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933
케일은 지도를 펼쳐 들었다.
장원 내부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당연히 이건 소혈마 후보 호야의 말을 바탕으로 론이 작성한 것이었다.
그의 시선이 호야에게로 향했다.
“호야가 말한 대로네?”
그가 씨익 웃어 보이자, 소혈마 후보 호야는 얼굴이 하얗게 질리면서도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상하네.’
그 광경을 보며 케일은 묘하게 기분이 떨떠름했다.
‘생각 이상으로 심한데.’
소혈마 후보 호야와 윤. 그들은 케일의 강화된 지배하는 아우라를 마주한 후 제대로 된 반항도 하지 않고 납작 몸을 숙였다.
지금껏 케일이 만난 적들은 이 아우라에 움츠러들고 긴장하면서도 이렇게 빠르고 철저하게 비굴해지지는 않았는데.
‘신도 쫄리게 할 정도라더니, 그래서 그런가?’
강화된 지배하는 아우라가 그렇게까지 엄청난 건가?
‘아니면 유독 이들한테 이 힘이 강한 힘을 보이는 걸까?’
소혈마 후보들이 연기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왜냐면 저들의 얼굴에 서린 공포는 진짜였으니까.
저걸 연기로 만들 수 있었다면, 혈교에 의해서 중원은 이미 망해도 될 정도다.
‘일단 다른 소혈마 후보나 혈교 사람들을 만나보면 답이 나오겠지.’
강화된 지배하는 아우라.
그 진면목을 알아보는 건 천천히 진행해도 될 것이다.
-인간아, 조용하다!
머릿속에 닿는 라온의 말에 케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지도를 다시 들여다봤다.
거대한 장원은 특이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진법을 몰래 뚫어 들어오자, 방어에 특화된 듯한 높은 담벼락이 거대한 직사각형으로 존재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달팽이 껍데기의 무늬처럼, 건물들이 점점 더 좁은 원을 그리며 배치되어 있었다.
그중 단 하나.
그 원의 가장 아래. 남쪽 방향에 작은 점처럼 홀로 떨어져 있는 건물이 있었다.
‘이곳이 백 노가 머무는 곳이라고 했지?’
킁킁.
허공에서 라온이 코를 킁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인간아, 약 냄새가 고약하다!
온갖 약재 냄새가 진동했다.
진법 밖에서는 몰랐는데 안에 들어오니 정말 그 냄새가 아주 독했다.
-거기다가, 썩은 내도 너무 심하다!
-죽은 마나, 그것도 어딘가 존재하는 것 같은데!
라온이 쉬지 않고 조잘댔다.
그래도 될 만큼, 지금 분위기는 평온했다.
케일 일행은 느긋하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첫 번째로 인적이 드문 길을 택해서 외곽을 따라 목표 지점을 향해 이동 중이었으며.
“누구-”
가끔 등장하는 순찰 요원도,
“헛, 윤 님!”
맨 앞에 선 윤을 보고 잔뜩 긴장하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갑자기 등장한 그녀에게 의문을 표하기에는 순찰 요원은 직책이 낮았다.
그리고 그렇게 요원이 등장하면.
스윽.
어둠 속에서 론이 나타나, 윤에게 시선이 끌렸을 때.
“!”
“커헉!”
하나둘 조용히 기절시켜 주었다.
아주 물 흐르듯, 케일의 발걸음이 멈출 일 없이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시끄럽지도 않고, 누구 하나 호들갑을 떨지도 않고.
그저 산책을 나온 듯.
그들은 그렇게 걸음을 옮겼다.
물론 호야와 윤의 표정은 갈수록 어두워져 갔지만, 그것은 케일이 알 바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호야에게 물었다.
“강시에도 등급이 있다고?”
지도에 표시된 한 지점에 도달한 순간에 던진 말이었다.
저벅.
케일은 걸음을 멈췄다.
유독 서늘한 공기가 맴도는 곳.
그는 옆에 있는 건물의 벽을 바라봤다.
맨 위에 작은 창이 뚫려 있었다.
그리고 맨 아래에도.
최정수가 슬쩍 몸을 숙여 발 정도의 위치에 존재하는 작은 창들 중 하나를 들여다보았다.
“…음.”
수많은 발이 보였다.
좁은 공간에 빽빽하게 들어선 발들.
