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919
안 그래도 라온이나 온에 비해서 전투에 서툰 홍이었다.
물론 온과 함께할 때는 아주 강하지만, 나이가 어려서인지 부족함이 많았다.
‘잘됐어.’
이번 참에 홍이 스스로를 지킬 무기를 더 많이 가지게 되면 좋은 일이었다.
‘나중에 극마한테서도 독을 뜯어내야겠어.’
사파의 독. 정파의 독.
두 가지를 모두 가져가야겠다.
과한 것을 원하면 둘 다 반발을 할 터이니, 홍에게 유용할 만한 적당한 세기의 독들로 부탁하면 될 것이다.
‘나중에 가주한테 적당히 센 것들로 슬쩍 나눠달라고 하면 주겠지?’
케일은 당유를 향해 부드럽고 화사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당유의 안색이 시퍼렇게 변해가는 것은 독의 무슨 작용인가에 대해 고민하며.
그렇기에 케일은 이날 저녁, 평온한 식사를 끝내고 당가주와 차를 한잔 마시는 자리.
오로지 둘만이 독대하는 시간.
“가주님.”
“네, 공자님.”
“혹시 독 좀 나눠주실 수 있습니까?”
달그락.
당유의 손에 들린 찻잔이 살짝 덜그럭거렸다.
“그냥 적당한 것들로 몇 개만 나눠주시면 되는데.”
케일은 웃으며 진짜 별것 아니라는 듯 평온하게 말했다.
“곤란할까요?”
그는 당유가 망설임 없이 고개를 가로젓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곤란할 리가요. 얼마든지, 네, 그,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그러고는 벌떡 일어났다.
“공자님, 제가 해야 할 일이 있어 이만 가봐야 할 듯합니다.”
“네. 오늘 덕분에 편한 시간 보냈습니다.”
“…푹 쉬십시오.”
케일은 생각보다 흔쾌히 수락해주는 당유를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당유는 빠른 속도로 김 공자의 처소를 벗어나 가주전으로 향했다.
그리고 당장 장로를 비롯한 각 기관의 우두머리들을 불러 모았다.
그녀는 그들이 가주전으로 모이길 기다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빌어먹을! 그냥 적당한 독을 내놓으라고?”
자연경에 이른 김 공자. 그에게 웬만한 것은 독도 아닐 것이다.
그가 말하는 적당한 독은 어느 수준일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역시, 아까 그 일을 그냥 넘어가려는 게 아니었구나!’
당유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그날 밤.
가주전 회의실은 불이 꺼지지 않았다.
당가의 수뇌진들이 모여 밤새 열띤 의논을 했다.
과연 김 공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독이 무엇인지에 대해.
그리고 어느 정도를 털어다 갖다 바쳐야 하는지에 대해.
마침내 새벽이 찾아왔을 때.
당유는 하루 사이 상당히 늙어버린 안색으로 입을 열었다.
“…구왕 중, 1, 7, 8을 건네기로 하지요.”
당가의 보물이라 불리는 구왕(九王).
이는 아홉 가지의 독을 뜻했다.
귀하디귀한 보물. 그중 세 가지를 김 공자에게 일부 나눠주기로 결정되었다.
* * *
“당가주가 저녁에 보자고 했다고?”
“네.”
케일은 최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지하 계단을 바라봤다.
론이 다가왔다.
“도련님, 석판을 모두 제거하니 얼음으로 된 호수가 나왔습니다.”
용의 눈물로 만들어진 무덤.
그 이야기는 진실이었다.
케일은 옆을 쳐다봤다.
“난 준비됐다!”
라온이 빵빵한 배를 쭉 내밀었다.
케일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가자.”
그리고 지하 계단으로 발을 내디뎠다.
-킁킁. 냄새가 더 좋아졌는데!
하늘을 잡아먹는 물의 신난 목소리를 들으며.
마지막 계단.
케일은 그곳에서 멈춰 섰다.
“우아!”
라온이 감탄했다.
“인간아, 진짜 얼음이다!”
라온이 공중에 띄운 마나 불빛들이 공동 안을 환하게 비췄다.
마치 겨울밤의 별빛을 받은 얼음 호수를 보는 것과 같은 광경이 케일의 눈앞에 펼쳐졌다.
‘얼음이 검은색이다.’
반투명한 검은 얼음은 정말로 밤하늘처럼 반짝였다.
“여기에 대기하고 있어.”
“알았다, 인간아!”
라온이 해맑게.
“알겠습니다.”
최한이 순한 미소를 띤 채로 답했다.
케일, 라온, 최한.
이 세 명을 제외한 다른 일행들은 각자 일을 하고 있거나 혹은 지하 계단 위 사천성주의 서재에서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용은 나와 라온이 나눠 먹으라고 했지만.’
케일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일단 챙겨서 돌아간다.’
용이 내건 물건은 3가지.
아피토유 세계의 드래곤 로드가 사용한다는 반지.
그 세계의 마지막 제국의 초대 황제이자 드래곤을 사냥했다는 자가 사용했다는 왕관.
