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917
“여럿이서 하면 더 쉽게 되는걸. 안 그래?”
“맞다! 압도적인 싸움이 나는 좋다!”
“그렇지.”
케일이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라온이 다시 외쳤다.
“그리고, 우리 편이 빵빵할수록 좋다!”
“잘 알고 있네.”
“그리고 우리 편이 최대한 안 다쳤으면 좋겠다!”
“그렇지.”
“그러려면 최대한 우리 편이 많아야 한다!”
“맞아.”
잘 배웠네.
“그리고 불리하면 도망치면 된다!”
“정답이다.”
“그 후에 뒤통수치면 된다!”
“…음. 그렇지.”
어쨌든 맞는 말이다.
“또 빵빵하게 준비해서 선빵치면 된다!”
“…어.”
“그리고 적들 보물 다 털어버리면 더 좋다!”
“…음.”
“또 사기 쳐서 속이면 된다!”
“…….”
푸흡.
케일은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들었다. 최정수가 케일의 싸한 표정을 보고 얼른 고개를 숙였다.
그 와중에 팀장 수이 칸은 피식피식 대놓고 웃으며 말했다.
“이야, 제대로 잘 배웠네.”
그 말에 라온이 통통한 배를 쭈욱 앞으로 내밀었다.
“당연하다! 나는 위대해서 뭐든 다 잘 배운다!”
그냥 말을 말아야지.
케일은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팀장은 라온이 쭈욱 내민 통통한 배를 콕콕 찌르며 말했다.
“애는 그냥 놀 생각만 하면 돼.”
“간지럽다!”
라온이 휙 날아가 최한의 등에 찰싹 달라붙었다. 최한은 뒤로 손을 뻗어 라온을 업었다. 갈수록 묵직해지는 무게를 느끼며 무덤덤하게 말했다.
“걱정할 것 없어.”
라온은 통통한 뒷발을 까딱이며 답했다.
“맞다! 그냥 때려 부수면 된다!”
허이구야.
케일은 한숨을 내쉬며 라온을 외면했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대충 알아들은 것 같네.’
부담감이 사라진 라온의 모습은 편해 보였다. 그러니 최한에게 저리 어리광도 부리는 것일 터.
마음이 놓인 케일은 위 상선과 눈이 마주쳤다.
‘왜 저리 쳐다보지?’
위 상선이 멍한 얼굴로 케일을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러십니까?”
그 물음에 위 상선이 멈칫하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 아닙니다.”
그러고는 속으로 신음을 흘렸다.
‘역시 김 공자님은 단순히 선하고 온화하기만 한 분이 아니었어.’
용과 김 공자가 나누는 대화에서 어느 정도 그간 그가 걸어온 길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간 참고 계셨던 거였어.’
일을 조금 더 수월하게 처리하기 위해. 불필요한 다툼을 줄이기 위해.
김 공자는 예를 지켜왔다.
‘조심히 행동해야 한다.’
이런 사람에게 더 행동거지를 조심해야 하는 법.
위 상선은 긴장감을 놓지 않고서 가만히 김 공자가 하는 일을 바라보았다.
“성주님.”
케일은 털썩 주저앉아 있는 성주에게로 다가갔다.
“조금 더 자세한 설명 가능하겠습니까?”
일단 그의 말을 더 들어두는 편이 좋았다.
때문에 그에게 다가갔던 케일은 멈칫했다.
‘음?’
공동의 중심.
그곳에 아주 작은 구멍이 뚫려있었다.
-킁킁! 여기다! 여기서 좋은 냄새가 나!
하늘을 잡아먹는 물이 반응했다.
“…뭐가 느껴지십니까?”
한결 차분해진 음성으로 성주가 케일을 바라봤다.
그는 꽤 진정이 된 모습이었다.
“이 구멍 밑에 뭐가 있는 겁니까?”
케일의 물음에 성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전해 들은 바로는 이 밑에 있는 것이 용의 눈물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성주의 말을 요약하자면.
지금 케일이 발을 디디고 있는 그 석판 아래에 꽁꽁 언 호수가 존재한다고 한다.
온도와 상관없이 사시사철 얼어있는 이 호수 위에 증조할아버지는 석판을 깔았고, 단 하나의 구멍만을 만들어 두었다고 한다.
“그리고 언젠가 반드시 검은 용이 찾아와, 이 석판 밑 호수에 담긴 것들을 가져갈 것이라 하였습니다.”
“이 밑에 있는 게 무엇이죠?”
그게 중요했다.
-맛있겠다.
부서지지 않는 방패, 먹보 신녀가 연신 입맛을 다시며 저 소리만 반복했으니까.
“그건 저도 잘 모릅니다.”
성주의 대답에 살짝 케일의 미간이 찌푸려지는 찰나.
