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92
91화.
며칠 뒤, 케일은 짭쪼름한 냄새를 맡으며 마차에서 내렸다. 그의 눈에 여전히 몇 개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는 바다가 보였다.
“공자님, 처음 뵙겠습니다.”
“자네가 여기 담당인가?”
“네.”
헤니투스 백작가의 관리가 케일에게 인사했다.
현재 해군 기지 건설에 참가한 인원들 중 헤니투스 측의 대표 관리자였다. 왕실, 우바르 영지, 헤니투스 가문. 이렇게 각 세 곳의 대표 관리자들이 해안가에 상주하고 있었다.
“소용돌이 몇 개가 사라지면서 이용 가능한 섬들도 늘었고 해안가도 안정이 되어서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어요.”
“그래?”
“네. 그 덕에 저희도 배를 빨리 축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해군 기지 건설. 헤니투스 백작가는 왕실의 힘을 최소화하길 원하는 우바르 영지 측의 마음을 충분히 대변해 거금의 투자를 하였다.
대신 그에 상응하는 이익을 원했고, 그 조건 중에 하나가 헤니투스 백작가에서 이 해안가 일부분을 무상으로 대여한다는 것이었다.
“그럼 숙소로 먼저 안내해 드릴까요?”
“아니. 그 전에 잠시.”
케일은 본인이 내린 마차 창문을 보며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끼이익. 마차 문이 열렸다. 창백한 안색의 소인이 마차에서 내려섰다.
“빨리 오지?”
“네, 네!”
뮐러가 허겁지겁 달려와 케일과 관리 사이에 섰다.
살이 통통하게 오르고, 아주 휘황찬란하게 차려입은 드워프 혼혈 뮐러. 백작 부인은 사치품으로 뮐러를 잘 관리하고 있었다.
케일은 그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일단 1차 외부 설계도 보여 드리지?”
“허억. 네, 네!”
뮐러는 숨을 들이마시며 황급히 설계도를 관리에게 건넸다. 관리는 해군 건설을 맡은 만큼 건축과 해안에 대해 해박한 이였다.
“…어?”
관리는 손에 들린 배 설계도를 보다가 뮐러를 지나쳐, 창백한 안색의 뮐러가 힐끗 눈치를 보는 케일을 쳐다봤다.
“공자님, 이게?”
“그래. 그거다.”
“이런 배 모양은 처음 봅니다만?”
그 말에 잠시 케일은 멈칫했다. 그리고 뮐러를 내려다봤다. 케일도 처음에 배 모양을 보고 상당히 당황했었다.
‘이 자식도 사실을 알고 보면 한국인 환생이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뮐러는 케일의 눈빛이 매섭게 느껴져 정신적 스승인 백작 부인이 준 금반지를 꽉 쥐었다. 그 행태에 케일은 한숨을 삼키며 관리와 시선을 마주했다.
“그래도 완성되면 좋을 것 같지 않나?”
“좋다를 떠나-”
관리는 말을 흐렸다. 이건 좋다 싫다를 떠나 엄청났다.
케일은 대답을 제대로 못 하는 관리를 보며 태연하게 질문을 이어갔다.
“튼튼하기는 할 거 아냐?”
“네. 아주 튼튼하기는 하겠지만-”
튼튼한 정도를 넘어선 수준이었다.
관리는 묻고 싶었다.
정말 이동용 배가 맞습니까?
대해상전 전투용 배 같은데요?
하지만 관리가 묻기 전에 케일은 결론을 냈다.
“그럼 됐지.”
차마 관리는 뒷말을 잇지 못했다. 그래, 아주 튼튼한 이동용 배를 찾는 것이겠지. 그렇게 관리는 납득했다. 대신 다른 문제를 언급했다.
“그런데 돈이 상당히 들 것 같습니다. 특히, 황금 거북이 부분이-”
“뭘 걱정해?”
하지만 그 문제도 케일에게는 별것 아니었다.
“있는 게 돈이야.”
부유함을 가득 담은 미소가 케일의 입가에 지어져 있었다.