그건 강시의 발이었다.
이곳은 강시를 보관하는 여러 창고 중 하나였다.
“네, 등급이 있습니다.”
호야가 긴장감 어린 표정으로 답했다.
“강시, 생강시, 진강시. 이렇게 3가지로 나뉩니다.”
“뒤로 갈수록 강한가?”
“네.”
케일은 지도를 가리켰다.
“보니까, 강시 제조를 하는 곳도 3군데던데. 저 등급에 따라 나뉜 건가?”
“마, 맞습니다.”
“여기는 가장 외곽이니까 이 안에 있는 건 그냥 일반 강시겠네?”
“네, 네.”
호야는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바로 떠올리는 대로 답변했다. 케일의 눈빛이 점점 더 서늘해져 갔으니까.
“보니까, 지하에도 강시들이 보관되어 있는 것 같은데.”
케일의 옆에 있는 건물만 해도 3층짜리였는데, 모두 같은 형태로 작은 창이 나 있었다.
“이 장원 안에 강시가 몇 구 정도 있지? 다 합쳐서.”
차가운 눈빛에 호야는 황급히 답했다.
“그, 그건 모르는데요. 아마, 지금껏 만든 전투 가능한 강시만 따지면 한 10만-15만 정도니까-”
하아.
케일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손을 들었다.
“크윽!”
그대로 호야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무공이 전혀 담기지 않은, 평범하고 느린 손짓을 호야는 알았지만 피할 수 없어서 고스란히 맞았다.
케일의 눈빛에 깃든 경멸을 읽었으니까.
“전투 가능이면, 전투가 불가능한 강시도 있는 건가?”
“그-”
대답을 망설이던 호야는 케일이 다시 손을 들자 얼른 입을 열었다.
“그거야, 실험용으로 잡아둔 강시들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어린애나 노인은 아무리 강시가 되어도 전투용으로는 부적합해서-”
퍼억!
“컥!”
호야는 다시 뒤통수를 움켜쥐어야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케일은 본인이 때렸음에도 아픈 손을 탈탈 털어대며 얼굴을 찌푸렸다.
‘미친 것들.’
웬만한 성만큼 큰 이 장원 안에는 강시 숫자가 일반적인 성 주민들 수만큼 존재했다.
물론 이곳이 북해 쪽과 더불어 강시 제조를 하는 핵심지역이라 강시가 많은 게 당연할 수도 있지만.
-인간아, 너무 많다…….
넋이 나간 라온의 말에 케일은 어떠한 반응도 할 수 없었다.
그는 동료들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어진 것을 이미 확인했으니까.
그때, 최한이 입을 열었다.
“그만한 수의 강시를 어떻게 만들 수가 있는 겁니까?”
분노가 서린 눈빛이 호야에게 향했다. 호야는 그 눈빛에 미간을 찌푸렸다. 케일도 아니고, 그 수하 주제에 이런 눈빛을 보내는 것이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는 케일의 눈치를 살피더니 입을 열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수십여 년에 걸쳐서 쌓아온 강시인데.”
“뭐라고요?”
“아니. 그렇잖아. 강시 될 사람 구해 오는 거야, 아랫것들이 하는 일이지. 그런 하찮은 일까지 내가 일일이 상대할 건 아니지. 진강시급이면 몰라.”
하.
최한이 기가 차다는 듯 탄식을 터트렸다.
말문이 막혔다.
들어보니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사람들을 잡아들여 강시로 만든 것 같은데. 그걸 어떻게 저렇게 무책임하게 대할 수가 있지?
그의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그때, 수이 칸이 나직이 읊조렸다.
“수십여 년이라. 강시는 부패를 안 하나?”
“관리만 잘하면.”
일시에 이만한 숫자의 강시가 만들어진다면, 분명 황궁이든 어디든 이상함을 알아챘을 것이다.
하지만 수십여 년에 걸쳐 야금야금 사람을 빼돌려 강시를 만들었다면, 알아채기 힘들 수도 있었다.
특히 중원은 하루에도 몇 번이나 무인 간에, 문파 간에 자잘한 전투가 벌어지는 곳이다 보니 죽은 사람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었고.
또 선대 황제 때는 행정이 엉망이었다고 들었다. 지금 황제가 즉위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그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파악하기 힘든 면이 더 컸을 터.