“다만 그 용께서 기록해 두신 책자가 있습니다.”
성주는 한숨과도 같은 웃음을 흘렸다.
“저는 그걸 몇 번이고 열어보려고 했지만, 책 자체가 펼쳐지지 않더군요. 그 물건은 오로지 주인을 만나야만 펼쳐진다고 하였으니, 주인이 맞다면 저분이 여시겠지요.”
라온을 향해 흐린 미소를 지어 보이는 성주였다.
케일은 당당하게 말했다.
“일단 제가 저 애의 보호자이니, 제가 받아서 먼저 살펴보죠.”
위험한 것이 있나 없나 확인해야 했다.
“좋습니다. 그건 제 서재 금고에 있으니, 바로 드리겠습니다.”
사천성주는 시원시원하게 답했다.
성주를 따라 계단을 올라가며 케일은 툭 던지듯 물었다.
“혈교 첩자는 아니죠?”
“하아. 아닙니다.”
포승줄에 상체가 결박되어 있음에도 계단은 잘만 올라갔다. 케일은 슬쩍 위 상선과 시선을 마주쳤다.
-제 생각에도 아닌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저택 내의 중요 직책에 있던 이와 혈교가 손을 잡은 듯합니다.
위 상선의 전음에 케일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서재로 다시 올라왔다.
성주는 책상으로 다가가 그 바닥을 가리켰다.
“이쪽, 저 나무판을 눌러주십시오.”
최정수가 냉큼 나무판을 눌렀고, 그러자 바닥이 들리며 작은 금고가 나타났다.
“왼쪽으로 세 바퀴, 오른쪽으로 다시 2바퀴-”
성주는 망설임 없이 금고를 여는 방법을 알려주었고, 최정수는 곧장 그 말에 따라 금고 잠금장치를 조작했다.
달칵.
금고가 열렸다.
그 안을 열자, 몇 개의 보석과 서류. 그리고 한 권의 책자가 있었다.
“인간아, 마법이다!”
라온이 그 책자를 보고 한 말에 케일은 망설임 없이 그 책자를 집어 들었다.
중원식으로 된 책자에는 어떠한 제목도 적혀 있지 않았다.
다만 오랜 세월을 버텨온 듯 상당히 낡아 있었다.
“요거, 마나 회로가 특이하다! 여기 이 부분, 마나 회로를 바꾸면 제대로 작동할 거다!”
최한의 등에 업힌 채 다가온 라온이 짧은 앞발가락으로 책의 어느 한 부분을 톡 건드렸다.
그리고 움찔했다.
케일도.
촤르르륵—-!
갑자기 책이 공중으로 튀어 오르더니, 그 책장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책에서 굉장히 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드디어, 그 아이가 나를 발견했구나!”
노파의 목소리였다.
“크하하하하하!”
웃음소리도 흘러나왔는데, 케일의 표정이 굳어졌다.
‘좀, 쎄한데?’
웃음소리가 광기에 가득 찬 것 같았다.
“나는 미친 용이 아니었어! 내가 정답이었다고!”
촤르르륵-
여전히 책은 그 종잇장이 맹렬하게 팔락거리며 난리였다.
“현재의 힘을 지닌 용이여! 시간을 휘두르는 그놈을 막을 녀석은 너밖에 없다!”
시간?
케일의 눈동자에 이채가 감도는 순간.
책 속에서 흘러나오는 노파의 목소리는 점점 더 카랑카랑해져 갔다.
“미래인 나도 망했고, 과거인 그놈도 망했을 것이 분명하다! 남은 것은, 현재뿐이다.”
라온이 두 눈을 깜박였다.
“나는 너와 너의 쫄따구가 얼마나 강한지를 보았다!”
쫄따구?
케일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쫄따구‘들’이 아니라, 쫄따구.
아무리 봐도 한 명을 가리키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날 말하는 건가?’
내가 라온의 쫄따구?
“내 너를 위한, 너의 쫄따구를 위한 안배를 준비해 두었으니, 모두 가지거라! 크하하하하!”
책은 이제 공중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결국 이기는 건 현재일 것이니라! 시간은 지금을 이기지 못해! 크하하하!”
툭.
갑자기 책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무것도 없던 표지에 글자가 나타났다.
라온 미르.
한국어로 즐거운 용.
그 용의 쫄따구는 누가 봐도 케일 자신이었다.
아주 직관적인 제목이었다.
케일은 질끈 눈을 감았다.
이상하게 뒤통수가 뻐근했다.
“쫄…따…구?”
라온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책을 쳐다봤다. 그러다가 고개를 들어 케일을 바라봤다. 의문이 가득한 눈동자였다.
그 동그란 눈을 마주한 케일은 모르는 척 책을 집어 들었다.
“푸흡.”
