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922
“그 이무기가 화산재마저 태워버렸으니까.”
전설에 남아있었다.
“그 이무기는 용은 아니었지만, ‘불’을 그대로 형상화한 것과 같다고 전해져 오네.”
으음.
케일은 침음을 삼켰다.
이거 진짜 예사 물건이 아니다.
-훌쩍.
케일은 멈칫했다.
설마-
-킁킁.
라온, 너 우냐?
-훌쩍, 킁!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위, 위대한, 킁! 이무기다!
그때, 권왕이 철로 된 함을 천천히 열었다.
“이 상자에는 진이 그려져 있네. 영약의 기운을 억제하는 진이지. 유지 시간은 단 5일. 그리고 여기까지 이동해 오느라 시간을 소비해서 이제 12시간 안에 이 영약을 섭취해야 하네.”
아주 작은, 검은 무언가가 수많은 진이 그려진 상자 안쪽에 고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이무기가 유일하게 남긴 것.”
오십 년. 인간에게는 오랜 시간이지만 이무기에는 길지 않은 시간이었다.
몸이 커졌다고 해도 아직 어린 용은, 용이 되기 위한 기운을 담아두는 여의주마저 모두 태워버리며 마을을 지켰다.
그 용이 유일하게 태우지 않고 남겨둔 것이 있었다.
“우리는 이것을 ‘역린’이라고 부르네.”
역린.
용의 비늘로, 수많은 비늘 중 유일하게 거꾸로 난 비늘을 가리키는 말로 용의 약점이자 건들면 용의 분노를 일으키게 하는 존재였다.
케일은 검은 비늘. 아주 작은 비늘을 눈에 담았다.
-와, 이거-
파괴하는 불이 엄청 설레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 봉인 다 풀리고 더 강해지는 거 아냐?
이야.
케일은 감탄했다.
‘역시 황궁이 통이 크네.’
역린.
이름에서부터 이 영약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느낌이 왔다.
“황가의 보물이겠군요.”
케일이 꺼낸 말에 권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 진짜 보물이지. 황제 폐하조차 쉬이 만지지 못하는 물건이니까.”
케일과 시선이 마주친 그가 덧붙여 말했다.
“휴화산 근처에 봉인진을 만들어 보관해두던 물건이거든.”
그제야 권왕의 꼬질꼬질한 꼴이 이해되는 케일이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이 정도는 해야지.”
케일은 권왕이 내미는 상자를 건네받았다.
그리고 걸음을 옮겼다.
“아무래도 이것도 지하에서 흡수를 하고 올라와야 할 것 같습니다.”
“호법을-”
입술을 떼었던 권왕은 이내 말을 멈췄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겠네.”
“네.”
지하로 향하는 케일의 뒤에 붙은 최한, 그리고 한 존재의 음성이 권왕에게 들려왔다.
-내가 간다! 걱정 마라, 권왕아! 감동적인 이야기였다!
진짜 용이 김 공자의 곁에 있었다.
* * *
“후우.”
지하 바닥에 편하게 앉은 케일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상자 속 검은 비늘을 내려다봤다.
“인간아! 엄청 감동적인 이야기였다!”
라온의 재잘거림을 들으며 케일은 망설임 없이 상자 속으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비늘에 손가락이 닿았다.
파직.
‘응?’
비늘이 깨졌다.
‘어?’
정확히 말하면 검은 금이 가더니, 허물이 벗겨지듯 비늘이 검은색 뒤에 숨겨두었던 모습을 드러냈다.
“인간아, 예쁘다-”
영롱한 붉은색이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었다.
“그런데 인간아, 손을 왜 그렇게 떠냐?”
그리고 케일의 손이 덜덜 떨렸다.
그의 의지가 아니었다.
‘미친!’
비늘, 그것에서 손으로 전해지는 거대한 압박감에 케일은 손이 절로 떨려왔다.
그때였다.
“윽!”
케일의 몸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인간아!”
라온의 외침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케일은 황급히 비늘을 쥐지 않은 손을 움직였다.
상의 품 안을 더듬던 그는 물건이 하나 손에 잡혔다.
하얀 왕관.
용의 피를 먹는 놈.
중앙에 박힌 하얀 보석에서 소용돌이 같은 검은 입이 나타나 게걸스럽게 용 혼혈의 피를 빨아먹던 모습을 케일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배하는 아우라가 이번에 얻은 새로운 왕관과 합치면 신조차 쫄리게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며 신나 하던 물건.
‘이게 왜?’
지금 이 하얀 왕관이 엄청나게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 뜨거움에 케일이 저도 모르게 몸을 수그릴 만큼.
하얀 왕관을 본 케일의 표정이 굳어졌다.
“인간아!”
“오지 마.”