“정말, 한번 역작을 만들어보겠습니다!”
케일은 이상하게 열정적으로 변한 관리의 감탄과 비장함이 담긴 얼굴을 외면하며 마차에 올라탔다.
“숙소 길은 자네 수하를 통해서 갈 테니, 자네는 뮐러와 이야기를 나누게.”
“네, 알겠습니다.”
“공자님, 잘 들어가십시오!”
뮐러가 허리를 구십 도로 숙이며 인사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케일은 마차 문을 닫았다. 곧 마차는 숙소로 출발했고, 관리는 뮐러의 어깨가 쫙 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크흠, 이 배는 말이지요. 마법 폭탄 하나는 맞아도 부서지지 않을 겁니다.”
“네. 그럴 것 같더군요. 그런데 여러 대를 만들 순 없을 것 같은데.”
“네. 목표는 한 대입니다.”
뮐러는 헛기침을 해댔다. 그는 영주 성은 물론이거니와 이 배도 자신이 타게 될 것이라 예상할 수 있었다. 죽기 싫은 그는 모든 혼신의 힘을 설계에 다 쏟아붓고 있었다.
“사실 2차 내부 설계도도 거의 완성되어 갑니다.”
어깨를 으쓱이며 뮐러의 몸이 뒤로 처졌다. 아주 거만함이 물씬 풍겨졌다.
“오, 내부 설계도요?”
“네. 아직 공자님께 보여 드리진 못했지만. 콘셉트를 정해서 했지요.”
“콘셉트가 무엇입니까?”
뮐러는 당당하게 말했다.
“최고의 방어는 폭격이다!”
맞기 전에 때리는 선빵이 최고인 법이었다.
물론 아직 케일은 동의하지 않은, 케일의 허락이 필요한 뮐러 혼자만의 생각이었다.
***
케일은 숙소에 도착한 후, 집무실로 사용되는 곳에 정렬한 인원들을 가만히 응시했다.
“이번에는 쉽지 않을 거야.”
침실에 보낸 론과 간병 중인 비크로스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모였다.
평균 7세의 세 아이, 그리고 최한의 일행인 로잘린과 라크, 더불어 부단장 힐스만과 늑대족 아이들 10명까지.
케일은 있는 대로 싸그리 다 모아서 데리고 왔다.
‘왕국을 부수러 가는 것도 아니고.’
조금 과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자신은 적의 규모에 대해서 아는 게 부족했으니까. 있는 대로 긁어오는 게 맞았다.
마법사 로잘린이 케일을 보며 입을 열었다.
“케일 공자, 그러면 우리는 배를 타고 하이스 섬까지 가는 건가요?”
“네. 하이스 섬 5 근처로 갈 것 같습니다.”
하이스 섬.
동대륙과 서대륙 사이에 있는 크고 작은 섬들을 통칭해서 하이스 섬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 섬들은 발견된 순서대로 숫자가 붙여졌다.
케일의 목적지는 하이스 섬 5.
다섯 번째로 발견된 곳이자 가장 큰 섬이었다.
또한 서대륙과 그나마 제일 가까이에 존재해 배로 충분히 갈 수 있는 곳이었다. 그렇기에 론도 배를 조종해 갈 수 있었다.
“그곳에 인어족의 기지가 있다는군요.”
“섬 위에 기지가 있다니. 이상하네요.”
“그러니 그곳은 ‘암’의 기지일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1차로.”
케일의 배가 당도할 곳은 정해져 있었다.
“하이스 섬 12로 향합니다.”
12번째로 발견된 아주 작은 섬.
하이스 섬 5와 최단거리로 가까웠다.
“저, 그런데 공자님.”
부단장 힐스만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케일은 말해보라는 듯 그에게 눈짓했다.
“인어족과 싸우게 될 것이라고 하셨잖습니까? 현재 고래족과 인어족이 싸운다고.”
“그래.”
힐스만은 평소의 띨한 모습과 달리 진지했다. 론의 목숨이 걸렸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보며 케일은 아버지 데르트의 말을 떠올렸다.
