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924
“혈교 놈들이 미쳐버린 건가? 죽으려고 환장했나?”
아.
케일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에게로 시선이 집중되었다.
케일의 입꼬리가 삐뚜름하게 올라갔다.
“혈교 애들은 아직 잘 모르네?”
“응?”
의아해하던 이수혁의 눈동자에 순간 이채가 감돌았다.
그의 목소리가 느긋해졌다.
“그렇네. 걔들은 아직 잘 모르겠구나.”
“그렇죠.”
톡톡.
수도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던 케일이 무심한 투로 말했다.
“정사마. 그리고 황궁까지. 모든 세력이 한데 손을 모았다는 걸. 혈교는 아직 거기까지는 파악을 못 했을 겁니다.”
혈교가 파악한 것은 두 가지일 터.
‘황족인 김해일 공자. 그 의문의 인물이 무림 곳곳을 들쑤시고 다닌다.’
‘더불어 정사마에 심어둔 생강시들이 정화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추론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중간중간 내가 은밀히 움직였으니까.’
마교 때는 첩자도 죽이고, 아예 마교 문이 닫혀서 정보가 밖으로 전혀 빠져나가지 않았다.
또한 사도련으로 가서 정화를 한 것은 비밀에 가깝게 움직였던 일이다.
더불어 이 모든 일들이 몇 달에 걸쳐서 벌어진 일도 아니었고, 빠른 시일 내에 다 이루어졌다.
‘황가, 김 공자, 정파, 사파, 마교.’
이 집단들이 무언가 변화를 일으키려는 것 자체는 혈교도 알아챘을 터.
‘하지만 이 짧은 시일 내에 황가와 정사마가 하나로 의견을 모았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거야.’
그저 지금까지 늘 그래왔듯, 서로 의견을 주고받고 견제도 하면서 조금씩 의견 합치를 보려고 의논 중이라 생각할 것이다.
정사마가 같은 의견을 표한 적이 없었으니까.
“아마 혈교는 최대한 일이 진척되어봤자, 관과 정사마가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 상태라고 생각할 겁니다. 중원 역사상, 이런 논의는 지지부진하게 오랫동안 끌어오는 편이니까요.”
워낙 서로를 향한 경계가 심했으니까.
케일의 말에 권왕도 위 상선도 반박하지 않았다.
“그래서 혈교는 강시를 빼든 겁니다. 그것도 황궁을 향해.”
케일의 시선이 위 상선에게로 움직였다.
“그리되면 황궁은 무림을 들쑤실 수밖에 없을 테니까.”
강시 출처가 혈교라는 것을 알아도.
“혈교를 찾지 못한다면, 황궁은 어쩔 수 없이 무림 전체를 들쑤실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 무림은 황궁에게 순순히 모든 문을 열어줄까?
‘절대 아니지.’
그렇게 되면 결국 관과 무림은 이해관계를 일치시킬 수가 없다.
“결국, 관과 무림은 강시 문제에 정신이 팔려 그들 간의 협력이 힘들어질 테고. 의견을 합치한다고 해도, 그 시일은 지금보다 훨씬 후에 일어날 일이 되겠죠.”
그리된다면.
“혈교에게는 정말로 이득이겠죠.”
그 틈새를 파고들어 또 한 번의 혼란을 야기시킬 수 있으니까.
어쩌면 정사마 대전이 아닌, 관과 무림의 싸움으로 만들 소지가 있었다.
그놈들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터.
케일의 입꼬리가 조금 더 위로 올라갔다.
“끝까지, 머리를 꽤 쓰네요.”
혈교.
분명 가진 힘도 많을 그놈들은, 진짜배기 사냥꾼이었다.
사냥꾼은 자고로 덫을 잘 쳐야 하는 법.
“근데 이를 어쩌나.”
혈교는 안타깝게도 헛발질을 했다.
“혈교 뜻대로 되기는 힘들겠군요.”