케일은 다가오려는 라온을 멈춰 세웠다. 그리고 최한에게 말했다.
“둘이 저기 계단으로 가 있어.”
“네.”
최한이 심상치 않음을 알아챈 것인지, 라온을 데리고 계단으로 물러섰다. 라온이 전전긍긍 못 하였지만 케일로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하얀 왕관의 중앙에 박힌 하얀 보석.
그곳에 검은 흡입구가 생겨났다.
무엇을 노리는지는 명확했다.
‘비늘!’
케일의 다른 손에 들린 비늘이 있는 방향으로 그 징그러운 흡입구가 연신 움찔댔다.
더불어 비늘이 점점 더 강한 기세를 일으켰다.
“음.”
이제는 케일이 아닌 저 멀리 있는 최한마저 흠칫할 정도의 압박감이, 정확히 말하면 존재감이 비늘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이무기라며!’
그냥 이무기라며!
그것도 비늘이면서 왜 이런 압박감을 뿜어내는 거야?
케일은 저도 모르게 지배하는 아우라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버텨야 했으니까.
그때였다.
-케일.
중후한 목소리였다.
지배하는 아우라. 이 사기 치는 데 좋은 힘을 가진 주인이 담담하게 말했다.
-저 왕관은 용의 피에 반응한다.
케일은 그 말에 바로 반박했다.
“이건 용이 아니고 이무기인데?”
-맞다. 지금 이 왕관의 반응은 용의 피를 먹고 싶어서, 용의 부산물을 먹고 싶어서 저러는 것이 아니다.
그럼?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왜 이러는 건데?
-크흐흐.
중후한 목소리가 기묘한 웃음을 흘렸다.
-그렇군. 이 이무기의 정체를 알겠구나.
우우웅-
비늘이 거세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케일의 눈이 커졌다.
작은 비늘에서 조금씩 붉은 기운이 피어올랐다.
마치 피가 섞인 안개 같았다.
-이 이무기는 용이 될 수 있는 선택을 받았음에도, 운명을 받았음에도 그걸 거부하고 자신의 정체성이나 다름없는 여의주마저 태우고 죽은 존재!
-그러니 이 왕관이 당연히 탐내지!
-용의 피를 잡아먹는 왕관이라면, 용에 버금가는 기개를 지닌 이 이무기가 유일하게 남긴 그 의지, 기개를 원하는 것은 당연한 것일 터!
중후한 목소리가 나직이 속삭였다.
-그래야 용을 넘어설 수 있을 테니까. 왕관은 누가 자신의 위에 있는 걸 싫어하거든.
-케일. 지금 이 왕관은 하얀 보석 자리에 저 비늘을 품고 싶어 한다. 아주 강해질 테니까.
그때였다.
“윽!”
케일은 또 몸을 움츠러트렸다.
아공간 주머니 하나가 격렬하게 진동한다.
막시리언.
그 용이 남기고 간 보물 중 하나, 왕관이 담긴 아공간 주머니가 격렬하게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마치 자신에게 저 비늘을 달라는 듯.
역린이라 불리는 비늘.
이것을 두고 두 왕관이 경쟁한다.
‘환장하겠네!’
케일은 기가 막혔다.
왜냐고?
‘이거 내가 먹을 거란 말이야!’
이러다 이 왕관들한테 뺏기는 거 아냐?
-케일. 방법이 있다.
중후한 목소리. 하지만 아주 한껏 들뜬 것이 느껴지는 지배하는 아우라가 말했다.
-네가 왕관을 쓰자.
이건 또 뭔 소리일까.
영약 하나 먹는 게 왜 이렇게 힘들어?
케일은 짜증이 치솟았다.
“으윽!”
하지만 지금은 짜증이 나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미친!’
작은 비늘은 새빨갛게 변했다. 마치 붉은 루비와 같았다. 그리고 압박감이 더 심해졌다.
사실 케일은 이 압박감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잘 가늠이 되지 않았다.
드래곤 피어와는 다르다.
하지만 그와 비슷했다.
인간이 아닌 것 같은 존재가 케일을 짓누르려고 하는 것 같았다.
‘빌어먹을!’
그래, 가만히 들어보니 엄청난 이무기가 유일하게 남긴 것이라 그 존재감이 엄청날 수 있다.
고집이 엄청 쎈 이무기 같아 보이니, 케일에게 먹히기 싫을 수도 있다.
그런데-
‘왜 안 떨어지냐고!’
비늘이 케일의 손에서 도통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손을 탈탈 털어도 비늘은 착 달라붙어 있었다.
‘이상하네.’
진짜, 이 비늘 이상하다.
“케일 님, 권왕을 불러올까요?”
최한의 다급한 물음에 케일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어, 불러와!”
빌어먹을 황제, 빌어먹을 권왕!
