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935
케일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 진짜 짜증 나게 구네.”
띠링.
케일의 표정이 굳어지다 못해 구겨졌다.
지금 이놈이 뭐라고 한 거지?
“…흑. 너무해……?”
케일은 기가 차서 자신에게 온 메시지를 그대로 읽었다. 저도 모르게 한 행동이었다.
“야, 있잖-”
마침 안으로 들어서던 최정수는 휘황찬란한 거울을 들고서 ‘흑, 너무해.’를 말하는 케일의 모습을 보고는 슬그머니 다시 되돌아나갔다.
아주 못 볼 것을 보았다는 표정으로.
그러거나 말거나 케일은 눈길 한 톨 주지 않고서 거울을 여전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돌았나?”
그리고 한마디를 툭 내뱉었다.
그에 거울이 잠잠했다. 케일은 조용해진 꼴에 다시 표정이 평온해졌다.
“론.”
“네, 도련님.”
“나 대화 좀 나누고 있을 테니까, 뒷정리 부탁해.”
“즐거운 대화 나누시길 바랍니다.”
론이 기절한 백 노인을 데리고 나가버렸다.
“인간아, 중원이랑 연락하나?”
어느새 라온이 동자승 조각상을 품에 안고서 모습을 드러냈다. 운남성에서 진법용으로 쓰였던 동자승 조각상은 비크로스의 손에 깨끗하게 닦였다.
“일단 죽음의 신이랑 연락할 건데.”
힐끗 조각상을 본 케일이 무심한 얼굴로 덧붙였다.
“중원이가 일을 하나 잘 해결한 거 같아.”
“오.”
라온이 히히 웃으며 동자승 조각을 통통한 앞발로 쓰다듬었다. 케일은 괜히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에 시선을 돌렸다.
역시, 용은 살벌하다.
“야.”
케일은 거울에 대고 물었다.
“왕을 찾았다는 게 무슨 말이야?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봐.”
곧장 답신이 왔다.
“죽을 시간과 장소가 다 뜨는 건가?”
“그래서 지금은 어디 있는데?”
분명 죽음의 신은 왕이 끌려다니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 물음에 케일이 할 수 있는 답은 하나뿐이었다.
‘그건 왕세자 저하의 판단에 따라야지.’
하지만 그 답을 굳이 죽음의 신에게 할 필요는 없었다.
그때였다.
띠링.
그 메시지를 보는 순간 케일의 한쪽 입꼬리가 삐뚜름하게 올라갔다.
케일은 본인이 할 수 있는 적절한 말을 이미 알고 있었다.
“최정건 찾아주면 돼?”
최한과 최정수의 조상이자, 케일이 사는 세계 최초의 드래곤 슬레이어.
더불어 단생자이자 방랑자로서 죽음의 신의 일을 돕고 있는 자.
띠링.
“난 너랑 말이 통한다는 사실이 상당히 싫은데?”
케일은 죽음의 신 메시지를 무심한 눈동자로 바라봤다.
죽음의 신.
이 존재가 지금 가볍게 행동해서 그렇지 실제로 그는 가벼운 자는 아니었다.
‘아마도 최정건을 찾기 위해 왕세자 저하 아버지의 위치를 찾아봤겠지.’
케일과의 대화를 위한 수단 중 하나로써.
‘어차피 최정건은 구하러 가야 돼.’
그는 최한과 최정수를 떠올렸다. 더불어 제 옆에서 저를 멀뚱멀뚱 바라보는 라온에게 잠시 시선을 두었다.
“왜 그러나, 인간?”
“별거 아냐.”
아피토유.
보라 피 사냥꾼인 용들이 지배하는 세계.
더불어 세계의 존재 자체가 응답하지 않는 땅.
그곳에서 최정건의 소식은 끊겼다.
그리고 케일에게 여러 힘을 강화할 수 있게 한 힘을 남긴 용은 라온이 그 세계를 구할 것이라고 했다.
케일은 라온을 위험하게 만들 생각이 단 한 톨도 없었다.
“야.”
그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최정수를 찾기 전에, 먼저 정보를 알려줄 생각은 없고?”