그에 응하듯 팀장 수이 칸이 툭 내뱉었다.
“이미 혈교 빼고 다 뭉쳤으니까.”
정신을 차린 권왕이 덧붙였다.
“그렇지. 이미 모두 의견을 합쳤지.”
김 공자를 중심으로 말이야.
뒷말을 삼켰다.
김해일.
그는 혈교의 상상을 뛰어넘는 자일 터.
그가 있었기에 이리도 빨리 관과 무림이 뜻을 합쳤다. 이런 역사는 지금껏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케일의 시선이 위 상선에게로 향했다.
“그래서, 황궁에서는 어쩔 작정입니까?”
위 상선의 긴박하던 표정에 차분함이 서렸다.
“황제 폐하께서는 그대로 하던 일을 이어 하라고 하셨습니다.”
역시.
케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강시는 관에서 알아서 제압할 터이니. 신경 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황제의 명을 위 상선은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오히려 김 공자 일행의 도움을 받아 빠르게 해결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황제가 본 우선순위는 명확했다.
‘혈교 말살이구나.’
그래, 그 난폭한 황제가 강시 따위 잡는 걸로 만족할 사람이 아니다.
위 상선의 시선이 케일에게로 향했다.
“하긴, 어쩌면 잘된 일일지도 모르겠군요.”
미소 짓고 있는 김 공자를 보고 있자니, 입안에 침이 바짝 말라 갔다.
김 공자는 여유롭게 말했다.
“강시를 내돌린 만큼 혈교를 치기 쉬워질 테니. 그렇지 않습니까?”
웃고 있는 그가 무서웠다.
그때였다.
“어르신!”
“무슨 일인가?”
위 상선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그를 어르신이라고 부르며 다가온 자.
그는 사천성주 저택의 고용인으로 위장한 동창이었다.
“이것을-”
예의도 버리고 다급하게 건넨 서신.
이를 황급히 펼쳐 본 위 상선은 곧장 서신을 케일에게 건넸다.
“공자님! 운남성 성주가 죽었다고 합니다!”
케일은 서신을 펼쳤다.
“그리고 강시로 점령당해, 현재 운남성에 진입이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사천성을 지나면 당도하는 운남성.
그곳은 새외 지역인 남만과 닿아있었다.
그리고 남만은 현재 혈교의 지부 혹은 중심부가 있을 것이라 추정되는 곳이었다.
케일의 시선이 위 상선에게로 향했다.
“이 정보는 어떻게 온 겁니까?”
“매를 통해 받았습니다. 아마도 마지막으로 날려 보낸 전서구 같습니다.”
위 상선의 시선이 동창에게로 움직였다.
“더 이상의 정보는 오지 않고 있습니다. 더불어 운남성 근처로 간 이들이 죽은 매를 다수 발견했습니다. 또한 동창 중 몇은 연락이 끊겼습니다.”
강시로 전역이 혼란한 틈을 타, 혈교는 움직인 듯싶었다.
‘남만에 혈교가 있다는 것을 몰랐다면, 운남성을 차지한 것도 전역에서 벌어지는 다른 일들과 같은 일 정도라고 생각했겠지.’
운남은 외곽이고, 그리 중요한 곳이 아니었으니까. 오히려 수도와 다른 요충지를 생각하다가 운남성은 후순위로 미뤄질 확률이 높았다.
케일의 눈동자가 서신의 하단으로 향했다.
말라붙은 핏자국.
서신은 피로 적혀 있었다.
어찌나 다급하게 휘갈겼는지 글자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더불어 곳곳에 피가 번져 있었다.
그럼에도 케일은 마지막 글자만큼은 선명하게 보였다.
그는 서신을 접어 위 상선에게 건넸다.
그리고 무심하게 툭 내뱉었다.
“바로 운남성으로 갑니다.”
그에 위 상선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 강시들을 모두 정화하실 생각입니까?”
최소 천 구의 강시였다.
