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93
92화.
수평선을 넘어 바다를 가로지르던 거대한 고래들의 모습이 사라졌다. 대신 한 인간이 케일의 앞에 나타났다.
“공자님, 오랜만입니다.”
“파세톤, 반갑네.”
혼혈 고래족 파세톤. 작은 혹등고래만이 인간화하여 케일의 일행 앞에 나타났다. 절벽 위 하늘은 이미 밤이 되어 있었고, 라온과 최한, 로잘린만이 케일과 함께했다.
“갑자기 왜 부르셨습니까?”
파세톤은 케일의 손에 들린 소라 껍데기에 시선을 두었다. 인어족과 한창 싸우는 와중이었지만, 이 소리를 듣고 올 수 밖에 없었다.
케일이 보낸 신호는 ‘긴급’ 신호였으니까. 오로지 고래족 수인만이 들을 수 있는 소리였다.
“벌써 저희의 힘이 필요해지신 겁니까?”
케일과 고래족의 거래 중 하나. 케일은 고래족의 힘을 사용할 수 있었다.
이를 묻는 파세톤에게 케일은 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인어족을 돕는 무리의 정보를 알았다.”
“…네?”
생각지도 못한 말에 파세톤의 표정이 굳어버렸다.
안 그래도 고래족은 하이스 섬 5를 점거한 채 인어족을 돕는 의문의 인간들 때문에 머리가 아팠다. 그들이 특출하게 강한 것은 아니었지만, 조력자가 있다는 점은 거슬렸다.
“내 수하가 그걸 확인하다가 크게 다친 상태지. 인어 독이라 치료도 시급하고, 정보도 말해주어야 할 것 같아서 연락했네.”
하지만 파세톤은 케일의 말에 제일 먼저 의문이 생겼다.
“왜 그걸 공자께서 알아보셨습니까?”
잠시 케일의 입이 닫혔다. 드물게 그의 입가에 어색한 미소가 걸렸다.
“그냥 신경 쓰여서.”
라온이 모습을 드러낸 상태에서도 케일의 머릿속으로 말했다.
-또 저런다.
하지만 케일은 가볍게 흘려들으며, 특유의 조금 짜증 난 표정을 지었다.
“어쨌든 우리 영지 근처 어둠의 숲을 통해 인어가 강해지지 않았나? 고래족이 워낙 강하니 잘해내겠지만. 나도 뭔가를 해보고 싶었어.”
파세톤은 짜증을 내는 저 표정이 쑥스러워하는 표정 같아 보였다. 제 다리의 인어 독을 없애줄 때도 딱 저런 얼굴이었다.
미남자의 눈동자에 수많은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밤하늘 아래서도 그 아름다운 눈동자는 잘 보였다.
케일은 고개를 돌렸다.
“그러셨군요.”
“딱히 우리가 모르는 사이도 아니잖아.”
그는 파세톤의 말에 대충 답하며 일행과 눈이 마주쳤다.
로잘린과 최한.
두 사람은 케일을 빤히 바라봤다. 그들의 눈동자는 말하고 있었다.
‘묘하게 사실과 다르지 않습니까?’
그때 파세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자님, 감사합니다. 저번에 제 목숨도 살려주셨는데.”
여전히 케일은 파세톤을 쳐다보지 않았다. 다만 로잘린과 최한의 눈빛이 물었다.
‘저자는 또 언제 구했습니까?’
케일은 그 눈빛을 무시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로잘린과 최한도 입 밖으로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오히려 로잘린은 입을 열며 다른 말을 했다.
“케일 공자는 정보를 알자마자 바로 여기로 오셨습니다. 인어 독 치료도 시급하지만, 바로 고래족분들께 알려야 한다고 하셨죠.”
케일은 눈빛으로 고마움을 전했다. 자신의 이런 짓을 할 때 돕는 이는 처음이었다. 최한은 입을 꾹 다문 채 뒤로 물러섰다.