대답이 퍽 단호했다.
죽음의 신이 구구절절 메시지를 보낼 때, 케일은 가만히 보다가 한마디를 툭 내뱉었다.
“난 말한 건 지켜.”
죽음의 신이 갑자기 메시지를 멈췄다. 그러더니 이내 답했다.
케일의 한쪽 입꼬리가 삐뚜름하게 올라갔다.
“아, 잠시만.”
그는 죽음의 신을 붙잡았다.
중원이. 이 녀석은 은근히 약았다. 이놈이 남겨준 메시지를 읽기 전에 케일은 물어보고 싶은 바가 있었다.
“균형의 신하고 세계들하고 합의를 잘 봤나 봐?”
그때, 답이 왔다.
…이 자식이?
“인간아, 왜 그렇게 환하게 웃나? 또 누구 뒤통수치러 가나?”
라온이 다급하게 말한 그때.
띠링! 띠링!
케일은 물끄러미 거울을 응시했다.
그러자, 잠시 뒤 요상한 신호음과 함께 메시지가 다다다 올라오기 시작했다.
띠이리리리–
“또 다른 신?”
새로운 인물의 등장에 케일이 입을 열었을 때, 죽음의 신은 잠시 침묵하다가 천천히 활자를 거울 위에 나타냈다.
“…그게-”
그게 무슨 소리냐고 케일은 물으려고 했지만, 죽음의 신은 메시지를 빠르게 이어 보냈다.
띠링, 띠링!
띠링.
간결한 메시지가 이어졌다.
활자였지만, 케일은 그 안에 담긴 경고를 읽었다.
더 이상은 알려고 하지 마라.
죽음의 신이 건네는 경고는 케일을 위한 호의가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케일은 입을 다물었다.
‘그래, 굳이 알아봤자 뭐해.’
사냥꾼 일만 해도 큰일이다.
죽음의 신과의 대화는 그렇게 끝이 났다.
케일은 그제야 중원이가 남겨둔 메시지를 읽고는 곧장 신물을 매만졌다.
파아앗!
곧 거울 위로 화면이 떠올랐고,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 나타났다.
-…….
알베르 크로스만.
그의 얼굴을 본 순간, 케일의 미간이 구겨졌다.
“뭐합니까?”
쉿.
알베르는 조용히 하라는 듯 손가락을 제 입에 댔다.
그는 지금 다크엘프 쿼터 모습을 한 채로, 또한 복장도 용병처럼 가벼운 전투 복장을 하고 있었다. 거기다가 후드를 써서 얼굴의 일부를 가리는 중이었다.
‘이 인간 그사이 뭔 일을 하고 다녔던 거야?’
케일의 얼굴에 의문이 강하게 서렸을 때.
-케일.
알베르가 다급하게 속삭였다.
-엔더블에서 특이한 공간을 찾았다.
엔더블.
오랜만에 듣는 장소였다.
과거 하얀 별이 다스렸던 곳이자, 이제는 뱀파이어 프레도 공작이 로운 왕국과 손을 잡고서 관리하는 지역이었다.
그곳은 뱀파이어와 다크엘프 등 대륙에서 인정받기 힘든 이들이 터를 내려 살아가고자 하는 곳이었다.
더불어 케일이 광산을 하나 심어두기로 계획된 곳인데.
-광산을 둘 곳을 찾다가, 발견한 공간인데. 잠시만.
알베르는 케일이 말할 틈을 주지 않았다. 그의 곁으로 누군가 다가왔다.
-케일인가?
-네.
알베르가 존대를 할 이는 많지 않았다.
“금 용 할배다!”
라온의 표정이 밝아졌다. 고룡 에르하벤의 얼굴을 오랜만에 보는 케일도 내심 반가운 마음이 들어 입을 열었다.
-쉿, 조용히 해라.
하지만 에르하벤도 라온에게 조용히 하라고 대뜸 말했다.
그에 케일도 덩달아 입을 다물었다.
‘뭔가 있는 건가?’
로운 왕국을 지키고, 어둠의 숲에 버티고 있어야 할 에르하벤이 엔더블에 왔다. 그리고 그 행동도 조심스럽다.
