕세자의 눈빛은 반짝이고 있었다. 얼마나 반짝이는지 좀 흠칫하게 되는 케일이었다.
그러나 곧 그의 입가에도 스멀스멀 미소가 맺혔다.
“인간아, 우리 더 부자 된 거냐?”
“그런가 보네.”
어린 검은 용의 입꼬리도 씰룩이며 점점 함박웃음이 그려졌다.
왕세자는 광산을 가지고서 동서대륙 왕국들을 상대로 얻어낸 것들을 하나하나 말했고, 그 말이 다 끝났을 때.
“하하하, 역시 우리 형님이 최고십니다! 아이구, 너무 눈이 부셔서 못 쳐다보겠습니다!”
-하하하하! 너의 그 불경한 말투도 오늘은 기분 좋게 들리는구나!
“왕세자야, 너는 최고다! 지금 보니 활짝 웃는 멋진 참외다! 히히히!”
케일, 알베르, 라온은 활짝 미소 가득한 시간을 보냈다.
웃음과 즐거움이 끊이지 않는 시간이었다.
* * *
귀주.
사도련의 현 우두머리인 사마평이 이곳에 새로운 사도련을 시작해 보이겠다며 터를 내렸고. 그 후로, 이곳은 사파의 중심 지역이 되었다.
아주 고수가 아니라면, 일반 정파인들은 이곳에서 숨죽이며 빠르게 떠나려고 했다.
특히 사도련 건물에 가까워지지 않으려고 하였다.
그곳이야말로 사파의 심장과도 같은 곳이었으니까.
그리고 오늘, 그 심장 중에서 가장 중심에 자리 잡은 거대한 전각.
아름다운 꽃과 싱그러운 나무.
주변을 빙 둘러싼 작은 시냇가를 따라 맑은 물이 흐르는 곳.
“언제 들어도 아름다운 소리군.”
전각의 한쪽 편에는 귀주 최고의 악공들이 모여 산뜻하면서도 아련하고 감미로운 음악을 연주했다.
사천 지역의 사파 중 최고로 손꼽히는 극마와 철가장주는 도란도란 대화를 나눴다.
“련주님은 예술의 아름다움을 아시는 분이지요.”
따당!
비파 뜯는 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사도련주 사마평.
그는 사도련의 핵심 인물들을 모두 초대할 때면 이렇게 음악과 풍류로 가득한 아름다운 전각으로 안내했다.
철가장주는 술잔을 비우며 담담하게 말했다.
“오늘 누가 죽나 봅니다.”
사도련주 사마평은 이런 음악 속에서 꼭 누군가를 죽이는 결정을 내렸다.
그렇기에 이 풍류를 즐기는 자는 이곳에 아무도 없었다.
“악취미야.”
오마 중 극마라 불리는 이는 툭 내뱉더니, 문을 바라봤다.
“왔군.”
드르륵.
문이 열렸고, 사도련주 사마평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곁 바로 옆에 케일이 서 있었다.
“우웨에엑!”
등 뒤로 더스트 신관을 대동하고서.
“공자님, 전, 크읍, 여기, 커어억-”
“그래.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어.”
케일은 어떻게든 헛구역질을 참으려고 애를 쓰는 더스트 신관의 등을 대충 두드려주고 걸음을 옮겼다.
‘사마평의 취향도 별로네.’
사파의 사람들은 사파 답다고 해야 할까.
맑은 시냇물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전각. 악공들이 펼치는, 유려한 음악 사이로 가장 상석까지 길이 펼쳐져 있었다.
그 길을 중심에 두고 양쪽에 잔칫상이 펼쳐졌다.
그 잔칫상 자리를 차지한 사람은 사도련의 핵심 인물들이었다.
‘오른쪽이 중립 혹은 사마평의 사람들.’
그리고 왼쪽이 녹림 우두머리를 중심으로 한 적대세력.
‘재밌네.’
보통 상석으로 갈수록 이름 높은 자들이 자리를 차지하기 마련이었건만, 사파는 아주 그냥 제멋대로 앉아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묘한 침묵 속에서 케일을 쳐다봤다.
그 시선이 참으로 웃겼다.
-인간아! 저 툰카보다 무식하게 생긴 놈이 인간 너 노려본다!
참고로 그놈이 녹림의 우두머리다.