이들을 일일이 상대하려면, 얼마의 병력과 무림인을 데려가야 할까.
그들은 이지가 없다.
즉, 끝까지 싸우려 들고, 목숨을 노릴 터.
‘처절한-’
그래, 어느 쪽에게든 처절한 싸움이 될 것이다.
‘음?’
위 상선은 멈칫했다.
케일이 망설임 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정화를 안 한다고?
그럼 일일이 다 상대한다고?
그것도 적의 입장은 수성이다.
새외인 남만과 맞닿아 있어 그 성벽이 공고한 운남성을 적들이 차지한 이상.
아군은 이를 빼앗기 위해, 넘어가기 위해 몇 배의 노력을 해야 할 터.
그래서 무림인들 간의, 문파 간의 싸움과 성을 두고 싸우는 전쟁은 다른 법이었다.
무림이 관을 이길 수 없는 것은 이런 이치도 있는 법인데.
’시일이 좀 걸리겠구나.‘
운남성을 빨리 도로 빼앗기는 힘들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면서, 한편으로 위 상선은 납득했다.
’그래, 한 번에 천 구 이상의 강시를 공자님이 모두 정화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가능해도 해서는 안 되는 짓이다.‘
김 공자님의 목숨이 위태로워지지 않겠는가.
그것만큼은 사절이었다.
그때, 위 상선은 케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성벽 단단합니까?”
“네?”
순간 무슨 말을 들었나 싶어서 되물을 때, 케일은 선선히 다시 말해주었다.
“어느 정도의 힘이면 한 번에 성벽이 무너집니까? 설계 자료 있지 않습니까?”
…한 번에 성벽이 무너질 힘……?
위 상선이 제 귀를 의심했을 때.
-케일. 아니, 김해일.
하늘을 잡아먹는 물이 나지막하게 물어왔다.
-해일 간다?
이런 말투는 어디서 배웠대.
케일은 한숨을 내쉬었다.
-인간아! 왜 한숨 쉬면서 웃나?
그러게.
왜 웃고 있지.
일단 하늘을 잡아먹는 물의 말에 답해주었다.
해일일지 뭐가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가야지?”
물론 300% 증가한 공격력 전부 말고.
한-
-250%?
음.
-200%?
콜.
딱 좋네.
그 정도면 피 안 토할 듯.
* * *
파아앗—!
노을이 지는 저녁.
환한 빛과 함께 산 정상에 몇 명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물론 어린 용 한 마리와 함께.
“인간아, 인간아! 저기가 성인가 보다!”
케일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상당히 견고해 보이는 운남성이 눈에 들어왔다.
운남성.
근방의 사천성에 비하면 살고 있는 인구의 수는 적었으나, 성벽 자체의 규모와 그 안의 넓이는 사천에 버금갔다.
남만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리라.
케일은 저 아래,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서도 견고해 보이는 성벽을 잠깐 눈에 담았다.
사실 지금 성벽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진법인가?”
혼잣말처럼 그가 중얼거린 말에 두 존재가 반응했다.
“맞다! 성벽 밖, 그리고 성벽 안! 각기 다른 진법이 펼쳐져 있다!”
“진법 같습니다, 공자님.”
성벽 안.
산 위에서 훤히 보여야 할 운남성 내의 모습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곳만 뿌연 안개로 가려져 있었다.
“확실히 진법은 마법과 다르다.”
라온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마법이 마나를 이용해 원하는 것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라면, 중원의 진법은 자연 기운을 인위적으로 변화시켜 주변 환경을 바꾸는 과정 같다.”
그러고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댔다.
“확실히, 진법도 잘만 사용하면 엄청난 효과를 볼 거다.”
“맞습니다, 라온 님.”
위 상선이 이어받아 말했다.
“위대한 진법의 경우에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세계라고 했지요. 그리고 그 진법을 만든 자는 가히 그 세계의 신이라 할 수 있고요.”
“신?”