뭔가 일어난 게 틀림없다.
케일은 저도 모르게 긴장감이 일었다.
그때, 에르하벤이 입을 열었다.
-하얀 별의 궁전 터. 그 지하 깊은 곳에서 이상한 장소를 발견했다. 아무래도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차원으로 넘어간 흔적이 남은 장소 같은데. 죽음의 신 교단을 통해서 차원을 넘어본 경험이 없었다면, 나도 알아차리지 못했을 거야.
차원을 넘어가는 흔적?
-그리고 그 흔적에 신의 기운이 남아있어.
에르하벤이 말을 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나와 프레도 공작이 조사하기로 했다. 또 딱히 위험한 곳은 아니고 단지 흔적이니 걱정은 안 해도 될 거 같아.
그러고는 알베르에게 영상통신구를 넘겼다. 그 후 그는 프레도 공작과 함께 지하로 향하는 듯한 어두운 굴속으로 사라졌다. 케일은 그제야 주위에 프레도 공작의 수하로 보이는 뱀파이어 몇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마저 모두 지하로 향하고 적막만이 남았을 때, 알베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여기 온 건 비밀이라서 말이야.
알베르는 씨익 웃었다. 어딘가 편안한 모양새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케일이 입을 열었다.
“이제 말해도 됩니까?”
-어.
알베르는 빠르게 주변을 둘러보더니, 크나큰 나무에 올라가 등을 기댔다.
-이러면 아무도 못 듣겠지.
“그렇군요. 국왕 전하를 곧 찾을 것 같습니다.”
-…음?
“형님 아버지 찾을 것 같다고요.”
-…응?
멍하니 되묻는 것과 달리 알베르의 눈동자에는 이채가 순간 떠올랐다. 이를 본 케일이 한쪽 입꼬리를 올려 삐쭉 미소를 그렸다. 그에 알베르가 곧장 입을 열었다.
-자세한 설명 부탁해.
케일은 곧바로 죽음의 신과의 대화 내용을 알려주었다. 더불어 최정건과 아피토유 등 그간 케일에게 있었던 일들 또한 간단하게 축약해서 전했다.
-…참 많은 일이 있었네.
알베르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해갔다. 뭐라 하고 싶은 말이 많으면서도 차마 해도 되나 싶은 표정이었다.
케일은 이를 깔끔하게 무시하고 제 할 말을 했다.
“하루빨리 다 정리하고 로운으로 갈 테니, 그 엔더블에 남은 흔적 그냥 놔두세요. 저도 살펴보게.”
알베르의 시선에 케일은 곧장 이어 말했다.
“제가 엔더블에서 신과 관련된 사람을 한 명 본 적이 있거든요.”
엔더블.
그곳은 예전에 프레도 공작에게 들었다시피, 신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이라 하였다.
때문에 마계의 문이 열린 것이 아니라면 그곳에 마족이 나타난다고 해도 신이 알아차릴 방법이 없다고 했다.
‘더불어 하얀 별이 마족이 되려고 하는 줄 알았지.’
마계의 문이니, 천계니 신계니 하면서 한창 열을 올렸던 지나간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때, 케일은 엔더블에서 신과 관련된 사람을 한 명 보았다.
하얀 별을 마족과 같은 존재로 모셨던 신도들.
그사이에 섞여 있던 부제사장.
그녀는 말했다.
‘전쟁의 신을 모시는 자는 언제나 숨죽인 채 전쟁의 중심으로 숨어들지.’
케일은 알베르에게 말했다.
“코튼 부제사장. 그녀의 위치를 찾아보죠.”
용병왕 버드와 함께 떠났던 그녀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왠지 예감이 좋지 않았다.
부제사장 코튼. 그녀는 전쟁의 신을 모시는 자로서 그녀 덕분에 케일이 검은 구에 갇혀서 김록수가 되어 이수혁을 만났을 때, 그의 일행과 버드 일행이 엔더블에서 안전하게 피할 대피소를 마련할 수 있었다.