그리고 내전이라는 요소가 혈교에게 좋은 상황을 많이 안겨주었을 것이다.
“하.”
최정수가 탄식을 흘렸다.
“북해까지 합치면, 얼추 강시만 해도 20-30만 정도 되겠네.”
“그, 북해는 좀 적은데. 거긴 너무 추워서 한 7만-”
말을 꺼냈던 호야는 케일의 눈빛에 입을 다물었다.
케일은 그런 호야를 외면한 채 걸음을 옮겼다.
‘그 강시들을 다시 정화한다고 해도-’
생강시가 아닌 이상, 그들은 결국 시체로 돌아갈 것이다.
새삼 케일은 마음이 갑갑해져 왔다.
행성 샤올렌에서 마주했던 강시들도 떠올랐다.
‘사냥꾼 이 새끼들은 미친 거 아냐?’
그들의 목표가 새로운 신을, 절대신이라는 것을 만드는 걸로 알고 있는데.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많은 이들을 죽여야 할 필요가 있을까?
케일은 자신이 대단한 영웅도, 사명감을 지닌 사람도 아니지만. 이 정도 상황을 알게 되니 분노를 넘어 도저히 사냥꾼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신이 되고 싶나?
이렇게까지 하면서 신이 되어야 할 이유가 있나?
신. 그게 뭐라고?
업이니 뭐니 하면서 몇 개의 세계를 바쳐서 얻을 신의 자리라니.
“도저히 이해가 안 되네.”
케일은 툭 내뱉고는 상념을 멈췄다.
그의 시선이 정면을 가리켰다.
“저기네.”
홀로 떨어져 있는 전각이 눈에 들어왔다.
주변에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저 안에 백 노가 있었고, 그 백 노를 지키는 진강시들이 있다고 들었다.
‘진강시라.’
생강시를 뛰어넘는 존재로, 하나하나가 생체 병기나 다름없다고 했다.
특히 진강시의 뛰어난 점은, 그 인간이 가지고 있던 태생적인 재능을 한계치까지 끌어올린다는 점으로, 만들기가 너무 힘들지만 완성만 하면 생강시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존재가 된다고 하였다.
‘그래 봤자, 강시지.’
케일은 무심한 얼굴로 명했다.
“잡아 와.”
론, 최한, 최정수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소혈마 후보 윤에게 말했다.
“사람들 눈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이게 진법 펼쳐. 알았어?”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냉기가 서린 눈빛에 윤은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그리고 케일은 라온에게 말했다.
“저기 전각 전체에 방음 마법 좀 쳐줘.”
싸워도, 뭔 짓을 해도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게.
“가죠.”
그리고 케일은 수이 칸, 비크로스에게 눈짓했다.
천천히 전각으로 걸음을 옮겼다.
짤랑짤랑!
진법을 펼치는 윤의 목소리를 들으며.
우우우—우우—
라온이 펼치는 마법에 전각을 둘러싼 반투명한 검은 막이 생겨나는 것을 보며.
케일은 천천히 전각으로 향했다.
그가 도착했을 때쯤, 이미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길 바라면서.
이는 당연한 생각이었다.
‘진강시 수준은 현경 하나에 화경 셋으로 알고 있습니다!’
백 노를 지키는 진강시들의 수준은 최한, 최정수, 론이면 가뿐했으니까.
그리고 케일은 그들에게 진강시를 상대하라고 하지 않았다.
‘그, 그리고 백 노는 무공을 배우지 않았습니다!’
그저 빠르게.
콰아앙—!
전각이 부서졌다.
검은 용을 따라 백룡이 전각을 헤집었다.
엉망이 되어가는 전각에 발을 들인 케일은 먼지구름 사이로 나타난 이를 볼 수 있었다.
“도련님.”
론이 어느 때보다도 인자한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잡아 왔습니다.”
그저 빠르게 백 노만 데리고 오라고 했을 뿐.
때문에 최씨 가문 두 사람이 진강시를 상대할 동안, 움직일 사람으로 론을 보냈다.
우우우—우우—-
소혈마 후보를 상대할 때처럼, 지배하는 아우라를 휘두른 케일의 시선이 백 노인에게로 향했다.
“빌어먹을 인간 놈들! 감히, 인간 주제에 내 집에 들어와? 감히, 이 혐오스러운 것들!”