“그러셨군요. 인어 독에 중독된 분을 치료하려면 인어 시체를 가져와야 할 텐데.”
“직접 갈 걸세.”
“네?”
케일은 다시 파세톤을 바라봤다.
“우리도 갈 거야.”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물론 포장하는 말은 속마음과 달랐다.
“미약한 힘이라, 전투에 참가는 못 하겠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돕고 싶네.”
돕기는, 치고 빠질 거다.
그 정도만 해도 충분했다.
파세톤의 눈동자가 일렁였다.
안 그래도 고래족은 인어족과 힘겨운 싸움을 진행 중이었다. 물론 독과 죽은 마나에 대해서 미리 알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방비를 하고 유리한 편이었지만.
인어족은 상당히 많았고, 약한 바다 생물들을 지키며 싸워야 하는 고래족에게 방해물이 많았다.
그래서 압도적인 힘이 필요했다.
‘공자님은 미약하다고 했지만.’
파세톤의 시선이 살짝 검은 용에게로 향했다.
해수면 위든, 섬이든, 바다 속이든.
“작은 고래, 뭘 보나?”
귀엽게, 짜리몽땅하게 생긴 용이 코를 찡긋거리며 나름 위엄 있는 포즈를 취했다. 파세톤은 용의 힘을 보았다. 그 압도적이고 경이로웠던 힘.
“아닙니다. 드래곤 님.”
“흥, 나도 갈 거다.”
공손한 파세톤의 모습에 라온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동시에 케일의 머릿속으로 라온이 말했다.
-이러면 되나, 인간? 나 위대했나?
케일은 슬쩍 라온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라온치고는 잘했다. 케일은 용이 뿌듯해하거나 말거나 파세톤에게 말했다.
“가면서 정보는 말해주겠네. 빨리 갔으면 하는데 어떤가?”
파세톤은 당연히 답했다.
“바로 가죠.”
“그래.”
늦은 밤. 케일은 아주 조용한 출항 준비를 하였다.
당연히 해안가에서 하는 출항 준비는 아니었다. 해안가와 마을 내에는 현재 우바르 영지의 병사들과 왕실 측 병사들이 순찰을 돌고 있었다.
케일이 있는 곳은 해안가 앞에 위치한 수많은 작은 섬들 중 가장 외곽에 있는 섬이었다. 이미 그는 낮 동안 일행을 이곳으로 이동시켰다.
“오.”
“우아.”
파세톤은 감탄을 하는 이들을 보며 당황했다. 온과 홍까지는 예상을 했으나, 생각보다 인원이 많았다. 그리고 그들에서 강자의 기세가 느껴졌다.
파세톤은 고래족 중 약한 편인 자신이 착각을 한 것인가 싶었지만, 함께 온 범고래 두 명의 반응을 보면 적절한 듯싶었다.
“아치, 오랜만이군.”
케일의 인사에 범고래이자 고래왕 시켈러의 호위인 아치가 비딱한 얼굴로 꾸벅 인사했다. 그리고 슬쩍 케일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케일의 눈빛과 그 뒤에서 빤히 쳐다보는 검은 용의 눈빛이 찝찝했다.
그때 라온이 말했다,
“우리는 얘, 범고래 타나?”
“아마.”
아치의 얼굴이 구겨졌다. 자신이 지금 제대로 들은 게 맞나?
탄다고?
아치는 파세톤을 쳐다봤다. 그 눈빛에 파세톤이 허공을 보며 답했다.
“크흠, 아무래도 큰 배는 눈에 띌 테니 일단 최대한 작은 중형 배로 일행분들이 해안가에서 멀어지고. 아무래도 배 크기가 환자분도 있는지라 좁아서 케일 님과 드래곤 님-”
“난 이제 라온이다!”
“네. 라온 님, 그리고 다른 몇 분이 비행 마법으로 뒤따라오시다가, 크흠, 두 분의 등 위에 타는 걸로.”
허!
아치의 입에서 탄식이 들려왔다. 그때 라온이 말했다.
