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925
“그래, 위대하네.”
“맞다, 아주 위대하다!”
케일은 동료들의 시선을 받으며 말했다.
“그럼 일단 저기까지 도착하고 난 후에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자고.”
그의 시선이 성벽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저 진법들이 이상하니까.”
해일이든, 파도든.
물을 이용해서 휩쓸고 싶어도, 지금 저 진법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 살펴보고 판단해도 늦지 않을 터.
왜냐면 몇 가지 이상한 점이 케일을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으니까.
“맞아.”
최정수가 동의를 표해왔다.
지금 이곳에 있는 사람들의 표정은 어느새 심각해져 있었다.
라온이 일으킨 바람을 타고서 은밀히 산 아래로 이동하는 일행들. 최정수는 입을 열었다.
“성벽에 사람이 하나도 안 보였어.”
진법의 경계는 성벽이었다.
그런 만큼, 그곳만큼은 뚜렷하게 보였는데. 그 성벽에 사람 한 명 보이지 않았다.
즉 주변을 살펴보는 사람이 하나도 없단 소리였다.
그게 성을 차지해서 이제는 지켜야 하는 입장이 된 자들이 할 수 있는 짓일까.
케일이 최정수의 말에 답하듯 한마디 툭 덧붙였다.
“그리고 강시도 안 보였어.”
혈교는 강시를 쓴다.
그런데 성벽에는 강시조차 보이지 않았다.
강시의 수가 최소 천 구랬다.
그 숫자가 지금 털끝 하나 볼 수 없게 숨겨져 있다.
“…느낌이 좋지 않아. 사방이 너무 조용해.”
최정수가 건넨 말에 어느 누구도 반박을 하지 않았다.
그저 다들 입을 다문 채 빠르게 목적지를 향해 이동할 뿐.
그때였다.
“……?”
케일은 걸음을 멈춘 최한을 볼 수 있었다.
그의 고개가 한 방향으로 움직였다.
태양이 거의 지평선 너머로 넘어간 상황이라, 이제 어둠이 서서히 내려앉고 있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 산은, 숲은 밤이 더 빨리 찾아왔다.
최한의 시선이 이미 밤이 찾아온 듯 어둠이 내린 숲으로 향했다.
무성한 나무들.
-인간아, 누가 있다!
라온의 말이 머릿속에 들린 순간, 최한이 손을 들어 보였다.
자신이 가겠다는 신호에 케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스럽게 최한이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움직였다.
‘적인가?’
케일은 긴장한 채 기다리다가 이내 다시 돌아온 최한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어?”
최한의 등에 한 사람이 업혀 있었다.
“허억, 허억.”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듯, 온몸이 피로 덮인 사람이 케일을 바라봤다.
“고, 공자님-”
케일은 저 사람을 안다.
“…독고 대협.”
황궁을 벗어나 최정수를 찾아 황산으로 향할 때. 제일 먼저 조우했던 무림 일행 중 한 명.
독고세가의 독고창.
그가 피범벅이 된 채 겨우 숨을 이어가고 있었다.
독고세가는 운남성에 존재했다.
“서두르자.”
케일 일행은 더 빠르게 목적지로 이동했다.
물론 최한에게 로운에서 죽음의 신 교단 교주를 통해 뜯어낸 포션을 하나 건네 독고창에게 먹이게 하면서. 로운의 포션이 중원인에게 통할지는 알 수 없었지만.
* * *
다행히 포션은 조금 통했다.
“위급한 상황은 넘겼습니다.”
위 상선이 독고창의 맥을 짚으며 건넨 말에 케일은 안도했다.
그리고 비어있는 집의 의자를 대충 하나 가져와 거기에 걸터앉았다.
독고창은 잠시 정신을 잃은 상태였지만, 호흡은 안정적이었다.
다행히 산 아래에 위치한 민가는 비어있었다.
물론 큰 폭풍이라도 휩쓸고 간 듯 집 안은 엉망이었다.
사람들이 끌려 나간 흔적이 많았다.
아마도 혈교에서 이곳을 지나가며 그 안의 사람들을 성안으로 끌고 간 듯했다.
