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930
김 공자의 또 다른 일행이었다.
그가 그녀를 지나가며 담담하게 말했다.
“하실 일은 하셔야죠.”
변명할 길이 없는 말에 당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가 걸어가는 방향 쪽으로 무심코 고개를 돌리려다가 멈칫했다.
‘음!’
순간 섬뜩함을 느끼게 하는 기운이 그녀에게 닿았다.
왜 그런 기분을 느꼈을까.
갑자기 생긴 의아함은 곧 사라졌다.
그녀는 검붉은 기운을 휘감은 채 그 도포 자락을 휘날리는 이를 볼 수 있었다.
마교의 하늘.
천마.
그가 또 다른 소혈마 후보자와 대치하는 중이었다.
콰직. 콰지직.
그의 걸음마다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이 금이 가고 부서져 갔다.
당유는 문득 정파에서 천마와 마교를 일컬어 표현하는 한 단어를 떠올렸다.
‘재난.’
그래, 저자들은 재난 그 자체라고 했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난폭하게 싸운다고 해서.
하지만 그녀는 당대 천마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위엄과 무게감은 느껴졌지만, 묘하게 그는 그리 무섭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지금 천마를 보자, 마교의 하늘이라는 그 위치를 부여받을 만한 자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마교에 저리 강한 자가 있다니-
당유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혈교 이후가 겁이 났다.
그러나 곧 그녀는 정신을 차렸다.
천마의 반대편.
현경에 이른 천마에 비하면 못하지만, 그 무게감만큼은, 마치 황제와 같은 이가 소혈마 후보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검선.
남궁세가의 태상가주이자, 정파의 최고수 중 한 명.
그는 자신이 사용하는 중검의 성질을 그대로 드러냈다.
꼬장꼬장한 노인네라고 뒤에서 욕을 들어먹지만 그의 황금빛 검을 보면 ‘검의 황제’라는 칭호가 절로 생각났다.
“하.”
그녀의 입에서 깊은숨이 흘러나왔다.
천마와 검선.
그 숨 막히는 기운들 사이로 솟구쳐 오르는 푸른 기운.
소혈마 후보의 힘이었다.
그도 현경이라고 했으니 밀리지가 않았다.
도리어 검선은 미간을 찌푸리며 난감해했다.
“와. 중원도 약한 건 아닌가 보네?”
소혈마 후보 호야가 재밌다는 듯 검선과 천마를 바라봤다.
세 사람의 기운이 팽팽하게 서로를 견제했다.
그리고 점점 더 강해져 갔다.
그에 검선이 조금 버거워하는 것 같았으나, 아직까지는 어느 누구도 밀리지 않았다.
그 상황에 주변 사람들이 황급히 물러났다.
괜히 끼어들었다가 저 기운들에 짓눌릴 것 같았으니까.
“오랜만에 시원하게 한판 하겠는데?”
호야의 말에 천마가 느긋하게 답했다.
“그렇겠네.”
콰과과과——
세 개의 기운이 그저 맞닿은 것만으로도 굉음이 울려 퍼졌다.
화경 끝자락과 현경.
어마어마한 경지에 이른 이들이 서로를 향해 겨누는 칼날은 살벌했다.
그 공기가 점점 더 무거워져 갈 때.
서걱.
가볍게 검을 놀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세 기운의 일부가 잘려 나갔다.
숨 막힐 듯 팽팽했던 기운들이 허무하게 베였다.
세 사람의 시선이 한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 시선을 받은 팀장 이수혁은 가볍게 검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그었다.
“쓸데없는 힘자랑 하지 말고. 할 일부터 빠르게 합시다.”
그는 천마와 검선에게 느긋한 어투로 말했다.
“앞으로 할 일 많잖아요?”
서걱.
그 와중에도 숨 막히게 만들던 무형의 기운이 아무것도 없는, 고작 철검에 베여나갔다.
팀장 수이 칸. 그는 베는 능력을 여과 없이 사용하며 다가갔다.
소혈마 후보 호야에게로.
서걱.
천마, 검선, 소혈마 후보.
세 사람의 기운이 맞닿아 있던 지점이 또 한 번 손쉽게 베여나갔다.
“너-”
천마의 시선이 수이 칸에게로 향했다.
그가 수이 칸에 대해 아는 것은 단 하나.
이수혁.
그 이름뿐이었다.