드래곤 로드 수호 기사가 쓴다는 검.
‘그 주인은 정해졌다.’
반지는 라온에게.
왕관은 케일이.
검은 최한의 몫으로.
‘하지만 지금 넘겨줄 생각은 없어.’
저벅.
케일은 검은 얼음 위로 발을 내디뎠다.
고요함 속에서 그의 발걸음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그는 별빛으로 감싸인 듯한 어둠 속에서 생각을 정리했다.
‘3가지의 물건은 바로 아공간 주머니에 넣어서-’
케일은 결심했다.
‘에르하벤 님이나 쉐리트 님보고 검사해 달라고 해야지.’
다른 세계의 용이 준 걸 뭘 믿고 쓰겠냐?
그것도 어린 용보고 세상을 구하라고 말하는 용이 가져다준 물건을 덜컥 믿고 쓸 순 없다.
자신이면 몰라도, 순진한 라온이나 순한 최한은 정체도 알 수 없는 물건을 쓰다가 뭔 일을 겪을지 알 수 없다.
‘둘 다 똑똑한 것 같아도 은근 맹하고 순진하니까.’
그렇기에 케일은 일단 물건은 다 가지되, 로운으로 돌아가서 세상 풍파를 누구보다도 많이 겪어본 고룡 에르하벤과 전 드래곤 로드 쉐리트에게 품질 검사를 맡길 작정이었다.
케일은 공동 중심에서 걸음을 멈췄다.
‘이제 슬슬 해볼까.’
살짝 긴장감이 차올랐다.
팀장 수이 칸과 최정수. 두 사람과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아무리 용이라고 해도, 차원을 넘나들었다니. 케일아, 일반적인 용은 아닐 것 같다.’
‘내 생각도 팀장님이랑 같아! 야, 사냥꾼들도 많은 생명을 바쳐서 그 업으로 차원 이동하잖아. 물론 그 용도 제 수명의 상당 부분을 걸고 차원 이동을 한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쉽게 볼 용이 아니야.’
케일은 품에서 신물을 꺼내 들었다.
그는 죽음의 신과 중원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런데 둘 다 이상하게도 대답이 없다.
‘뭔가 찝찝한데.’
껄끄러움이 생긴 케일은 그 결과로 용이 줄 물건을 고룡에게 한번 살펴봐 달라고 해야겠다 마음먹게 되었다.
‘변수가 생기면, 그냥 이 지하실을 무너뜨리자.’
케일은 그리 생각하며 긴장감을 가라앉히려 숨을 내뱉었다.
“후우.”
-츄릅.
응?
케일은 멈칫했다.
-아, 미안. 자꾸 침이 나오네. 쓰읍.
하늘을 잡아먹는 물이 입맛을 다시다 못해 침을 삼켜댄다.
-츄릅. 배고프다.
심지어 먹보 신녀도 같은 행동을 보였다.
-…그쪽은 어차피 못 쓰는 힘이잖아?
하늘을 잡아먹는 물이 말꼬리를 잡자, 먹보 신녀는 답했다.
-맛만 봐도 좋다. 츄릅.
-그래? 흐흐, 나는 저 물을 먹고 가질 힘이 너무나도 기대되는데. 잘만 하면, 하늘을, 신 새끼를 내 손으로, 크크크-!
…이 녀석들도 정상이 아니다.
케일은 긴장감이 모조리 사라져 버렸다.
“하아.”
한숨을 내쉰 케일은 입을 열고 툭 내뱉었다.
“막시리언.”
이 무덤의 주인이자, 책을 지은 용의 이름은 ‘막시리언.’
그녀의 말대로 이름을 부른 순간.
쩌저적—!
케일이 서 있는 곳을 중심으로 얼음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음!”
그의 눈이 커졌다.
-하!
하늘을 잡아먹는 물이 탄성과도 같은 웃음을 터트리며 아주 재밌다는 듯 말했다.
-미친! 이런 빌어처먹을 상황이 있다고? 크크큭!
얼음이 녹는다.
그리고 갈라진 틈새로 반투명한 검은 물이 솟구친다.
케일은 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하늘을 잡아먹는 물이 소리쳤다.
-제길! 너무 좋잖아!
아니, 환호했다.
-이런 밀도의 물이 존재한다니!
케일은 라온과 최한이 있는 쪽을 바라봤다.
“인간아!”
라온이 놀라서 두 앞발을 내밀었다.
쿵, 쿵!
라온의 앞에는 막이 생겨나 있었다.
계단과 공동.
그 사이를 가로막는 투명한 벽이 어느새 나타나 라온과 최한이 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았다.
놀란 라온과 최한. 그들은 벽을 부수려고 하다가 이내 멈췄다.
“흐.”
케일의 입가에 지어진 미소를 보았으니까.
검은 물이 여러 줄기가 되어 솟구친다.
그 중심에 선 케일. 그는 제 팔에 돋은 소름을 바라보며 웃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늘을 잡아먹는 물도 웃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푸하하하! 미쳤다고! 이 물은 그냥 생명 그 자체야!