“그런데 범고래는 혹등고래보다 작다. 비좁으면 안 되는데.”
범고래는 혹등고래에 비해서 작았지만, 그래도 7~10m는 되었다. 아치의 얼굴이 구겨졌고 함께 왔던 전투 요원의 얼굴은 의아함이 커져만 갔다.
“아치, 잘 부탁해.”
툭, 툭. 케일이 어깨를 두드리며 씩 웃어 보였다. 그게 왜 비웃음 같을까.
그때 아치의 귓가로 파세톤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참고로 두 분이서 중형 배도 끌고 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마법 동력은 있는 배이니, 그냥 길잡이 개념으로 묶고 가면 될 겁니다. 선원을 일부러 태우지 않았거든요.”
“…무슨 내가 이따위 자잘한 일을 하는!”
“아바마마가 다 하라고 하셨잖습니까.”
아치는 파세톤의 말에 입을 꾹 다물었다. 요즘 인어족과 싸우느라 고래왕은 극도로 날카로워져 있었다. 잘못 까불면 얻어터지다 죽을지도 몰랐다.
“제기랄!”
아치가 하늘을 보며 욕을 내뱉었다.
케일은 그런 그의 등을 토닥였다.
“나는 자네 등 위에 타지. 그러니 안전한 운행 부탁하네.”
수상 택시가 된 범고래 아치였다.
***
촤아아악- 촤악-
수면을 가르는 소리를 들으며 케일은 밤바다를 감상했다. 범고래의 등은 편했다.
툭. 툭. 라온이 범고래의 등을 쳤다. 온과 홍은 물이 무섭다고 배의 가장 안쪽, 론의 옆에 붙어 있었다. 물도 무섭지만, 은근히 론 걱정을 케일보다 온과 홍이 더 했다.
“인간, 고래 등은 미끌미끌하다.”
“원래 그래.”
“그렇구나.”
멍한 얼굴로 라온도 케일을 따라 고래 등 위에 드러누웠다. 아치는 범고래 중에서 가장 강하다는 말에 어울리게 그 덩치가 보통의 범고래보다 컸다.
대략 12m 정도 되는 덩치라 웬만한 건물이 한 채 움직이는 기분이었다.
케일은 옆의 고래를 바라봤다. 똑같은 속도로 오는 범고래. 아치와 그 범고래 사이에는 중형의 배가 마나 줄로 묶여서 운반되어지고 있었다. 물론 파세톤이 제일 앞에서 길잡이를 자처했다.
‘초고속 택시네.’
아주 빨랐다. 케일은 다른 범고래 등 위를 바라봤다.
로잘린과 최한이 묘한 표정으로, 그리고 뱃멀미가 심한 힐스만이 입을 틀어막은 채 복잡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상당히 불편하게 앉아 있는 그들에게서 시선을 돌려 케일은 바다 위의 밤하늘과 빛나는 별들을 감상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섬 하나쯤은 부숴도 되겠지?‘
평화로운 분위기를 만끽하며 케일은 하이스 섬 1에 당도했다.
하이스 섬 12는 하이스 섬 5에 있는 ‘암’의 기지와 가까워 고래들이 보일 염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하이스 섬 1에 내려 섬 12로 이동 예정이었다.
“누님을 데려오겠습니다.”
파세톤은 굳은 표정으로 케일에게 누나 위티라를 데려오겠다고 말했다.
이동하는 동안 케일은 인어족을 돕는 이들이 꽤 큰 단체이며, 로운 왕국에 수도 테러 사건을 일으킬 만큼 대담한 존재들임을 알려주었다.
“그래. 얼른 갔다 와.”
“네. 하이스 섬 1은 저희 바다 영역 안이니, 인어족들은 안 올 겁니다.”
“그래.”
파세톤은 인사를 하고는 곧바로 섬에서 멀어 져갔다. 아치와 그의 부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파세톤을 따라 떠났다.
“공자님, 천막을 칠까요?”
“어. 천막을 설치하고 난 뒤에 론을 옮겨.”