‘암살자든 뭐든. 일단 내 테두리 안의 사람이다. 살려라. 살리고 나서 고민해도 늦지 않다.’
데르트 백작은 따지고 보면 다른 이들 눈에는 고작 시종에 지나지 않는 론을 살리기로 마음먹었다. 가족들과 서먹한 케일의 곁을 십여 년간 지켜온 이였기 때문이다. 백작보다는 아버지의 마음이었다.
“공자님, 그런데 괜찮을까요? 인어족은 어둠 속성이고 듣기로는 죽은 마나와 독으로 강해진 상태라 들었습니다만.”
어둠 속성, 거기다가 죽은 마나. 그 두 가지를 힐스만은 걱정했다.
그 문제에 대한 답은 로잘린이 대신했다.
“괜찮아요. 인어독 해결법은 케일 공자께서 알고 있고, 어둠 속성에 죽은 마나라고 해도 더 강한 힘으로 누르면 됩니다.”
보통 죽은 마나를 사용하는 어둠의 속성과 싸울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법은 그들과 접촉하게 되는 전투 시간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한 번에 억누르는 쪽이었다.
더 강한 마나와 오러, 혹은 공격력으로 적의 죽은 마나를 억누르는 것이다.
하지만 죽은 마나에 무엇보다도 강한 반대편 힘이 있었다.
케일은 그 힘을 알고 있었다.
생명력.
‘무식하지만 직빵인 게 하나 있지.’
간단한 이치다.
결국 죽은 것보다 살아 있는 것이 강한 법. 생명체의 살아 있음을 가장 확실히 증명하는 것.
로잘린의 입이 열렸다.
“물론 생명체들이 죽은 마나를 섭취한 어둠의 종족과 싸울 때는 피를 사용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지만, 그건 위험해요.”
그래, 피.
그것도 꽤 많은 피가 필요했다.
아무리 약한 인간이라도, 죽은 마나를 섭취한 어둠의 속성과 싸울 때 자신의 피를 뿌리면 짧은 시간이겠지만 어느 정도 접근을 막는 건 가능했다.
물론 과다 출혈로 죽을 확률이 훨씬 더 높았다. 조금의 피로는 강한 어둠의 속성 종족과 싸울 수 없었다.
‘물론 다크엘프나 뱀파이어는 피를 사용해도 소용없지만.’
다크엘프는 자연의 종족이라 죽은 마나를 섭취해도 피에 내성이 있었고, 뱀파이어는 피를 먹고 살았으니 논외였다.
아무튼 고대 문헌을 보면 마족들은 살아 있는 인간의 심장을 죽은 마나로 물들여 죽은 상태로 뛰는 심장으로 만들길 즐겼다고 하였다.
‘미친 소리지.’
케일에게는 아주 미친 소리였다.
동시에 떠오른 생각이 하나 있었다. 그 생각을 그는 무심코 내뱉었다.
“내 피가 아주 효과적일 텐데.”
심장의 활력이 새겨진 심장에서 흘러나오는 피. 재생력을 가진, 어떠한 피보다 생명력이 질긴 피였다. 그리고 재생력 덕분에 끊임없이 피가 나온다. 이보다 어둠의 속성에 강한 피가 있을까?
문득 든 생각이었다.
실험을 해봐야 알겠지만. 그냥 인어에게는 힘을 못 써도 죽은 마나를 섭취한 인어를 상대로는 꽤 버틸 터.
무엇보다도 고대의 힘은 자연계에 속한 자연과 인간들의 타고난 힘이다. 그건 생명력과 자연의 순리를 담은 힘. 어둠의 속성에 상당히 강할 확률이 높았다.
케일은 상상했다.
“음, 내 피를 뿌리면-”
피 칠갑을 하고서 피를 뿌리면서 싸우면.
케일은 실소를 흘렸다.
‘영 보기 징그럽겠는데?‘
아주 징그러울 것 같았다.