케일은 온몸이 저릿저릿했다.
하지만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케일은 라온과 달리 공기 중의 마나를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이 공간 안을 채우는 거대한 기운은 느껴졌다.
마치 울창한 숲에 들어온 것처럼.
시원한 바람을 머금은 바다 위에 온 것처럼.
그늘을 벗어나 따스한 햇살 아래에 선 것처럼.
설명할 수 없지만, 자연 혹은 생명이 느껴지는 이 순간.
-하! 용의 마나가 그대로 물에 섞였구나! 으하하하! 다행이야!
물은 안도했다.
-예상대로, 이건 마나가 아니야!
용의 마나, 용의 신체. 모든 것들이 녹아든 물은 그저 물이었다.
만약 마나가 물에 섞여들지 못하고 그대로 존재했다면 이를 마법사도 아닌 케일이 받아들였다간 큰일 났을 터.
-크하하하하! 물이다! 그냥 물! 세월이 지나면서 마나로서의 의지도 신체로서의 의지도 사라지고, 그냥 생명력으로만 남은 거야! 크하하하!
하늘을 잡아먹는 물 뒤에 오랜만에 파괴하는 불이 읊조렸다.
-얘, 눈이 뒤집혔는데.
그러다가 멈칫하고는 이어 말했다.
-…케일 눈도 뒤집힌 것 같은데.
-츄릅.
뒤이어 먹보 신녀가 입맛을 다시는 소리를 냈다.
-…난 모르겠다.
-형님, 저도요.
파괴하는 불과 심장의 활력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하늘을 잡아먹는 물은 외쳤다.
-케일!
그 부름에 케일은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공동을 가득 채울 것처럼 솟구치는 물.
상당한 깊이를 지닌 듯한 호수의 밑바닥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3개의 제단.
그 위에 놓인 3개의 물건.
그것들이 케일의 눈에 들어선 순간.
“어?”
케일이 저도 모르게 어벙한 소리를 냈지만, 그는 곧 정신을 차려야 했다.
-이놈아! 왜 갑자기 얼빠지게 굴어!
하늘을 잡아먹는 물이 호통쳤다.
케일은 움찔했다.
‘…얘 원래 이런 성격인가?’
욕은 잘했던 것 같은데.
어쨌든 덕분에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예상대로야.
어느새 하늘을 잡아먹는 물은 차분해져 있었다.
-사라지려고 해.
상당히 긴 시간 동안 얼음 밑에 봉인되어 있던 이 액체들은 3가지의 보물을 지키는 용도였던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보물들은 어떠한 흠도 없이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더 이상 그 물건들을 지킬 필요가 없어진 지금.
반투명한 검은 물은 사라지려고 했다.
이미 미세한 일부가 공기 중으로 사라졌다.
-시작하자.
그 순간, 케일은 두 손을 뻗었다.
촤아아악-
솟구치던 물들이 멈칫했다.
케일의 두 손에 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검은 물과 다른 투명한 물.
하지만 일반적인 물은 아니었다.
-너의 의지를 담아.
-그리고 내 의지도 담으마.
케일과 하늘을 잡아먹는 물의 의지가 담긴 물.
파르르—-
검은 물들이 갑자기 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마치, 떠는 것처럼 보였다.
케일은 눈을 천천히 감았다.
그리고 상상했다.
-너와 나의 상상이 일치하는구나.
욕쟁이 물이 즐겁다는 듯 얕은 웃음과 함께 말한 그때, 케일은 눈을 떴다.
케일의 양손에 맺힌 물은 모양이 변해 있었다.
사슬.
그의 손에서 흘러나온 물로 된 사슬이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넘실거리며 케일의 주변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심판하는 물.
호수 밑에 잠긴 채, 사슬에 꽁꽁 감겨 있던 존재는 스스로의 존재를 드러내며 ‘하늘을 잡아먹는 물’이 되었다.
그렇기에 하늘을 잡아먹는 물에게 사슬은 두려움과 증오의 존재일 수도 있었으나, 하늘을 노리는 자에게 그딴 것은 두려움으로 남아선 곤란했다.
-크크큭.
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잡아먹자!
그리 외친 순간, 케일은 담담하게 툭 내뱉었다.
“원래 그럴 생각이었어.”
사슬이 움직였다.
촤르르르륵—!
그 움직임에는 거침이 없었다.
사슬은 여러 줄기로 솟구쳐오른 검은 물 중 하나를 움켜쥐었다.
파르르–
검은 물이 어떻게든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사슬은 더 그 줄기를 옭아맸다. 마치 뱀이 사냥감의 숨통을 움켜쥐듯.
-이 검은 물들은 지금 자연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거야.
용의 의지는 사라졌으니, 더 이상 존재가 남아있을 이유가 없는 거대한 힘.
아니, 먹잇감.
-그러니 우리가 가지자.
또 다른 사슬이 케일의 손에서 뻗어져 나갔다.
이제 검은 물줄기들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촤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