특별하게 이 사람에게 주목한 적은 없었다.
딱히 강해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저 연륜으로 김 공자 무리에서 어느 정도 대우를 받는다고 생각했었다.
“그건 뭐지?”
하지만 지금 그가 사용하는 힘은 기이하다.
저건 ‘일반적인 무공’과 궤를 달리했다.
최한, 최정수. 그들이 어떠한 기운을 이용하여 검을 사용하는 것과 달리 저자에게서는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저것은-
‘의지?’
베어낸다.
그 마음만이 저 검에서 읽혔다.
어떠한 검식도 아니고, 멋들어진 동작도 없이 그저 효율적으로 베어내기만 하는 저 모습에서 천마는 섬뜩함을 느꼈다.
‘검에 의지를, 마음을 담아낸다라.’
그것이야말로 심검(心劍)이 아닐까.
검으로 오를 수 있는 지고지순한 경지를 심검이라 일컬었다.
천마도 심검에 대한 것은 문헌에서 묘사한 내용만 보았을 뿐, 현경에 이른 지금까지 그 실체에 닿을 수가 없었다.
막연히 자연경에 이르러 자연을 관조할 수 있게 되면 마음 또한 검에 담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할 뿐.
그런데 그 심검으로 추정되는 것을 이 자리에서 보게 될 줄이야.
‘이수혁.’
저자는 분명 현경도 화경도 아니다.
그렇지만 그의 검에는 의지가 담겨 있다.
“하!”
천마는 웃음이 흘러나왔다.
세상이 이다지도 넓구나.
겪어보지 못한 다양한 강함이 존재하는구나.
이를 깨달은 것만으로도, 천마의 이 강호행은 이득이었다.
그때, 천마의 시선이 이수혁과 부딪쳤다.
“굼뜨십니다?”
무심히 건넨 말에 천마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웃음을 터트리며, 곧장 몸을 움직였다.
김해일 공자 일행과 다니면 웃을 일이 많았다.
“굼뜨다니, 그럴 리가.”
천마라는 지위는 굼떠서는 거머쥘 수가 없는 자리였다.
우우우—
검이 울음을 토해냈다.
군림하는 자의 걸음이라 불리는 천마군림보. 그는 그 걸음을 내디디며 소혈마 후보에게로 향했다.
이수혁은 그 뒤를 느긋하게 따르다가 검선과 눈이 마주쳤다.
“밀릴 수는 없죠?”
그가 던진 말에 검선의 눈에 불길이 일었다.
“당연한 소릴.”
검선의 검에서 솟구친 황금빛이, 소혈마 후보 호야에게로 향했다.
쿠웅.
중검으로 정파 최고 검사 자리에 오른 것이 맞는 듯, 그의 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거대한 진동이 일었다.
수이 칸은 검선과 천마를 상대하고 있는 소혈마 후보 호야를 짧게 관찰하고는 평가를 내렸다.
“여기 식으로 하자면, 현경 초입이군.”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나이에 현경이라.
엄청난 경지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현경 중반에 도달한 천마나 화경의 끝자락이지만 산전수전을 다 겪어온 검선의 검을 버틸 수는 없으리라.
콰아앙! 콰앙!
수이 칸의 시선이 굉음이 들리는 방향으로 향했다.
또 다른 소혈마 후보의 푸른 기운이 사방으로 뻗쳤다.
짤랑짤랑!
진법을 펼치려는 것인지 혹은 어떠한 술수를 부리려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백룡과 흑룡이 그녀의 움직임을 제한하고 있었다.
“저긴 곧 끝나겠네.”
생각보다 더 최한과 최정수의 합이 좋았다.
하긴, 그 뿌리가 같으면서도 자라난 방향이 다르니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면서 더 나은 싸움이 가능할 터.
“…….”
그러다 수이 칸은 한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반백발의 남자 론. 그의 옆에 서 있는 비크로스.
대검을 등에 그대로 꽂아둔 채, 전장을 내려다보고 있는 비크로스를 가만히 응시하던 수이 칸은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걸음을 옮겼다.
“칼질할 데는 많네.”
서걱.
그의 검이 또 다른 베어낼 곳을 찾아 움직였다.
그리고 그 움직임을 비크로스는 빤히 바라봤다.
“난 가보마.”
아버지 론의 말에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비크로스는 오랜만에 홀로 남았다.