어떻게 산적들은 저렇게 클리셰처럼 천편일률적으로 비슷하게 생겼을까.
누가 봐도 저놈은 녹림 수장처럼 생겼다.
-인간아! 이상하다, 이상한 표정 짓는 사파 인간들이 너무 많다!
라온의 평은 정확했다.
“흐흐흐-”
술에 취한 듯 실실 웃으면서 케일에게 눈을 찡긋거려 보이는 사람.
혹은 서슬 퍼런 칼날을 닦더니 혀로 그 입술을 축이며 케일을 보고서 입맛을 다시는 인간.
그것도 아니면 죽일 듯이 노려보는 놈.
별별 놈들이 많았다.
그런 이들을 지나쳐 가던 케일은 악공의 음악을 제외한 말소리를 처음으로 들었다.
“저자가 김 공자로군.”
시선이 향했다.
오른편에 앉아있는 자.
사도련의 중립 거두.
극마였다.
오마 중 한 명으로 케일이 만난 살마, 검마에 이어 세 번째였다.
‘들었던 그대로의 모습이네.’
오마 중 가장 나이가 많아, 팔순에 이른 극마는 본래는 다른 칭호를 지니고 있었다.
그녀의 원래 칭호는 독마였다.
독으로 사파에서 가장 이름을 날리는 이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녀의 무공에 변화가 일어났다.
독으로 극(極)에 달하겠다는 그녀는 독과 어울릴 만한 모든 잡다한 무공을, 삼류라 불리는 무공들까지 닥치는 대로 긁어모아 연구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십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본인의 독에 어울릴 만한 무공을 찾지 못했고 그 결과로 스스로는 한계에 달했다고 말하며 자신을 극마라 칭했다.
‘아미파, 사천당가와 사이가 상당히 좋지 못하다지?’
아미파는 비구니들이 모여 무와 도를 추구하는 것에서 시작되어 지금은 여성들로 조직된, 정파의 구파일방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리고 사천당가는 정파의 오대세가 중 한 곳이자 독과 그 지독한 성정으로 유명했다.
아미파의 현 장문인과 극마는 젊을 적 부딪침이 많아, 지금은 앙숙이라 하였다.
그리고 사천당가에서는 독과 암기를 추구하는 만큼, 극마를 견제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사천 지역이 참 난잡하다지?’
보통 어느 지역에서는 한 세력이 득세를 이루기 마련인데. 사천은 정파와 사파의 대립이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고 팽팽하다고 하였다.
정파 세력으로 아미파와 사천당가, 청성파가 있었고.
사파 세력으로는 철가장을 중심으로 한 흑도 문파와 극마가 있었다.
큰 부딪침은 없지만,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해오고 있는 지역 사천.
그곳에 이제 혈교의 지부 혹은 중심이라 여겨지는 청은 상단이 존재한다.
‘난장판이 벌어지겠네.’
케일은 그 난장판을 생각하면 한숨이 나왔으나, 곧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맺혔다.
-인간아! 오랜만에 그렇게 웃는다!
왜냐면 그 난장판을 만드는 건, 케일일 테니까.
한번 엎을 작정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지금까지 사방을 돌아다니고 정화를 하며 고분고분 지내오지 않았던가.
케일은 저를 바라보는 극마의 주름진 눈꺼풀 사이, 날카로운 눈동자를 마주하며 웃어 보였다.
“호오.”
극마가 짧은 감탄을 흘렸을 때.
“련주. 갑자기 왜 불렀소?”
아직 자리에도 앉지 못한 사마평의 걸음을 멈춰 세운 이가 있었다.
“하령.”
이 고와 보이는 이름의 주인공은 녹림의 우두머리였다.
녹림 72채와 장강수로채 18채를 모두 이끄는 자.
“하문은 어디 뒀소?”
툰카보다 심한 산발을 한 그는 술잔을 쥔 채 사마평을 올려다보았다.
그 눈빛이 살벌했다.
“하문은 잘 있지.”
“하! 웃기지도 않는 소릴. 하문의 연락이 끊겼소. 련주 자식들을 만난 후로 말이오.”
하령을 중심으로 점점 더 그 기세가 살벌해지기 시작했다.
하문은 녹림의 2인자로 케일을 대장이라고 부르며 쫓아다니던 놈이다.