깡마른 노인이 론에게 뒷덜미가 붙잡힌 채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몸을 연신 뒤틀고 소리를 질러댔다.
그러다가 기이한 기운을 느낀 것인지 케일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
그리고 멈칫했다.
그는 케일을 보며 툭 내뱉었다.
“이, 인간이 아니네?”
케일의 미간이 순간 찌푸려졌다.
‘이 미친 노인네가 뭐라고 하는 거야?’
그러거나 말거나 백 노인의 표정이 갑자기 밝아졌다. 아니, 풀어졌다. 넋이 나간 얼굴로 입을 멍하니 벌리더니 케일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말했다.
“아, 아름답다-”
케일은 가볍게 입을 열었다.
“돌았군.”
이 노인네는 돌았다.
“그럼 죽일까요?”
물론 론의 부드럽고 다정한 말에 멈칫했지만.
그때, 백 노가 케일을 향해 손을 뻗었다.
“왕의 후계가, 신의 그릇이 또 있다니……!”
뭔 그릇?
케일의 얼굴에 의문이 서렸을 때.
“히익!”
갑자기 소혈마 후보 호야가 숨을 들이마시며 몸을 움츠러트렸다. 그러고는 케일을 보며 중얼거렸다.
“설마-, 그분 같은 존재가 또 있다고? 말도 안 돼!”
이것들이 지금 뭔 소리야?
케일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진 때, 그는 움찔했다.
“커억!”
론이 백 노인의 목을 움켜쥐었다.
“진정하시고, 우리 도련님의 말에 차분히 천천히 답하세요.”
그리고.
퍼억!
“컥!”
비크로스가 호야의 뒤통수를 대검 검집째로 후려쳤다.
“알아듣게 말하도록.”
무덤덤하게 한마디를 덧붙이면서.
케일은 신이고 나발이고, 저 부자가 더 무서웠다.
침을 꿀꺽 삼키는 그에게, 론이 백 노인의 목을 놓으며 말했다.
“아직 살아 있고, 이제는 조용하네요. 참 좋군요.”
이 살벌한 노인네 같으니라고.
케일이 다시 한번 몰란가 부자의 존재감을 명백하게 인식한 그때였다.
백 노인은 강한 인간이었다.
론의 경고를 무시하고 케일에게 달려들었다.
그것도 눈이 뒤집힌 채로, 침을 흘리며.
“내가, 내가 신으로 만들어줄게!”
광기로 가득한 열망이 담긴 그의 눈동자가 케일만을 주시했다.
‘뭐야, 이 인간.’
케일은 찝찝한 얼굴로 뒤로 물러섰다.
-인간아, 인간아! 이때까지 내가 본 인간 중에 이 인간이 제일 심하다! 450도, 아니, 몇 도가 돌았는지 모르겠다! 클로페도 못 이긴다! 저 인간, 눈빛은!
그러니까. 진짜배기다. 저 눈은.
케일은 결국 지배하는 아우라를 펼쳤다.
백 노를 향해서만.
물론 많이는 안 썼다. 그는 무공을 익히지 않아,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 터.
“허억.”
“흐읍.”
소혈마 후보 호야와 윤이 본인들을 향하지도 않은 기운에 흠칫 몸을 떨었다.
‘이걸로 확실해졌네.’
저들이 유독 이 강화된 지배하는 아우라에 심하게 반응한다.
그 이유가 뭘까?
“크윽!”
그때, 백 노의 신음이 들려왔다.
‘이제 대화를 좀 해볼 수가 있겠네.’
케일은 시선을 돌렸다. 이제는 백 노가 안정했을 것이라 생각하며. 하지만 케일은 진심으로 놀랐다.
“크윽, 윽!”
백 노는 케일의 아우라에 눌린 것인지 심장께를 손으로 움켜쥐면서도 고개를 들어 올려 케일을 바라봤다.
눈은 실핏줄이 터져 시뻘겋게 충혈이 되었고, 그 입가에는 이상한 거품이 맺힌 침을 줄줄 흘리면서.
“지, 진짜 신이 되자. 응? 신, 응?”
와.
-와.
케일과 라온이 동시에 같은 감탄사를 흘렸다.
“이건 인정한다. 진짜!”
진강시와 싸우던 최정수가 감탄하면서 박수를 쳤다.
콰아아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