케일의 시선이 빠르게 한 곳으로 향했다.
“…….”
최정수가 공손히 두 손을 모은 채 안 웃은 척하고 있었다.
“너, 계속 그런다?”
케일이 웃으며 건넨 말에 최정수가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이를 보던 라온이 최한의 등을 콕콕 찌르며 속삭였다.
“최한아, 방금 인간 론 할배처럼 웃었다!”
내가 그 살벌한 노인네처럼 웃었다고?
케일의 눈이 커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천성주가 넋이 나간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 이런 신비로운 일은 난생처음 겪어봅니다. 책에서 목소리가 들린다니.”
그의 몸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위 상선 역시 마찬가지였다.
케일은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드래곤 피어였어.’
노파의 목소리에는 은은하게 드래곤 피어가 깔려있었다. 생명체 본연의 공포를 자극하는 목소리. 그에 케일은 저도 모르게 ‘지배하는 아우라’를 살짝 피워 올렸다.
물론 위 상선과 사천성주를 제외하면 드래곤 피어에 영향을 받는 이는 없었다. 대부분 흥미로운 눈빛 혹은 탐탁지 않은 감정을 담은 눈으로 케일의 손에 들린 책을 바라볼 뿐.
꿀꺽.
사천성주는 슬그머니 케일의 옆에 섰다.
본능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드래곤 피어. 이를 피해 그나마 인간이 뿜어내는 강한 기운에 의지하게 된 것이다.
이런 연유를 모르는 사천성주였지만, 그의 얼굴에는 케일을 향한 동경이 서려 있었다.
“쫄, 아니, 용을 모시는 분이었습니까?”
그의 물음은 못 들은 척하는 케일이었다.
대신 책을 펼쳤다.
‘재밌네.’
글자는 로운 왕국의 언어로 되어 있었다.
중원 사람들은 봐도 못 읽어낼 내용이었다.
서문에는 적혀 있었다.
하.
쫄따구라고 할 때는 언제고, 여기는 수호자라고 해놨네.
불만이 어린 케일의 입꼬리가 비틀어지는 그때.
그의 입가가 굳었다.
라온의 이야기였다.
원래라면 죽었어야 할 존재지만, 지금은 아주 팔팔하게 잘살고 있다.
케일 본인을 가리키는 것이리라.
사천성주의 증조할아버지 때에 이 용을 만났다고 하니, 못해도 백 년 전에 이 책은 쓰여졌을 터.
즉, 이 용은 백 년 후의 미래를 보았을 것이다.
어쩌면 이 이상도.
꽤 정갈한 필체로 새겨진 담담한 글자를 케일은 가만히 읽어 내려갔다.
맞다.
그렇지 못할 경우 그 시신이 남겨지게 된다.
케일의 시선이 지하로 통하는 책장으로 향했다.
이 용은 죽어서 호수가 되었단 소리였다.
뒷장으로 넘겼다.
드르륵.
서재 문이 열리며 론과 비크로스가 찻잔과 다과를 들고서 안으로 들어왔다.
케일은 그쪽에 눈길을 줄 겨를이 없었다.
“빌어먹을.”
그가 읊조리는 말에 사천성주와 위 상선이 멈칫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케일은 책에 새겨진 문장들을 눈에 담았다.
역시 이 용은 미친 용이다.
아피토유.
그 세계의 드래곤 로드들은 대대로 반지를 끼나 보다.
그 반지가 없으면 로드의 힘을 못 쓰나 보다.
이 용이 말하는 ‘그놈’은 아마도 시간을 다루는, 그쪽 세계를 지배한 어마무시한 용일 터. 그 용이 이 미친 용이 훔친 반지 때문에 제대로 드래곤 로드 노릇을 못 하고 있나 보다.
아, 그렇구나.
역시 아피토유.
그 세상에도 인간들이 있었나 보다.
그중에 드래곤 사냥꾼이자 제국을 만든, 딱 봐도 엄청나 보이는 영웅의 유물을 이 미친 용이 훔쳐서 중원까지 온 듯하다.
이야.
드래곤 로드를 지키는 기사.
그 기사의 검도 이 미친 용이 훔쳤나 보다.
“인간아.”
라온이 다가와서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왜 그렇게 웃고 있나?”
응?
내가 웃고 있었나?
케일은 제 입꼬리를 매만졌다.
“아, 웃고 있었네.”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전까지는 케일을 놀리듯 바라보던 최정수와 팀장이 심각해진 얼굴이 되었고, 비크로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최한은 굳은 얼굴로 말했다.
“무엇이든 따르겠습니다.”
왜 이래?
“도련님.”
와중에 론은 평소처럼 인자한 미소를 지은 채 찻잔을 내밀었다.
“평소와 달리 달달한 차밖에 없더군요. 아쉽지만, 이거라도 드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