평소라면 그의 곁에 툰카나 신관 더스트, 혈교 7호가 있어야 했다.
어쩌다 보니 사고뭉치들의 뒤치다꺼리를 맡은 비크로스였다.
하지만 툰카는 아직 이곳에 오지 않았고, 신관 더스트는 강시가 있는 곳에 왔다가 구역질과 함께 기절을 할까 봐 후발대로 오기로 했다.
더불어 혈교 7호는 극마의 손에 넘어가, 생사가 불분명하다. 살아있기는 살아있는 것 같은데, 그 꼴을 모르겠다.
극마 말로는 차라리 기절 좀 시켜달라고 애원을 한다는데, 굳이 깊이 듣지 않았다.
다만 지금 비크로스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한 사람의 목소리였다.
서걱.
지금도 무림인의 기운을 베어내고 있는 수이 칸.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원래는 한이에게 한번 의사를 물어볼까 했는데. 너한테 잘 맞을 것 같아서.’
‘비크로스. 내 검을 한번 배워볼래?’
밥 뭐 먹을래, 물어보듯 태연하게 건넨 말이었다.
‘물론 이 능력을 너에게 줄 수는 없고. 나도 써야 하니까. 다만 능력을 개화시키는 발현 조건을 알 것 같거든. 너에게 개화가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다만.’
너무나도 태평한 말에 비크로스 역시도 아무렇지 않게 되물었었다.
‘왜 납니까?’
그 물음에 수이 칸은 웃었다.
재밌다는 눈빛으로 비크로스를 바라보며 툭 내뱉었다.
‘주변을 둘러볼 줄 아는 최한보다는, 네가 맞아. 내가 보기엔, 네가 여기선 제일-’
말꼬리를 잠시 늘이던 그는 곧 망설임 없이 말했다.
‘제일, 고집이 세 보이거든.’
수이 칸은 비크로스가 여기서 가장 고집이 세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한 고집했거든. 좀 나랑 비슷해 보여서 말이야.’
그리 말하고는 한번 생각해보란 말과 함께 수이 칸은 더 이상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비크로스는 그 제안이 계속 유효함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조만간 답을 해야 한다는 것도.
“…….”
어찌해야 할까.
고민을 이어가던 그의 눈동자에 검은 오러에 무참히 찢어발겨지는 푸른 기운이 담겼다.
‘잡았네.’
최한의 손에 멱살이 잡힌 소혈마 후보 한 명이 보였다.
비크로스는 이를 보며 생각했다.
‘어찌 됐든 이대로 있어선 안 되겠지.’
뭘 해도 해야 한다.
다른 이들의 성장 속도가 자신을 넘어서는 천재들이었으니까.
물론 자신도 어느 정도 뛰어나다고 생각은 한다.
다만 자신이 수재 정도라면 저들은 천재일 뿐.
그 사실에 열등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는 건 그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단지, 그뿐이었다.
비크로스가 수이 칸과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은.
‘왔군.’
그의 몸이 움직였다.
케일 헤니투스.
그가 성안으로 들어섰다.
바람을 다리에 휘감은 채.
분명 투명화한 라온의 마법이리라.
아직 바람의 힘 봉인은 풀리지 않았으니까.
“음.”
비크로스는 잠시 멈칫했다.
“이상한데?”
케일 헤니투스 공자.
“…저렇게 멀쩡해도 되나?”
그렇게 엄청난 힘을 썼으면 피 정도는 토해야 하지 않나?
비크로스의 표정이 떨떠름해져 갔다.
왠지 모르게, 조만간 큰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섣불리 입을 놀릴 수는 없었다.
어찌 되었든 지금은 수월하게 일이 잘 진행되고 있었으니까.
한편, 케일은 멈칫했다.
느긋하게 들어선 운남성 안.
무너진 성벽을 넘어 들어선 그곳. 케일은 주변 풍경을 한번 둘러보려고 했다.
“해일 님.”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최한이 다가왔다.
소혈마 후보 윤의 멱살을 잡고 바닥에 질질 끌면서.
“끄으… 끅.”
소혈마 후보는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옆구리에 깊은 찰과상이 존재했으며, 온몸에 달린 장신구 중 상당수가 깨져있었다.
최한은 그런 소혈마 후보를 무심하게 끌고 와 케일의 앞에 내려놓았다.