이름이 비슷한 것에서 알 수 있듯, 하령은 제 심복들에게는 같은 성을 내려 의형제 이상으로, 친형제처럼 지낸다고 하였다.
그러니 그 결속력이 어마어마할 터.
-인간아! 하문은 지금 툰카랑 술 먹다가 잠들지 않았나?
그리고 지금은 귀주 어딘가에 있는 여관에서 술을 진탕 먹고 잠들어 있었다.
케일은 사마평이 가만히 하령을 응시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사마평은 하문에 대해서 물으며 으르렁거리는 하령에게 다시 한번 말했다.
“하문은 잘 있네.”
“아니, 어디 있는지를-”
“잘 있다고.”
하령이 멈칫했다.
사마평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걸렸으니까.
“난 분명히 잘 있다고 지금 세 번 말했네. 하령, 자넨 알겠지? 나는 두 번 이상 말하는 걸 매우 싫어해.”
이 와중에도 음악은 흘렀다.
봄을 머금은 듯한 산뜻한 음악은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음악 소리뿐이었다.
누구 하나 선뜻 입을 열지 않았다.
“큭.”
정적을 깬 것은 하령의 코웃음이었다.
“그간 잠잠하더니,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는 것이오?”
덜컹. 하령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야.’
케일은 감탄했다.
실로 툰카만 했다. 사람이.
중원에서 이 정도로 큰 사람은 처음 보았다.
스륵.
뒤이어 조용히 의자가 밀리며 두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령의 맞은편에 앉았던 이들로, 케일은 그 두 사람을 눈에 담았다.
‘첫째와 넷째군.’
사마석, 사마태. 그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하령을 노려보았다.
일촉즉발의 분위기가 퍼지기 시작했다.
“본색?”
그 와중에 사마평만이 태연했다.
“내가 무슨 본색을 드러낸다는 것이지?”
하령의 시선이 케일에게로 향했다.
“그쪽은 김해일 공자가 맞소?”
케일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에 하령은 툭 내뱉었다.
“황궁의 귀하신 분께는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나는 사파가 정파, 마교와 협의하는 것도 싫고, 고개를 숙이는 것도 싫소!”
하령이 사마평을 노려보았다.
그에 동조하듯 하나둘 그의 수하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의 옷차림은 각양각색이었으나, 하나같이 살벌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대부분 엄격한 규율 아래, 혹은 가문의 울타리 안에서 무공을 수련하며 성장하는 정파.
율법 아래 철저한 훈련과 경쟁 속에서 힘을 키우는 마교.
사파는 그들과 달랐다.
이들의 대부분은 배움, 보호라는 이름과 거리가 먼 성장 과정을 겪어왔다. 그들은 정말로 살기 위해 무공을 배우고 힘을 갈고 닦았다.
“련주!”
하령이 말했다.
“여기 황궁의 귀하신 분을 모셔 온 것은, 정파와 마교가 서로 협상을 했듯 우리도 그들과 협상하길 원한다는 뜻이오?”
사마평은 잠자코 웃고만 있었다.
그에 하령이 분노에 가득 차 소리쳤다.
“사도련이 꼬리를 만 개가 되는 꼴을 나는 볼 수 없소!”
콰직.
그의 손에 쥔 술잔이 부서졌다.
“우리가 이 바닥에서 어떻게 자리를 잡았소? 투쟁! 그것만이 우리의 답이었소! 그런데 뭐? 타협을 하자고? 절대 그럴 순 없소! 꺾여서는 안 되오!”
그에 동조하듯 하령 쪽의 분위기가 점점 더 열기를 더해갔다.
이를 보며 케일은 생각했다.
‘웃기고 자빠졌네.’
케일은 산적과 수적들이 통행세만 내면 상단을 통과시켜 준다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었고. 또 산적과 수적들이 절대로 관리는 건들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어떤 때에는 뇌물도 바친다고 들었다.
특히 사파는 건달이나 양아치 같은 놈들도 수하로 받아들여 주어 관의 눈치를 보는 일이 일상다반사였다.
거기다가 자릿세라고 하면서 상인들 돈도 뜯어내는 흑도문파도 있다고 들었다.
그래 놓고는 뭐?
투쟁?
꺾일 수 없어?
‘재밌는 소릴 하네.’
라고 케일이 생각한 순간.
“재밌는 소릴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