케일은 조용해진 집무실 분위기를 느끼고 일행을 바라봤다. 그때 정적이 내린 공간에 역성이 울려 퍼졌다.
“미친 생각이다! 약한 주제에 무슨 해괴한 생각이냐! 약한 너의 피는 필요 없다!”
라온이 상당히 화를 내고 있었다.
“이상한 생각 하지 않았으면 하는데.”
“이상한데. 아주 이상한 생각인데.”
온과 홍이 케일을 미친 사람 보듯 쳐다봤다.
그 반응에 케일은 뭔가 싶어 로잘린을 바라봤다. 드물게 로잘린이 흐린 눈동자로 케일에게 고개를 가로저어 보였다. 턱도 없는 소리를 했다는 표정이었다.
“굳이 그러실 필요까지는 없어요.”
케일은 일행을 훑어보았다. 마지막으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감동한 힐스만의 표정을 본 후 케일은 황당함을 담은 목소리로 툭 내뱉었다.
“당연히 그럴 생각이 없다만?”
내 귀한 피를 왜 쓰나?
피 말고 쓸 게 많은데.
그리고 그런 일이 일어나겠는가?
케일은 아픈 것이 싫었다. 그럴 바에는 그냥 도망치는 게 나았다. 인어 시체 하나만 들고 도망치면 론은 해독시킬 수 있었다.
라온이 케일이 앉아 있는 소파 근처까지 날아와 매섭게 말했다.
“내가 감시한다.”
그러나 아무도 믿지 않았다.
케일은 그 반응에 허탈했지만 곧 신경을 껐다. 그럴 일은 없을 테니까. 그래서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대신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딜 가나?”
용의 물음에 케일은 답했다.
“바람의 절벽.”
이 해안가에 존재하는 가장 가파른 절벽. 아래에는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는 그 절벽으로 케일은 향했다.
그는 바람의 절벽 위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해안가는 해군 기지 건설로 한창 바빴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곧 해안가가 아닌 바다의 수평선 너머로 향했다.
“무엇을 하시려는 겁니까?”
따라온 최한의 물음에 케일은 어깨를 으쓱이며 마법 주머니에서 뿔피리 모양의 소라 껍데기를 하나 꺼냈다. 최한은 그 물건을 본 적이 있었다.
위퍼 왕국으로 가는 바다 위, 고래 왕을 만났을 때 케일이 위티라에게서 받았던 세 개의 물건 중 하나였다.
“…설마?”
최한은 설마 싶었다.
케일은 소라 껍데기의 큰 입구 대신 뿔피리처럼 좁게 파인 입구로 입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불었다.
끼이이이이이이-
아주 작은, 그러면서도 높은 소리가 바람의 절벽 위에서 울려 퍼졌다. 소라 껍데기에서 푸른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워낙 작은 소리라 해안가에 있는 이들은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하지만 그 소리를 멀리 있는 이들은 들었다.
이틀 뒤 늦은 저녁. 케일은 바람의 절벽에 서서 밤을 데리고 오는 노을을 바라봤다. 수평선 너머로 붉은 해가 사라지고 있었다.
그는 갑자기 푸른빛이 일렁이는 소라 껍데기에 귀를 가져다 대었다.
기이이이-
얕고 높은 소리가 들려왔다.
“왔네.”
케일이 말했고.
“왔다!”
라온이 앞발로 수평선 너머를 가리켰다.
“하.”
“…세상에.”
예상했지만 최한은 탄식을 흘렸고, 영문을 모르고 따라왔던 로잘린은 탄성을 터뜨렸다.
촤아악, 촤악.
수평선 너머로 바다가 일렁이고 있었다. 그 사이로 거대한 고래 두 마리와 작은 고래 한 마리가 다가오고 있었다.
케일은 절벽 끄트머리에 서 있던 몸을 돌려 일행과 마주했다. 일행은 붉은 노을보다 붉은 머리칼의 케일이 짓는 미소를 볼 수 있었다.
“이제 출항이다.”
길잡이가 왔다.
이왕 가는 거 고래를 타고 가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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