그나마 누가 죽은 것은 아닌지, 핏자국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운남성에서 탈출하던 중이었겠지?”
최정수가 옆으로 다가와 건넨 말에 케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그렇겠지.”
운남성 안에도 꽤 많은 무림인들이 있었고 문파가 존재했다.
독고세가도 그중 하나였으며, 운남성 안에서는 꽤 힘이 있는 곳이었다.
그런 만큼 성 밖으로 탈출을 감행해 어떻게든 외부의 지원을 받으려고 했을 터.
독고창은 독고세가 내에서도 고수이고, 그 묵직하고 충성심 강한 성격으로 인해 그 일을 맡은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인간아, 주변에 진법 영향이 없다! 우리만의 진법을 만들겠다!”
라온이 건넨 말에 케일은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필요한 재료는 내가 알아서 써도 되나?”
아마도 마정석에 대해서 묻는 것이리라 생각하고 케일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어. 마음대로 해.”
그는 시선을 돌려 최정수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최정수가 품에서 지도를 꺼내 탁자 위에 펼쳤다.
운남성을 중심으로 하여 동서남북이 그려져 있었다.
최정수가 지도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내일 새벽에 천마가 먼저 온댔지?”
“어.”
천마가 뇌마, 마율대 대주를 데리고 이곳에 먼저 당도한다.
그 후에 마교의 병력이 하나둘 운남성 인근으로 올 것이다.
“그 뒤는 남궁세가이고?”
“그렇지.”
사천으로 오고 있을 검선에게는 운남성으로 바로 와달라고 전령을 보냈다.
사천에 거의 다 와 간다고 했던 검선이니만큼, 금방 이곳에 도착할 것이다.
“사천성에 있는 사람들도 팀장님이랑 같이 올 거고. 그다음에는 사도련이랑 무림맹에서도-”
최정수의 말을 들으며 생각을 정리하고 있던 케일은 어떤 소리를 듣고 멈칫했다.
“비크로스야! 중원이 달라!”
응?
케일의 시선이 움직였다.
동자승 조각상이 라온의 손에 들려 있었다.
“…….”
케일의 시선을 느낀 것일까, 라온이 그를 돌아봤다. 그리고 방긋 웃어 보였다.
“인간아! 진법은 핵심이 되는 물건을 하나 두면 더 그 힘이 강해진다! 우리가 가진 중원 물건 중에서는 이 돌덩이가 제일 강하니까, 중원이를 중심으로 진법을 짜겠다! 그러면 이 집은 절대 적에게 들키지 않는다!”
위 상선과 최정수가 멍하니 라온을 바라봤다.
그때.
“이야.”
케일은 감탄사를 흘렸다.
“좋은 생각이야.”
쟤는 누굴 닮아서 저렇게 머리가 똑똑하지?
새삼 용의 영리함에 감탄했다.
‘그래, 무겁기만 한 돌덩이. 제대로 사용해서 보탬이 되면 그거만 한 게 없지.’
새로운 버전의 왕관을 얻은 후, 케일은 중원이에게 연락했으나 답이 없었다.
죽음의 신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죽음의 신에게 연락했을 때 돌아온 대답은 가관이었다.
뭐가 어떻게 흘러가는 상황인지는 모르겠으나.
죽음의 신이 추신으로 남긴 말을 보고 신경을 껐다.
알아서 잘 풀리겠지 싶어서.
물론 일이 잘 안 풀려서 케일에게 어떠한 영향이 올 수도 있겠으나.
‘그래도 지금 나는 내 할 일을 해야지.’
그게 답이었다.
특히, 동료들의 힘에 딱히 제재가 걸리거나 봉인이 걸리지 않은 것을 확인한 이때가 혈교를 단박에 몰아붙일 기회였으니까.
최정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황궁이 뒤는 감당해 준다고 했으니까. 운남을 시작으로 한 번에 몰아치면 딱이겠어.”
지도를 내려다보는 케일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황궁이 중원 전역의 강시를 감당해 주겠다고 한 지금.
정사마의 핵심이 운남성으로 모여들고 있다.
운남을 지나 남만까지 갈 인원들이었다.