“크윽!”
소혈마 후보 입에서 고통에 찬 신음이 터져 나왔다.
‘이렇게 거칠게 굴 녀석이 아닌데?’
최한의 거친 행동에 놀랐지만, 이내 납득했다.
‘뭐 쓸데없이 입을 놀려서 최한을 화나게 했나 보네.’
이 순한 놈이 이렇게 화를 드러내는 것에는 이유가 있을 터. 그리고 어차피 적이니, 딱히 신경이 쓰이지도 않는 케일이었다.
운남성 주민들을 강시로 만들려고 했던 녀석들이 아니었던가.
그때, 뒤따라온 최정수가 입을 열었다.
“야. 이 녀석이 라온을 강시로 만들 거라고 했어!”
“…뭐?”
잠시의 침묵 후 되묻는 케일의 눈빛을 본 최정수가 멈칫했다.
“어, 음. 그렇게 말했어! 분명히 나 들었다! 우리 당숙도 들었다!”
그러고는 곧바로 다른 데를 돕겠다며 사라졌다.
-인간아! 강시 안 된다! 나는 위대하니까! 그런데 최정수는 갑자기 왜 헐레벌떡 도망치나? 뭐 잘못했나?
라온의 말은 흘려들었다.
대신 케일은 쪼그리고 앉아서 끙끙 앓으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소혈마 후보를 내려다봤다.
툭툭.
그리고 그 뺨을 두드렸다.
“으으…….”
그 행동에 소혈마 후보 윤은 간신히 눈을 떴다. 그녀는 지금 속이 분노로 가득 찼다.
옆구리가 베인 고통은 그렇게 그녀에게 크게 와닿지 않았다.
‘감히, 감히-!’
위대한 푸른 피의 주인이 될지도 모를 사람에게 이딴 짓을 하다니!
검사 두 명은 마치 어린애를 상대하듯이 저를 여유롭게 노렸다.
마치 먹잇감이 된 것 같은 기분에 윤은 분노를 지울 수가 없었다.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소혈마 후보. 그 자리에 오르기 위해 수많은 고통을 이겨내 왔다.
지금 이렇게 옆구리에 흐르는 피 따위는 별것도 아니었다.
‘…가만두지 않아.’
공격에 휘말려 정신을 잃는 바람에 적의 수중에 멱살이 잡혔으나, 아직은 기회가 있다.
‘그리고, 이대로 돌아가면 나는 죽어.’
분노 뒤에 찾아오는 것은 불안감과 공포였다.
실패한 소혈마 후보의 결말은 단 하나였다.
그녀는 그 결말을 결코 맞이하고 싶지 않았다.
‘아직, 힘은 충분해.’
장신구가 절반 정도 깨졌지만, 이 절반을 이용해서 술법을 펼치고 동시에 진법도 펼친다.
그렇게 후퇴를 한 후에 한 번 더 기회를 노리는 거야.
“…으…….”
그녀는 가짜 신음을 흘리며 겨우 들어 올렸던 눈꺼풀을 조금 더 들어 올렸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살펴보려고 했다.
“……!”
그리고 눈이 마주쳤다.
저를 내려다보는 암갈색의 눈동자.
순간 윤은 저를 덮치는 거대한 기운을 느꼈다.
숨통이 막힐 것만 같은 짙은 압박감.
“커억, 컥!”
누구도 그녀의 목을 조르지 않았건만 절로 숨이 막혀왔다.
그녀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분노.
공포.
불안.
그 모든 것들도 생각을 하고 인지를 해야 떠올릴 수 있는 감정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그런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저 하얗게 변한 머릿속으로 무엇도 인지하지 못할 뿐.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무기력.
그 단어만이 그녀의 상태를 설명할 수 있었다.
“…….”
말조차 내뱉지 못했다.
왜냐면 죽을 것 같았으니까.
이 또한 인지의 영역이 아니었다.
그녀에게는 절대적인 명제이자 진리였다.
지금 저 눈동자의 주인에게 섣불리 행동했다가는 죽는다는 것이.
-하하하! 이거지! 케일, 본격적으로 이 힘을 써보자꾸나! 그러면 신도 쫄 거야!
케일은 지배하는 아우라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며 입을 열었다.
그의 주위에 아주 작은 아우라가 맴돌고 있었다.
“혈교의 목적이 무엇이지?”
아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