이런 물건이면 만지기 전에 알려줘야 할 거 아냐!
그래야 조심해서 흡수를 하든 말든 할 거 아닌가!
우우웅—
“아, 진짜!”
케일은 고개를 돌렸다.
다른 손에 들린 하얀 왕관. 이놈이 진동을 하며 난리다.
여전히 하얀 보석에 징그러운 검은 흡입구를 만든 채, 비늘을 향해 애타게 달달 떨어댔다.
“좀!”
캉!
케일은 그냥 바닥에 왕관을 내리쳤다.
-케, 케일.
중후한 목소리의 지배하는 아우라가 당황했지만, 케일은 신경 쓰지 않았다.
이미 예전에 죽음의 협곡에서 용 혼혈 피를 먹은 이 왕관이 라온을 향해 주둥이를 들이밀려고 할 때, 바닥에 내던지고 밟아본 케일이었다.
그때도 멀쩡했던 물건이니, 그 내구성은 믿음직했다.
캉, 캉! 캉!
세 번 더 돌바닥에 내리쳤다.
우…우웅…….
그러자 진동이 사그라들기는커녕.
웅, 웅웅!
반항하듯 진동이 더 커졌다.
“…이 자식이?”
케일의 표정이 묘해졌다.
지금껏 이 왕관은 이다지도 무언가를 원한 적이 없었다.
말로는 용의 피를 마신다고 하였지만, 그간 스스로의 존재감을 뽐내며 탐내지는 않았다.
오히려 용이 아닌 고작 작은 비늘 하나를 이렇게도 원하는 것이 이제는 좀 신기했다.
“음. 아, 진짜!”
살짝 고민을 하려던 케일은 그럴 틈이 없었다.
지배하는 아우라를 상당히 사용했음에도 압박감이 심해진 탓이었다. 그의 시선이 비늘을 쥐고 있는 손으로 향했다.
“어?”
…심한데?
비늘에서 뿜어내는 붉은빛이 이제 좀 많이 심해졌다.
아주 큰 횃불을 손에 쥐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질 정도였다.
타다닥, 타닥!
그때,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이럴 수가!”
당황한 권왕의 음성이 뒤이어 들리자, 케일은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허억.”
권왕이 숨을 제대로 못 쉬고 있었다.
“음.”
최한마저 멈칫하다가 라온을 바라봤다. 라온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실드를 펼쳐 권왕, 최한, 자신을 보호했다.
“하아.”
그제야 권왕은 숨을 편히 내쉬었다. 그러나 이내 흠칫 놀라며 다급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네!”
저 노인네가 뭐라는 거야?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며 지배하는 아우라를 점점 더 피워올리던 케일의 삐딱함이 점점 심해지려는 찰나.
“저 비늘이 붉은색이라니, 저런 광경은 처음일세! 비늘은 검은색이라고!”
그는 당황한 듯했다.
“문헌에 화산 근처를 벗어나면 사라질 위험이 있다고 하여, 반드시 진을 그려서 사용하라고 했고! 그래서 진은 불의 힘을 지니고 있네! 물론 이에 대해 깊이 설명하지 않은 것은, 김 공자에게 화의 기운이 있으니 그런 것이고! 하지만, 이런 힘을 낼 것이라고는-”
말을 잇지 못하는 그 모습에 케일은 한 가지를 알아챌 수 있었다.
이 비늘.
‘불을 벗어나면 사라져……?’
케일은 강한 압박감을, 기운을 만들어 내면서도 자신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비늘을 빤히 바라봤다.
그러고는 슬쩍 한 가지 힘을 사용해 보았다.
파지직.
적금빛의 기운이 케일의 몸에서 피어오른 순간.
-어?
파괴하는 불이 멈칫했다.
씨익.
그리고 케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줄었다.’
압박감이 조금 줄어들었다.
마치 굶주린 맹수가 사냥감을 향해 기세를 피워올렸다가 어느 정도 그 배고픔이 해소되면 온화해지는 것처럼.
파직, 파지지직.
케일은 파괴하는 불을 더 끌어올렸다.
캉!
물론 진동하는 왕관을 한 번 더 바닥에 내리치며.
“저 왕관 좀 불쌍하다!”
라온의 말은 무시한 채.
그렇게 적금빛 전류가 케일의 손에서 흘러나와 횃불과도 같은 비늘을 덮친 순간.
파지직. 파직!
케일의 눈동자에 그 모습이 담긴 그때.
“!”
케일의 눈이 커졌다.
횃불과도 같은 붉은빛이 폭발하듯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케일의 시야가 순식간에 붉은빛으로 뒤덮였다.
‘윽!’
그에 저도 모르게 눈을 찡그린 케일의 귓가에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무기란 어느 순간 자신이 태어났음을, 살아있음을 깨닫게 된다.”
어린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