앞으로 할 일들을 가늠하며 생각에 잠겨있던 케일은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저를 부르는 목소리를 들었다.
“해일 님.”
최한이 라온과 함께 다가왔다.
“진법 설치는 끝났고, 이제 성벽의 진법을 살펴보러 가도 될 것 같습니다.”
그때였다.
“으, 으으-”
독고창의 신음이 들려왔다.
감긴 눈꺼풀이 움찔거리고 있었다. 곧 정신을 차릴 모양새였다.
드르륵.
최정수가 의자에서 일어나 케일을 바라봤다.
“천마가 오기 전에 어느 정도 무엇을 할지 가닥을 잡아놔야 하잖아?”
케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여기서 독고 대협하고 대화해. 내가 라온이랑, 다, 당숙, 아니 사, 삼, 삼ㅊ-”
“그래. 네가 네 삼촌이랑 라온이 데리고 다녀와.”
“어, 어-!”
케일은 허둥지둥하는 최정수에게서 시선을 떼어, 최정수를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 최한에게 말했다. 물론 라온에게도.
“위험할 짓은 하지 말고, 들키지 않을 선에서 외곽 진법을 살펴봐. 위험하다 싶으면 멀찍이 떨어져서 살펴봐도 돼. 그리고 정보를 얻는 게 목적이니 먼저 움직이지 말고.”
“알겠습니다.”
“알았다, 인간아!”
“나도 알았어!”
성벽 외부 진법 조사를 위해 움직인 셋에게서 시선을 돌린 케일은 독고창의 곁으로 갔다.
“고, 공자님-”
이미 그는 눈을 떠서 케일을 바라보고 있었다.
케일은 이런 사람들에게 몸이 괜찮냐고 묻는 것보다 먼저 해줘야 하는 말이 있음을 안다.
“운남성을 구하러 왔습니다.”
독고창의 눈에 빛이 맴돌며, 그의 몸에 긴장이 풀렸다.
“공자, 님-”
그리고 힘겹게 말을 꺼내는 독고창의 눈에 물기가 맺혔다.
독고창. 그 고집 세고 묵직한 사람이 눈물을 한 줄기 흘렸다.
‘이건 우리가 운남을 구하러 와서 흘리는 눈물이 아냐.’
비통함과 긴박함이 서린 눈물이었다.
도저히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흘리는 절박함이었다.
“무, 무인들이… 잡혀 가, 고… 이, 있습니, 다.”
“혈교에게요?”
독고창이 겨우겨우 답했다.
“강시, 강시로 만들어서 싸우게 할 거라고-”
독고창은 독고세가에서 외부 지원을 위해 내보낸 인물이 아니었다.
“다, 다 잡혀가고 저만 도망쳤습니다.”
그저 운 좋게 도망칠 수 있었던 자일 뿐.
“공자님, 제발- 제, 제발- 구해주십시오.”
안개로 가려진 성안.
그곳에서는 지금 혈교가 강시를 만들려고 한다.
“독고 대협. 진정하세요.”
감정이 격해졌던 독고창은 멈칫했다.
김 공자의 모습이 어느 때보다도 서늘한 기운을 품고 있었다.
그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이럴 때가 아니다.
최대한 아는 것을 내뱉어야 한다.
“아는 걸 모두 말해주십시오. 그래야 구합니다.”
무엇에도 무너지지 않을 단단한 눈빛을 가진 김 공자를 보며 독고창은 힘겹게 한 글자 한 글자 말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벌컥.
문이 열렸다.
“인간아!”
라온이 투명화를 풀며 허겁지겁 들어왔다.
뒤이어 투명화가 풀린 최한과 최정수의 표정은 잔뜩 굳어있었다.
“인간아, 우리가 진법 살피다가 조금 약한 데가 있어서 슬쩍 구멍을 뚫어서 안을 볼 수 있었다!”
라온의 얼굴에는 경악이 서려 있었다.
“강시다! 싹 다 강시였다!”
최한이 덧붙였다.
“성벽 밖에 설치된 진법 안은. 겉으로 보기에는 들판이었지만 실제로는 강시로 빽빽하게 채워져 있었습니다.”