전쟁에서 약한 자를 보호하기 위한 공간을 만들 줄 아는 그녀.
그리고 전쟁이 벌어지는 어디에든 숨죽인 채 그 중심에 숨어든다고 했다.
‘전쟁의 신이라-’
클로페 세카. 그 녀석의 저택에서 주운 물뿌리개가 이 신의 물건이었다.
그리고-
“일단, 자세한 이야기는 차차 나누도록 하죠.”
-그래. 나는 코튼 부제사장을 한번 찾아보도록 하지.
케일은 영상통신이 끝난 거울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야.”
대답하는 이가 없었다.
“너 뭐 할 말 없냐?”
잠시 정적이 내려앉았지만, 곧 케일의 머릿속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미묘한 불편함과 꺼림칙함이 담긴 목소리.
그 목소리의 주인은 한때 전쟁의 신에게 이름을 부여받았다.
그 이름은 ‘심판하는 물’.
하지만 그녀는 전쟁의 신에게 사직서를 던져버리고 스스로를 역행하는 물이라 칭했으며, 나아가 자신을 ‘하늘을 잡아먹는 물’이라고 하였다.
-난… 잘 모르겠다.
하늘을 잡아먹는 물은 케일에게 머물게 된 후, 처음으로 전쟁의 신에 대해 언급했다.
-좋은 분인 줄 알았는데. 좀 싸해. 약간 좀 그래. 지금 생각해보면.
그녀가 사람들에게 신의 대리자로서 추앙받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사람들에게 질시와 억압을 받게 했다.
나아가 그녀를 귀히 여기고 아꼈지만, 더불어 그녀가 스스로의 힘을 펼치고 자유롭게 살지 못하게 만들었다.
‘죽음의 신이 케이지에게 하는 것과 달랐지.’
죽음의 신은 파문된 신관 케이지를 정말 아꼈다.
케일은 이것만큼은 인정할 수 있었다. 케이지는 죽음의 신이 내어준 힘을 여전히 지닌 채 자유롭게 자신의 뜻을 펼치는 중이었다.
케이지와 하늘을 잡아먹는 물.
둘 다 신의 아낌을 받았지만, 그 결과가 너무나도 달랐다.
케일은 쇠사슬에 감겨 있던 심판하는 물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일단, 이건 로운으로 돌아가서 확인하자.”
그는 하늘을 잡아먹는 물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협조 좀 부탁한다?”
“인간아, 그렇게 말하니까 무섭다!”
라온의 말은 흘려들었다.
-…그래.
떨떠름하게 대답하는 하늘을 잡아먹는 물의 반응에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 * *
쏴아아아—-
이틀째 비가 내린다.
무림맹의 총군사 제갈미려는 달빛마저 가린 채 쏟아지는 비를 보며 고개를 들었다.
검은 하늘에서는 무엇도 보이지 않았다.
별마저 보이지 않아, 천기를 읽을 수 없었다.
쏴아아아–
그 순간, 제갈미려는 흠칫하며 고개를 돌렸다.
다그닥 다그닥.
마차 한 대가 여유롭게 광동성주의 저택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달칵.
마차 창문이 서서히 열렸다.
안에서 불빛이 쏟아져나왔다.
그 불빛을 등진, 그늘진 얼굴이 보인 순간 제갈미려는 곧장 망설임 없이 빗속으로 걸어나갔다.
하지만 그녀보다 더 빠른 이가 있었다.
“스승님! 어서 오십시오!”
사도련의 련주 사마평.
그가 마차 문을 열며 넉살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런 그를 내려다보며 케일은 입을 열었다.
“비바람이 심하군요. 배를 띄울 수 있겠습니까?”
해남.
그 섬으로 가려면 배를 타야 했기에, 케일은 해남이 보이는 광동 바닷가에 도착하자마자 물음을 던졌다.
쏴아아아—-
한밤중에 케일 일행이 목적지 코앞에 도착했다.
“오늘 밤은 배를 띄우기 힘듭니다. 파도가 심합니다.”
사도련의 련주 사마평이 건넨 말대로 배를 띄우기에는 현재 바다 상황이 좋지 못했다.