“알겠습니다.”
늑대족 메스가 의젓하게 대답하고는 곧바로 라크와 힐스만의 근처로 갔다. 늑대왕 후계자 라크는 토를 하고 있는 힐스만의 등을 토닥이고 있었다.
이내 로잘린과 메스의 주도로 일행은 하이스 섬 1 해안가에 천막을 몇 개 설치하였다. 당연히 케일은 그 일에 참여하지 않고 구경 중이었다.
그 앞에는 드물게 최한이 있었다. 케일이 그를 따로 불렀다.
“최한.”
“네.”
“나는 내가 얍삽해도, 우리가 다칠 바엔 얍삽한 게 낫다고 생각한다.”
고래와 인어 싸움에 등 터질 일 없이, 조용히 빠져나오는 게 케일의 목표였다.
“그런데 이번 일에 꼭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어.”
고래족이 오기 전에 케일은 최한에게 말해둘 것이 있었다.
“수도 테러 때 마법사. 그를 기억하겠지?”
최한의 표정이 굳었다. 피에 미친 마법사 레디카. 최한이 팔을 자른 인간이었다.
케일은 낮게 속삭였다.
“론의 얼굴을 유일하게 본 인간이 그자다. 나는 이번 일에서 가장 중요시 여기는 게 두 가지다.”
최한과 케일의 시선이 부딪쳤다.
“하나는 론의 인어 독을 치료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앞으로 론과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위험해질 만한 요소가 없게 하는 것. 내 말 알아들었나?”
최한은 망설임 없이 답했다.
“그 마법사의 하나 남은 눈을 없애거나, 죽이겠습니다.”
덧붙였다.
“비크로스가 날뛰겠지만, 제가 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그는 지금 이성적 판단이 흐려진 상태니까요.”
최한은 자신이 할 일이 무엇인지 명확히 인식했다. 그 마법사를 놓쳐서 론이 저렇게 되었다. 이제 사람 죽이는 것쯤이야, 아무 두려움 없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괴롭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특히 그딴 놈들은 죽여도, 아니, 죽이는 게 나았다.
“아니, 무리해서 죽이는 것까지 할 필요는 없다. 나는 우리 손을 직접 더럽힐 생각이 별로 없어.”
“별로 무리는 아닙니다만.”
케일도 알고 있다.
최한은 선하지만 살생에 대한 경계가 희미한 자였다.
하지만 케일 자신은 최대한 제 손에 피를 묻히고 싶지 않았다. 비겁해도 그런 사람이 자신이었다.
“최한, 내 계획은-”
그 순간이었다.
촤아아악-
물길을 가르는 거대한 소리가 들려왔다
케일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피비린내가 순식간에 코를 찔렀다.
그는 해안가로 고개를 돌렸다.
“이야.”
진짜 저 무식한 방법으로 싸우는 사람이 있었네.
아니, 사람이 아니라 고래지.
거대한 혹등고래.
고래왕의 후계자 위티라.
그녀가 피 칠갑을 한 채로 수면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자신의 피를 뿌리며 인어족과 싸운 듯했다.
“케일 공자, 오랜만이네요.”
하지만 흘러나온 그녀의 목소리는 태연했다.
그때 케일의 머릿속으로 라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위대하니까 저렇게 피를 쓰기 싫다! 특히 너는 안 된다!
라온은 강하게 주장했다.
-인간, 빨리 마정석 주라! 네 말대로 마법 폭탄을 수십 개라도 만들겠다!
그 귀하다는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지닌 마나 응집의 결정체인 최상급 마정석 수백 개.
검은 용과 로잘린.
“최한.”
케일은 위티라가 있는 해안가로 걸어가며 최한에게만 들리도록 물었다. 오직 몇 명만이 할 일이었다.
“너 은신 잘하지?”
계획명은 반사였다.
했던 그대로 돌려주는 것. 그것만큼 짜증 나고 심적 타격이 큰 일은 없는 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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