최정수가 질린 표정으로 말했다.
“…천 구가 아니었어.”
겨우 그 정도가 아니었다.
“알아.”
케일의 담담한 목소리에 세 존재의 눈동자가 그에게로 향했다.
케일은 다시 정신을 잃은 독고창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최소 만 구.”
독고창이 파악한 강시의 수는 최소 만 구였다.
처음 천 구 정도를 시작으로 강시가 끝도 없이 밀려왔다고 한다.
“그리고 더 늘지도 몰라.”
그의 시선이 열린 문밖. 그저 아무것도 없는 평원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진법으로 향했다.
“혈교는 운남성 안의 사람들을 전부 강시로 만들 작정이니까.”
독고창이 말했다.
‘오늘 정리를 끝내고, 내, 내일 밤에 강시로 만들 것이라고-’
귀중한 정보가 하나 더 들어왔다.
독고창이 알려주었다.
“그리고 여기에 소혈마 후보들이 있다고 해.”
다음 대 혈마 후보자 중에 두 명이 이곳에 와있다고.
케일의 입가에 비틀린 미소가 맺혔다.
-케일.
어서 힘을 쓰자고 하늘을 잡아먹는 물이 보챈다.
쏴아아-
그리고 그럴 때마다 케일의 귓가에 물소리가 들렸다.
마치 억수같이 퍼붓는 폭우 같은.
아니면 밀려 들어오는 거대한 해일처럼.
또는 저 멀리서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폭풍처럼.
언제라도 휘몰아칠 물이 케일의 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라온. 나도 진법 안을 봐야겠어.”
케일은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
여기저기 짓밟힌 드넓은 평원의 붉은 흙이 눈에 들어왔다.
물론 이 또한 달빛을 받아 희미하게 그 형상이 보일 뿐.
“안내하겠습니다.”
“인간아, 나를 따라와라!”
최한과 라온을 따라 케일은 그들이 수많은 강시를 본 곳으로 이동했다.
* * *
그곳은 멀지 않았다.
성벽에서 가장 거리가 먼 외곽으로, 그냥 평범한 들판처럼 보였다.
‘가까이 와 보니 확실히 알겠네.’
지금 저 멀리 보이는 성벽과 눈앞의 이 풍경은 모두 거짓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여기까지 투명화 마법과 속도 마법을 통해 은밀히 이동해 왔다.
그 와중에도 주변의 풍경은 한밤중임에도 눈에 담았다.
‘짓밟혔지.’
운남성 백성들의 식량을 책임져야 할 너른 평원은 무너져 있었다.
그럼에도 지금 눈앞에 자리한 풍경은 짓밟힌 자국이 조금도 없었다.
거짓임이 명백한 풍경이었다.
-인간아, 여기다!
라온의 앞발에 투명화가 풀렸고, 케일은 라온의 앞발이 가리킨 곳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보이는 건 똑같았다.
-잠시만 기다려라!
밤에 동화된 검은 마나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곧 허공에 스며들었다.
-나 진법 공부 많이 했다! 위대한 나는 이제 진법 잘 안다!
스스스—-
막혔던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갑자기 바람이 불어왔다.
‘응?’
뭔가 텁텁하고 끈적한 바람이었다.
괜히 사람 숨 막히게 만드는 공기.
케일은 손바닥만큼 작은 빈틈이 허공에 생기는 것을 보았다. 그는 자신이 해야 할 행동을 알았다.
빈틈 안을 들여다보았다.
조심스럽게.
-오, 이런.
파괴하는 불. 짠돌이가 탄식을 흘렸다.
그리고 케일도 눈을 질끈 감았다.
라온과 최정수가 오랜만에 그리 놀란 모습으로 헐레벌떡 돌아온 것이 이해가 되었다.
-미쳤구나.
손바닥만큼의 틈으로 보이는 안쪽 풍경은 많지 않았다.
그 틈조차 실금처럼 만들어진 것이라 안쪽이 희미하게 보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보이는 광경은 케일의 상상 이상이었다.
‘하.’
달빛 아래.
군데군데 불빛이 보이지만, 분명 돌아다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것조차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수많은 시체가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