그는 빤히 저를 바라보는 어린 용에게 미소를 띤 채 답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 공간과 공간의 시간을 모두 조절하고 지배할 수 있다면, 그게 신이 아니겠습니까?”
“…공간과 시간…….”
라온이 생각에 잠긴 것인지 찌그러진 만두처럼 표정을 잔뜩 굳혔다. 케일은 이를 보다가 라온에게 물었다.
“성 밖도 진법이 맞아?”
“그러게요. 제 눈에도 성 밖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위 상선이 말을 보탰다.
동과 서에 산을 둔 운남성의 남과 북은 넓은 평원이 펼쳐져 있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넓은 논 사이사이에는 민가가 몇 채 있었으나 그 안에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이는 당연한 일이었다.
혈교에서 성 밖의 민가에 사는 사람들을 가만히 지나쳤을 리가 없으니까.
“진법 맞다!”
라온이 아주 단호하게 답했다.
“성벽부터 시작해 빙 둘러싼 진법이 있는 게 틀림없다! 대략 반지름 1km!”
성을 둘러싼 1km 규모의 진법.
“왜냐면 저기 마나가 꼬여 있다! 그건 진법 아니면 여기선 불가능하다!”
오.
케일의 입에서 작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러면 지금 우리 눈에는 그냥 평범한 노을 아래 논 풍경이 사실은 환상일 수도 있다는 소리네?”
“그렇다!”
라온이 미간을 팍 찌푸렸다.
더 찌그러진 만두 같다.
“성안도 성 밖도 내가 한 번에 파악하기 힘든 진법이다. 상당한 수준의 진법가 같다! 내가 이 세계에 오고 나서 본 진법 중에 가장 뛰어나다!”
케일의 입꼬리가 삐뚜름하게 올라갔다.
‘확실히 검은 피 가문보다는 가진 능력이 많아 보이네.’
행성 샤올렌에서 처음 조우했던 사냥꾼 가문.
검은 피, 화이언스.
그들도 상당히 강했지만, 혈교가 조금 더 수에 능하고 가진 능력과 비밀이 많아 보였다.
‘아마도 생강시와 강시는 저들의 전부가 아니겠지.’
아마 일부분이리라.
그리고 그 일부분인 생강시만 중원에 나타나도 난리가 벌어질 정도이니. 푸른 피 가문인 혈교가 중원을 잡아먹는 게 가능했을 것이다.
원래라면.
“라온.”
케일은 나직이 물었다.
“진법에 대해서 전부 파악이 불가능해?”
“아니다! 나는 위대한 용이다! 살펴보면 어느 정도 안다! 나는 공부하면 다 안다!”
라온이 빵빵한 배를 앞으로 쭈욱 내밀었다.
자신을 믿으라는 듯 가슴께를 팡팡 두드린다.
“그럼, 일단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야 진법을 살펴보기 편하겠지?”
“그렇다!”
케일은 라온의 대답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최한, 위 상선, 최정수, 비크로스.
일단 이렇게만 이곳에 텔레포트로 이동해 왔다.
“일단 오늘 밤은 여기 근처에서 머물면서 운남성을 살펴보도록 하죠.”
“네, 공자님. 그러면 머무실 만한 곳을 만들겠습니다.”
위 상선이 답한 순간, 최정수가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어차피 진법을 살펴보러 가야 하니까, 저기는 어때?”
드넓은 평원 사이에 있는 민가들 중 하나를 가리켰다.
케일이 있는 서쪽 산 아래에 바로 붙어있는 민가. 동시에 진법 영향권을 벗어난 몇 개의 집들 중 하나.
“들키지 않겠습니까?”
위 상선이 적의 눈을 염려할 때.
“걱정 마라!”
라온이 끼어들었다.
“나 진법 이제 조금 할 줄 안다! 내가 한번 우리를 숨겨보겠다!”
호오.
케일이 감탄했다.
“그새 그렇게 배웠어?”
라온의 볼이 씰룩이며 그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나는 똑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